어플에 표시된 위치는 지난 이틀간 미동조차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그 위치로 가더라도 수해가 없을 가능성이 컸다. 수해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핸드폰만 그 곳에 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거나. 목적지 500미터 전 지점에 도달하자, 정운은 차의 헤드라이트를 끄고 미등만 켰다. 얼마간을 서행하자 라이트가 꺼진 수해의 차가 보였다. 주변에 폐가 같은 곳이 몇 보일 뿐인 공터였다. 정운은 차에서 내려 잠긴 수해의 차 안에 불빛을 비춰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차 안에는 김밥을 쌌던 은박 뭉치와 빈 카메라 가방, 수해의 개인 스마트폰이 있었다. 누군가가 연락을 보내는지, 액정 화면이 켜졌다 꺼지길 반복했다. 그동안 충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터리는 거의 한계에 도달했는지, UI 표시가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수해는 이곳을 베이스캠프처럼 사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눈에 잘 띄는 차와 장비들을 이곳에 놔두고, 혼자 업무용 폰과 카메라를 든 채 어딘가로 향했을 터이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잠복하고 있는 곳이 있을 거였다. 빗줄기가 점차 거세지는 탓에, 발자국은 이미 다 없어진 지 오래고 주변 시야마저 좋지 않았다.

   정운은 지도 앱을 켜서 주변 지형을 파악했다. 작은 건물로 보이는 곳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어떤 목적의 건물인지는 지도상에 나와 있지 않았다. 번지수가 붙어있는 것도 있었고, 없는 것도 있었다. 정운은 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산 우비를 입고, 호신이 될 만한 물건을 챙겨 목적지로 걸었다. 이 주변이 뭐 하는 곳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공장단지 같기도 했고, 평범한 회사 건물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벌써 늦은 밤이라 불이 켜진 곳이 없었다. 얼마간을 걷다 보니 앞쪽에 차가 몇 대 주차되어있는 낮은 2층짜리 작은 건물을 발견했다. 건물의 한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정운은 손전등을 끄고 그 쪽으로 접근했다.

   정운은 창문 밑의 벽에 기대 앉았다. 누군가가 언성을 높이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이 닫혀있어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창문은 바깥쪽에서 안쪽을 볼 수 없게 불투명한 시공이 되어있었다. 호흡을 다듬으며 조금 기다리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다시 고요해졌다. 정운은 조용히 일어나 벽을 끼고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불 꺼진 창문들 중 하나에 잠금장치가 걸려있지 않았는지, 바깥쪽에서 창문을 밀어 열 수 있었다. 정운은 곁눈질로 안쪽을 살폈다. 급하게 이사 온 사무실인지, 이사를 나간 사무실인지, 바닥에 박스와 종이들이 널려있을 뿐인 빈방이었다.

   정운은 불 켜진 방과 창문이 열린 방 사이의 거리를 잠시 짐작해보고는, 살짝 점프해 창문을 넘어 사무실로 진입했다. 철제로 된 문에 귀를 대보니 복도에 아무도 없는지 고요했다. 문을 소리 나지 않게 살짝 열고 바깥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복도의 저편, 아까 봐둔 불 켜진 방에서 멀지 않은 맞은 편 방의 문 밑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정운은 방 안에 있던 종이에 신발을 문질러 닦고, 종이는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걸을 때 젖은 신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운은 천천히 복도로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내딛었다. 손전등을 켜지 않았기 때문에 온통 시야가 깜깜했다. 저 멀리 문 밑으로 새어 나오는 빛줄기에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 고성이 오가던 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맞은 편의 방에서 사람들이 회의하는 듯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곳에 수해가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어느 문을 열든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운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 조용한 방의 문손잡이를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돌려 열었다. 책상과 의자가 놓인 방 안에 수해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정운은 잽싸게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쉿…”

   고개를 든 수해가 정운을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요…”

   정운은 수해가 다친 곳이 없는지 빠르게 확인했다.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였다. 결박된 흔적도 없고, 문도 잠겨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크게 다급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옆 방으로 가요.”

   정운이 작은 소리로 말하자, 수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이 방을 빠져나와, 정운이 진입했던 빈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정운은 돌아서서 수해의 상태를 다시 살폈다.

   “괜찮아요?”

   수해는 아직도 정운이 눈앞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만 끄덕였다. 정운은 그제야 수해를 꽉 끌어안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다급한 호흡이 쏟아졌다. 너무 꽉 안아서 거세게 뛰는 심장이 수해에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어요.”

   그간 수해는 더 마른 것 같았다. 온 몸에 힘이 없어 마치 종이 인형처럼 힘없이 자신에게 기대오는 수해를 안은 팔이 가볍게 떨렸다. 수해가 천천히 손을 올려 정운의 등을 마주 끌어안고 토닥였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애정을 어찌해야 할 지도 모르고, 그저 정운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나 이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정운은 몸을 약간 떼어 수해를 마주 보았다. 수해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일단... 나가서 얘기해요."

   수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운은 나가기 전에, 자신이 입고 왔던 우비를 벗어 수해에게 입혀주었다. 정운이 먼저 창문을 가볍게 뛰어내리고, 뒤따라 나오는 수해를 부축했다. 그들은 비를 틈타 조용히 건물을 벗어나 걸었다. 정운이 먼저 앞서고, 수해가 그 뒤를 따랐다. 빗줄기가 워낙 거세, 진흙이 된 땅이 온통 파였다. 바로 코 앞까지 사람이 접근해야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시야였다. 수해의 차를 세워둔 곳까지 도착하자, 수해는 운전을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수해의 차를 그대로 두고, 정운의 차에 탔다.

   “근처에 방 빌려둔 곳이 있어요. 거기로 가요.”

   정운은 지친 수해에게서 우비를 벗기고 그의 얼굴에 흘러내린 비를 닦았다. 뒷좌석에서 물이랑 샌드위치를 건네자 수해가 힘없이 웃었다.

   “이런 건 언제…”

   손이 물병 위에서 겉돌자, 정운이 물병을 건네받아 뚜껑을 열어 건네주었다. 모텔까지 이동하는 동안 정운은 말이 없었다. 수해는 조금씩 물을 들이켰다.

   “수액을 가지고 왔었어야 했나… 지금 어디 가서 맞춰야 하나…”

   중얼거리는 소리에 수해가 돌아보았다.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정운의 옆얼굴에, 수해는 샌드위치 포장을 부스럭거리며 벗겨냈다. 조금씩 베어서 먹는 모습에, 정운이 그제야 안심하는 듯했다.

   “정운 씨, 나 별일 없었어요. 그냥 아무것도 못 먹고 거기 앉아있어서 지친 것 뿐이에요. 저 새끼들 아마추어라… 나 데리고 아무것도 못 해요. 아, 그치. 그냥 검찰 조사 받았다고 생각하면 돼요. 묻는 말에 대답하고… 모른다고 하고…”

   그렇게 설명해봐야 검찰 조사를 받아본 적 없는 정운이 알 리가 없었다.

   "그 사람들이 심하게 대하진 않았어요?"

   수해는 그저 어깨를 힘없이 으쓱 했다. 감금된 상황도 아니고, 폭력을 가한 상황도 아니면 수해는 왜 그 곳에 머물렀던 걸까?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운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잠깐 쉬어요.”

   수해는 먹다 만 샌드위치를 손에 쥔 채 시트에 몸을 기댔다.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혀 빠르게 흘러내렸다. 빗방울이 날카롭게 자동차 천장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렸다. 수해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그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수해는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돌아올 예정이 없던 거라면. 서로 같은 무게인 줄 알았던 마음이었다. 정운은 그동안 애착 뿐만이 아니라 수해도, 자신도 몰랐던 불안을 키워온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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