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연명치료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반대였다. 연명치료로 생명을 연장하는건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연명치료를 할것인지 말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당사자가 되고 보니 쉽게 결정을 내릴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엄마를 살릴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으니 집으로 모셔 가라고 했다.  집으로 모셔 가라고 하는 의미를 그때는 이해할수도 없었고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일이라 뭐가 뭔지 알수 없었다. 이대로 보내드릴수 없다고 생각해 요양병원에서 2년이 채 안되게 모셨고 중간 중간 위험한 고비가 올때도 난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수 없었다. 결국 엄마를 보내 드리고 나서야 연명치료를 위한 요양병원으로 옮기지 말껄하는 뒤늦은 후외를 했지만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연명치료를 이어갔을것 같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도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사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때때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외출하기가 겁났다.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나 잘 참고 있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이 되면 엄마얘기를 하게 되고 뒤이어 울게 되고 엄마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니 사람들과의 모임도 나 자신이 기피하게 되었다. 

내가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건 우리딸이었는데 7살아이 눈에도 내가 안 좋아 보였는지 나에게 애교를 부리고 웃게 만드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말은 "그렇게 웃으니까 예쁘잖아 엄마 내가 엄마 웃는 모습 보고 싶어서 그런거야" 이렇게 말하고는 나를 안아주던 아이가 돌아가신 엄마품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냥 기분이 좋아 재롱을 부린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의 행동에는 엄마를 웃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엄마가 우리딸 초등학교 입학하고 예쁘게 커가는 모습도 보고 대학 졸업하고 결혼하고.. 그런 모습을 다 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아주 기본적인 생각들이 엄마의 죽음으로 무너졌다. 

빨리 돈 벌어서 큰 집으로 이사가 엄마랑 함께 살고 싶었는데.. 원없이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런것들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면서 나는 삶의 목표를 잃었던것 같다. 몇년동안은 '엄마'라는 단어를 목이 메어 입으로 말하지도 못했고 뜬금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모든것이 기-승-전-엄마로 끝이 났다. 24절기 때마다 전화를 하셨던 엄마, 전날 9시뉴스에 콩나물에서 안 좋은게 나왔다고 하면 다음날 오전 콩나물 사먹지 말라고 전화를 하셨고, 꽃을 너무 좋아하셔서 엄마의 옷장 서랍을 열어보면 꽃밭을 방불케 할만큼 꽃무늬 옷들이 많았다. 여의도 벚꽃축제를 너무 가고 싶어하셔서 몇번을 모셔 갔는데 그럴때면 허리가 안좋아 아프다는 것도 잊고 꽃구경을 하셨다. 

새해가 되고  설날이 돌아오면 여의도 벚꽃축제가 뉴스가 나올 때면.. 매년 돌아오는  엄마생신, 추석, 그리고 때때로 엄마생각 나는 날은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엄마가 병원 응급실 가실때가 추석이 지난 주말이었는데 그래서 엄마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주신 만두가 먹지도 버리지도 못한채 냉장고안에서 1년을 넘겼다. 그렇게 아픈 몸으로 명절에 가족들 모인다고 음식을 만들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픈 엄마를 음식 만들라고 옆에서 채근했을 아빠가 너무 밉다. 당연히 아빠가 먼저 돌아가실줄 알았고 엄마가 혼자가 되면 내가 모시고 살고 싶었는데 인생이란 정말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을 잃고 나서10년정도가 지나야 아픔이 줄어 든다고 하는데 정말 시간이 약인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올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어린 딸이 "엄마 나 오래 살고 싶어" 그런 말을 나에게 했을때 아이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어떤 날은 "엄마"하고 날 부르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할머니 돌아가셨을때 장례식장에서 말이야"하고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무슨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드릴까 너무 궁금했는데 아이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때 장례식장에서 먹었던 육계장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나의 힘든 시간동안 아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버틸수 있었을까? 아이가 커가면서 친구처럼 지내기보다는 엄마라는 위치를 지키고 싶었는데 아이에게 너무 많은 위로를 받다보니 자꾸 아이편에 서게 된다. 아이를 이해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 지금 부모로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건지 의문이 들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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