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한 유하의 동공이 떨렸다.

“툭”

손에 든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아니야. 절대로. 한결이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유하는 우빈을 보며 다급해서 아무 말이나 했다.

한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눈빛에 서운함이 가득하고 입술이 제비처럼 툭 튀어나왔다. 먹던 라면 그릇을 바닥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숨을 헐떡이며 입술을 파르르 떨렸다.

유하는 한결의 표정을 보고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으악! 내가 미쳤나 봐. 말을 해도 왜 한결이 마음 상하는 말을 했을까?

“하긴. 뭐. 한결이랑 유하랑 성격이 완전히 반대잖아. 다시 생각해보니 전혀 안 울린다. 크큭.”우빈은 가볍게 의심을 거두고 열심히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유하는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누군가에게 한결과 사이를 대놓고 의심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바보 우빈에게 그런 소리를 듣자 당황했다.

진정하자.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아무것도 안 했어.

나는 당당하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유하는 양심이 콕콕 찔렸다.

한결은 입맛이 없는 듯 치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유하는 아까부터 한결의 눈치가 보였다.

“하…한결아, 치킨 맛 없어? 왜 이렇게 적게 먹어. 라면은 맛있게 먹더니?”

“전 선배 스타일 아니잖아요. 신경 쓰지 마요. 그냥 혼자 짜져 있을게요.”

한결이 치킨을 신경질적으로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이마에 푸른 혈관이 불뚝 솟아있었다.

“어….”

유하는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씨발…. 저건 한결이 엄청 삐졌을 때의 말투다. 아까는 바보처럼 실실 웃기만 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빡친 표정을 짓고 있다.

유하는 갑자기 불안하고 초조했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어? 유하야, 춥니? 왜 그렇게 온몸을 떨어? 그러고 보니 얼굴에 땀은 왜 그렇게 나는 거야?”

태준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아…아니야. 아무렇지도 않아.”

유하가 애써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어느새 강한결은 완전히 삐져서 눈빛이 개빡쳐있었다.

“술. 술 없어요?”

“어. 당연히 있지. 여기 맥주.”

동훈이 한결의 손에 캔맥주 하나를 건네주었다.

한결은 맥주를 단숨에 쭉 들이켰다.

“역시 나이 한 살 어린 게 크구나. 우리는 이제 숙취 때문에 술도 마음대로 잘 못 마신다니깐.”

우빈이 한결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유하는 한결의 맥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내가 잘못했어, 한결아. 말실수했어 미안해.

대역 죄인이 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치킨을 와구와구 뜯었다.

갑자기 한 미소년이 유하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시선이 미소년에게로 쏠렸다.

맑은 눈빛, 앳된 얼굴, 투명하고 솜털이 뽀송한 피부가 필시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유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형. 저 알죠? 펜션 사장 아들이에요. 계곡에 놀러 왔어요?”

“어. 알아. 어제 무거운 짐 들고 갈 때 내가 도와줬잖아.”

“고마워서요. 이거 좀 드실래요?”

미소년은 유하에게 잘 익은 복숭아를 몇 개를 내밀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복숭아에 쏠렸다.

한결은 싸늘한 눈빛으로 팔짱을 끼며 미소년을 위아래로 스캔했다.

“부모님이 도움받았으면 꼭 답례를 해야 한다고 해서….”

유하와 시선이 마주친 미소년의 얼굴이 빨개졌다.

“응. 고마워. 잘 먹을게.”

유하가 복숭아를 보고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런데 미소년은 복숭아를 주고도 떠날 생각을 안 하고 머뭇거리며 유하의 눈치를 살폈다.

“헙”

한참을 망설이다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저…. 저 잠시만 저랑 얘기 좀 하면 안 될까요?”

“뭐? 나?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

유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소년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오늘이 엠티 마지막 날 맞죠?”

“응.”

구경하다가 지친 다른 사람들은 복숭아를 먹기 시작했다. 한결은 못마땅하다는 듯 미소년을 노려보았다.

유하가 멍하니 앉아 있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년이 말했다.

“형, 혹시 애인 있어요?”

“어?”

유하는 그 질문에 갑자기 소름이 확 끼쳤다. 얼굴이 빨개졌다.

뭐야, 요즘 애들은 다 이런 건가. 그냥 훅 들어오네. 어휴, 민망하다.

한결이 잔뜩 경계하며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유하가 머뭇거리며 대답하기를 망설이자 한결이 대신 나섰다.

“있어. 내가 봤어. 눈 시퍼렇게 뜨고 있어. 아주 잘 생기고 멋진 사람이야. 돈도 많아. 야, 꼬맹이 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아, 어서 가서 공부나 해라.”

한결이 뻔뻔하게 말했다.

“하…. 아저씨는 좀 빠져요! 그 쪽한테 물은 거 아니거든요.”

미소년이 인상을 확 구기면서 짜증을 냈다.

“머, 아저씨! 어딜 봐서 내가 아저씨야. 죽을래?”

한결이 열받았는지 씩씩거렸다. 눈을 부라리며 소년과 싸울 기세로 마주 보았다.

유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보았다.

한결아, 그만해. 어른답게 굴어야지. 그 애인이라는 사람 딱 너네. 나도 모르게 너는 언제 내 애인이 된 거냐.

복숭아를 먹는 태준과 우빈은 먹다 말고 시청자의 입장이 되어 흥미진진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유하는 한숨을 푹푹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유하의 그 말에 미소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후우.

“야? 너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

우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흐음…. 그냥 한 말이야. 선의의 거짓말 몰라? 게다가 상대는 미성년이야. 범죄자 되기 싫어.”

유하는 민망해하며 머리를 마구 쓸어올렸다.

“그 애 진짜 잘 생겼더라. 그 고급 펜션 사장 아들이라며. 아이돌 뺨치게 생겼어. 아깝다. 여자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유하야 넌 어떻게 신입생 때부터 남자들의 고백이 끊이지 않니…. 쯧쯧.”

우빈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한결은 처음 듣는 말이라서 또다시 저기압이 되었다.

“다 지난 일이야. 이제 그렇지 않아. 최근에는 없었어.”

유하가 시무룩 해하며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왠지 고백을 거절하고 먹으니 양심에 찔린다.”

“전 이 복숭아 안 먹어요. 오늘부터 복숭아 알러지 생길 것 같아요.”

한결이 눈치 없는 우빈이 내민 복숭아를 보며 혐오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미안…. 복숭아 알러지 있는 줄 몰랐어.”

무안해진 우빈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갑자기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한결은 맥주만 마셨다. 맥주를 마시며 가끔 유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잔뜩 풀이 죽은 채 축 쳐져 있었다.

“이제 그만 일어서자. 이번에 엠티 와서 혹시나 애인을 만들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역시 나네. 어휴….”

우빈이 계곡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아가씨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들 일어서서 방으로 쉬러 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유하도 일어섰다. 한결은 허탈한 표정으로 힘없이 일어섰다.

한결이 아직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

유하는 괜히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다. 한결이 기분이 안 좋은 게 저 때문인 것 같았다.

모두 펜션으로 향했다.

한결은 유하 옆에서 터덜터덜 걸었다.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유하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다.

“역시. 여름에는 계곡보다 에어컨 바람이 더 좋구나. 크큭.”

유하가 소파에 앉자 한결이 맥주 캔을 가지고 옆에 앉았다.

옆자리에 앉는 걸 보니 그렇게 많이 삐진 것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역시 공기가 어색했다.

평소 말 많은 한결은 맥주만 마실 뿐 벙어리라도 된 듯 말을 하지 않았다. 아까 라면을 먹을 때만 해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잘했다.

유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입을 열었다.

“아까 계곡 정말 시원했지? 엠티 마지막 날이라서 조금 아쉽다.”

“…….”

한결은 무언의 시위라도 하듯 대꾸조차 없었다. 그냥 맥주만 마실 뿐이었다.

유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골치가 아파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너…. 혹시 삐졌냐?”

유하는 그냥 대놓고 말했다.

한결은 유하의 말에 몸을 움찔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낮은 목소리로 서운함을 가득 담아서 말했다.

“네. 삐졌다기 보다는 서운해요. 그냥 이것저것.”

맥주 캔을 바라보며 만지작거렸다.

“오늘 뭐 이런저런 쓸데없는 일들이 많았지.”

유하가 한결이 드디어 입을 열자 살았다 싶어서 얼른 말을 이었다.

한결이 유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유하는 민망해서 시선을 허공으로 옮겼다.

“저는 선배 스타일도 아니고…….”

“아니야. 그건 내가 말을 잘 못 했어. 사과할게. 그런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마. 그때 너무 당황해서 헛말이 나왔어.”“그…그래요?”

한결의 얼굴에 눈에 띄게 화색이 돌았다.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다음부턴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다고요.”

“어. 미안. 조심할게.”

유하는 한결의 표정이 많이 풀어져서 안심했다.

한결이 유하를 그윽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저….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저 선배 좋아해요. 아주 많이.”

“어?”

유하는 한결이 갑작스럽게 고백을 하자 멍했다.

이제는 그냥 직진이구나. 망설이고 이런 게 전혀 없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두근두근.

한결이 유하의 손을 잡았다.

“선배는 저 어떻게 생각해요?”

한결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일렁거렸다.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유하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연한 갈색 동공이 미친 듯이 떨렸다.

뭐…뭐라고 말해야 하지. 갑작스럽게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 알고 있었는데 한결이 직접 말로 하니깐 너무 떨린다.

한결은 유하가 말이 없자 곧 실망한 듯 울상이 되었다.

“선배, 왜 말이 없어요? 저는 선배가 저한테 약간이라도 호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 제 착각이었나 봐요.”

한결이 속상한 듯 남은 맥주를 벌컥 입속으로 쏟아부었다.

“부담스럽다면 잊어버려요. 전 괜찮아요.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좋아한 것 같아요. 그러니깐 미안해서 집 나간다 어쩐다 그런말 하지 말아요. 그냥 아무것도 아니니깐. 괜히 아까 그 남자애 질투가 나서…진심이 나와버렸어요.”

한결의 목소리에 울먹이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유하는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다. 자세히 보니 한결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아니야. 너 착각한 거 아니야. 근데 난 너무 두렵다. 나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어도 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어. 많이 부족한데…….

유하가 대답을 망설이며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방안에 차가운 침묵이 감돌았다.

“하…. 더 못 있겠어요.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올게요.”

한결이 잔뜩 굳은 얼굴로 일어섰다.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등을 돌리고 현관문 앞으로 갔다.

한숨을 쉬며 한결이 현관문을 막 열려고 할 때 유하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야, 그냥 가면 어떻게 해. 내 대답 안 들어?”

유하가 한결의 뒤로 가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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