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기막힌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마치 바이올린의 활 같은 나뭇가지들이 살갗을 스치며 피가 섞인 붉은 물방울의 음표를 만들어내고, 군화가 지면의 건반들을 하나하나씩 눌렀다. 뒤에서는 누가 트럼펫이라도 부는지 소름 끼치는 야생 동물의 울부짖음이 들려왔고, 간신히 지나갔다 싶으면 심벌즈마냥 다리가 여럿 달린 괴물의 습격이 하연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와중에 십자가가 자꾸만 땅을 때리며 북을 울렸다. 덕분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모든 걸 배려한다던 붉은 머리의 지휘자는 더 빨리 연주하라며 모두를 종용했지만, 하연의 악보만큼은 천천히 넘겨지는 중이었다. 마치 처음 무대에 선 아마추어 연주가처럼 하연은 연주를 따라가느라고 악보를 넘길 틈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음표를 외워두기라도 한 몸이 본능적으로 연주에 반응하고 있었다. 붉은 북이 지면으로 다가오면 얼른 옆으로 굴러 피해내고, 다음이 오기 전에 어디쯤 연주했는지 파악해야만 했다. 그렇게 간신히 숨을 돌리고 악보를 넘겨볼까 하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심벌즈가 하연을 때렸다. 그럴 때마다 하연은 일부가 찢긴 채 정신없이 일어나 다시 달려야만 했다.

 숲은 너무 깊고 촘촘해서 당장 앞의 시야 확보조차 제대로 되질 않았다. 귀는 먹먹하고 쉬지 못한 손과 발은 점점 저려왔다. 그 외에도 몸 곳곳이 상처 입거나 회복됨을 반복했다. 하연은 점점 자신이 어디를 뛰고 있는지 분간하질 못했다. 어디로 달리든 숲을 벗어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쿵. 붉은 십자가가 마지막 북소리를 울리며 연주의 끝을 알렸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하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타깝지만 스스로 달려서 빠져나온 건 아니었다. 십자가일지 괴물일지 알지 못한 채, 무언가에게 밀쳐지며 공중으로 튕긴 것과 다름없었다. 숲을 나오면 넓은 들판이 펼쳐졌고 다음엔 그렇게나 바라던 올리브 나무가 경이로운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었지만, 그 전에 높은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는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지금의 하연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언덕 위로 그대로 고꾸라졌다. 수풀에 핏빛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며 하염없이 구른다. 언덕이 끝날 때까지 숨 한번 편하게 내쉬어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엎어졌을 땐, 등 쪽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안 돼."

 숨을 제대로 토해낸 다음에 제일 먼저 뱉어낸 말이 그거였다. 방치된 시간만큼 들판에 높게 자라있는 수풀 사이로 허둥지둥 기어가 몸을 숨겼다. 곧장 등 위로 손을 올리자 찢어진 옷 사이로 부러진 나뭇조각이 잡혔다. 조각이 등을 파고들고 있기에 뽑아내려다가 바로 그만두었다. 이걸 빼버리면 생긴 구멍 사이로 유해들이 떨어지고 말거다. 이젠 상자에도 담겨있지 못하니까.

 아직 나뭇조각을 잡은 하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아귀 사이로 핏줄기가 흘러내려 온다. 유해를 옮겨 담을 다른 상자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삶이 그렇게 쉽게 풀렸다면 여기서 나뒹굴고 있었을 리 없다. 게다가 바람 때문인지 다른 존재 때문인지 모를 정도로 수풀이 무섭게 흔들리며 속삭거리고 있었다. 지체하지 않고 하연도 더욱 깊숙이 몸을 숨겨 들어간다. 

 움직이는 소리는 들려도, 괴물은 보이질 않았다. 아까처럼 투명해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물이 많은 숲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달랐다. 숲속보다 조용해서 더욱 예민하게 감각을 끌어올리기도 쉽다. 하연은 차분히 기회를 엿봤다. 사부작거리는 수풀 사이에서 유해가 끌리는 소리로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시간 약속이라도 잡았는지 십자가가 그 사이로 떨어졌다.

 하연은 그걸 기다리기라도 한 듯,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손을 뻗었다.

 "드디어."

 십자가 옆에서 몸을 일으키며 두 번째로 뱉은 말이었다. 미소가 지어진 하연의 손엔 괴물의 꼬리에서 잘라낸 유해가 들려있었다.

 확실히 그건 괴물에게 최후의 방아쇠였나보다. 하연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괴이한 소리를 들었다. 모습을 드러낸 괴물이 가장 소중한 걸 뺏긴 철없는 아이처럼 하늘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지른 거다.

 처음 만났을 때랑 상황이 반대네.

 그렇게 말하며 비꼬아주고 싶어도 지금은 말할 기운마저 아껴야 했다. 십자가 덕분에 괴물의 주의를 끌어 유해는 가져왔지만, 십자가 덕택에 수풀이 거의 짓눌려버려 시야가 확 트여버렸으니까. 너무 널찍하게 공개되어버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괴물은 진정하지 않았다. 물론, 하연도 이런 상황이었을 때 진정한 적 없었다. 단단히 화가 난 괴물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하연을 응시했다. 두 개의 노란 점이 곧장 새빨갛게 변했다. 그러자 하연의 팔도 붉게 변하며 반쯤 녹아내렸다. 하연은 얼른 십자가 뒤로 몸을 숨겼다.

 붉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기만 해도 녹아버린다니. 그런 능력도 있어서 부럽네.

 용암이라도 맞은 것 같은 팔을 확인하며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검을 든 손목에서 흔들거리는 팔찌를 발견한다. 정확히는 그곳에 박힌 보석이 땅에 꽂힌 십자가의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순간을.

 이걸 잘 이용해보세요.

 하연은 그제야 젠의 말을 이해해냈다. 사실 떠오른 생각이 진짜 젠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활용하면 된 거 아니겠는가.

 십자가를 넘어 자신을 향해 뾰족한 팔이 뻗어 나왔다. 몸을 숙여 그걸 피해낸 하연은 속으로 시간을 재며 괴물에게로 달려들었다. 괴물의 어깨에 검을 박아넣으며 몸을 고정시켰다.

 시선을 받는 곳마다 뜨거운 쇳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곧 몸의 안쪽도 똑같이 녹아내렸다. 주변의 세상도 함께 늘어졌다. 그래도 하연은 괴물에게 매달려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자신의 몸이 몇 초만 버텨주길 바랐다. 단지 몇 초만 더.

 이윽고 등과 맞대고 있는 공기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건 자신에게 다가오는 붉은 형벌의 무게와 똑같았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중압감. 결코 피해낼 수 없는 권위. 하지만 이번엔 이 형벌을 다른 이에게 선사해주기로 한다.

 하연은 흐물거리는 다리로 갑옷 같은 몸체를 밀어내며 괴물에게서 떨어져나왔다. 중심을 잃은 몸이 뒤로 넘어가면서도, 괴물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는 십자가를 확인한다. 이윽고 자신은 십자가가 떨어지며 만들어낸 작은 폭풍에 몸 전체가 날아가 버렸지만, 정신만큼은 바짝 차렸다.

 "아텐 1구역."

 그리고 이건 지면 위로 떨어져 마지막으로 뱉은 말.




 

 결국 도달해낸 이곳에서 팔을 활짝 뻗어내고 있는 올리브 나무를 본다. 저번에 마주했을 때보다 더욱 썩어있었어도 위대한 자태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는 변함이 없다. 나무의 모습이 어떻든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화답하듯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손에 쥐어진 유해들을 아테니케 님께 자랑스레 보여줬다. 당장이라도 등에 있는 유해들까지 모아 올리브 나무 아래에 바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십자가에 깔렸던 건 괴물뿐만 아니라 하연의 다리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손아귀엔 검이 없었다. 심지어 날도 반으로 부러져 버렸다. 그래도 손잡이는 시야 안에 보이긴 하는데, 나뉜 반쪽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선이라도 있었다면 치료라도 해줬겠지만, 알다시피 곁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뿔족이니 당장은 죽지 않을 거다. 하지만 누구든 오지 않는다면 결국엔 하연도 핵이 녹색으로 빛나는 영롱한 돌이 돼버릴 뿐이었다.

 이제 됐어. 임무는 완수했어.

 하연은 생각보다 더 홀가분했다. 손만 감각이 없을 뿐 다른 곳은 멀쩡했다. 상황이 달랐으면 모르지만, 다리 일부가 아예 없으니 아프지도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기는커녕 메마른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까지 맑게 잘 보였다. 코끝으로는 썩은 냄새가 스치고 지나가면서도, 흔들리는 들판의 풀잎 향도 함께 데리고 왔다. 불어오는 바람이 주변을 휘감는 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그 온도조차 적당히 시원할 정도로 완벽했다.

 무언가를 마무리 짓기에는 괜찮은 상황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냈다. 옷에 뚫린 구멍 사이로 박살 난 상자와 뒹굴고 있는 유해들이 보였다. 그 안에 방금 가져온 유해도 넣은 뒤, 있는 힘껏 올리브 나무 쪽으로 던져버렸다. 원하는 곳에 떨어졌을 거란 근거 없는 확신조차 들어 만족의 의미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팔을 넓게 펼쳤다. 익숙한 재질의 끈이 손에 잡혔다. 그게 뭔지 확인하기 위해 눈앞으로 가져오기도 전에 정체를 알아차렸다. 유일하게 주인을 알고 있는 유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원래의 목적을 위해 나무 쪽으로 밀어버리려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억에 담기로 했다. 그걸 들어 올려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머리끈에 동동 매달린 유해를 확인하고 나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 활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썩은 올리브 열매들이 하연의 옆으로 떨어졌다. 툭툭. 열매들은 땅에 닿으며 터져버리더니 더럽고 찐득한 죽음의 흔적들을 남겼다. 손에 쥐어진 유해 너머로 간신히 버티고 있던 잎사귀들이 나뭇가지에서 떼어져 추락을 시작하는 게 보였다. 떨어지면서도 말라버려서 지면에 닿기도 전에 가루가 되어버렸다. 공중에 잎 가루들이 뭉쳐지고 갈라지면서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어느 정도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이 남자, 이번엔 기둥 껍질마저 벗겨지며 썩은 속내를 드러냈다.

 얼굴엔 자꾸만 잎 가루들이 가라앉고, 숨을 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쾌한 냄새가 공기 속을 떠다녔다. 나무에서는 괴로움에 울부짖는 듯한 낮은 굉음이 웅웅 울려 퍼졌다. 올리브 나무가 완전히 생을 다해가고 있었다. 그러면 스트라테이아의 운명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걸 깨달았지만, 하연은 웃음을 거둘 수 없었다. 어쩌면 이젠 완전히 미쳐버려서 계속 웃는 걸지도 모른다. 몸은 몇십 번이나 부서지거나 찢기고, 정신은 몇백 번이나 가시에 찔려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마 지금까지 겪어온 이야기를 듣는다면 누구도 제정신으로 버티기는 힘들 거다.

 그래도 이보다 편안할 수는 없었다. 답답했던 것들마저 이해해 줄 수 있었다. 많은 의문에도 기꺼이 대답해 줄 수 있었다. 심지어 선, 너의 질문조차도.

 "모든 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을 향해 간다면 우린 언제쯤 끝이 다가오는지를 알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알 수 있을 것 같아.

 드디어 자신의 원정에 마침표를 찍을 순간이 왔다.

 한참 동안 만족할 만큼 웃은 하연은 두 손안에 선의 유해를 담은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드디어 돌아온 곳.

 그곳은 우리의,

 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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