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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네드의 반응은 생각보다 김이 빠졌다. 늘 이런 반응으로 피터의 고민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것이 네드의 능력이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좀 서운해 피터가 작기 입술을 삐죽거렸다.


“자 일단 정리 한번 해보자. 그러니까 오늘 너한테 토니 스타크인 척하는 알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거잖아? 맞지?”

“그래, 맞아.”

“그래서 네가 약간 휩쓸려서 엉엉 울었고.”

“아니 막 그렇게 엉엉은.. 그래 맞아. 울었어.”


네드의 말을 부정하려던 피터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꺼내놓은 마당에 뭘 더 숨기나 싶었다.


“그래도 잘 내보냈는데 문 앞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다고?”

“응, 진짜 놀랐어. 정리하고 나오는데 문 앞에 누가 있어서! 벽에 붙어 버릴 뻔했다니깐?”

“오 피터 그건 정말 무섭다. 문을 열다 말고 네가 갑자기 벽에 붙어버리면 안녕 난 스파이더맨이야. 라고 인사하는 거랑 뭐가 다르겠어.”

“그렇게 할 뻔했다는 거지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 정말 초인적인 힘으로 참았다는 이야기야 네드.”

“그래 알았어. 어쨌든 그래서 그대로 돌려보내고 네가 집에 돌아왔다고.”

“응. 혹시 쫓아올까 봐 좀 빠르게 걸어왔지.”


피터의 말에 네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정리한 곳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이해를 했다는 의미 같았다.


“그래서 집에 와서 내내 넋이 나가 있었고.”

“미안 네드.”

“아니야. 그 정도 일이면 나라도 넋이 나갔을 거야. 그나저나 메일은? 뭐라고 왔어?”


네드의 질문에 피터가 휴대전화에 도착한 메일을 열어 보여주었다. 간결한 메일은 한눈에도 그 내용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뭐야, 이건 행크 팔머가 보낸 건데?”

“행크 팔머?”

“여기 봐. 발신자 행크 팔머 라고 쓰여 있잖아.”


네드의 이야기에 조금 전까지도 보이지 않았던 발신자의 이름이 피터의 눈에 들어왔다. ‘행크 팔머’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오늘 자신을 찾아와 머릿속을 흔들어 놨던 그는 자신을 놀린 사람이라는 이야기로 해석이 되었다. 피터의 마음속에서 작은 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날 거야? 결국, 내일 같이 점심 먹자는 소리잖아.”

“아니 절대! 절대로 싫어. 아니 뭐 하는 사람인데 그런 장난을 치는 거야?”

“음... 장난이 아닐 수도 있잖아?”

“장난이 아니면? 행크 팔머? 난 이런 이름 들어 본 적도 없어!”

“그래도 너랑 토니 스타크 관계도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고.. 한번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피터.”

“그럼 내일 같이 점심을 먹으라고?”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고. 그냥 차나 한잔 같이해. 그러면서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한번 물어봐. 네가 힘으로 밀릴 것도 아니고, 이대로 무시하면 영영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 않을까?”


피터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조금씩 피어오르던 화도 서서히 가라앉아갔다.


“그래도 좀 괘씸하니까 내일 당장 만나진 말고, 좀 애 좀 태우다 만나 피터. 보아하니 급한 건 저쪽인 것 같으니 말이야.”

“그럴까?”

“자, 그럼 고민은 해결 된 거지?”

“응, 고마워 네드. 그렇게 해야겠다.”

“좋아. 그런 의미에서 나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

“뭐든지?”

“아까 그 남자 말이야. 네가 그랬잖아. 토니 스타크 젊을 때랑 닮았다고. 그럼 막 어마어마하게 생겼어?”

“아... 야!”

“그래서 두근거렸어? 어땠어?”

“아니야!”


장난스럽게 물은 네드가 피터가 소리치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럴 때만 재빠른 네드를 보며 피터가 아니라며 또 한 번 소리쳤다. 물론 잡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 잡을 수 있는 피터지만 이미 포기한 듯 보였다.


“너 아직도 마음 못 접어서 그러고 있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시작은 안 좋아도 혹시 모르니까 한번 이야기 잘 해봐. 너 잘생긴 사람 좋아하잖아.”

“아 네드 정말! 아니야.”

“그래, 알았어. 아닌 거로 하자. 그래도 일단 만나는 보는 거로 해. 약속이나 잘 잡으셔. 그리고 오늘 뒷정리는 네가 해! 멍 때린 벌이야!”


후다닥 네드가 방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크지 않은 음성으로 ‘그래’라고 말한 피터가 소파에 털썩 기대어 앉았다. 오늘은 여러모로 그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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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거실의 한쪽 면은 한 폭의 그림을 담은 액자처럼 커다란 통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로는 푸른 숲을 보여주기도 때로는 폭포를 보여주기도 하는 스크린의 역할도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이렇게 따스한 햇살을 한껏 머금고 집안에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얼굴을 간질이는 따스한 햇살에 올라가지 않을 것 같던 토니의 눈 꺼풀이 서서히 열렸다. 눈을 뜬 토니가 누운 채 몸을 쭉 펴며 입을 열었다.


“프라이데이 몇 시야?”

“7시 30분입니다.”

“좋은 시간이네.”


17세의 행크 팔머가 17세의 토니 스타크와 다른 점을 찾으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충분한 수면시간이었다. 일생을 불면증과 불안에 시달리던 토니 스타크였는데 이제는 쉽게 잠들고 쉽게 일어나는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었다.


“딸, 브리핑해봐.”


토니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역시 젊으니 소파에서 자도 몸이 가볍다는 조금은 노인네 같은 생각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한 번 더 기지개를 핀 토니가 거실을 벗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시며 이어질 브리핑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시간 7시 32분. 오늘의 보스턴은 약간의 안개가 있을 뿐 비 소식은 없습니다. 최고기온은 27도 최저기온은 19도 정도입니다.”

“좋아, 그리고?”

“오늘은 현재까지 예정된 스케줄은 없습니다.”

“없어? 왜? 오늘 2시 kid랑 점심 약속 잡으라고 하지 않았나?”

“메일의 답장이 와 있습니다.”

“좋아 읽어줘.”


고개를 끄덕인 토니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예전엔 귀찮음이 배고픔을 이겨 이런 일이 잘 없었는데 이젠 반대로 배고픔이 귀찮음을 이겨버렸다. 냉장고에서 달걀 두 개를 꺼내든 토니가 프라이데이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행크 팔머군,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아쉽게도 내일은 개인 일정으로 곤란하니 다른 날 다시 일정을 잡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밥보다는 차 한 잔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럼...

추신. 내일은 토요일이라는 점 잊은 거 같네요』


조곤조곤 프라이데이의 목소리로 이어진 메일의 내용을 들은 토니는 황당함에 모든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한 손엔 달걀을 쥔 채 잠시 넋이 나간 토니를 깨운 것은 그의 똑똑한 딸 프라이데이였다.


“boss, 팬이 탈것 같은데요.”

“아, 아 그렇지.”

“가스는 제가 차단했습니다.”

“잘했어 프라이데이. 그리고 조금 전 메일 화면 좀 띄워봐.”


토니의 말끝에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나고 그 안엔 조금 전 프라이데이를 통해 들었던 메일이 들어 있었다. 멍하게 그 메일을 처음부터 다시 읽은 토니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와 나 지금 세 번째 까인 거야?”

“네, 메일의 내용에 거절의 의사가 명확한 것으로 보아 그렇습니다. 연구실에서 두 번, 메일로 한번 총 세 번 까이셨네요.”

“딸, 그런 건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 때론 칼보다 말이 더 아픈 법이야.”

“네, 알겠습니다.”


돌아오는 프라이데이의 대답에 토니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니 내가 지금껏 살면서도 세 번이나 까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kid 정말 많이 컸네.”

“boss, 잊으신 건가요? 전에 피터 파커님께 한자리에서 세 번 까이...”

“딸, mute. 조용히 해.”


프라이데이를 조용히 시킨 토니가 요리의 의지를 잃고 다시 터덜터덜 소파로 돌아와 털썩 누웠다. 그러다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생각해 보니 토니 스타크는 남에게 조율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알아서 다 해서 가져오는데 내가 그걸 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더 급한 상황이 맞았다. 낮게 한숨을 쉰 토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프라이데이?”

“네, boss.”

“kid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메일 보내. 그리고 그 조율이라는 거 네가 좀 잘 해봐. 그리고 진행 사항 실시간으로 나한테 보고해. 나는 랩실에 있을 거니 연락 오는 거 있으면 네 선에서 잘 잘라내고 중요한 것만 전달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이따 보자 딸.”


토니가 허공에 대충 손을 흔들곤 다시 터덜터덜 랩실로 자리를 옮겼다. 예전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만 찾아오던 꼬맹이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다니.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하는 토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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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토니와 피터가 조율을 시작한 지 닷새가 지난 그다음 주 수요일. 토니는 드디어 MIT 안에 있는 ‘피터 파커’ 교수의 연구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토요일을 거절당한 토니는 다음 메일에 월요일을 물어보았고 피터는 월요일도 시간이 안 된다는 답변을 보냈다. 그럼 목요일은 어떠냐는 메일에는 목요일도 시간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그럼 다음 주에는 언제 시간이 좋을지 알려달라는 메일에 수, 금 이틀이 된다는 답변이 왔고 그럼 수요일 2시까지 연구실로 가겠다는 토니의 메일에 2시는 좀 곤란하니 2시 반쯤에 왔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처음 주고받은 2통의 메일을 제외하고도 총 8통 그러니까 다 합쳐 10통의 메일이 오고 갔다. 이 모든 게 피터가 시간을 벌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토니는 최종 결정된 시간을 프라이데이를 통해 스케줄에 입력하며 얼마나 안심했던가.

그리고 지금 수요일 2시 20분쯤 토니는 피터의 연구실 근처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약속 시간까지 10분 앞둔 시간. 토니는 괜히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며 입을 열었다.


“프라이데이 나 오늘 괜찮아?”

“boss 벌써 10번째 같은 걸 물어보고 계세요.”

“나도 알고 있어. 굳이 집어서 이야기 안 해도 돼.”


토니가 프라이데이의 답변에 툴툴거리며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점검해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멋진 톰 포드 쓰리피스 투 버튼 정장이라도 맞춰 입고 오고 싶었지만 그건 40대 토니 스타크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라는 걸 알기에 토니는 정통 정장이 아닌 세미 정장을 골랐다. MIT에서 졸업생들을 앞에 두고 강연을 할 때도 이토록 신경을 쓰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약간 밀려오는 자괴감에 토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boss, 5분 전이에요. 먼저 도착하시는 편이 더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가자고. 딸 이따 내가 설명할 때 화면 잘 띄워 줘야 해. 해피나 페퍼보다도 더 어려운 상대가 될 것 같거든.”

“걱정마세요.”


든든한 프라이데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토니가 어깨를 펴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연구실 문 앞에 서서 똑똑 두 번의 노크를 했다. 들려올 목소리를 기대하면서.



-



피터가 약속을 조율하는 척 계속 밀어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아직은 할 수 없지만 일단 피터는 상대가 누구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랬기에 주말 동안 시간을 벌며 피터는 행크 팔머라는 사람에 대하여 조사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17세 소년이라는 것 외엔 크게 얻은 성과가 없었다. 얻은 것도 없이 야속한 시간은 흐르고 흘러 그가 2시 반에 찾아온다고 약속이 된 오늘이 되어버렸다.

지난 주말 내내도 그러했지만, 특히 오늘 피터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모니터를 보고 있어도, 책을 들여다보아도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니 뭐 하나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볼 때면 생각의 끝은 꼭 약속된 2시 반으로 향했다.

행크 팔머, 17세 소년. 그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나 자신을 만나려고 했던 걸까. 지난번 만남에서의 그는 자신이 토니 스타크인양 굴었고 피터는 그에게 깜빡 속아 그를 토니라고 잠시나마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토니 스타크가 아닌 행크 팔머였고 오늘 그 행크 팔머가 피터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대체 왜? 피터의 머릿속은 계속해서 복잡하기만 했다.

그렇게 피터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키보드 위에 손만 올린 채 멍하게 앉아 있는 그 사이에도 눈치 없는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 어느새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2시 30분에 뵙기로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지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피터의 시선이 급하게 모니터의 하단으로 향했다. 2시 25분.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조금 당황한 피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얼른 대답해 왔다.


“자, 잠깐.”

“네. 천천히 하세요.”


문 앞에 서 있는 목소리는 지난번보다 조금 더 예의를 차린 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피터는 그런 작은 변화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긴장되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불안에서 오는 긴장. 피터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한번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뱉었다. 네드의 말대로 자신은 메타휴먼이다. 힘으로 밀릴 리도 없고, 지금은 스파이디 센서도 조용한 것 보면 위험한 상황은 아닐 거였다. 그래도 한 번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은 피터가 마음을 다잡은 듯 입을 열었다.


“들어와요.”

“네.”


닫혀있던 연구실의 문이 열리며 닷새 만에 보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그날보다 그의 얼굴이 좀 더 자세하게 피터의 눈에 인식되었다. 넓은 이마 아래 짙은 눈썹 그리고 쌍 커플이 진 깊은 눈까지. 그날도 느끼긴 했지만 참 잘생긴 얼굴이었다. 네드의 말처럼 어마어마하게 생긴 얼굴. 나 저런 스타일을 좋아했구나. 새삼 자신의 취향을 깨닫게 되는 피터였다.

 


comment.

네번째 이야기 입니다.

점점 노잼이 되어가는 걸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을 했으니 마지막 이야기까진 쓰는게 맞는거겠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러번 읽고 올리긴 하지만 오타나 실수가 있을 수있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부드럽게 알려주세요.

++구독해주신 분들, 좋아요 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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