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원래 수색연합은 본편 부분으로 완결날 예정인 단편 괴담 시리즈였습니다. 이때 인형의 집 편 이후로 흘러갈 수 있는 방향성을 크게 두 가지 생각해 뒀는데, 현재까지 연재된 외전들이 첫째고 이건 두 번째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래로는 외전+ 약간의 사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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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야.

-지혜야, 자?


그때 가장 처음 든 생각으로 말하자면, 대체 언제부터 괴이라는 것들이 인간 세상에까지 기어 나오게 됐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 하기야 사람 말을 하고, 회사도 다니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괴이도 있는데 술에 꼴은 전 남친 같은 문자를 보내는 놈이 없을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렇다 해도 하필이면 그 번호로, 그 인간의 흉내라니.

지혜는 얼굴을 구기며 폰을 집었다. 화나는 것은 화나는 것이고, 어쨌든 또 이상현상이 발생한 것이면 대처는 해야 하니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폰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ㅁㅊ 죽을뻔했네 ;; 십년감수했다

-나지금 119 불러서 실려가고있는중

 

지혜는 가만히 빛나는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녀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끝없이 혼자 떠들어 대는 중이었다.

 

-어우 배고파죽겠네 미안한데 혹시 올때 뭐라도 좀 사올수있어?? 내가 사람음식 먹어본지가 너무오래되서 ㅋㅋ

-아 ㅈㅁ 의사쌤이 폰 내놓으라네

-아이참 이정도로 손가락 안떨어지는데 ㅋㅋ 좀 덜렁거리는거갖고 의사쌤이 너무 걱정이 많으시다 그ㅊ

 

...그런데, 괴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촐싹대고 덜렁대는 것들이던가?

지혜는 다시 한 번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온화한 여성의 모습을 한 무언가의 앞에서,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서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던 남자의 모습을. 지혜에게 그것이 내는 소리는 고막을 긁어내는 듯한, 소름끼치는 쇳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마치 그 끔찍한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때로는 웃었고, 때로는 당황했으며, 때로는 난처한 듯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마치, 눈앞의 그것이 정말로 자신이 찾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죽은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사지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아들. 머리만 남은 자식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주장하며, 끝까지 그것을 끌어안고 두 번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선택한 아버지. 그리운 아내의 모습을 눈앞에 두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올 때를 놓쳐 버린 남편...

어쩌면 괴이란 것들은 다들 그럴지도 모르지. 생전의 모습을, 말투를, 기억을 그대로 흉내내어, 그렇게 해서 간절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눈앞의 그것이 그토록 그리던 이와는 다른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만에 하나, 정말로 그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따위의 한심한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 스스로 지옥에 뛰어들게 만드는... 실로, 태생부터 저열하기 짝이 없는 족속들이다.

지혜는 이를 바득 갈았다.

나는 다르다. 나는 그런 헛된 기대 따위 결코 품지 않아. 기대가 기적으로 보답받는 경우는 너무도 적고, 대부분은 익숙한 절망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놈은 죽었다. 꼴에 개폼 좀 잡아보겠다고 지랄을 하다 혼자 사지에 남은 채 연락이 끊겼고, 그 이후로 어떤 소식도 알지 못한 채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것은 이른바 자업자득이라 하는 것으로, 실제로 분노에 찬 지혜는 그의 사인을 ‘자살’로 등록하려 했으나 강혜미가 뜯어말려 겨우 “수색 도중 실종. 생사불명”으로 고친 참이었다.

실종. 생사불명. 어느 것이나 끔찍한 말이다. 차라리 확실하게 뒈져 버리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러면 최소한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아도 되니까. 이번에야말로 뭔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 지옥에 홀로 버려진 인간이, 장장 1년을 생존하는 데 성공해, 자력으로 빠져나왔을 뿐 아니라 밤중에 지혜에게 문자로 헛소리를 늘어놓을 정도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 따위 말도 안 되게 형편 좋은 이야기를 ‘믿고 싶다’는, 이런 비참한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ㅈㅣ혜야

영하ㅔ병ㅇ원 아ㅐㄹ지? 그쪽으ㄹ

 

...그나저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판국에, 폰을 붙잡고 구급차에서 의사와 실랑이를 벌이다 오타를 내는 컨셉이라니. 퍽이나 신박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번에 지혜를 꾀어내려 드는 것은 괴이치고는 다소 드문 스타성의 소유자인 모양이었다. 

지혜는 한참이나 화면을 노려보다, 결국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게 진짜든 가짜든, 연합의 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지혜는 급히 자켓을 걸쳐입은 뒤, 현관에서 야구 방망이를 하나 집어들었다.

 

"손님. 여기까지 가려면 최소 10만 원은 들 것 같은데요..."

 

당황한 기색으로 쩔쩔매는 기사에게 왕복 요금만큼 결제해 달라는 말과 함께 카드를 건넨 뒤, 지혜는 좌석에 몸을 푹 파묻었다.

 

*

 

 

“......아.”

“......”

 

그를 보자마자 처음으로 든 감상은, 그래서 저건 대관절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기억보다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창백한 뺨은 볼썽사나울 정도로 훌쭉 패여 있었고, 몸의 절반은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으며, 감기지 않은 절반도 아무렇게나 지지고 그인 흉터로 엉망이었다. 원래 짜증날 정도로 찰랑이고 반짝이던 머리털은 몹시 푸석푸석했다. 아마 머리에 얹힌 것이 머리카락인지 개털인지 구분이 안 가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것이 있다면 최소 부회장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회장의 자리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양지혜가 취임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쪽 팔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없어졌다- 고 시위하는 것처럼 덜렁 빈 소매만 늘어진 자리. 지혜는 반사적으로 주춤하며 방망이를 꾹 쥐었다. 점점 굳어 가는 표정과 상반되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상대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헐, 지혜야! 차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이 시간에는 버스도 안 다닐 텐데. 형이 태워다 줬어?"

”......“

”참. 형은 방금까지 나랑 있었으니까 아니겠네. 그럼 은찬 씨인가? 미안,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이렇게 늦은 줄 몰랐어. 알았으면 내일 연락했을 텐데..."

 

핼쑥하게 살이 빠진 남자는 머쓱한 듯 작게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평온한 말투는, 갈라지고 쇳소리가 뒤섞인 목소리와 뒤섞이니 되려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지혜는 말없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는 얼굴을 굳히고 신준혁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그새 어디를 깨먹은 건지 붕대가 칭칭 감긴 머리통에, 어디를 만져도 살결보다는 뼈에다 가죽을 덧씌운 느낌이 더 많이 나는 몸뚱아리. 푹 꺼진 눈구멍. 지혜의 한 손에도 가뿐히 잡히는 손목. 그리고...


“와, 지혜야, 못 본 새에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했어? 아니, 나야 좋기는 한데... 내가 지금 몰골이 좀 말이 아니라서. 딱 한 달만 기다려 주면 바로 원래 미모를 찾아 올 테니까-"

 

뻐억!

 

준혁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지혜의 주먹이 그나마 멀쩡한 쪽의 머리통에 명중했다. 준혁은 머리를 감싸안으며 항의하는 듯한 신음을 내뱉었다.

 

”아얏! 왜, 왜 그래, 갑자기...!“


 

그리고 저 때도 장소도 못 가리고 남발하는, 뇌를 빼놓은 것 같은 개소리까지. 지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진짜 신준혁이냐?“

”어? 뭐, 뭐야. 그럼 가짜 신준혁도 있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방금 전까지는."

"응? 무슨 말이야, 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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