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손책조조 메인으로 왕윤 짝사랑하는 조조가 소량 나옵니다.

50화 이후에 다시 만난 둘에 대한 망상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레히삼 완결까지 보지 않으신 분들께선 네타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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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한참 만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손책이 한동안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고, 조조가 경찰 일로 바빴기 때문이었다. 둘 다 서로 할 일이 많았으니 한 명을 짚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위험하게 얽혀서 풀어지지 않던 인연은 한순간 뚝 끊긴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조조는 가끔 가슴 부근이 허했다. 얼굴을 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손책도 마찬가지였다. 자꾸 주변에 어슬렁거릴 때는 귀찮아 죽을 것 같았는데, 막상 늘 보던 얼굴이 안 보이니 심심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없던 일처럼 자연스럽게 예전 생활 반경을 회복했다. 조조에게 있어서 바깥의 범위는 직장 과 초선이와 함께 가는 곳. 두 가지 뿐이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손책이 보이지 않으니 슬그머니 잊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그런다고 했던가. 옛날 말은 그리 틀린 구석이 없었다. 지겨운 놈이던. 걱정하는 사람이던. 거의 비슷했다. 조조는 밀린 일을 처리했고. 잠시 시간을 내서 흩어진 악의 무리를 마저 쫓았다. 조조와 손책이 얽혔던 무리를 기점으로 모두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인지 주변 지역은 늘 조용했다. 차라리 이런 식의 지루함이 좋았다.



“예?”

“그때 그 사람. 괜찮아?”

“그야. 모르죠. 일이 끝난 다음에 따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잘 아는 거 같던데?”

“제가…말입니까?”

“그래. 아니야?”

“…….”

“난 그래서 일부러 안 물어봤지? 알아서 할 줄 알고.”

“그게…….”



조조는 오랜만에 입안에서 대답을 웅얼거린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언뜻 보였지만, 사실이니 반박할 수 없었다. 상부로 올리는 보고서도 마무리했고, 강동관을 찾아가 해야 할 일도 모두 끝마쳤다. 그 뒤로는 딱히 지켜야 할 수칙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이제야 손책 생각이 났다. 이 많은 일이 끝날 때까지 손책은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럴 녀석이 아니었다. 한번 생각이 미치자 점점 더 불안해진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시간이 지난 후에 강동관에 찾아가는 것은 민망한 일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또 일주일이 지났다. 조조는 한번 마음에 얹은 빚을 모른 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밖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려하지만 말이다. 몇 번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길 반복했다. 애초에 더는 서로 관여하지 말자고 한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면서 인제 와서 안부를 물으며 찾아갈 수 있을까. 꽤 어려운 질문이었다.


질문의 답을 얻는 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결국 비번인 날을 잡았다. 찝찝한 채 계속 지내느니 차라리 한 번에 끝내는 편이 좋았다. 손책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무술 바보는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름밖에 모를 수 있지.”



손책이 말한 것은 모두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가족과 사는 집. 강동관. 그리고 자신의 이름. 결국, 조조는 가장 민망하고 쉬운 방법을 찾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달아올랐다. 이런 식으로 강동관에 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역시 전화번호를 받았어야 했다. 초선이가 받아뒀다던 명함을 달라고 할 걸. 이제 와 후회를 해봤자 남는 것은 없었다.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달아올랐다가 다시 서늘하게 가라앉는다. 머릿속 생각이 많은 것과 달리 다리는 착실하게 갈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고객 만족. 강동 무술. 강동관입니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난…….”



정말 놀랐다. 강동관에 처음 와서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조조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던 조조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무료 체험 신청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은 가볍게 무시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강동관 관장은 어디 있지?”

“예?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강동관 관장을 찾는다고 했다.”

“손님…그건.”

“…….”

“혹시 시간 예약을 잡으셨나요?”

“그건…….”

“죄송하지만 미리 언질을 주시지 않았다면 당장 만나시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하긴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 조조는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저런 도복을 입고 강동관을 돌아다니는 것은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경찰임을 밝히기도 뭐했다. 비번인 데다 개인적으로 오는 일에 경찰 신분을 사용할 순 없었다.



“…어 경찰관님?”

“…….”

“맞구나. 어떻게 오셨어요? 무술 체험하러 오셨나요?”

“…예?”

“잘못 본 줄 알았지 뭐에요.”



그래도 운이 좋은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 서류를 잔뜩 들고 걸어오던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보았다. 옆에 걷는 사람에게 서류를 떠넘기고 재빠르게 달려오는 모습이 익숙했다. 저번에 봤던 기억이 났다. 금방 앞으로 다가온 사람은 강동관 관장을 맡은 손상향이었다. 손책의 여동생이라고 했던가. 조조는 약간 안심한 표정이었다.



“여긴 어떻게…….”

“아…그게 말이죠.”

“안쪽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실래요? 바깥은 불편하신 것 같은데.”

“예. 아뇨 경찰로 온 것이 아니라…….”

“이쪽으로 오세요.”

“…….”



이번에도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잠자고 따라 걸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무실이 보인다. 조조가 어색하게 소파에 걸터앉았다. 캔 두 개를 들고 온 관장은 익숙하게 음료수를 권했다. 조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무슨 일이 있으시니 이곳을 찾아오셨겠죠?”

“예…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인가요?”

“이런 말 하긴 민망하지만 그렇습니다.”

“강동관 관장일 뿐인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혹시 저희 오빠에 대한 일인가요?”

“…….”

“제대로 짚었나 보네요.”

“…….”



조조는 헛기침을 쿨럭거리며 괜히 시선을 돌렸다. 손책은 그렇지 않은데 동생은 왜 이렇게 감이 좋은지. 이렇게 직접 들으니 더 민망했다. 귀가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음료수를 한 모금 크게 마시면서 간신히 진정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런 것쯤은 의연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멀고도 험한 것 같았다.



“저희 오빠가 또 무슨 일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예?”

“인사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아…….”

“워낙 떠돌아다닌다고 스스로 말했던 터라…이쪽으로 오면 거처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죠. 오빠도 강동관 사람이니까요.”

“혹시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게…….”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 관장의 표정이 삽시간에 심각해졌다. 조조는 그런 표정을 보면서 뭔가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 찝찝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꼭 만나야 했다. 혹시 연락할까 말까 고민한 사이 상처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그게…지금 여기엔 오빠가 없어요.”

“네?”

“말하자면 조금 긴데…잠시만요.”

“알겠습니다.”



손상향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뭔가 묻고 답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유리 벽 너머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조조는 반쯤 비운 캔을 만지작거린다. 손에선 축축하게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또 무술 여행을 떠나 이곳에 없다는 소리 정도만 듣기를 원했지 이런 식으로 심각한 상황을 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와 실례했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이곳을 나갈 수도 없었다. 꼼짝없이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죄송합니다. 잠시 물어봐야 하는 것이 있어서.”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귀찮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오빠가 강동관도 집도 아닌 곳에 있거든요. 그래서 미리 연락을 해야 해서…….”

“예?”

“같이 가시죠. 안 그래도 저도 오빠한테 가야 하니까요. 차로 이동하시면 될 거 같은데.”

“그렇게까지. 아닙니다. 알려만 주시면.”

“같이 가도록 해요.”

“…예.”

“그럼 준비하고 나올 테니 로비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계속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빠도 경찰관님을 만나고 싶은 눈치였으니까요.”

“예?”

“잠시 뒤에 뵈어요.”

“예…….”



어색하게 대화가 끝났다. 상향은 위층으로, 조조는 로비를 향해 각자 걸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이러나저러나 자신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이유이겠거니. 이렇게 짐작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경찰에게 거처를 알려주는 것이 찝찝할 수도 있었다. 조조는 그런 행동을 이해하고 있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손책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자 더 돌아갈 뿐이었다. 로비 벽에 적당히 기댄 채 시간을 보낸다.



“…….”



수많은 가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지. 손책이 아프다면 분명 경찰 쪽으로 먼저 연락이 왔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큰일 나지 않게 묻기 위해 조용했을 수도 있다. 늘 떠돌아다니는 녀석을 이렇게 비밀스럽게 만날 정도면 안 좋은 일이 있는 건가. 조조의 머릿속이 날로 복잡해져 갔다.



“내가…왜 이러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 녀석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경찰이 해야 할 일을 하러 온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인간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애써 고개를 흔든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이 답답함의 끝은 당사자를 만나야만 해결될 것 같았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서 챙길 게 많아서.”

“아닙니다.”

“저희 쪽에서 모시겠습니다. 가기 전에 오빠한테도 미리 연락해야 하는 일이라…….”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강동관 관장은 늘 깍듯하다. 조조는 잠자코 뒤를 따랐다. 안내한 대로 차에 올라타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휙휙 지나쳐가는 거리를 바라보면서 위치를 가늠한다. 낯선 곳이지만 그리 멀진 않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면 좋을 텐데. 생각보다 차가 밀리는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




“…….”

“어, 조조. 왔어?”

“…….”

“왜? 왜.”

“너…….”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고 가세요. 전 이만.”

“상향아. 권이는 어때?”

“오빠보다 훨씬 튼튼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



손상향은 눈치가 빠르다. 둘이 만나자마자 쌍방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을 본 순간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웃으면서 일어서서 문을 닫았다. 그러자 둘만 남은 병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이렇게 극적으로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가볍게 만나서 안부 좀 물어본 다음 걸리는 마음 없이 헤어지려 했는데, 이렇게 된다면 뭐가 되었던지 길게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앉을래?”

“그래. 그래야지.”

“이쪽에 앉아. 조조.”

“…….”



손책이 어색하게 의자를 권했다. 잠자코 자리에 앉은 조조의 얼굴엔 혼란과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손책은 쩔쩔매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긴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병실에앉은 채로 나타난다면 누구나 당황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그게…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미안…….”

“왜 미안해하지?”

“…….”



손책은 쭈물쭈물 입을 열더니 금방 시무룩해진다. 커다란 강아지 귀가 축 처질 것 같은 모습에 조조는 설핏 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잔뜩 시무룩해진 남자는 연신 조조의 눈치를 보았다. 조용한 김에 손책을 살펴보았다. 매일 풀어헤치고 대충 입고 다니던 도복은 간 곳이 없었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환자복 사이로 환자용 팔찌가 보였다. 게다가 링거병이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아하니 보통 큰일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게…….”

“무슨 일인가. 혹시 그때 일로 아팠다면 경찰에 연락했어야지.”

“그건…아니고.”

“이렇게 되면 경찰도 난감해진다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아니지 너라면 모를 수 있어.”

“아니…내 말은.”

“도대체 왜…….”

“아, 그게 아니고. 그건 이미 다 나았어. 흔적도 없다고!”

“응?”

“그것 때문에 이런 거 아니야.”

“그럼…….”

“그 정도 상처에 이 손책이 쓰러질 것 같아?”

“…….”

“이건 다른 일이야.”

“말해봐.”

“뭐?”

“자꾸 이렇게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머릿속에 찝찝함을 채울 거라면 이제라도 확실하게 말해봐. 도대체 넌…뭐지?”

“나? 그러는 넌.”

“…….”

“넌 도대체 뭐야.”



손책의 말이 훅 들어왔다. 조조는 당황한 눈빛을 감추려 했지만, 뇌가 마비된 것처럼 멋대로 움직였다. 분명 아는 사람 같다.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생각에 대한 이유를 대라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는 것은 그저 짐작뿐이라 마음속에 꾹꾹 담아둘 뿐이었다.



“난…….”

“내가 널 만났던 적이 있는 거 같다고 했지.”

“그랬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 아직도 모르는 사람 같고?”

“솔직히 모르겠다.”

“나도 그래.”

“…….”

“우리가 만난 모든 상황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구면일 텐데. 왜 아무런 기억이 없는 걸까. 난 널 알아 조조.”

“…….”

“내 마음이 널 안다고 말하고 있는데, 왜 그 이유를 댈 수 없을까.”

“손책…너.”

“정말이야.”

“…….”



진정성 있는 말은 이렇게나 무겁고 날카롭다. 저 한마디만 들어도 모든 것이 진실임을 알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없는 증거를 찾아 전전긍긍하는 걸까. 조조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연신 표정을 찌푸렸다.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녀석은 병원에 누워있고, 자신은 없는 진실을 찾아 헤매고 있으며, 그 기억을 찾을 방법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억을 찾기 위해 무작정 뛰어들고 있을까. 둘 사이엔 아직도 할 말이 많았다.



“왜 내가 널 보기만 하면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플까.”

“…….”

“왜 내가. 널 만나고 나면 꾸고 싶지 않은 꿈을 자꾸 꾸는 걸까. 왜!”

“나도 꿈을 꿨어.”

“…뭐?”



손책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다. 조조의 서슬 퍼런 눈매가 약간 부드러워진다. 손책은 무해한 표정으로 손을 설렁설렁 흔들었다.



“꿈에 누가 나와서 너랑 사이좋게 지내래.”

“…….”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 건 그뿐이지만, 너랑 내가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고 했어.”

“…….”

“이걸로 부족한가?”

“아니.”

조조의 대답은 생각보다 쉽게 흘러나왔다.

“그럼 이제 내가 묻지.”

“…….”

“꼴이 이게 뭐냐.”

“…….”

“확실히 이야기해. 우리 쪽 과실이 있다면 처리해야 하니까.”

“그런 거…아니라니까.”

“그러면 도대체…….”



조조의 손이 더 빨랐다. 훌쩍 걷혀 올라간 환자복 아래로 탄탄한 몸이 그대로 보였다. 눈으로 보는 거로는 만족을 못 하는지 손을 쓸어내리면서 하나하나 확인을 한다. 손끝에 툭툭 걸리는 것은 흉터 일부분이겠지만, 그거 외엔 잘 아문 것 같았다



“괜찮다니까.”

“…….”

“그것 때문에 이렇게 잡혀있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그…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

“정말이라니까. 믿지 않겠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군.”

“밖으로 말하지 않아서 다들 모르지만…저번에도 죽을 뻔했었지.”

“네 녀석이?”



그 무술 바보가? 조조는 혀끝까지 굴러 나오는 말을 꿀꺽 삼켰다. 평생 감기 한 번 앓아보지 않았을 것 같은 얼굴로 태연하게 무서운 말을 한다.



“여기가 아파.”

“…….”

“조금씩 생명선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데, 한번 터지면 그대로 끝인 거지.”

“…….”

“그래서 다들 걱정했어. 한번 죽을 뻔했고.”

“그러면…어떻게.”

“나도 몰라. 정신을 차려보니 기적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가끔 꿈에 누군가 나타나서 날 부르곤 해. 더는 아프지 말라고 하면서.”

“…….”

“너도 그런 꿈 꾸지 않아? 기억나지 않지만, 오랫동안 반복되는 꿈.”



그 말에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났다. 조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래. 그랬었던 것 같군.”

“그렇게 살아났는데, 저번에 이래저래 좀 일이 터져서.”

“…….”

“보다시피 감금 중이야. 검사 끝나고 확실하게 나은 거 보기 전엔 못 나간다지 뭐야. 무술도 금지. 심한 운동도 금지.”

“…….”

“그래서 굉장히 심심했는데, 마침 조조 네가 날 찾는다는 전화가 와서. 그래서 불렀지.”

“…….”

“이런 모습 가족 외엔 안 보여줘. 못난 형 오빠지만, 난 강동관 첫째고 약하게 보이면 안 되니까.”

“정말…….”

“응?”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바보군.”

“뭐? 환자한테 그게 할 소리야!”



그 한마디에 손책은 버럭버럭 화를 낸다. 다 살아났네. 죽진 않겠어. 조조는 긴장이 풀린 얼굴로 허허실실 웃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막연한 대화가 할 수 있다는 것에 좀 더 감사하기로 했다. 대부분 사람은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부터 조금 의문을 가졌어야 했는데. 미처 그러지 못했다.



“나 이렇게 화내고 그러면 안 되는 몸이라는 거 아나 몰라.”

“그래도 괜찮아 보이네.”

“…….”

“혹시 큰일 나서 경찰에 해가 갈까 봐 걱정했다.”

“넌 항상 걱정을 그런 식으로 하는구나.”

“…….”

“뭐 좋아.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둘 다 희미한 기억만 붙잡고 하는 말이라 결론이 나진 않겠지만 말이다. 이제야 좀 식은 머리를 붙잡고 예전부터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조조가 처음 쓰러졌던 곳. 손책이 찾아온 곳. 아팠던 기억에 하나 더 얹어진 손책의 지병 이야기까지. 예전이라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갈 것이 분명했지만, 아주 조금씩 서로 마음을 터놓고 있었다.



“그래서 날 찾아온 건 우연이었다?”

“물론이지. 그 우연이 여기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우연이 계속 겹치면 필연적이라 하던데…우리가 그렇게까지 얽힐 일이 있었을까. 꿈?”

“따지자면.”

“아무도 안 믿을 말이군. 날 멍청이 취급할 거야.”

“그래서 우리 둘만 하는 거 아닌가. 조조.”

“그렇지.”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다니까.”

“그 소리도 이제 지겹군.”

“정말이야.”



겉은 멀쩡해 보이는 녀석이 속으로 곯았다니 어쩔 수 없었다. 몸의 건강이야 타고나는 것이니 말이다. 저렇게 밝게 말하고 있어도 한순간 휙 쓰러지는 것이 심장 문제 아닌가. 어쩐지 둘 다 심장에 뭔가 다른 것이 들어찬 기분이 들었다. 조조의 심장엔 늘 죄책감이 올라앉았다. 그렇다면 손책은 그 망가졌다는 심장에 뭘 담고 있을까. 여기까지 물어봐도 되는 걸까. 조조의 머릿속은 항상 이것저것 뒤섞여 있었다.



“조조.”

“…….”

“조조. 내 말 듣고 있나?”

“…….”

“왜 이렇게 넋을 놓고 있어.”

“…….”



둘이 만나면 항상 그랬다. 조조는 말이 없어지고, 보통 손책이 계속 말하다가 아차 하고 입을 다물곤 한다. 성격 차이라고 말하기엔 골이 깊었다. 여기까지 와서야 서로 마음 한쪽을 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깊은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려웠다.



“아는 사람처럼 대하면 좋을 텐데.”

“…뭐?”

“그렇잖아. 너도. 나도. 이런 말을 나눌 사람을 못 찾고 있으니, 그저 옛날부터 알던 친구라 여기면 좋겠지만…….”

“…….”

“성격상 그게 안 되는 거잖아.”

“잘 아는군.”

“그럼 우리 천천히 친해져 보는 건 어때?”

“뭐?”

“어차피 나도 도원관 자주 가고, 너도 오잖아.”

“도원관은 초선…아니 내가 돌보는 아이가 다니는 곳이지 내가 머무르는 곳이 아니다.”

“나도 그런데.”

“거긴 불편해.”

“왜? 어째서.”

“몰라. 그냥 그래.”

“…….”

“그 이야기는 없던 거로 하지.”

“어? 가려고?”

“그래. 얼굴 봤고 무사한 거 확인했으니 됐다.”

“…….”

“쉬는 김에 푹 쉬고, 그 성격도 조금 얌전해졌으면 좋겠군.”

“야…잠깐!”



이럴 땐 정말 매정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는 어디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벌떡 일어난 조조가 몸을 돌려서 걸어가기 직전 손책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덥석 옷 끝을 잡았다. 아프다던 놈이 힘이 세긴 어지간히 셌다. 조조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기습에 균형을 잃고 그대로 뒤로 넘어지려다가 간신히 버티고 섰다.



“잠시만…가지마.”

“…….”

“아직 할 말이 남았어.”

“아직도? 하긴 네 녀석이 답지 않게 말이 많더군.”

“이것만 듣고 가는 게 어때?”

“…….”



아프다는 사람 소원하나 못 들어줄까 싶었다. 조조는 손을 툭툭 쳐서 손책을 끊어낸다. 그리곤 몸을 돌려서 손책을 내려다보았다. 의자에 다시 앉기엔 민망한 일이라 그대로 선 채 고개만 가만히 기울인다. 그런 녀석을 올려다보는 손책은 늘 그랬던 것처럼 싱글거리면서 웃었다.



“내가 몇 번 물어봤는데, 다들 대답을 안 해 줘서 말이야.”

“…뭘?”

“이 심장이 망가졌는지, 너랑 같이 있으면 불규칙하게 뛰어서 말이야.”

“…….”

“왜 그럴까.”

“아프다며. 병 때문이겠지.”

“난 아닌 거 같아서.”

“…….”



조조는 이렇게 직접 들어오는 공격에 많이 약했다. 하긴 경찰이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세상을 둘도 없이 바쁘게 살았기에 다른 감정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짝 마른 마음이 사회생활에 그리 어려움을 주지 않아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 녀석은 자신같이 퍽퍽한 사람에게 이러는 걸까.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느끼기엔 아닌 거 같아.”

“네 지병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증상이 있나 보지.”

“계속 마주치는 것도 그렇고, 난 네가 마음에 드는데.”

“…….”

“넌?”



조조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다. 저 멍청한 놈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표정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뻣뻣하게 굳어있던 몸에 순간 힘이 풀려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해도 중요한 일이 아니니 기억 속에서 당연하게 지워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조조. 내 말 듣고 있어?”

“…….”

“피차 비슷한 사람끼리 친하게 지내보자고.”

“…….”

“난 네가 마음에 든다. 운명을 믿는다면 난 당연히 널 선택할 거야.”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자였다. 조조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다 못해 들끓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에서 열이 훅훅 올라오고 귀 끝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손책은 한동안 해를 못 봐 하얗게 들뜬 얼굴로 연신 웃었다.



“넌…….”

“어때? 대답은?”

“…….”



이런 대답을 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시선을 어색하게 돌려버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손책은 그 대답의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조조의 손을 꾹 잡았다. 사람의 손이 이렇게 차고 뜨거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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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조조는 사는게 너무 바쁘고 팍팍해서 능동적으로 하는 사랑같은거 잘 모르고 살았을거 같습니다

왕윤 못잃어는 존경과 그 어드매쯤 있을테구요..

손책이 일직선으로 쭉 달려오면 오히려 어버버 거리는 쪽은 조조가 아닐까요

둘이 이제 빨리 연애 하면 좋겠습니다 둘이 마음 털어놓는데 길어도 너무 길고, 속도가 더디네요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취향 문제로 혼자 노는게 익숙해서 제가 보고싶은 것이 제대로 전달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쬬 좋아하시는 분들이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쩜오 연성 창고 트위터 : @hwanwol_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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