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그리 깊지 않은 밤이었다.

평소에도 이 시간까지는 일어나 있는 편이어서 이리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벽 3시. 잠깐 눈을 붙이기엔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널 눈에 가득 담고 싶은 욕심에 시간 따윈 무시한 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 한 시간쯤 전에 이만 잠에 들자며 널 다독였다. 근데 눈이 감기질 않아서—어쩐지 거짓말을 하게 된 것 같았지만—그 상태로 눈을 얌전히 감고 있는 널 세세하게 뜯어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훤하게 드러내는 이마를 가리고 있는 하얀 앞머리가 널 그 나이대로 보이게 하는 거 같아서 난 꽤 좋아하는 편이다. 어른스러운 너든 어리광을 부리는 너든. 사실 모든 네가 좋지만, 이상하게도 네가 내게 어리광을 부리는 게 그리도 기뻤다. 품을 파고드는 네 숨결에 벅찬 것도 잦아들 줄 알았는데, 왜 안정감이 드는 것만 같을까.

한 사람도 벅차게 안는 품임에도 온전히 널 안을 수 있는 건 내게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네가 태어난 순간을 같이 할 수 있음이 축복이었다. 2001년 2월 4일. 넌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쉽게도 잊힐 기억이 아니었다. 이제는 산발적으로 기억나는 초등학생의 기억 속에서도 유독 선명했다. 아기 침대에 누워서는 내 작은 손을 그보다도 더 작은 손으로 움켜잡았던 그 찰나의 순간을.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좀 이상하게 표현하자면 간택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의 관계는 늘 네가 손을 먼저 뻗어왔어서, 그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어서, 가끔 네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 너도 사람인지라 지칠 것까지 생각해둔 것이다. 지쳤어도 널 내 곁에 머물게 하려면. 내가 닻을 내린 정착지가 다시금 해류에 밀려 멀어지지 않으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울리지도 않게 여태껏 챙겨보지도 않았던 기념일을 챙기고 네 생일을 챙기고 올해에는 밸런타인데이까지 챙겼었다. 넌 네가 무엇을 하던 기뻐하는 탓에 사실 아직도 뭐가 제일 좋은 선택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냥 하는 것이다. 다른 연인들처럼. 

주말에 온전히 너와 함께하기 위해 시간을 쏟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현실감각이 무뎌질 만큼 몸을 섞는다. 

신체가 연결되는 게 이다지도 벅찰 일인가 싶다. 애초에 삽입을 위한 부위가 아님에도 네 손가락이든, 혀든, 성기든. 닿기만 해도 심장을 누군가 꽉 쥐고서는 놓지 않는 기분이었다. 온몸의 감각이 아래에 몰린다.짓눌리고, 쑤셔지는 감각이 불쾌하지가 않았다. 더 깊이, 더 가까이.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야 네가 지친다 하더라도 곁을 떠나질 않을 테니까. 내 신체에 네 신체의 일부가 담겼으니 넌 싫다 해도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너와 나 사이에 다른 물질이 끼는 것이 난 싫다. 더 잘 느끼고 싶어서 끼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핏줄 체온 체액. 만족감은 거기서부터 오는 것이다. 꾸미지 않은 네가 들어오면서 느끼는 것이었다.

흉측한 생각이다. 더럽고 추악하다. 

내가 여자였다면, 내가 조금만 더 이성이 없는 존재였다면 한참 어린 나이의 너에게 짐을 안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리하질 못하니까,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이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네게 죄를 짓는 것이나 다를 게 없으니까. 오늘도 그저 한켠으로 밀어두고 널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 이야기를 나누면 설렌다. 사랑을 속삭이면 벅차다.

그래서 불안했다.

너무 감정이 커서 네가 부담스러워하면... 거짓말이었던 것을 알지만 네 입에서 들었던 말들이 가끔 머리를 괴롭힌다. 말하면 미안해할게. 빤해서 말하지는 못한 채 결국 오늘도 200일이라는 벅찬 순간에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다독이는 네 품이 너무 따뜻해서 더 눈물이 났다는 건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뜨겁다 내겐. 쉽게 손을 뻗을 수 없을 만큼.

그런데도 손을 뻗는다. 쌍꺼풀이 짙게 패인 눈, 높게 솟은 코, 관리를 잘한 입술. 살살 얼굴을 쓰다듬듯 손가락 끝으로 선을 그린다. 혹여 잠을 방해할까 조심스럽게. 

뭐... 이미 깨 있을지도 모른다. 넌 늘 내가 잠든 뒤에 잠드는 편이니까. 지금도 그냥 눈을 감아주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야.


“사랑해.”


고백을 내뱉어야지. 밤새서 말해도 부족할 고백을.


“사랑해 원아.”




200번째 날의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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