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는대로 써서 주의할 요소가 뭐가 있는지 모름 

















 고용주가 멈춘 곳은 한 판매대의 앞이었다. 판매대, 라고는 해도 판매하는 물품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매대의 주인은 판매대를 자신의 작업대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앉은 사람이 손님을 힐끗 눈을 올려 봤다가, 누구인지 안다는 듯이 다시 눈을 돌려 자신의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군. 언제나 찾던 것으로 내어오면 충분한가?"

[전보다 안 좋아 보이네요.]

"... ... ... 뿌리를 잃었거든."


 순간적이었지만 분명하게, 상인은 집사를 훑어보고 대답을 해왔다. 뿌리? 이곳에서 사용하는 은어인 걸까. 상인은 앉은 자리에서 적당한 크기의 상자를 내어놓았다. 고용주는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하지도 않고 집사에게 넘겼다.


[이대로 보내긴 아까운데, 당신만 괜찮다면 내 땅의 한쪽을 내어 줄 수 있어요.]

"아, 이런. 그대의 수집욕은 여전한가 보군."

[수집욕이라니 실례네요.]


 뿌리는 아무래도 집을 말하는게 아닐까, 정도로 이해를 끝낸 ■■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판매대에는 판매할 물품들이 놓여있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간간이 고용주와 대화를 나누는 상인처럼 판매대를 작업대로 사용하는 자들도 보였다.


 -


 메이드장은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온실에 있을 인형을 부르고, 손님을 위한 차를 내어왔다.


"손님께서는 주인님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에만 오시는군요."

[그분이 내 거는 제안은 매우 달콤해서, 직접 뵈었다간 내 결심이 흔들릴 테니 양해해주게.]


 손님은 인형의 품에 있는 자개로 꾸며진 머리빗을 꺼내어 인형의 머리를 빗어 내리며 떠도는 도중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풀어내기 시작했다.


 -


 상인과의 대화를 끝낸 고용주는 온 김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건을 감상하고, 구매하기도 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광물, 보석. 어떤 식물로 만든 건지 궁금해지는 직물. 무언가의 뿔이나 일부 등등... ... . 다량의 물건을 샀음에도 어느새 고용주가 꺼낸 여행용 가방이 끝없이 구매한 물건들을 삼키고 있었다.


 고용주가 산 물건들의 값을 합하면 얼마인 걸까, 같은 생각을 하며 그의 손을 잡은 채 나란히 걷던 도중 고용주는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판매대 위에는 모노클 하나만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금색의 테를 가지고 평범한 안경알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의 눈에는 이곳에 내놓을만한 상품인 걸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고 있었다. 고용주는 상인과 모노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기에 ■■은 너무 멀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형의 괴물도 죽음에 다다르는 독초'


 터무니없는 이름의 독초를 판매대에 당당하게 올려둔 상인의 몸에서는 먼지 섞인 흙냄새와 풀 내음이 섞인 채 풍겨오고 있었다.


"호오-. 그대는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헤메이다가 실수로 들어온겐가?"

"고용주의 거래가 끝나려면 조금 걸릴 모양이라 근처를 구경하고 있다만."

"그런가, 그런가."


 특이한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질 수 있었다. 온통 검은 로브뿐인 곳에서, 제 고용주만이 눈처럼 새하얀 로브를 입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의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검고 어두운 베일이 로브의 대부분을 감추고 있기에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은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은 문득, 제 주머니에 못 보던 주머니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늘색을 띄고 있는 보석은 빛에 비추면 오묘한 보랏빛을 띄우곤 했다. 보석과 같이 들어있는 쪽지의 내용은 간결하게,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긴다면 이것을 사용할 것. 이라는 내용이 살짝 휘날리는 필체로 쓰여있었다. ■■의 손에 들린 보석을 가만히 보던 상인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모양인지, 홀로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에게 말을 걸어왔다.


"궁금한게 많은 모양인데, 도움이 필요한가?"

"질문의 대가로 이것을 받겠다면 거절하지."

"그랬다간 경을 칠 테니, 무서운 소리하지 말게나."


 경을 친다니. 마치 이곳에 왕이 있기라도 한 말투였지만, 상인이 몸서리를 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뭐, 우선 이곳은 몇십 년을 주기로 매번 장소를 바꿔서 열리지. 거래 방법은 보시다시피... 거의 물물교환이지. 외부의 화폐는 사용하지 않네."

"거의?"

"뭐, 물물교환으로 성립이 힘든 경우에나 사용하는 방법이지. 판매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거네. 물론, 서로 간의 합의는 당연히 필요하고. 더해서 그것을 증명할 중개인도 필요하지."


 화폐를 사용하는 편이 좋지 않은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뻔히 보인다는 듯이 상인이 말을 덧붙였다.


"이곳에서는 그대가 생각하는 화폐가 의미가 없네. 애초에 단절되어서 사는 자들이 많기도 하고 말이지."

"가치에 맞지 않는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하하... ... . 그건 그대의 고용주가 대답해주겠지. 곧 예의 거래가 끝날 테니 말해두자면, 그 보석으로 이곳에서 못 구할 물건은 거의 없을 테지."


 역시 그분의 솜씨는 탁월하단 말이야. 같은 소리를 하며 상인은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손으로 유일하게 판매대에 남아있던 독초를 부드러운 천에 싸서 ■■의 손에 쥐여주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 손에 있는 보석과 독초를 번갈아 보다가, 독초를 품속에 갈무리해서 숨기고 제 고용주의 곁으로 돌아갔다.


 -


 고용주의 곁으로 돌아오자마자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베일에 가려진 얼굴을 붙잡는 차가운 손에 ■■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고용주는 그런 것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판매대에 진열되어있었던 모노클을 집사의 왼쪽 눈에 살짝 대었다. 외알안경은 고정이 힘들 텐데, 라는 생각을 하기 무색하게 고정할 것이 없음에도 모노클은 알게 뭐냐는 듯이 고정되어 고개를 슬쩍 숙여봐도 떨어지지 않았다.


[후후, 좋네요-.]

"좋은 거래를 했으니 만족스럽군."


 상인은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집사가 가지고 있는 보석과 비슷한 것(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모양이다)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고 있었다. 그들은 최근의 근황이나 이런저런 잡담을 가볍게 나누기 시작했고, ■■은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검고 하얀 새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새들이다. ■■은 살짝 커진 눈으로 그것들을 올려다보다가 모노클을 벗으려 했다.


[혹시 마음에 안 드나요?]

"아뇨. 뭔가 이상한 것이 보여서, 잠깐 벗고 보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이상한 것을 보았다는 말에 고용주의 심기가 미묘해진 것은 그의 차가운 손에 눈이 가려졌음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상한게 아니니까, 굳이 벗어서 보려고 하지 말아요. 오히려 이제부터 익숙해지지 않으면 곤란하거든요.]

"주인님께서?"

[당신도요.]


 고용주가 그리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집사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집사의 눈을 덮었던 손을 내렸다.


 아직 대화가 덜 끝났던 모양인지 고용주는 다시 등을 돌려 상인과의 대화를 재개했다. 집사는 이국의 언어(집사는 그렇게 생각했다)로 오가는 대화를 뒤로하고 쓰지 않은 보석이 담긴 주머니를 매만지며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 있는 새들은 기묘하게도 울음소리 한 번을 내지 않았고, 가장 높은 나무에 앉아있던 새 한 마리가 ■■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은 채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길게 드리워진 꽁지깃은 하얗고 검었으며, 제 고용주와 비슷하게 차가웠다.


 줄어들지 않는 무언가, 잉크가 필요 없는 깃펜, 정교하게 만들어진 동물의 형태를 한 인형... ... ... . ■■은 이곳에 있는 자들은 마법사나 마녀 같은 그런 존재들이 아닐까 추측했다.


 문득, 제 고용주가 들고 있던 여행용 가방과 비슷한 것들이 올려져 있는 판매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만든 사람이 직접 나온 것이 아닌 모양인지, 물건에 대한 설명이 적힌 종이가 판매대의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내 사용인들은 다들 여기에 있던데, 왜일까요?]


 어느새 나타난 고용주가 ■■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질문을 던져왔다. ■■은 그것이 대답을 바라고 말하는 질문이 아님을 알았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파는 가방은 탁월하죠. 같은 기술과 노하우를 사용해서 만들어도 완성품의 수납량과 내구성을 따라갈 수 있는 장인은 아무도 없거든요.]

"오랜만에 뵙는군요. 이번 동행인은 이 자입니까?"

[뭐~ 그렇죠? 앞으로 자주 볼지도 모르겠네요? 그 자식은 잘 지내나요?]

"하하. 그분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여전하시군요. 덕분에 한동안은 또 개량을 할 수 있겠다며 좋아하시더군요."

[... ... 쳇.]


 아무래도 고용주와 예의 장인은 악우에 가까운 사이인 모양이다.


[그래서? 살 건가요?]

"역시 있는 편이 여러모로 좋으니까요."


 ■■의 대답을 들은 고용주의 표정은 ■■으로써는 읽을 수 없었다. 어느새 평소의 미미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온 고용주는 슬쩍 제 사용인이 가지고 있는 주머니에 보석을 추가해두고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


 메이드장은 날이 밝고 나서 돌아온 두 사람을 보며 예상했다는 듯이 고용주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들었다.


"아침은 어쩌시겠습니까?"

[... ... 잘래요.]


 이미 졸음에 가득 파묻힌 목소리로 대꾸하며 고용주는 자신의 방으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뒤를 따라가려던 집사는 메이드장의 제지를 받고 주방으로 향했다.


"아마 주인님께서는 오늘은 아무도 부르지 않을 생각이실 테니, 쉬도록 해요."


 ■■은 이것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보아하니 메이드장은 메이드들도 최소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쉬게 할 생각인듯하니, 쉬러 가는 것마냥 방으로 돌아와서 여태껏 품속에서 잠들어있던 독초를 꺼냈다.


 -


 온실에 있는 인형은 가장 깊은 구역에서 내려가는 지하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리로 향했다. 그리고... ... ... .


"... ... 음? 이건, 어떻게 망가뜨리면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 거지?"


 인형의 목을 잡아챈 형상은 하마터면 박살 낼 뻔했으니 발소리를 좀 내라며 손을 거두었다. 인형은 아무 말도, 표정도 없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뿐이었다.


"어이, 인형. 말은-... 못하겠군. 인형이 말을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사고능력이 아니라 사전에 입력해둔 쪽에 가까울 테니."

"흠... ... ... . 내가 친히 지상에 나왔는데도 올 기미가 없다는 건... ... ? 그는 잠들었나 보군."


 안내해라. 새로운 얼굴이 들어온 모양이니, 구경을 좀 해야겠어. 라며 형상은 고개를 까딱였다.

@godiard_master

godiard_master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