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여자애들하고 무슨 이야기 했어?”

신철수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자 나도 새삼 신철수를 바라보았다.

나른하게 뜨여있지만 똑바로 뜨면 둥글고 예쁜 눈 눈꺼풀도 음영이 있어 아이돌처럼 눈이 더 커보인다

도톰한 입술은 부담스럽지 않고 뭔가 좀 물어보고 건드려보고싶게 생겼달까. 심지어 애가 얼굴에 여백이 없다.

그에 비해 난 삼백안에 좀 뚱한 얼굴이어서 신철수 옆에 있으면 더 못되게 보이나보다.

“별거 아냐.”

애들이 그냥 널 두고 나한테 좀 잔소릴 했을 뿐이야.

마음 상한건 나 뿐이었다. 철수가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꼭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

 ***

사실은 아까 여자애들에게 불려가 한소리 들었다.

 

’너네 사겨?‘

’아니..……‘

’그럼 왜 둘이 손잡고 학교 왔어?‘

’어쩌다보니까.‘

’뭐...허락해 줄게.‘

니가 뭔데 허락하냐마냐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참았다. 우린 허락받을 사이도 아니고 여기서 더 대꾸했다간 오히려 허락받고 공인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근데 신철수는 공공재니까 구영희 넌 너무 집착하지 마.‘

’?‘

뜻모를 소리를 하는 애들이 이상해서 내가 쳐다보자 셋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철수한테 집착해서 아침에 집까지 찾아간거야? 그 눈으로 협박했어?‘

’샘이 돌봐주랬지 그렇게 쫓아다니라고 했어?‘

’대체 뭔소린지 알아듣게 좀 말해라.‘

내가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하자 애들이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렇게 쳐다본다고 우리가 쫄거 같아?‘

애들이 날 죽일 듯 노려보았다.

’아니 내가 뭐.‘

’눈을 왜 그렇게 뜨냐고.‘

그말에 나는 눈을 한번 세게 감았다 떴다. 얘네는 꼭 또 내 컴플렉스를 건드려.

’그러는 니네는! 옥상으로 불러와서 한다는 말이 공공재니 뭐니…….내가 언제 신철수한테 집착했다고! 집착은 내가 아니라 신철수라고!‘

’뭐? 미쳤어 구영희?!‘

셋이서 나를 죽일 듯 덤벼들었다.

’신철수가 왜 너한테 그래!‘

’전학온 첫날 복장 검사좀 해줬다고 바로 들이대고!‘

’내가 언제!‘

’순수하고 깨끗한 애한테 들이대지 마! 게다가 너 공부도 가르쳐 준다며! 대체 어떻게 협박한거야!‘

’왜 소문이 그렇게 나?‘

’소문은 무슨!‘

’진짜 아니라고! 좀!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하지만 괜히 대들었다가 귀에서 피가나도록 혼만 났다.


*** 

신철수가 반 애들에게 단체로 마법이라도 걸었는지,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 그래도 너 없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라고 어떻게 말해.

내가 더 말을 않자 신철수도 더는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금요일에 뭐해."

"어. 약속 있어."

물론 없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천에하나 만에하나 굳이 만나자는 말을 꺼낼 상황을 안만들면 좋지 않을까. 

그러자 신철수는 다시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아침 같이 손을 잡고 걷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신철수도 말없이 내 옆에 서서 걸었다. 

죽겠다. 너무 불편해. 

교문을 나와서 내가 물었다. 

 "어...음... 철수야 넌 학원 안가?"

"안가."

"...그렇구나."

“학원 수업 몇시부턴데?”

“6시.”

“그럼 우리집에 왔다 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왜 너희집에?!

“왜?”

“라면먹고 가라고.”

“!”

이번엔 심장이 무릎까지 내려온 것만 같았다.

“모, 못가…….”

“왜?”

“그게……. 학원에 일찍 가서 예습도 해야할거 같아서.”

“조까.”

이상하게 철수가 나한테만 불량해서 좀 서글프다. 우리반 애들은 다 속고 있다. 저런 상스러운 말을 하는 철수가 대체……. 어디가 청순하고 어디가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저기 의인상 받는거 축하해.”

“……”

“축하의 의미로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테니까 나 좀 보내주면 안될까.”

신철수가 날 말없이 쳐다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너희 집에서 라면 먹고 학원 가야겠다. 하하.”

“학원 끝나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연락해.”

“왜 내가 너한테 연락을 해야할까? 하하하…….”

“악!”

갑자기 철수가 날 때릴 듯 팔을 뻗어 내 앞으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차온다.”

하지만 철수는 보도블럭 안쪽으로 날 밀어넣고 막아섰다. 곧이어 크고 검은 차가 한 대 우리 앞에 섰다. 

“철수야.”

차창문이 열리더니 시커먼 정장을 입고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철수를 불렀다. 조폭이라기보단...조폭을 수백은 거느릴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저씨의 얼굴을 확인한 철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가세요”

“회장님께서 찾으신다.”

“말씀다 끝난 걸로 아는데요.”

“네가 그건 아직 모르지 않느냐!”

뭔소리지? 아저씨의 절박하면서도 노기 어린 말투에 나는 놀라 철수를 쳐다봤다. 철수는 날 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찼다.

“구영희. 너 이대로 집에 가.”

그리고 철수가 아저씨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얘 택시비 좀 주세요.”

아저씨에게 돈 내놓으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철수 때문에 나는 마구 손을 저었다.

“아냐 철수야. 나 집에 들렀다가 아니, 그냥 오늘 학원 안가려고. 근데 너야말로……회장님이 기다리신다는데 뭐 위험한 거 아냐? 전에도 학교에 찾아왔던 거 같은데……”

그러자 조수석에 앉은 아저씨는 내게 오만원짜리 두장을 내밀었다.

“저, 진짜 집앞이 코앞이거든요!”

“잔말말고 타고 가거라. 택시!”

아저씨는 아예 내려서 택시를 불렀다. 지나가던 모범택시가 금방 아저씨 앞에 와 섰다.

“아, 철수야! 너 이게 무슨 소리야? 회장님이라니?”

전에는 그냥 보냈지만 이번에는 이대로 물러설순 없었다. 정말 무슨 무서운 아저씨들이 신철수를 암흑의 세계로 끌어들이는건 아닐까 더럭 겁이 났다.

“너 위험한거 아냐?”

그러자 철수가 희미하게웃으며 내 머릴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내가 굳어있자 철수가 택시 문을 열고 날 밀어넣었다.

“그냥 아는 사람이야. 걱정하지마.”

“그래도…….”

“아저씨, 산동 내미안이요.”

우리 아파트를 말한 철수가 문을 닫았다. 택시가 출발했다.

나는 꼭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차창문을 열고 멀어져가는 철수와 검은 차를 봤다. 그리고 신철수도 차에 올라타더니 차가 곧 출발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한숨을 쉬었지만 가슴이 답답했다. 물론 신철수와 라면을 같이 먹을 기회가 사라져서 다행이긴 했다. 하지만 걱정이 됐다.

“아! 아저씨! 저 그록스터디로 가주세요!”

아무래도 집에 갈게 아니라 학원에 가서 잉어빵 아저씨를 뵙고 말씀을 드려볼까 했다.

그랬는데. 막상 도착하니 잉어빵 아저씨 포장마차가 닫혀있었다.

“뭐지…….아저씨도 설마 무슨 일 있으신건가?”

나는 학원 1층에서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너 괜칞아?]

문자를 보냈다. 철수는 답이 없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했고…….별일 없겠지. 나는 오늘 12시까지 철수에게 연락이 안오면 경찰에 신고하기로 마음 먹고 수업을 들었다.

머리에 수업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올때도 흘끗 본 잉어빵아저씨 포장마차엔 불이 꺼져 있었다.

집에 와 씻고 11시쯤 자려는데 그제야 신철수에게서 답이 왔다.

[너는]

[없어. 너 진짜 괜찮은거 맞아?]

[ㅇㅇ 내일보자]

그렇게까지 말하니 별일 없겠지. 나는 한숨을 쉬고 침대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드드득드드득-

문자가 또 왔다.

이시간에 누구지?

역시 철수였다. 혹시라도 사실 난 잡혀있어. 그런 말이 적혀 있을까봐 두려웠다.

떨리는 손으로 잠금을 풀자 딱 세글자가 적혀 있었다.

[내꿈꿔]

“…….”

철수의 안전은 걱정안해도 될 것 같고, 정신 건강을 걱정해야할 것 같다. 신철수는 지금 많이 괜찮은 것 같았다.

 

***

“안녕.“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몇 번이고 연습했던 인사를 신철수에게 건넸다.

”아침에 데리러 갔는데 너 없더라?“

어?!

심장이 또 한대 맞은기분이었다.

”누, 누굴 데리러 갔는데?“

바보 같은 질문에 신철수가 내 눈을 바라봤다. 너, 라고 쓰여진 그 얼굴에 살기가 비쳤다.

”저기 철수야. 네가 왜 데리러 올까? 나를?“

”…….“

대답이 없자 쫄렸다. 크로커다일 특유의 위압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신철수가 무서워서일까. 이렇게 예쁜데, 너무 커서 무서운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데리러 올 이유가 없잖아.“

그러자 철수가 눈을 한번 깜박이더니 턱에 손을 굈다.

”안보이면 불안하니까.“

”….“

꺄아악-

 나는 돌이 되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비명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졌다. 얜 나랑 대체 무슨 사이길래...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걸까.

철수야, 혹시 드라마처럼 내가 기억상실이고 너랑나랑 무슨 사이였다거나...그런 건 아니지? 

하지만 난 사고가 난 적도 없고...

”이놈들아! 시끄럽고, 조회가자!“

그때 담임이 들어왔다.

갑자기 급조회라나. 우리는 투덜대면서도 강당으로 향했다.

‘아…….’

강당에는 2학년 8반 신철수 표창장 수여식 이라고 적혀 있었다.

교장샘의 훈화후에 신철수의 표창장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신철수는 우아하게 단상으로 나가 상을 받아들었다. 무슨 훈장이라도 받는 듯 사방에선 스포트라이트가 터지고 신철수는 도도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나는 박수를 치면서 생각했다. 

내가 미쳤거나, 아니면 세상이 날 왕따시키고 미쳐 돌아가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상도 받는 신철수는 좋은 아이인데 나는 왜 무서울까.

@<--

 

***

드디어 금요일밤이되었다. 불금이라 행복했다.

”야, 영희야.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 콜?“

아빠가 눈을 찡긋했다.

”나보고 사오라고?“

”아니지. 우리 아들 그런 일도 있었는데…….영수랑 가라.“

내가 동생방에 들어가자 이미 다 듣고 있던 구영수가 말했다.

”오천원 줄테니까 니가 갔다와.“

새끼가 형 알기를 아주….

”응 고마워 동생.“

나는 싱긋 웃으며 오천원을 잘 접어 넣고 신발을 신었다.

모범택시비도 남았고, 구영수가 오천원도 줬고, 이번달은 나름 풍족했다. 게다가 메로나 사고 남은 돈도 삥땅 칠거니까.

'나난나난나나~나난난나나~나난난난난나~ 헤이 거기 미스터~'

나는 휘파람까지 불면서, 흠칫흠칫 내적 댄스까지 춰가며 그록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담벼락에 뭔가가 기대서 있는게 보였다.

뭐지?

”어디 갔다와.“

거대한 뭔가가 담벼락에서 기댄 몸을 일으켰다. 가로등 아래 시커먼 그림자가 내 위로 졌다. 신철수였다.

”어…….처, 철수야…….“

”밤늦게 어딜 다녀.“

”그게…….“

철수는 약속 있는게 뭐였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공연히 찔려 물었다.

”저기 메로나 먹을래?“

”…….“

신철수가 미간을 찌푸리고 내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내려다봤다.

금요일에 약속 있다고 해놓고 이렇게 딱 마주치니 아무래도 기분이 상했겠지. 

내가 거짓말한걸 어떻게 여기서 딱 이렇게 들킬까. 나는 내 거지같은 타이밍을 욕했지만 사실 미안한 마음도 컸다그래서 이 메로나라도 나눠주고 싶었다.

”……조그만게 왜이렇게 찬걸 먹어.“

마침내 신철수가 비닐 봉지에서 메로나를 꺼냈다.

우리는 놀이터에 그네에 앉아 내가 내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근데 너 바지가 왜 이렇게 짧아. 날도 추운데.“

신철수가 못마땅하다는 듯 훈계조로 이야기해서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내 입은 딱히 툴툴대지 않았다.

“집에서 급히 나오느라. 그런 넌 어디 다녀와?”

"여기 우리집이야."

철수가 우리 아파트 근처에 원룸촌을 가리켰다. 날 따라온게 아니고... 여기 사는구나.

"...그렇구나. 근데 어디갔다 이제와?"

"수영장."

아. 그렇구나. 역시. 처음 봤을 때부터 희미하게 락스냄새가 난다 했더니. 내 예상이 맞았다. 물론 잉어빵 아저씨도 이야기해줬지만 말이다. 

문득  잉어빵 아저씨 말이 생각났다.

'아저씨가 못나서 아들 학원 한번 안 보내줬는데.....전교1등을 하고 그랬어. 우리 아들이.'

아무튼 학원을 안다니는 철수라니...그러고도 전교 1등이라니 울 엄마아빠가 알면 삼년은 잔소리감이었다. 

기왕이렇게 된거 시원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아버지가 그록스터디 근처에서 일하셔?"

"어."

"잉어빵... 맞지?"

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그래도 아빠가 재밌는 애가 있다고 하더라. 이야기 하는데 너 같았어."

그게 나였나보다.

"어.. 그러게. 잉어빵 진짜 최고더라. 그리고 아버지도 너 자랑 많이 하셨어 너 엄청 대단하다고... 공부도 잘하고 수영도 엄청 잘한다고...."

"너는 안해?"

신철수가 내게 물었다. 뭘 안한다는거지?

"수영."

아마 악어라면 다들 하니까. 그냥 물어본거겠지. 그 말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옛날에. 지금은 안해."

신철수가 날 빤히 쳐다봤다 더 말해보라는 듯이.

"그냥 동네 수영장 다니다... 소질이 없어서 관뒀어."

악어인데 소질이 없다는 건 좀 궁색한 말이었지만... 내 말에 신철수는 말이 없었다.

불편한 침묵이 시작되었다.

놀이터 주홍색 가로등 아래 철수의 긴 속눈썹이 하얀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그래도 어느새 이렇게 아이스크림까지 나눠먹으니 아주 조금은 철수가 덜 무서웠다. 

나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근데 철수야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왜 자꾸 나보고 조그만게 라고 그래?"

수틀리면 신철수는 내가 조그맣건 크건 패죽일거 같지만, 그래도 며칠 사이에 용기가 생겼기에 물었다.

“조그마니까.”

하지만 내 그간의 고민에 너무도 간단히 대답한 신철수는 아이스크림을 핥기 시작했다.

"..."

나도 잠자코 아이스크림만 빨았다. 어색하다. 너무 어색해. 

”주말에 뭐해?“

철수가 갑자기 물었다. 어색해 죽을 것 같았는데 물어보니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아. 난 인천가.“

”인천?“

”어.“

"왜?”

“배두기 할아버지가 화교신데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엄청 큰 짜장면집 하시거든. 블랙데이라서 거기서 짜장면 먹기로 했어.”

미리 블랙데이를 축하하는 건 고등학생이 된 이후 배두기와 나의 연례행사였다.

“먼데까지 왜 가.”

수원에서 인천이면 꽤 멀긴했다. 

“그냥 뭐……. 할아버지도 만나고 겸사겸사. 넌 짜장면 안 좋아해?”

“좋아해.”

“…….”

그러니까 빨리 같이 가자고 말해. 라고 철수가 나에게 눈으로 협박하는 것 같았다.

“그, 그렇구나.”

그래도 차마 같이 먹으러 가자고 예의상이라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철수가 먼저 물었다.

"나도 같이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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