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난주까지는 얼른 개학하기를 바랐던 제임스지만 그렇다고 수업까지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제임스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아직 열어보지도 않았던 가방이 휙 열리며 오늘 시간표대로 책을 뱉어냈다. 오전에 두 과목 오후에 세 과목 합해서 하루에 다섯 과목이라니, 한창 뛰놀 청소년에게 너무 가혹한 시간표가 아닌가! 테이블 위에 툭툭 쌓이는 책이 네 권이어서 뭐가 빠졌나 헤아려보다가 제임스는 8월에 추가로 부엉이가 날아왔던 것을 기억해냈다.

  부엉이가 가져온 전달사항은 올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은 실습 위주로 진행될 것이라 교과서인 「5학년 표준 방어마법」은 필수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제임스가 꽤 좋아하는 과목이었지만 제임스가 좋아하는 것은 이론보다는 실습이었고, 때문에 제임스는 이번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는 제법 마음에 든다며 즐거운 기분으로 교과서를 사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시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우스 침대위로 역시 네 권의 책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며 제임스는 킥킥 웃었다. 아마도 리무스는 교과서를 가져왔을 거라고 생각하며 제임스는 반대쪽 피터를 돌아보았다. 제목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피터가 챙기고 있는 교과서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게 다섯 권이었다.

  “그러고 보니.”

  리무스를 떠올리니 생각났다. 제임스가 입을 열자 시리우스와 피터가 거의 동시에 제임스 쪽을 쳐다보았다.

  “너희들 ‘그거’ 어떻게 됐어?”
  “됐으면 너한테 말했겠지.”
  “나도 아직…….”

  ‘그거’라고만 말했어도 용케 알아듣고 대답하고는 너는 어떻냐고 묻는 듯한 두 사람의 시선에 제임스도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젠장, 뭔가 느낌을 알 것도 같은데 말이지.”

  그러나 그 어렴풋한 느낌을 확실하게 잡아내는 것에 매번 실패한다며 시리우스가 낮게 투덜거렸다. 햇수로 따지면 그들이 ‘그거’, 애니마구스 마법을 몰래 익히기 시작한지도 벌써 3년째였다. 누가 고등마법 아니랄까봐 도서관의 학생들이 출입할 수 있는 구역에는 변변한 참고자료조차 없었다. 물론 투명망토가 있는 이상 금지구역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내는 것쯤은 별 문제가 아니었으나 진짜 문제는 온통 룬어로 적혀있는 그 책을 읽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자신들이 좀 너무 쉽게 생각한 면이 없지 않다고 반성할 만큼 룬어를 독학으로 익히는 것은 ‘토할 만큼’ 까다로운 일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4학년 룬문자 수업을 쉽게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성과일 따름이다.― 겨우 말 배우는 어린애처럼 더듬더듬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그들은 그 두꺼운 책의 거의 1/3정도가 애니마구스 마법을 익히는 과정의 어려움과 실패, 예컨대 몸의 일부만 동물로 변신한 상태로 마법이 풀리지 않는다든가 하는 상황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들은 경고쯤은 가볍게 무시하고는 오히려 읽을 분량이 줄어들어서 좋다며 그 챕터를 훌훌 넘겨버리고 다시 본론부터 해석을 시작했다. 그러나 주문을 알았다고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시리우스가 말하고 있는 그 어렴풋한 느낌을 잡아내는 데만 거의 2년이 걸린데다가, 그 이후로 도통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애니마구스 마법을 익힌다는 게 어렵기도 어려웠지만 리무스에게 비밀로 해야 했기 때문에 리무스만 듣는 수업이 있는 틈을 노린다든가 하느라 시간을 많이 낼 수도 없었다는 것도 한몫 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리무스가 반장이 되어서 1인실로 방을 옮겼기 때문에 한결 사정이 나아졌다. 올해야말로 성공시켜서 리무스를 깜짝 놀라게 해주자는 제임스의 말에 친구들은 말없이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입생들을 돌보느라 바빴는지 리무스는 아침식사 시간에도 느지막이 도착했다. 아침부터 피곤한 표정으로 묵묵히 빵을 씹는 리무스에게 반장이 아니라 보모가 된 기분이 어떠냐며 농담을 걸었더니 리무스는 굳은 표정으로 빵 먹는 것을 멈췄다. 꼬마들이 꽤 귀찮게 굴었던 모양이다. 제임스가 피식 웃자 리무스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신입생들을 교실까지 데려다 주려면 평소보다 좀 서둘러야 했다. 오늘부터 며칠간은 수업이 끝날 때마다 1학년들을 다음 수업 교실로 안내해야 했다. 릴리와 한 시간씩 교대로 한다고 해도 성가신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 날 첫 수업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이었다. 리무스를 먼저 보내고 느긋하게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초록색과 은색의 넥타이를 보고 제임스는 한탄했다.

  “또 슬리데린이냐. 지겹네, 저 얼굴들.”
  “매년 시간표 짜는 거 대체 누구야.”

  물론 슬리데린도 그리핀도르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기숙사가 서로를 반목하는 것을 학교 측에서도 뻔히 알 텐데도 굳이 같은 시간에 수업을 듣게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무스와 릴리가 같이 교실로 들어왔고 곧이어 슬리데린 반장도 들어왔다. 릴리와 뭔가 말을 주고받은 리무스는 중간보다 조금 뒤쪽에 자리를 잡은 친구들 옆으로 와서 앉았다. 리무스가 당연하다는 태도로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는 것을 보고 제임스는 씩 웃었다.

  잠시 후 해리가 교실로 들어왔다. 신임 교수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학생들 앞에 섰다. 시선들이 평소보다 배는 따갑게 자신의 얼굴에 와 꽂히는 것을 느끼며 제임스도 그의 얼굴에 주목했다. 어제 연회장에서보다 더 밝고 가까운 곳에서 본 해리의 얼굴은 상상했던 것보다 자신과 더 닮아있었다. 나름 정리한다고 한 것 같은데도 이리저리 흐트러져있는 머리카락까지도 같았다. ―제임스도 정리하려고 몇 번이나 애를 써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가려진 이마에 나있는 특이한 흉터와 안경테의 모양, 맑은 초록색 눈, 그리고 좀 더 단단하게 여문 턱선 정도를 제외하고는 정말 흡사한 생김새였다. 대체 누굴까. 고민하는 제임스만큼이나 다른 학생들도 둘 사이가 궁금한 듯 해리와 제임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어제 만났지만, 해리 에반스입니다.”

  해리가 입을 열자 교실 안은 확연히 조용해졌다.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건 제법이라고 평가하며 제임스는 해리를 주시했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어 마법을 올 한 해 동안 가르치고자 합니다. 교과서가 필요한 수업을 할 때는 사전에 예고를 할 테니 매시간 교과서를 지참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과서보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지팡이와 가슴속의 용기입니다.”

  해리의 말이 떨어지자 슬리데린에서 야유가 흘러나왔다. ‘포터랑 닮았다 싶더니 역시 그리핀도르 출신이었냐.’ 하는 말이 또렷이 들렸다. 가만 듣던 해리는 야유소리가 좀 잦아들었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슬리데린에게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핀도르에게 야망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 지혜로움과 성실함이 모두 필요하며, 특히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험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요.”
  “제법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는데.”
  “방학 내내 연습한 거 아냐?”

  시리우스처럼 제임스도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 키득거렸다. 두 사람은 미처 알지 못하고 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해리는 방학 내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수업해야할지 고민하면서 몰래 연습도 많이 해보았다. 그럼에도 막상 학생들 앞에서 말하려니 초조한 기분에 말이 자꾸 헛나오려는 것을 애써 다잡으며 해리는 내심 네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여러분은 여러 가지 방어 마법을 배우겠지만, 살짝 예고하자면 특히 주력할 것은 프로테고와 패트로누스입니다.”

  두 가지 마법의 이름이 나오자 학생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개개인의 수준 차이는 있겠지만 주로 프로테고는 너무 쉽고, 패트로누스는 너무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테고는 이미 3학년 때 배운 마법이고 패트로누스는 7학년 때 NEWTs를 준비하면서도 오러 같은 특수한 직업을 선택하는 학생이나 배울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리는 고개를 저으며 강조했다.

  “프로테고 마법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프로테고를 단순한 반사 마법으로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3학년 때 수업을 성실하게 들었다면 말이지요.”

  몇몇 학생들은 난처하다는, 혹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눈을 마주치고는 씩 웃었다. 역시 실전만한 연습은 없는 법이다. 프로테고 역시 그들이 자주 사용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보곤 했던 마법이었다. 제임스가 무심코 ―라기에는 가장 많이 싸웠기 때문이겠지만― 슬리데린 자리에 앉아있던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을 때 해리가 갑자기 제임스를 보는 바람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쳤다는 것에 놀랐는지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빙긋 웃었다. 제임스는 자신을 한번 찍고 지나간 그의 시선이 다시 시리우스에게 머물렀다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어제부터 줄곧 자신들에게 머무르던 그의 시선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제임스는 알 수가 없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친근한 시선이었다. 하긴 영문을 모르기로는 해리의 얼굴이 자기와 꼭 닮아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원래 제임스는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을 싫어했다. 어제 느꼈던 불편한 기분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서 제임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해리를 보았다.

  1년간 수업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개관을 끝내고 해리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얼굴에 ‘첫날인데…… 첫 수업인데…… 첫 시간인데……’ 하는 말들이 쓰여 있는 것처럼 보여서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다. 자신도 그랬기 때문에 그 기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해리는 씩 웃으면서 교탁을 짚었다.

  “자, 그럼 오늘은 첫날이니까 여기까지.”

  교실 곳곳에서 ‘우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질 급한 몇몇은 벌써 필기구니 책이니 하는 것을 가방에 쓸어 넣고 있었다. 혹시라도 해리가 ‘여기까지’ 라는 말을 철회할 것이 걱정이라도 되는 듯 빠른 동작들이었다. 해리는 다음 시간에는 지팡이만 들고 와도 된다는 말과 함께, 가도 좋고 혹은 남아서 궁금한 것을 물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 말에 엉덩이를 들썩이던 학생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시 앉았다. 사실 해리에게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가장 궁금한 것으로 축약하면 대충 두 가지였다. 제임스와는 무슨 사이이고 릴리와는 또 무슨 사이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해리가 방학동안 가장 열심히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다.

  에반스라는 성을 쓰는 것은 마법 세계에서는 릴리뿐이었지만, 머글들은 꼭 ‘친척’이 아니더라도 같은 성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릴리가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 외에 머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학생 몇몇도 고개를 끄덕이자 썩 달갑지는 않지만 어쨌든 다들 그럭저럭 납득은 하는 것 같았다.

  “그럼 포터와는 무슨 사이예요?”

  해리가 막 그 말에 대답을 하려던 때 의자 밀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해리를 비롯한 학생들의 눈이 교실 뒤쪽으로 쏠렸다.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제임스였다.

  “가도 되죠?”
  “아, 그래.”

  갑작스러운 일에 좀 바보같이 대답한 해리에게 피식 웃어보이고는 제임스는 친구들에게 ‘가자.’ 하고 말하며 고개를 까딱 하고는 먼저 교실을 나섰다. 시리우스와 리무스는 제임스의 저런 돌발 행동이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가방을 챙겨 들고 일어났다. 그들이 나가고 닫힌 문 쪽을 쳐다보느라 잠시 말을 잊은 해리를 다른 학생들이 재촉했다. ‘어 그래,’ 하고 미리 생각해놨던 얘기를 하면서도 해리는 혹시 제임스가 그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 마음 한 켠이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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