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물






 " 아저씨가 포기하세요. "
 " 아니, 그렇게는 못하겠네. 자네가 포기하게나. "


 시간이 지나서 해가 가까워진 듯한 착각이 드는 지구에서 그나마 시원한 건물 안에서 팽팽히 신경전이 벌어지는 이들 사이에 끼어있던 은발의 소년이 소녀와 청년에게 소리쳤다. 제발 그만하세요! 언제까지 이렇게 싸우고만 계실거에요! 다른 분들은 벌써 가셨다구요! 소년의 호통치는 소리에 놀란듯한 눈 앞의 두 사람은 소년을 보고는 그럼 먼저 가 있어. 먼저 가 있게나. 그리 말하며 소년을 보내려는 듯한 말을 하고 또 다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만하세요.. 제발.. 은발의 소년이 죽어갈 듯이 작게 말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 해보였다. 그때, 청년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은 무시하려 하였으나, 소녀가 빨리 받으라며 재촉하자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 다자이!! 도대체 어디에 쳐박혀있는거냐!! "
" 쿠니키다 군, 들어보게나! 글쎄, 카에나 양이 싫다잖는가!! "


 너네 연애 놀음을 왜 내가 들어줘야 하는거냐!! 시끄럽고 얼른 나와!! 사장님이 언제 오냐고 물으셨다고!!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소리에 카에나 라는 푸른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고, 은발의 소년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그런 쿠니키다 라는 사람의 말에 움츠러들지 않은 것은 다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다자이 라는 청년 뿐이었다. 어디론가 떠나려는 듯이 큰 캐리어를 열어서 안에 든 물건을 보여준 카에나는 인상을 잔뜩 쓰면서 물었다. 도대체 이걸 어찌 입으라는거에요. 미쳤어요? 아저씨가 포기해요. 잔뜩 불만을 품은 말에 다자이는 반박하듯이 책상을 손으로 탕탕 내려치면서 포기 못한다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은발의 소년은 자연스럽게 다자이의 휴대전화를 들어서 이런 이유로 조금 더 늦어질 것 같다고 먼저들 놀고 있으라 말을 전했다. 휴대전화 너머에서는 한숨 소리가 들렸고, 아츠시. 그럼 네가 두인간들 잘 끌고와라. 는 말만 남기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은발의 소년인 아츠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건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명 여름이니 단체휴가로 아침 일찍 모두가 바다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 다자이와 카에나도 그렇구나 라는 반응이었다. 일을 끝마치기도 전에 사장님은 사원들과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켰고, 평소보다 일이 일찍 끝난 사람들은 각자 바다에서 무얼 할까 고민하며 쇼핑을 나섰었던 것이었다. 그에 다자이와 카에나도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하여 쇼핑을 하러 따라나섰던 것이었다. 분명 거기까지는 좋았다고 모두가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어느 순간 다자이와 카에나가 없어져서 두사람끼리 데이트를 즐기러 갔는가보다 하는 로맨틱한 생각을 하는 사이, 다자이가 일방적으로 카에나를 데리고 탈주한 것이었다.


' ... 이렇게 빠져나와도 괜찮아요? '
' 괜찮네, 다들 데이트 하러갔다 생각할테니 말일세. '


 아, 그러세요. 라는 반응에 다자이는 언제나처럼 웃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오묘한 표정을 짓던 다자이가 (카에나의 시점에서는 오묘해보였다) 카에나를 데리고 그대로 하나하나 살펴보던 것을 꺼내어 그녀의 몸과 맞대어 사이즈를 측정하는 듯 했다. 뭐지? 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약간 내리면 노출이 심하지도 않고, 심하다고 할 수 없는 비키니를 손에 들고 있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패닉에 빠진 카에나가 다자이를 올려다보면서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고, 다자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카에나 양의 비키니 차림 보고싶어서 말이네. 라는 대답만 내놓았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거라고 생각한다. 계속 싫다고 도망가는 카에나와 한번만 입어달라는 다자이의 간곡한 부탁. 승자는 카에나 였다. 분명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다자이에게 제자리로 가져다 놓으라고 말했지만, 언제 가져와서 계산을 마친 것인지 둘이서 동거하는 그 집에서 푸른색의 그라데이션이 칠해진 시원스런 비키니가 카에나의 캐리어 안에 들어있던 것이었다.

 사실을 알아버린 카에나는 노발대발 화를 내었고, 다자이는 강아지처럼 한번만 입어달라며 애원하듯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가볍게 일이 끝나는가 싶어서 카에나는 캐리어에 비키니를 빼고 지퍼로 잠궜지만, 다음날 아침인 당일 날. 모두가 떠난 회사 안에서 캐리어 짐을 다시 확인하던 카에나는 눈이 뒤집힐 것 같은 화를 삭히며 다자이를 찾기 시작했고, 곧 눈에 띈 다자이는 멱살을 잡히고 말았다.


' 이, 미친, 에로 아저씨가! 내가 싫다고 했잖아요! '
' 한번만 입어주게나.. 한번만이면 되는거얼~!! '
' 꼬우면 아저씨가 나 대신 입던가요!! '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는 카에나에, 다자이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강력하게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고, 마침 사무실에 물건을 하나 빼먹고 돌아온 아츠시에 의해 지금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아츠시는 지금 당장이라도 숨막힐 듯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쿄카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쿄카는 이미 바다에 도착해서 나오미와 놀고있는 상황에 혼자서 이 상황을 어찌하던 말려야 할 처지였다.

 지금도 이렇게 거의 1시간을 버린 채, 두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무실 안에서 아츠시 혼자 긴장한 채로 애석하게 가는 시간만 탓하고 있었다. 사실 카에나도, 다자이도 둘 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카에나는 애초에 정말 싫으면 싫다고 고집하는 편이었고, 다자이는 관심없다가 관심이 생기는 순간에 이거 갖고싶다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 부분은 카에나와 다자이. 두사람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아츠시를 제외한 이능력 사원들도 모두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두사람에게 둘 중 한명이 포기하세요! 라는 말을 하면 다시 두사람은 서로에게 포기하라고 으르릉 거릴게 분명했다. 어줍잖은 말을 내뱉으면 아츠시 본인 스스로가 제 무덤을 파는 꼴이었으니 말을 쉽사리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혼자서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다자이가 갑자기 검지 손가락을 들면서 최후의 수단이라는 말을 꺼내었다. 드디어 이 지옥같은 어색함과 긴장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건가 라는 생각에 그 최후의 수단을 빨리 말하세요!!! 라고 속으로 되뇌이자, 다자이는 한숨 푹 쉬고는 말했다.


"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치즈케이크 두박스와 달콤짭짜름한 치즈 열박스 사주겠네. 어떤가? "


 아츠시는 순간 말없이 경악했다. 어떤 사람이 고작 그런걸로 죽어도 입기 싫다는 걸 입겠어요!! 속으로 오조오억번 외치고 카에나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아아, 분명 다자이 씨를 미쳤냐는 듯이 우주 쓰레기 보듯 보실거야.. 라는 생각과 다르게 아츠시는 다시 한번 더 경악했다. 으르릉 거리는 것을 멈춘 순한 강아지가 된 것처럼 카에나의 표정이 보기드물게 붉게 상기된 채로 저, 정말..이죠? 라는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정말 그걸로 넘어가시는 분이셨어요? 카에나 씨???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는 아츠시를 뒤로한 다자이가 그럼 약속하지. 그러니 입어주겠는가? 라는 언제 내가 고집부렸지? 라는 웃는 얼굴로 카에나를 홀린 다자이가 카에나의 캐리어를 다시 고이 싸주기 시작했다. 상기된 채로 하, 한번만 입어줄게요. 라는 말을 내뱉고, 서로 사랑한다는 사이라는 것을 팍팍 보여주는 그 상황에 아츠시는 생각했다.


' 아, 퇴사하고 싶다. '



***



 그렇게 바다로 곧장 달려간 세사람은 바다와 가까운 탈의실에서 옷을 바꿔입고 나오기로 했다. 다자이는 기대하겠다는 말로 카에나를 놀렸고, 카에나는 그런 다자이의 말을 무시하며 '여자 탈의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십 분 후. 여전히 나오지 않는 카에나에, 20분 전에 먼저 나온 다자이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진짜 변태로 찍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얌전히 '여자 탈의실' 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출구만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때, 움찔. 파란색 물결 머리카락이 출구쪽으로 삐져나온 것이 보였고, 그에 약간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다자이 본인이 고른 비키니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노출이 조금 많은 디자인 이었으므로, 얼마나 심할까 보다는 그저 어울릴 것 같다는 안목 탓에 고른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 카에나 양은 화내고 고집부리다 겨우 좋아하는 것으로 물고늘어져 허락을 받은 것인데.. 아마, 카에나 양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괜히 허락했다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저렇게 나오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 나오미 양, 요사노 씨. "
" 네~! "
" 무슨 일이야? 다자이가 우릴 부르다니. "


 손을 펴서 '여자 탈의실' 의 출구를 가리키자, 두 여인은 다자이를 향해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을 보였고, 그에 다자이는 오해라면서 카에나 양이 저 안에서 40분 째, 무소식 이라는 말에 그제서야 나오미와 요사노는 안심한 듯이 (애초에 무슨 상상을 한건가?) 자신들이 끌고 나오겠다며 안심하라 일러두었고, 그에 다자이는 웃음으로 감사인사를 보내주었다. 한참 출구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두 여인에게 카에나는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 얇은 점퍼를 하나 걸치고 부끄럽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출구에서 빠져나왔다. 새하얀 피부에 아슬하게 걸쳐있는 비키니의 모양새는 제법, 여러 남자를 홀리기엔 충분했다. 그만큼 아름다웠으며, 다자이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벗어날 줄 몰랐다. 이윽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다자이에게 다가오는 세명의 여인들은 그 누가 보기에도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그의 눈에 비쳐보이는 사람은 한명 뿐이었다. 제 안목이 그리 좋다고 자신있어 했지만, 이렇게까지 어울릴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다자이에게 요사노와 나오미는 카에나를 그에게 넘기고는 두분이서 잘 노세요~ 라는 말만 남기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두사람만 남았고,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카에나가 다자이의 앞에서 얇은 점퍼를 벗고 한손으로 점퍼를 움켜쥔 채, 다자이의 손을 잡고 드물게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머리카락과 반대되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조심스럽게 다자이에게 물었다.


" ... 이, ... 이상, 해요? "


 그렇게 용기내서 물었음에도, 다자이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점퍼를 걸치고 있어도, 벗고 있어도 아무말도 하지않는 다자이에게 괘씸함을 느낀 카에나가 안 어울리는구나? 라는 말을 내뱉고 그대로 등을 보이고 바닷가로 가려는 것을 다자이가 간신히 붙잡고 제 앞으로 돌아세웠다. 왜그러냐는 카에나의 말에 다자이는 냅다 사람이 아예없는 바닷가 쪽으로 달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다가 억지로 같이 달리기 시작해서 사람이 아예 없는 한적한 곳에 도착하자 여기 어디냐고 묻기도 전에 끌어안겨졌다. 땀과 뜨거움이 겹쳐져서 덥다고 말하며 떨어지려 했지만, 다자이가 잠시만 이대로 있자고 말한 통에 그대로 얌전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다자이의 붕대탓에 덥고 습한 쪽은 카에나 뿐이었다. 얌전히 안겨있자니, 햇빛이 너무 뜨겁고 더워서 정말 이대로 있다가는 쓰러질거라는 생각에 퍼뜩 다자이를 밀어내자, 무척이나 붉어져있는 다자이의 얼굴이 보였다. 어라. 싶은 생각에 손을 올려서 아저씨, 어디 아파요? 라고 묻자, 전혀 아니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드물게 그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카에나는 스스로가 눈치는 꽤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것 같았다.

 정말 안 아파요? 그렇게 묻는 카에나를 피하고 괜찮다면서 연신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피하는 다자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자 탈의실' 을 빠져나오기 전에 나오미와 요사노가 카에나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정도면 천하의 다자이 씨 라도 바로 좋다고 달려들겠는데요? 아니, 의외로 아무말도 못하고 그대로 혼자서 부끄러워할걸? 그런 그녀들의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이 들자 카에나는 다자이를 잡고 시선을 마주치며 다시한번 제대로 물었다.


" .. 안, 어울려요? "
" ... 그,럴리가 있겠는가. ... 단지.. "


 단지? 그 뒤의 말을 하지않는 다자이가 너무 답답하고 대체 무슨 말이길래 뜸들이는지 묘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다음 말을 해주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기다렸다. 단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아예 등을 보인 다자이에 카에나는 급히 얼굴이 붉어졌지만, 머리카락 사이에서 붉게 보이는 다자이의 귓볼이 제 얼굴보다 더 붉어보여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아아, 정말 이런 말을 하려던게 아니었는데. 자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뻐보여, 자네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그런 로맨틱한 말을 하려했던 심정과는 달리 아름답다는 말만 내뱉은 스스로를 원망하는 다자이 였다. 다자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 또다시 어색한 정적 속에 있는 것이 영 껄끄러운지, 카에나는 다자이 몰래 바닷가에 들어가 양손가득 물을 담은 뒤에 그대로 다자이에게 뿌렸다.

 앗, 차가워..! 화들짝 놀란 다자이에게 웃어보이며, 이제야 긴장이 풀렸냐는 말을 한 카에나에, 다자이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바닷가에 뛰어들어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태양의 빛이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의 표면이 두사람이 일으키는 파장에 의해 보석이 으깨져 흩날리듯이 흔들거렸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처럼 잘 놀다가 지쳤는지, 잠시 마실 것을 가져오겠다는 다자이에 따라가겠다고 말했지만, 가만히 앉아서 바다구경을 하라는 다자이였다. 다자이는 얼른 다녀오려는 심상이었지만, 그의 외모와 훤칠한 키 탓에 주위로 몰려드는 여성들에 의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자이의 눈에 그의 앞에 있는 여성들보다는 제 사랑스런 연인이 더 보고싶었다. 아, 얼른 돌아가서 그녀의 모습을 제 눈에 더 담아두고 싶었다.

 다자이는 시간이 30분 조금 흘러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재 시간은 3시 30분. 태양과 더 올라가는 온도. 그리고 더 더워지는 탓에 현기증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이라도 열을 식히자는 식으로 얕은 바닷가로 발을 옮기자 뒤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한껏 인상을 쓴 채로 뒤를 돌아보자, 무슨.. 사채업자?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더러운 수 쓰는 인간처럼 보였어.) 처럼 보이는 인간이 저를 부르는 듯 해보였다. 뭐지? 안전요원인가? 그러기엔 호루라기도, 물안경 같은 안전요원이 갖춰야할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좀 더 바닷가로 들어오면 남자는 얕은 부분까지 들어와 그녀를 위협했다. 아, 젠장. 저 남자는 안전요원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표정, 행동거지를 보면 여자하나 낚아서 어찌 해보려는 쓰레기 자식들 처럼 보였다. 젠장. 젠장! 속으로 욕짓거릴 읊으면서 좀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옮기자 그제서야 쳇,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닷가를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 수영도 못하면서 왜 수영복 차림이었던거야? '


 그런 의심을 품으면서 안심하며 물 밖으로 나가려하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발이 저려왔다. 아, 이거 진짜 위험해. 저린 발 주위로는 무거운 돌이라도 매단 듯이 점점 아래로 빠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젠장. 어떡하지. 생각을 하기에는 이미 바닷물을 꽤 먹은 상태이며, 팔을 너무 허우적 거린 탓인지 힘이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는건가? 내 좌우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결말인데. 아저씨는, 모두는, .. 부모님은. 내가 죽는다면 울어줄까? 그런 생각으로 점점 바다 아랫쪽에 점점 가까워지는 듯 눈앞이 흐려졌다.

 다자이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간신히 떼어낸 여성들을 뒤로하고 얼른 빠른 걸음으로 카에나에게 다다랐지만, 그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라? 화가나서 돌아간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둘러본 구석에서 어떤 남성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 어, 머리카락도 눈도 파란색이라 특이해서 좀 놀아주려고 했더니 더럽게 튕기면서 바다 안쪽으로 가는거야.. 그 망할년.. "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남자가 말하는 푸른머리카락, 푸른 눈이라면 오늘 이 곳, 이 근방에서 딱 한명 뿐이었다. 순식간에 남자에게 한방 먹여준 뒤에 바닷가로 뛰어들어 카에나를 찾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늦지 마라. 아아, 하느님. 제발 제게서 그녀를, 제게 하나뿐인 저의 구원자를 데려가지 마시길. 저의 세상을 앗아가지 마시길. 그런 생각으로 주위를 헤맨 다자이는 더 가라앉지 못해서 바위에 약간 발이 낀 듯이 둥둥 떠있는 카에나를 발견했다. 아, 아아. 빠르게 헤엄쳐서 조심스럽게 끼어있는 발을 빼낸 후에 밖으로 끌어올려 바다를 빠져나왔다. 숨을 오래 참은 탓인지 조금 바닷물을 먹은 다자이가 거칠게 기침을 하고, 그대로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카에나를 안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요사노, 요사노 씨를 모셔오게! 그런 그의 외침에 한달음 달려온 요사노가 만신창이가 된 두사람을 번갈아 보다 카에나의 맥을 짚어보자, 충격 먹은 듯이 다자이에게 놀라지 말고 들어라며 다독이려는 찰나에 믿지 못한다는 듯이 카에나의 심장을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모두가 다자이를 말리려했지만, 후쿠자와 사장만이 가만히 놔두라며 다자이를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에 모두가 다자이만 가만히 보았고, 가련하게 죽은 듯이 떠지지 않을 눈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그 초조한 상황속에 다자이는 몇번의 심폐소생술 끝에 인공호흡을 두어번 시전했고, 이윽고 드디어 그의 노력이 뒷바침 하듯이 짠 바닷물을 뱉어내며 창백했던 안색이 차차 색을 되찾아 살아있는 인간처럼 깨어났다.

 아, 아아. 다자이는 그런 그녀를 부둥켜안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그녀를, 제 마지막 희망을, 제 마지막 구원자, 제 마지막 세상을 잃어버릴까봐. 거칠게 호흡하는 그녀는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는 듯이 나즈막히 '달빛그림자 (月光影)' 를 읊었고, 안색이 좋아지는 듯 싶으면서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듯한 불꽃을 지닌 것 같았다. 차가웠던 몸은 태양 아래에서 서서히 따뜻함을 느꼈고, 차근차근히 눈을 떠서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파악했다.


" 아, 저씨.. 울,어..요? "
" ... "


 다자이는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녀를 제 품에 꽉 껴안을 뿐이었다. 모두의 꾸지람을 들을 준비를 하다가도 후쿠자와 사장의 모두 이만 돌아가서 마저 놀지. 라는 말에 모두가 나중에 물어보겠다며 바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두사람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에, 모두가 얌전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카에나가 일단은 다자이를 떼어내려 했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쿵쿵거리는 심장소리에 다자이가 얼마나 놀란 것인지를 일깨워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히려 제 품으로 되려 껴안아 괜찮다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처음으로, 제 연인을 가장 최초로 가장 크게 걱정시킨 일 이었다. 미안해요. 나 이제 괜찮아요. 그리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따뜻해서 다자이는 반충동적으로 그녀에게 입맞췄다. 입술만을 맞댄 키스. 그 속에서도 애절함이 느껴져서 다자이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한건지 알 수 있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많이 걱정했냐는 말에 여태 아무말도 하지않던 다자이가 대답해주었다. 미안하네, 조금 더 빨리 왔다면 이런 일은.. 생사를 왔다갔다한 그녀의 앞에서 다자이는 죄인처럼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카에나는 푸스스 웃으면서 다자이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억지로 들게하여 시선을 맞췄다.


" 아니에요. 오사무는, 날 구해줬어요. 오사무의 탓이 아니에요. "


 그런 그녀의 말에 다자이는 볼을 붉히면서 이름으로 불린 것이 기쁘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를 조심히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린 후에 물었다. 오늘은, 내가 극진히 모시겠네.

밤이 길어질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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