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노스케는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여우식신이었다. 그는 주인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아 혼마루 안에서 남사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지만, 소속이 엄밀히 달랐다. 주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오오쿠리카라나 츠루마루는 주인의 아래에 속해 그의 명령을 듣고 따른다면, 콘노스케는 시간정부의 소속이었고 필요하다면 주인의 명령보다 정부의 방침을 우선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정부의 방침에 변화가 생기거나, 특정한 임무가 하달되었을 때 콘노스케가 그것을 전달하곤 했다. 스스로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남사들이 혼마루의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설명을 자처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콘노스케라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곳의 콘노스케는 어디에 있을까. 오오쿠리카라는 어제를 돌이켜보았다. 여우는 그 난리통에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카센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혼마루에서는 허구한 날 어딘가를 쏘다니며 유부를 받아먹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의문은 끊이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일단은 상대와 직접 만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오오쿠리카라가 단도들을 돌아보며 콘노스케의 행방에 대해 질문을 꺼내려했던 순간, 다른 목소리가 대화를 비집고 끼어들었다. 


"저기."


사요 사몬지였다. 그는 언제 온 것인지, 문간에 서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카센을 따라 몇몇의 칼이 자리를 떠날 때 함께 움직였던 칼이었다. 


"야겐이 약초 정리 좀 도와달래."


그 때 움직였던 다른 칼들은 어디선가 계속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츠루마루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던 단도들은 사요의 전달에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에 몰두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그들의 동작은 하나같이 다급했다. 오오쿠리카라가 물어볼 것이 있다며 미처 붙잡을 틈도 없었다.


"저흰 야겐 형에게 갔다올게요!"

"이따가 다시 뵈어요. 츠루마루 님, 오오쿠리카라 님!"

"그,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단도들은 사요를 지나쳐 빠르게 사라졌다. 왁자지껄함이 사라지자 주변엔 썰물 같은 정적만이 남았다. 츠루마루는 그 사이로 사요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사요 도령, 주먹밥 잘 먹었어. 맛있던데?"

"아……."


지금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던 듯, 사요는 치켜뜬 것 같은 눈동자의 각을 느슨하게 만들더니 그것을 얇은 눈꺼풀 뒤로 빠르게 숨겼다. 


"별 것 아니야."

"별 것 아니긴, 그릇을 다 비웠다니까. 재능이 있어!"


사요는 거듭되는 칭찬이 쑥스러운지 손끝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더 대답하진 않았다. 하지만 츠루마루는 한 번 시작한 대화를 거기에서 끝내진 않았다.


"도령은 일하고 온 거야?"


츠루마루는 어느새 사요를 향해 도령이라는 호칭을 자연스레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원래의 혼마루에서도 사요를 꽤 귀여워하긴 했었다. 이곳의 사요는 츠루마루와는 거의 초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호칭에 크게 놀라거나 어색해하지는 않았다. 


"응."


질문에 단답으로 대답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도는 자연스럽기만 했다. 잠깐 휴식을 위해 들어왔다는 그를 향해, 오오쿠리카라는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여기에도 콘노스케가 있나?"

"콘노스케?"

"그래. …말하는 여우 말이다."

"콘노스케는 왜?"


마지막에 되물은 것은 츠루마루였다. 오오쿠리카라는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리하여 들려주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수 없는 의견에 츠루마루는 열렬히 동의했다.

 

"그렇군! 콘노스케가 해결책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츠루마루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오오쿠리카라가 덧붙이려다 말았던 콘노스케의 특징을 상세하게 짚어가며 사요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사요 도령, 콘노스케는 크기는 이만하고, 꼬리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으면서 유부를 좋아하는 여우야. 보통 주인의 곁에 있을 텐데… 본 적 없나?"


사요는 곰곰히 생각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본 적은 있지만...."


이곳은 지금 주인이 부재중이라 콘노스케 역시 평소에는 혼마루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아마 카센에게 부탁한다면 그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사요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카센이 지금 자리에 없었다. 츠루마루는 가볍게 이마를 짚으며 한탄했다. 


"이런, 그렇다면 카센이 돌아올 때까지 다시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인데…."


하지만 카센이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가 주인의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혼마루를 비울 때면, 종종 날이 지나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사요의 설명에 츠루마루의 표정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오오쿠리카라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좀 쉬는 게…."


그 사이에서 사요만 난처하게 둘을 번갈아보다 그런 말을 건넸을 때였다. 바닥을 향해 한숨을 내쉬던 츠루마루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니야, 쉬는 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잖아. 혹시 도령만 괜찮다면, 여기 안내 좀 해줄래?"

"…안내?"

"그래!"

"야겐이 말했을 텐데, 섣부르게 움직이지 말라고."


오오쿠리카라의 타박은 소용 없었다. 츠루마루는 어차피 며칠을 여기서 지내야 한다면 내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내세웠다. 어제처럼 바쁜 단도들을 붙잡고 계속 심부름을 시킬 것이냐는 말에는 오오쿠리카라도 마땅한 대꾸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 혼자 돌아보겠다."

"싫어. 심심하단 말이야."

"……."


하지만 둘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어봤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요의 의사였다. 다행히도 사요는 그 제안을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그들이 원한다면 이곳을 안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츠루마루는 단박에 밝은 표정이 되어 외쳤다. 


"고마워, 사요 도령!"


*


둘은 사요를 따라 혼마루를 돌아보게 되었다. 건물의 구조 자체는 그들이 지내던 공간과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었지만,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어떤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혼마루는 아주 한적하고, 조용했다. 건물은 여러 채였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곳은 한 곳 뿐이었고 그마저도 복도 양 옆으로 빈 방이 즐비했다. 그들은 중간에 위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했지만, 사요는 그곳을 그냥 지나쳤다. 어차피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곳의 칼은 모두 열 자루라고 했다. 오랫동안 그 숫자엔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주인이 없기에 전투나 원정을 나설 수 없었으니 자원을 구할 수 없었고, 자원이 없으니 새로운 칼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다. 사요는 툇마루 쪽을 지나갈 때 연못 저편으로 보이는 단도실을 가리켰다.


"저긴… 한참 사용하지 않았지."


한참. 사요는 그것을 명확한 숫자로는 풀어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오쿠리카라와 츠루마루는 속으로 모호한 기간을 짐작하는 수 밖에 없었다. 연기가 피어나오지 않는 작은 굴뚝의 모습이 둘의 눈에는 약간 을씨년스럽게 비쳤다. 그들의 혼마루에선 아무리 못해도 항상 하루에 세 번은 가마를 때웠고, 모루를 두드리는 망치질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천천히 걷던 사요는 툇마루 중간에서 멈춰섰다. 잠깐의 여유를 틈타 츠루마루는 연못을 들여다보았다. 탁한 빛의 수면 너머로는 물고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엔 잎이 넓은 수초 몇 개만 두둥실 떠 있었을 뿐이었다. 살짝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듯 했다. 


"그리고 저쪽엔 마구간이랑 밭이 있지만."


붕대로 감긴 깡마른 팔이 단도실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오오쿠리카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이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 주변으로 밭을 구분하는 울타리, 혹은 다른 표식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요는 덤덤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말은 한 마리도 없고, 씨앗을 뿌린 적도 없어."


둘 다 꾸준히 관리를 했어야 하는 공간이었지만 여유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방치되고 말았다고 했다. 사요는 그곳은 굳이 걸음하는 일이 없으니 특별히 들리진 않겠다고 말하며, 왼쪽으로 꺾어진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좁은 뒤뜰이 나타났다. 손질되지 않아 제멋대로 우거져 있던 초목을 배경으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우물이었다. 


그 우물에는 제대로 된 뚜껑도, 두레박도 있었다. 실제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기에서 물을 길어다 쓰고 있지."


사요는 우물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조용히 옆으로 옮겼다. 끊어진 툇마루를 내려서면 흙바닥을 다져 만들어낸 재래식 주방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오쿠리카라와 츠루마루는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입구로 향하려다 의외의 선객과 마주쳤다. 소리 없이 조용힜기에 전혀 존재를 예상하지 못하던 터였다.  


"카라 도령!"


츠루마루는 상대를 알아보자마자 반갑게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상대는 그 인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곳의 오오쿠리카라는 사요의 질문에만 짤막하게 답했다.


"나가려고?"

"그래."


사요의 말을 들은 둘의 눈에도 비로소 오오쿠리카라의 남다른 차림새가 비쳤다. 그는 한 쪽 어깨에 자루를 멘 채로, 허리춤에는 작은 수통과 손도끼를 달고 있었다. 그저 가벼운 산책을 위한 차림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츠루마루는 그 모습에 눈동자를 반짝이며 기대를 드러내었다. 


"오오, 도령도 사냥을 하러 가는 건가? 토끼 같은 거?"

"…그런 건 아니다."

"그러면?"

"할 일이 있다."

"할 일?"


그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오쿠리카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츠루마루는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려는 등을 향해 격려를 건네는 것만이 고작이었다. 


"큰 놈이 보이면 잡아와!"


사요는 그 목소리의 여운이 사라질 때 쯤 되어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사냥하러 가는 건 아닐거야."

"왜? 허리춤에 손도끼도 있었잖아."

"도끼는 사냥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야."


마치 직접 잡아보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사요는 말을 더 덧붙이진 않았다.


*


안내는 그 즈음하여 끝이 났다. 주방, 그리고 옆에 있던 욕탕은 자세히 둘러볼 것도 없었다. 워낙 머무는 인원이 적었으니, 꼭 필요한 생활공간 외에는 알아야 할 곳도 없었다.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해가 저물기까진 얼마간의 여유가 있었다. 츠루마루는 더 돌아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리진 않았지만 대신 계속 입을 움직여대었다. 


평소의 혼마루였다면 자연히 흘려듣게 되었을 말이 여기에서는 상호간의 대화가 되었다. 츠루마루가 가장 의욕을 드러낸 주제는 사냥에 대해서였다. 그는 아주 오래 전 어느 무사의 도락을 함께 겪었던 이야기까지 꺼내가며 알고 있는 짐승을 늘어놓았다. 기세만으로는 벌써 산중을 수십 번 누벼본 사람 같았다. 


그들이 인간의 몸을 하고서 실제로 쫓아본 동물이라면 토끼 정도 뿐이었다. 그것도 험한 산중이 아니라,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았던 보름달이 뜬 억새밭에서였다. 바닥이 진창도 아니었는데 몇 보만 걸으면 숨이 가빠오는 곳이었다. 공기가 희박하다는 달의 표면이 그런 느낌일 것 같았다. 거기서도 결국 결정적으로 목덜미를 낚아채는 것은 재빠른 단도에게 맡겼던 태도는, 그 때의 기억은 생각도 나지 않는지 그저 자신만만하기만 했다. 


"토끼를 못 잡으면, 노루 같은 걸 잡으면 되는 거지!"

"말은 잘 하는군."


상대를 위협할 만한 치아도 발톱도 없는 생물을 그저 쫓아가서 붙잡는 일은 아무래도 본격적인 사냥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종적을 놓쳐 빈 손으로 돌아와도 그저 멋쩍은 듯 웃기만 하면 되었던 그곳과 생존을 위해 나서야 하는 이곳의 분위기는 크나큰 차이가 있을 것이었다. 마냥 쉽게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 중얼거린 말에 츠루마루는 잠깐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렸다. 그 미소엔 도발의 의미가 다분했다. 


"뭐야, 카라 도령은 자신 없나보지?"


너스레가 섞인 질문은 농담이 섞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잠자코 듣고만 있는 것은 오오쿠리카라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자연스레 반격이 튀어나왔다. 


"대어도 낚아본 적 없는 주제에."

"어허, 낚시랑 사냥은 다르지. 바다랑 산이 다른 것처럼! 게다가 내가 아츠카시 산에서 가장 많이 명예를 획득했던 일을 벌써 잊어버렸나?"

"별개의 이야기를 잘도 갖다 붙이는 군."

"뭐가 별개야? 따지고보면 역행군 놈들이 더 위험하지. 설마 그 놈들보다 멧돼지가 더 사나울까? 이 칼만 뽑는다면, 열 마리도 거뜬하다고!"

"…고작 열 마리? 나는 곰도 잡을 자신이 있다."

"뭐야? 그럼… 나는 호랑이!"


말려줄 사람이 없었기에 끝도 없이 나아갔던 대화는 이대로 가다간 상상의 동물까지 튀어나올 기세였다. 둘은 입으로는 벌써 몇 번이나 사냥을 한 것처럼 거창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고조된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원하게 결판을 낼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먼저 진이 빠진 쪽은 츠루마루였다. 그는 오오쿠리카라를 노려보다 그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벌러덩 드러누워버렸다. 


"아아."


짧은 탄식은 아까까지 열을 내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맥이 빠져 있었다. 그러자 오오쿠리카라 역시 덩달아 맥이 풀렸고, 너무 열을 올렸던 것에 대한 짧은 후회가 뒤늦게 머릿속을 스쳤다. 의미 없는 대화의 나열 이후, 주변을 어색하게 감도는 침묵 사이로는 오후의 햇빛만 유유히 흘러다닐 뿐이었다. 그 위로 츠루마루의 아쉬운 중얼거림이 흩어졌다.


"발목이 이 꼴만 아니었어도…."


농담도, 격려도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오오쿠리카라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츠루마루를 바라보는 것을 선택했다. 시무룩한 표정을 완전히 외면한다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잠자코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저녁을 맞이할 뻔 했던 상황은 갑자기 들려온 바깥의 소란으로 인해 끝이 났다. 빠르게 복도를 가로지르는 발소리와 들뜬 음성은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했다. 벌러덩 드러누워있었던 츠루마루도 벌떡 몸을 일으킬 정도였다.


"무슨 일이지?"


오오쿠리카라도 재빨리 상황을 살폈다. 문을 열자 때마침 고코타이가 복도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오쿠리카라는 그를 붙잡고 사정을 물어보았다. 


"…바쁜 일이라도 생겼나?"

"사, 사냥을 나갔던 동료들이 돌아왔거든요."


반나절이 넘도록 주위의 산을 누비고 온 동료가 혼마루로 돌아오면, 가능한 한 많은 동료들이 모여 짐정리를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그 설명을 듣고 잠자코 고개만 끄덕일 츠루마루가 아니었다. 오오쿠리카라는 자신도 그 모습을 보고싶다며 고집을 부리는 츠루마루의 뜻을 결국 꺾지 못하곤, 그를 부축하여 현관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모여든 단도들로 북적거렸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매우 인상깊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미다레가 자신의 본체를 이용하여 능숙하게 사냥감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이었다.  뛰어난 솜씨로 가죽과 분리된 고깃덩어리는 원래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손님이 있다더니, 자네들이었구려."


처음 보는 광경에 멀뚱히 눈만 깜빡이고 있었던 그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 칼은 야마부시 쿠니히로였다. 낯익은 승려 복장을 하고 산을 누비다가 돌아온 그에게선 짙은 피 냄새가 풍겼다. 짐승의 피 냄새였다. 

쾌활하게 웃던 야마부시는 둘의 시선이 핏자국에 머무른 것을 눈치채고 머쓱하게 중얼거렸다. 


"지저분한 모습이라 미안하오. 바깥에선 잘 닦을 수가 없어서…."


산 속에는 물이 드물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확실히 험지를 누비며 움직이다보면 차림새를 신경쓰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들 역시 그런 경험은 적잖게 해봤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괜찮다고 답하자 야마부시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고맙소.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자리가 좋지 않구려. 소승은 일단 씻으러 가야겠소."


지금 막 들어온 사람을 붙잡고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둘은 고개를 끄덕여 나중을 기약하는 야마부시를 보낸 다음, 단도들이 사냥감을 손질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능숙했던 것은 미다레 뿐만이 아니었다. 아키타나 고코타이 같은 녀석들도 거리낌 없이 능숙하게 발골을 해냈다. 


새끼 호랑이들이 그들의 발치를 이리저리 누비며 눈독을 들이던 고기는, 고코타이가 했던 말대로 저녁 반찬이 되었다. 쇼쿠다이키리의 손을 거쳤다면 조금 더 화려한 모습으로 그릇 위에 올랐을 고기는 비록 투박한 모양이었지만, 진한 양념이 배인 터라 먹는 것에 지장은 없었다. 오오쿠리카라와 츠루마루는 그것을 싹싹 비워내며 내일을 기약해보기로 했다. 




잡덕후/1차/2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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