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은 떨어져 사라지는 하얀 봉투를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봉투와 검은 글씨만 보고 있어서 그런지 메슥거렸다. 뭘 좀 먹으면 나아질까 싶다가도 같은 밥을 몇 끼 먹는 것도 질렸고, 여기 음식은 대체로 간이 셌다. 영정 사진을 놓을 때만 해도 넓다고 생각했던 빈소는 계속 북적였다. 고모 손님, 아버지 손님, 숙부 손님, 고모부 손님, 어머니 손님, 숙모 손님에 더해 자신과 사촌 형제자매의 손님까지 다녀갔다. 주연은 직장 동료들이 어색한 얼굴로 낯모르는 사람의 사진에 대고 절을 한 후, 쭈뼛거리며 자신 쪽으로 돌아서는 걸 무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맞절을 하고 무난한 위로의 인사를 건네고, 내일 출근 때문에 올라가야 해 앉아있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 같았다. 연신 허리를 숙이며 식장을 빠져나가는 검은 등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주연이 직장 동료를 맞이하는 동안 전실에 앉아있던 명호가 우는 소리를 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눈물이 많았다. 명호에게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젓고 방명록을 들춰보았다. 주연은 아닌 척 눈물을 닦는 명호와, 그의 어깨 너머에서 재바르게 움직이거나 누군가와 같이 앉아있는 원호와 미연을 바라보았다. 유년기 때 사진을 보면 주연의 옆 혹은 앞 혹은 뒤에 누군가가 있었다. 가끔 어린 시절 사진을 찾느라 서로의 집에, 혹은 할머니 집에 연락하기도 했다. 다들 같은 아파트에서, 같은 손 아래 자랐는데도 전부 다르게 컸다. 주연은 빈소로 들어가 어머니 옆에 섰다.


“아빠는 어때?”

“계속 울어.”


할머니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부랴부랴 비행기를 탔다. 출장 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현지에서 시차 적응을 하기도 전에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는 국제 전화를 붙들고 계속 울다가 어머니가 두 번 재촉을 한 후에야 통화를 끝냈다. 유럽에서 여러 개의 시간대를 넘어오는 사이 한국은 착실하게 날이 바뀌어 빈소가 차려지고 입관 예절도 지나갔다. 아버지는 빈소에 들어오자마자 영정 사진 앞에서 실신했고 그대로 입원 절차를 밟았다. 어머니가 계속 상주 역할을 해야 했으므로 주연과 숙부가 병실을 오갔다. 주연이 이러다 할머니랑 인사도 못 하겠다고 한 말 때문에 아버지는 또 집을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너도 좀 쉬어야지.”

“내가 뭘 했다고 쉬어.”


주연은 어머니 손을 잠시 잡았다가 놓았다. 할머니가 미소를 띤 채 며느리와 손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네 할머니 정도면 괜찮은 할머니네.’ 주연은 그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웃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의 의도는 ‘괜찮은 시어머니’ 라는 뜻이었고, 그건 ‘괜찮은 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할머니는 몇 십 년에 걸친 지독한 시집살이를 받아내야 했고, 그것을 며느리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미 그쪽 가족과는 연이 끊어졌고, 어릴 때 두어 번 본 것 같은 대고모와 숙조부는 어느 순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영주에 살다가 열아홉의 나이에 할아버지와 결혼했는데 누구와 결혼하는지도 모르고 ‘이모’를 따라 일박이일을 꼬박 올라왔다고 했다. 그렇게 인천에 도착해 결혼식 날에야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박색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얼굴은 괜찮았어.” 하지만 시집살이라는 게 남편 얼굴값에 비례할 줄 알았다면 그것도 물렀을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물렀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시대가 그랬다. 자유연애와 연애결혼의 역사는, 역사라고 불리기 민망할 정도로 짧다. 할머니는 유년기에 6.25 전쟁을 겪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집 비밀번호를 깜박하고, 자식들 이름도 섞어 불렀지만 전쟁 통에 겪었던 일들은 또렷이 기억했다. 미연이 당시 일을 물어봤던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배를 깎으면서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아갔던 이야기, 새벽에 도망갔던 이야기, 경주까지 갔더니 국군이 차를 태워준 이야기 등등을 줄줄 읊었다. 그런 난리 통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결혼이었다. 할아버지 집안은 전통 있는 명문가였고, 할아버지는 앞날이 창창한 직업 군인이었다. 이십 년을 넘게 남편의 발령지를 따라다니며 시아버지의 낭비와 시어머니의 냉대 속에서 악착같이 버틴 할머니는, 아버지 결혼 직후 제사를 없애버렸다. 표면상의 이유는 할아버지의 개종 때문이었지만 할머니가 지긋지긋한 인습의 대를 끊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원호의 회사에서 뒤늦게 조화가 왔다. 대기업이라 그런지 세 개가 연달아 도착했다. 사촌 오빠는 리본에 적힌 부서 명을 메모 어플에 기록해갔다. 원호는 손주 중에서 가장 할머니를 챙겼다. 매주 목요일마다 할머니와 전화를 했고, 한 달에 한 번은 함께 성당에 갔다. 할머니는 매번 뭔 놈의 손주가 지 애미보다 할머니를 챙긴다며 혀를 찼지만, 원호가 그러는 걸 내심 좋아하셨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것도 원호였다. 숙부 가족과 단풍 구경을 하고 그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해서, 늘 그렇듯 원호가 침대를 내드렸다. 그날따라 할머니는 유난히 빨리 잠자리에 드셨다고 하고, 원호는 유난히 잠이 안 왔다고 한다.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간접 조명만 켠 채 귀신처럼 앉아 재미도 없는 예능 두 개와 영화 하나를 번갈아 보던 원호는, 갑자기 방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동생 때문에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뭐야, 시끄러워?”

“아니, 형. 꿈에 할아버지 나왔다? 할머니 여기 계신 거 아시나 봐.”


명호는 잠이 깬 건지 안 깬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꾸물꾸물한 말투로 중얼거린 뒤 다시 방 안으로 사라졌다. 원호는 별 싱거운 새끼 다 있네, 싶어 다시 TV 화면에 시선을 돌렸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자신의 방문을 열자 희미한 빛 사이로 할머니가 보였다. 원호는 설마설마, 하면서도 할머니 코 밑에 손가락을 댔다. 가느다란 숨이 느껴졌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주책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가, 아이고, 하며 얼른 들이켰다.


“원호냐?”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원호는 화들짝 놀라 몸을 숙였다.


“할머니, 저 때문에 깨셨어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호는 조금 더 기다렸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그게 할머니의 마지막이라는 걸 깨닫는데, 기억보다 짧은 시간이 흘렀다.

명호가 자리를 비워서 주연이 다시 전실에 앉았다. 세 시간 전쯤 온 문자를 이제야 들여다볼 여유가 났다. 박연두, 이름 세 글자가 파랗게 반짝였다. 상단 창에 보이는 글자들이 살가웠다.

- 너무 마음 쓰지 마. 죄책감 느끼지도 말고.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두 마디였다. 빈소에 오라고 했으나 연두는 한사코 거절했다. “뭐라고 소개하게.” 뭐라고 소개하든, 소개할 테니 오라고 밀어붙이는 게 나았을지 아니면 가족 행사마다 그랬듯 별 말없이 다녀오겠다는 말만 하는 게 나았을지 여전히 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할머니 장례식이라는 건, 주연에게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연두도 알고 있으니 이런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휴대폰 화면을 어루만지다 답장을 쓰려는데 명호가 돌아왔다. 방명록에 낯선 이름 두 개와 낯익은 이름 하나를 쓰고 봉투를 연달아 집어넣었다. 명호는 어렸을 때부터 애교가 많고 사람들 앞에서 재롱부리기도 어려워하지 않아 어른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았는데, 정작 제일 오래 붙어있던 할머니 대하기를 어려워했다. 아이돌 음악 작곡가라는 직업을 설명하는 것도, 영어와 숫자가 조합된 예명을 일러드리기도 자꾸만 미뤘다. 답답해하던 미연이 설 특집 가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명호가 쓴 곡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이거 명호 오빠가 만든 노래예요!” 떡국용 지단을 부치던 주연도 뒤집개를 고모부에게 맡겨놓고 고개를 내밀었는데, 보아하니 연차가 제법 된 꽤 유명한 그룹이었다. 할머니는 문틀에 기대서서 별 말 없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2절로 넘어갈 때쯤 주연은 다시 불 앞으로 돌아왔다. 연하게 잘 익은 노른자를 얇게 썰어두기만 하면 나머지는 고모부 몫이었다. 자주 하지 않는 칼질에 낑낑대며 용을 쓰고 있자 할머니가 느린 걸음으로 주연의 곁에 다가왔다.


“저 노래가 유명해?”

“유명하죠. 젊은 애들 노는 거리 가면 저 노래만 나올걸요?”


아이돌에게 관심 없는 걸로 유명한 주연조차 들어본 그룹이니, 대충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러면 명호가 장윤정한테도 노래 줄 수 있나?”


허를 찌르는 질문에 주연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 흐헤헤헤헤, 하고 실없는 웃음이 터져서 혹시 몰라 칼도 얼른 내려놓았다. 과묵한 고모부마저 작게 웃는 게 느껴졌다.


“그러게, 장윤정 씨가 명호 노래 부르면 좋긴 하겠네요.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있고.”

“나는 송가인보다 장윤정이가 좋더라. 맨 결혼한 남자는 맥아리가 없이 생겨가지고, 장윤정이 아까워.”


할머니는 그러고 난 뒤 다시 큰 방으로 돌아갔다. 방문이 열렸을 때 윷이 어쩌고 하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 TV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룹의 멤버가 새벽에 식장을 다녀갔다. 주연과 미연이 전실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조용한 공간 너머로 발소리가 겹겹이 울렸다. 둘은 손님맞이를 위해 일어섰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손님들은 어색함을 숨기지 못했지만 제법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방명록에 이름을 쓴 뒤, 봉투를 차례차례 집어넣었다. 손님들이 빈소 안으로 들어가자, 주연과 미연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언니.”


미연은 크게 하품을 하더니 문득 주연을 불렀다. 주연은 고개만 살짝 까닥여 답을 대신했다. 노동시간 주 52시간 상한제가 적용된 이후로 이 시간까지 깨어 있어 본 적이 없어서 자꾸 어깨가 말렸다.


“할머니가 매달 나한테 용돈 보내주셨었다?”

“그랬어?”

“응. 언니오빠들 다 돈 버는데 나 혼자 공부한다고.”


주연은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맏이인 원호와 막내인 미연이 아홉 살 차이니 그럴 법한 얘기지만, 원호나 자신이 대학생일 때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지는 않았다. 명호에게도 할머니 용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모를 일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주연 빼고는 다 받았을지도.


”난 할머니가 나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왜?”

“몰라, 그냥. 엄마가 첫짼데 결혼도 제일 늦게 하고 애도 제일 늦게 낳았잖아. 아빠도 외국인인데 심지어 난 딸이고. 어렸을 땐 성질도 드러웠다매, 나.”


미연이 자기 생각이 분명한 어린이이긴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는 일단 드러누워 악을 쓰며 울었다. 안이고 밖이고 예외가 없었다. 주연이 기억할 정도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그랬을 거란 얘긴데, 할머니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당신 자식들을 전부 키워놨는데도 또 육아를 해야 하다니. 애 하나를 두 발로 걷게 만들어두면 다시 기어 다니는 애가 오는 게 몇 번이었다.


“너 태어났을 때 당신은 환갑이셨으니 나 키워주실 때보다 더 힘들긴 하셨겠지.”

“그런 걸 어렸을 땐 모르잖아, 그냥 할머니는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나이 좀 먹고 스스로 찔려서 괜히 눈치 보고 더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그땐 그랬어. 그래서 할머니가 계좌번호 물어보셨을 때는 엄청 놀랐다니까.”


미연의 눈에서 예고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두 방울 떨어지는 게 아니라 시냇물처럼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주연은 말없이 휴지를 뽑아 건넸다. 미연이 몇 장 되지도 않는 얇은 휴지에 얼굴을 묻었다. 끅끅거리는 소리 사이로 빈소의 소리가 섞여들었다.


“그거 안 쓰고, 흐윽, 할머니랑, 여행, 여행, 여행 가려고, 모아놨는데.”


터져버린 울음 사이로 미연의 호흡이 가빴다. 주연은 무언가 울컥 하는 것을 꾹 참았다. 목이 메어서 조금 쓰렸다. 입과 코를 전부 써서 숨을 크게 마신 뒤 천천히 내뱉었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아 미간을 살살살 문질렀다. 감정을 내리누를 때 쓰는 주연만의 동작이었다. 주연은 안겨 오는 미연을 그대로 받아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사이에 명호와 친구들이 빈소를 벗어났다. 주연은 눈인사로 인사를 대신했다.


화장장에서도 아버지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시 기절할까 봐 걱정이 되는지 리무진에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고모부는 말도 없이 사라지더니 이온 음료를 몇 병 사 와서 가족 사이사이에 놓았다. 아버지와 명호 두 사람이 거의 열 사람 몫만큼 울었다. 두 사람이 목이 쉴 정도로 우는 동안 고모는 소각로만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겪었던 시집살이 중 일부는 첫 애가 딸이어서 이기도 했다. 고모는 탁월한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가고, 의류 사업으로 성공해도 어른들 눈에는 전부 흠이었다. 여자가 공부해서 어디다 쓰며, 돈 번다고 설치느라 결혼도 못 하니 뭐 하나 실속 있는 게 없다는 얘기였다. 그전에 연을 끊었기에 망정이지, 고모가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과 결혼한다는 걸 알았으면 경기를 일으킬 사람들이었다.

소각실에서 나온 할머니는 하얀 유골함에 담겨 할아버지 옆에 놓였다. 가족과 인연이 끊겨 선산에 묻힐 수 없자, 할아버지는 영주에 땅을 사서 봉안당을 만들었다. 할머니 가족이 아직 거기 살았다. 주연이 영주에 오는 것은 할아버지 3주기 이후 처음이었다. 숙부가 유리문을 열고 고모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할머니 유골함을 할아버지 유골함 옆에 놓았다. 뒤이어 어머니가 위패를 할머니 이름까지 쓰여 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유리문이 닫히고, 숙부는 잠시 일시 정지 화면처럼 그 앞에 멈춰 섰다. 아무도 그 상태를 깨려고 들지 않았다. 고르거나 그렇지 못한 숨소리들이 한동안 시공간을 지배했고, 주연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가야죠.”


아버지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맨 뒤에 있던 명호를 필두로, 가족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할머니 집 정리는 아버지, 어머니와 숙부, 그리고 명호가 하기로 했다. 고모는 아버지에게 자꾸 울 거면 차라리 가지 말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완강했다. 명호에게 하는 말인 것도 같았는데 명호 역시 못 들은 척 하는 걸 보면 강 씨 집안 피라는 게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고모는 회사에 급한 사정이 생겨 바로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미연은 중간고사 때문에 오지 못한 게 신경 쓰이는지 연신 단톡방에 글을 올렸고 원호가 드문드문 대답을 이었다.


“너는 어떡할래?”


어머니가 주연에게 물었다. 주연이 뭐라 말하기 전에 원호가 선수를 쳤다.


“제가 데려다줄게요. 어머니는 바로 집에 가실 거죠?”


숙모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은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한계가 와서인지 눈꺼풀이 떨려왔다. 뒤이어 운전석에 탄 원호가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었다. 주연은 어깨를 뒤로 크게 둥글렸다. 쇄골 즈음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다른 차들을 먼저 보내느라, 앉은 자리에서 또 몇 분을 기다려야 했다.


“바꿔줘?”


주연의 물음에 원호는 고개를 저었다. 차가 휴게소로 진입하고 있었다. 주연은 어서 차가 멈췄으면 했다. 몸을 사방팔방으로 쭉쭉 뻗고 싶었다. 화장실과 가까운 자리에 차가 완전히 멈추자마자, 주연은 튕기듯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근처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자 손에 무언가를 한가득 든 원호가 다가왔다. 안 그래도 긴 일정에 운전까지 더해졌으니, 힘들 법한데도 원호는 불평 한 마디 없었다. 원호는 서로 다른 맛의 아이스크림이 얹힌 컵 하나를 주연에게 주었다.


“아, 우리 오늘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구나?”


급작스레 허기가 몰려왔다. 아이스크림 말고도 커피에 핫바에 만두까지 있었다. 기름진 냄새가 후각세포를 간질였다. 둘은 모든 음식을 다 먹어 치웠다. 안 먹다가 이렇게 갑자기 먹으면 위가 놀란다고 말은 하면서도 한 번 무언가가 입에 들어가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소화제를 대신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후식으로 사 온 초콜릿까지 한 입에 쓸어 넣었다. 차 안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가다가 속 뒤집히는 거 아냐?”

“또 휴게소 가야지.”


원호는 픽 웃고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주연은 주섬주섬 쓰레기를 한 봉투에 모아 넣었다. 먹을 때는 신나게 먹었는데 뒷일이 예상치 못하게 환경 파괴적이었다. 소스니 뭐니 묻어있기도 했고 차 안이라 뭘 어떻게 하기도 어려웠다. 어쩔 수없이 일반쓰레기인 것과 아닌 것 정도로 구분해서 담아놓았다.

결국 원호가 주연의 집까지 운전했다. 주연은 쓰레기라도 가져가겠다고 했지만 원호는 자기 차 안에 있는 건 자기 재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쓰레기를 주저앉혔다.


“고마워, 오빠.”


차에서 내린 뒤 반쯤 열린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두 사촌은 인사를 건넸다. 원호는 됐다는 듯 손을 크게 휘저었다. 주연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작별 인사를 건네려는 찰나, 원호가 허리를 숙여 주연과 시선을 깊게 맞췄다.


“주연아.”


원호가 잠시 머뭇거렸다.


“할머니 나름대로.”

“오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서로를 갈랐다. 원호는 채찍이라도 맞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고 쉼없이 이어진 장례 기간을 통틀어 주연의 숨소리가 처음으로 밭아졌다.


“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원호와 주연의 사이에 3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원호가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특히 내가 할 말은 아니었는데. 미안해.”


주연의 눈이 잘게 깜빡였다. 눈꺼풀이 다시 한번 떨려왔다.


“조심히 가, 한참 가야겠네.”

“그래. 이번 명절 때 보자.”


주연은 허리를 곧게 폈다. 느린 속도로 조수석 창문이 올라갔다. 주연은 검은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었다.

집은 5층인데 엘리베이터는 15층이었다. 기다릴까 고민하던 주연은 어차피 힘든 거,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주연은 ‘괜찮은 시어머니’였던, 그리고 사촌 형제자매들이 겪었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사람을 한 면만 보고는 알 수 없었다. 시집살이 때문인지, 그 세대가 가지는 특징 때문인지 할머니는 제사는 없앨 수 있는 사람이었어도 아들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첫째 딸보다 둘째 아들이 먼저 결혼하는 게 만족스러웠고, 그렇게 맞이하는 며느리가 다산하는 집안사람이라는 게 중요했다. 큰딸이 승승장구하는데도 최우선은 아들이었다. 심지어 할머니는 아버지를 큰아들이라고 불렀다. 손윗누이가 있어도 아들이 장자였다.

당연하게도 주연이 태어난 날, 할머니는 대단히, 대단히 실망했다. 아들을 낳으라고 아들과 며느리를 달달 볶았다. 아버지는 인생 최초로 할머니에게 반기를 들었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며, 계속 이런 소리를 하면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을 거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생전 처음 보는 ‘큰아들’의 반항에 할머니의 분노는 어머니를 향했다. 뒤이어 숙모가 명호를 낳자 할머니의 성화는 더욱 높아졌다. 몇 년의 갈등 끝에 아버지는 최후의 수단으로 회사를 나와 버렸다. 며느리가 당신 아들 밥줄을 쥐고 있으니 그만 하라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다시 취직한 것은 어머니가 사십 대에 들어선 뒤였다. 주연은 봉안당에서까지 자지러지게 울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래, 사람이란 참 복잡한 생물이지.

문제는 그 싸움의 뒤처리를 누가 감당하는가에 있었다. 주연은 왜 아버지가 자신을 할머니에게 맡겼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직장을 다녀서 그런 건지, 미운 마음이 아기까지 향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지, 데리고 있다 보면 손녀라도 만족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그렇듯, 주연은 할머니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린 주연에게 가장 큰 세계는 할머니였다. 매일 밥을 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새로운 곳을 향해 같이 나가는 유일한 사람. 할머니는 주연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 날도 주연은 할머니를 따라 걷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기억이 흐릿하다. 날이 맑았는지, 흐렸는지, 마트나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그런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당시 할머니가 살던 집 근처에는 사거리가 있었고 한 번 신호를 받으면 다음 신호가 올 때까지 꽤 기다려야 했다. 아마 할머니는 신호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횡단보도에서 제법 멀리 있었는데도 할머니는 원호와 주원을 재촉했고, 횡단보도에 가까워졌을 때는 이미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였다. 초록 불이 깜빡이자 할머니는 원호를 안아들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나 뒤에서 걷고 있던 주연은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할머니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발바닥이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내지 못 한 채 부지런히 뛴 주연의 앞에서 결국 신호등이 바뀌었다. 할머니의 등만 보던 주연은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횡단보도로 뛰어들었고, 우회전을 하려던 차가 급하게 경적을 울렸다.

빠앙---!!!

주연은 너무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조수석에서 누군가 괜찮냐고 물어보았고, 주연은 얼떨떨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주연이 다시 인도로 올라 가는 걸 보고 떠나갔다. 위협하던 대상이 사라지자 터지듯 눈물이 났다. 저 멀리 할머니와 원호가 보였다. 매일 지나다닌 횡단보도가 그렇게 크고 아득하게 보인 것도 처음이었다. 흐르던 눈물은 급기야 대성통곡으로 바뀌었고, 신호등이 다시 파란불이 될 때까지 울음은 계속되었다. 주연은 당연히 할머니가 건너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쪽으로 와서 주연의 손을 잡고 놀랬냐고 달래주며 같이 횡단보도를 건널 줄 알았다. 그러나 1초, 2초 시간이 가도 할머니는 건너편에 그대로 서있었다. 원호가 자신을 가리키는 손짓을 해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더럭 겁이 난 주연은 눈물을 닦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러웠고, 서러운 것보다 무서웠다. 할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갈 것만 같았다. 그 다음 일도 기억나지 않는다. 건너간 자신을 할머니가 위로해주었는지, 돌아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었는지, 왜 할머니가 원호의 손만 잡고 주연의 손을 잡지 않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을까 싶다가도 그래서 손주 중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 했다면 더 어린 주연의 손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뒤따랐다.


“너랑 원호랑 자리만 바꿨어도.”


할머니는 자주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원호에게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주연에게만 한다는 것에서조차 참으로 그린 듯한 할머니였다. 그런데도 주연은 궁금하곤 했다. 그날, 뒤따라오던 게 자신이 아니라 원호였다면, 두 사람의 자리가 그렇게 바뀌었다면 할머니는 원호를 데리러 갔을지 아닐지.

할머니의 선택적 사랑은 주연 뿐 아니라 원호와 명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원호와 명호는 할머니를 보는 동시에 주연의 눈치를 봤다. 어렸을 때는 주연이 안긴 다음에야 할머니에게 안기려고 했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세뱃돈을 모아 주연과 똑같이 나눴다. 명절의 허드렛일도 전부 원호와 명호 차지였다. 할머니는 주연이 거실에 앉아 있고 ‘머스마’들이 부엌을 왔다 갔다 하는 꼴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했다.


“집이 이 꼴이 될 줄 알았으면 계속 제사를 지내는 게 나았다.”


고모는 기겁하며 할머니를 타박했지만 주연에게는 그런 모욕이 어떤 의미로는 일상이었다. 그런데도 주연은 할머니를 마냥 미워할 수 없었다. 주연은 할머니 집에서 자랐고, 할머니 품이 익숙했으며, 집안의 모든 대소사는 할머니 집에서 치러졌고, 할머니 말이 곧 법이었다. 일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할머니에게 전화해 소식을 전했다. 할머니가 기뻐할 성적,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대학, 할머니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직업. 나이를 먹어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주연의 마음 한 켠에는 늘 할머니의 자리가 있었다. 주연은 원호와 명호 첫 학기 등록금은 할머니가 내주었다는 소식과, 다 닳은 무릎 연골 때문에 앓는 소리와 함께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주름진 손 사이에서 계속 마음이 흔들렸다.

무게추가 멈춰 서버린 것은 할아버지 3주기 날이었다. 제사도 예배도 안 지내는 집이지만 어쨌든 다들 모여 밥 한 끼는 먹고 헤어지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고모 부부와 숙모, 명호가 자리에 없었는데도 거실이 꽉 찼다. 큰 상을 펴 다들 어깨를 스치듯 옹기종기 모여 앉아야 모두 엉덩이를 붙이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원호가 몇 년 간 준비한 공채에 합격한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해서 슬픔보다는 화목함이 컸다.


“이제 취직했으니 결혼해야지.”

“아, 네. 그래야죠.”


원호는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주연이 알기로는 애인과 헤어진 지 이미 1년이 넘었다. 원호가 공채에 두 번째 떨어지고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결혼은 주연이가 먼저 해야지, 엄마. 얘는 지금 지 애인이랑 오년 째 만나고 있는데.”


상 밑에서 아버지가 숙부를 치는 기색이 느껴졌다. 주연은 어렸을 때부터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집안 대소사 때마다 한 말인데도 어른들은 매번 습관적으로 결혼 얘기를 꺼냈고, 그때마다 주연은 안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숙부도 아차 싶었는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는 주연을 힘주어 쳐다보았다.


“얘가 먼저 결혼을 왜 하냐, 다 순서가 있는데. 차례대로 가야지, 응? 원호 먼저 하고.”

“아, 엄마, 그만 하세요.”


아버지가 수습하려는 사이로, 주연이 끼어들었다.


“할머니, 저 결혼 못 해요.”

“주연아.”


엄마가 다시 한 번 대화를 끊으려고 시도했다. 목소리와 몸짓만으로도 제발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주연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왜, 무얼 위해서 그래야 한단 말인가.


“결혼을 왜 안 해. 네 고모 봐라, 맹 결혼 안 한다 안 한다 했는데.”

“저 여자 만나요.”


주연의 말이 벼락처럼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 혹은 이해하지 못한 여러 쌍의 눈이 주연도, 할머니도 쳐다보지 못 하고 길을 헤매었다.


“그래서 제 차례는 없어요. 결혼 할 거면 미국 가서 해야 되고, 미국에서 결혼해도 한국 오면 아무 소용없어요. 지난 번 제 생일 때 온 연예인 같이 예쁘다고 한 애, 걔가 제 애인이에요. 걔랑 같이 살고, 같이 자요. 저랑 걔랑 사귀어요.”


그 다음 일은 어디선가 본 듯한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몇 번이고 큰소리가 났던 것, 주연을 때릴 듯이 다가오는 할머니와, 주연을 보호하려는 듯이 감싼 미연과, 할머니를 말리는 원호와 아버지의 모습, 파리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무성 영화처럼 스쳐갔다.


“너는 내 장례식에 발도 못 들일 줄 알아라. 이제 내 집에도 오지 마.”


그게 주연이 들은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지금도 주연은 그 순간의 자신을 잘 모른다. 무엇에 그렇게 치받혀서 갑자기 그런 말을 했는지, 어머니 외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사실을 어쩌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렇게 뱉을 수 있었는지, 할머니에게 받았던 아픔이 겹겹이 쌓여 있었던 건지, 나 좋자고 한 말이었는지 할머니를 긁자고 한 말이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할 수가 없다. 그 순간의 할머니가 무척 밉기는 했던 모양이라고, 헛헛하게 중얼거리는 게 전부였다.

5층에 도착하자 반가운 집 문이 보였다. 도어락 뚜껑을 열고 여덟 자리 비밀 번호를 누르자 잠금 장치가 풀리며 도르륵 소리가 났다. 그 날 무슨 으름장을 놨든, 할머니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주연이 할머니 장례식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주연은 한숨도 자지 않고 빈소를 지켰고, 화장장은 물론, 봉안당까지 따라갔다. 영정 사진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쳐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누군가와 다른 밥상을 받을 일도, 성적표를 보여주고도 무시당할 일도, 이유 없이 혼 날 일도, 끊임없이 누군가의 다음 순서일 일도 더 이상은 없었다.


“모래, 잘 있었어?”


주연은 가르랑 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반려묘를 번쩍 안아들었다. 황금빛 고양이는 간만에 본 동거인이 낯설면서도 반가운지 크게 골골 거렸다. 주연은 모래의 뺨에 얼굴을 묻었다. 한바탕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모래를 끌어안고 잠들면 모든 게 끝이었다. 일어나면 연두가 퇴근하고 돌아와 있을 것이다. 이제, 주연의 세상을 살아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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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쯤에 써서 어딘가에 냈는데 떨어져서 이제야 공개한다. 다시 보면 또 고쳐야 할 것 같아서 제출한 그 상태로 올린다. 열심히 썼기 때문에 만족한다. 이 글을 완성하는데 네 명의 도움을 받았다. 기꺼이 도와준 그 마음으로 또 오늘을 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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