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사랑은 고등학교, 그쯤이었어요. 저라고 해서 뭐 대단한 건 아니었고 그냥 남들과 평범했던 거 같네요. 그 아이를 보면 떨리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이 쓰이고. 또 그 아이가 추위를 조금 많이 타는 편이라 겨울이 되면 종종 핫 팩을 챙겨주곤 했던 거 같아요. 대놓고 티는 못 내겠는데 신경이 쓰이니까 그렇게라도 표현을 했던 거죠.

 사실, 지금이라도 그 아이가 저에게 온다면 저는 받아줄 거 같아요.




처음이자 마지막




 쿨럭. 예고치 않은 기침으로 인해 감독이 NG 싸인을 보내며 쉬고 가자는 말을 해왔다. 명수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헛기침을 몇 번 더 하고는 매니저가 건네주는 물을 넘겼다. 형, 괜찮아요? 매니저의 말에 명수는 고개만 끄덕이더니 앞의 여배우에게 미안하다고, 감기가 걸린 거 같다고 하자 여배우는 괜찮다고 말을 하며 화장을 고쳤다.


“근데 오빠, 오빠 얼마 전에 인터뷰한 거 난리가 났더라고요?”


대본을 넘겨보던 명수의 손이 멈칫하자 여배우도 그걸 눈치 챈 건지 어깨만 으쓱였다. 주변에서 난리에요. 오빠 그렇게 순정파냐고. 저야 잘 모르겠다고 말은 했지만요. 근데, 사실 우리 드라마 이미지로 따지면 오빠 이번에 이미지 제대로 잡았네요. 여배우는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명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도 궁금한 게, 짜고 친 게 아니라 진짜로 첫사랑이 다시 오면 받아줄 거예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대본을 억지로 몇 번이나 읽어 내리던 명수가 대본을 소리 나게 접었다. 촬영 들어가자. 명수의 행동에도 여배우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물을 한 모금 넘기고는 먼저 세트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근데요 오빠.


“처음이자 마지막, 그런 게 있잖아요. 잘 해보라고요.”


무엇보다 오빠는 잘생겨서 여자들이 다 넘어갈 게 뻔해.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의 입술이 웃음을 띠었다. 쟤는 저게 문제다. 말이 너무 많아. 명수가 힘들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세트장으로 걸어갔다. 잘생겨서, 여자들이 다 넘어온다고?


“하아………”


문제는, 상대가 남자라는 거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정도로 피곤함에 절어있었다. 형, 오늘 상태가 영 꽝인데요. 운전을 하던 매니저가 명수를 슬쩍 보더니 병원을 가보아야할 거 같다고 말을 해왔다. 어차피 내일 스케줄 없잖아. 평소라면 응급실이라도 가서 회복을 하고 다음 날 스케줄을 가겠지만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명수는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운전을 하던 매니저가 영 신경이 쓰이는 지 잠시 차를 세우더니 약국에 가 약을 몇 개 사 오고는 명수에게로 건네었다.


“약 먹고 쉬세요. 더 아프면 병원에 꼭 가시고.”


아프면 가라고 있는 게 병원이에요. 집이 아니고. 언제나 집에 있는 것을 선호하는 명수를 아는 매니저가 내일 병원에 가지 않을 명수의 모습이 훤히 보여 답답하기만 했다. 한참을 달려 집에 도착한 명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내려온 매니저가 차에 타기 전, 몇 번이나 걸어 익숙한 번호를 누르더니 문자를 보내었다.


[명수 형이 조금 아픈 거 같아요. 나중에 연락 한 번 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 * *



 눈 위로 내리쬐는 햇볕에 명수가 인상을 구기며 겨우 눈을 떴다. 일어남과 동시에 온 몸에 기운이 없는 것을 느끼고 눈만 껌뻑이고 있다 자신의 이마 위로 차가운 수건이 턱 놓이는 것에 놀라 잔뜩 쉰 신음이 내뱉어졌다. 야, 정신이 드냐? 그리고 명수의 눈앞에 성열의 얼굴이 보였다. 성열은 시간을 몇 번 보더니 아아, 오늘 스케줄 없다고 했지. 하며 다시 명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좀 괜찮냐고.


“어떻게 왔어.”


명수의 물음에 기가 차다는 얼굴로 입을 껌뻑이던 성열이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명수 위에 있던 수건을 다시 갈아 올려주었다. 이럴 거 알고 왔지, 어떻게 오긴 어떻게 와. 그 뒤로 성열은 한참이나 조잘거리며 잔소리를 했다. 너는 병원도 안 가고 뭐해? 약은 놔두면 뭐 하냐고, 처먹지도 않는데. 사다 놓은 의미가 없어요, 의미가. 그리고, 스케줄이 없으면 더욱더 병원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어, 야 왜 웃냐?


“알았어…….”


명수는 기운은 없어 죽겠는데 그런 성열이 웃겨 결국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네가 우리 엄마도 아니고 무슨 잔소리를 그렇게 해-. 성열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명수는 보더니 명수의 위에 있는 수건을 갈아 명수의 눈까지 덮어버렸다. 보지 마, 나쁜 새꺄. 너 마음에 드는 구석이 요만큼도 없어. 그리고 성열은 피곤하다며 소파에 누워있겠다는 말을 하고는 일어섰다.


“여기 누워라.”

“미쳤냐?”

“나 아파, 여기 있어.”

“……미친 새끼. 혼자 처 아파라. 난 아플 생각 없어.”


성열이 명수를 흘기며 뒤를 돌고 발걸음을 옮기려다, 한순간 명수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너 내 인터뷰 봤지. 명수의 말에 잡았던 문고리를 더욱 세게 쥐었다가 명수의 앞으로 휘적이며 걸어왔다. 그 인터뷰에 대해서 할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속이 부글거리지만 일단 김명수가 아프니 참겠다는 심정으로 속을 억눌렀다.


“봤으면 뭐.”

“저기요, 이성열씨.”

“뭐.”

“내 첫사랑 이성열아.”

“………”

“그만 나한테 좀 와줘.”


10년이면 나도 많이 노력한 거 아니야? 명수는 아프니까 별말이 다 나온다는 생각을 하며 이미 저질러 버린 말, 주워 담지도 못할 거 조금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성열은 그런 명수에게 뭐라도 던져야겠다는 심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쪼그려 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야, 너 그만해.


“성열아, 내 애인해.”

“………”

“진짜 잘해줄게.”

“………”

“응?”


그리고 어느새 성열에게로 다가온 명수가 같이 쪼그려 앉으며 성열과 시선을 맞추었다. 성열이 무엇을 겁내는 지 안다. 아무래도 남자와의 연애라는 것, 그 상대가 오랜 친구라는 것, 또 그게 연예인이라는 것. 들키면 파장이 클 게 분명했다. 성열은 이런 주변의 시선들이 겁이 나는 거겠지.


“너랑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연기를 그만둔다고는 말 못하겠어.”

“………”

“그냥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나랑 행복하게 살자.”

“………”

“내 마지막이 되어줘.”


명수가 성열을 품에 안았다. 아직도 조금은 뜨거운 몸에 성열에게로 열기가 훅 끼쳤다. 너 얼른 가서 누워…. 살짝 명수를 밀쳐 내보기도 하다 밀쳐지지 않는 명수에 결국 성열이 가만히 안겨있었다. 명수는 그 맑은 웃음을 보이며 성열의 이마에 쪽, 가벼운 뽀뽀를 하고는 다시 꼬옥 껴안았다. 그렇게 성열을 안고 있던 명수가 성열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더니 중얼거리자 성열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키스하고 싶다.”


……감기 옮아. 성열이 세게 명수를 뒤로 밀쳐냈다.



* * *



명수가 계속해서 시간을 보다 오늘따라 막히는 차에 괜히 매니저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면 날 수 있는 차를 뽑아주시던가요-. 매니저는 하지도 못할 말을 삼키며 최대한 빨리 차를 끌었다. 한참 만에 집에 도착하고 매니저가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명수가 빠르게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아, 진짜 왜 저래?!


오늘따라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계단으로라도 올라가볼까 하다 17층을 계단으로 올라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에 도착하고 명수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그렇게 빨리 달려왔던 지금과는 다르게 천천히 비밀번호를 열고 문을 열었다. 익숙한 신발이 눈에 띄었고 거실에 있던 성열이 시간이 늦어 졸린 눈을 비비다 갑작스럽게 자신에게로 입을 맞춰오는 명수에 놀라 명수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잠깐, 잠깐만…!”

“안 돼.”


사귀고 난 뒤로 며칠이나 감기로 끙끙 앓은 탓에 명수는 내내 불만이었다. 심지어 저번에는 성열이 안지도 못하게 해 종일 꽁해있었던 명수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개운하게 몸을 일으킨 명수가 성열을 찾았지만 일을 하러 간 성열이 집 안에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타이밍이 안 좋아 성열을 안지 못했다 이거였다.


“오늘은 절대 안 돼.”


성열의 허리를 끌어당겨 더욱 깊이 입을 맞추는 명수에 성열이 웃어버렸다. 김명수씨-, 급하셨어요? 명수를 놀리듯 말을 하는 성열에 명수가 욱한 얼굴로 잠시 성열을 떼어내었다. 야, 넌 아니야? 나는 너 안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아이처럼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성열이 그런 명수를 보다 푸하하, 웃어버리고는 명수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니, 나도 엄청 급했어.”


우리는, 서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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