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담요입니다.

내스급 업데이트가 무척 오랜만이네요 :) 현제유진 휴가 합작이 공개 되어 포스타입에도 업로드를 해봅니다!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고 개인적으로 글 또한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몹시 좋았어요.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그런 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많은 존잘님들이 함께 하신 현제유진 합작 페이지는 이쪽에서 확인해주세요! 

>> http://hyinsummernights.creatorlink.net






오른쪽 클릭 - 연속재생








* 주의 : 작중에서 임신을 하진 않지만 과거 유산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와, 나도 저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건 그저 지나가는 말이었다. 이를 테면 로또에 당첨 되었으면 좋겠다, 같은 말처럼. 물론 정말로 된다면 좋겠지만 정말로 될 거라 생각은 하지 않는 그런 허황된 바람 같은 것 말이다. 한유진은 정말 딱, 그 만큼의 무게로 말했다. 가지면 물론 좋겠지만, 진짜로 간절하게 가지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 때 한유진의 옆에는 그것을 허황된 바람이 아닌 손에 잡을 수 있는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한유진이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 애의 손에 쥐게 해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것이. 그래, 확실히 그게 문제였다.

그렇게 한유진은, 공포영화를 보다가 그 영화 속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벌어지는. 바로 옆에 커다랗게 흐르는 강이 있고, 2층에서 창문을 열면 허리까지 오는 꽃밭이 펼쳐져 있는. 아름답고,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가 흘러갔던 공간을 별장으로 가지게 되었다. 성현제와 한유진이 바로 앞으로 며칠의 짧은 휴가를 보낼 곳이었다.














천국보다 가까운,

성 현제 x 한 유진














“ 와, 정말 똑같네요. ”


성현제가 손수 문을 열어준 차에서 내려 드디어 직접 보게 된 별장을 올려다보며 유진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옆에 서서 자연스럽게 한유진의 어깨를 감싼 성현제는 제가 해낸 일에 드물게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 고고한 세성 길드장님의 얼굴을 이토록 보람차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마 온 세상을 다 뒤져도 한유진 하나뿐일 테다.


“ 마음에 드나? ”

“ 뭐, 조금은요. ”


들뜬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유진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러해도 그 목소리에 담긴 감출 수 없는 기쁨을 성현제가 알아줄 것을 한유진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현제는 그런 유진의 머리카락 위로 입술을 가볍게 내렸다 뗀 후 조금 더 깊어진 시선을 들어 유진과 마찬가지로 문제의 별장을 바라본다.


‘ 축하드립니다, 임신입니다. ’


초조한 기다림을 지나 의사의 입에서 처음 그 확답을 들었을 때. 성현제는 정말 유진을 깜짝 놀라게 해줄 선물을 주고 싶었다. 물론 그 어떤 것도 그 애가 자신에게 준 이 기적 같은 순간들과 감히 견줄 수는 없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현제는 언제나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였으므로. 할 수 있는 한은 그러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때 불현듯 성현제의 머릿속에 떠오른 찰나의 기억. 주말 밤 나란히 몸을 붙이고 앉아 공포영화를 보았던 날. 단순히 공포영화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슬프고 아름다웠던 이야기의 배경이 된 바로 그 강가의, 바로 그 별장을 지나가는 말로 부러워하던 한유진. 그래서 성현제는 생각했다. 그 별장을 주어야겠다고. 보란 듯이 그것을 내놓고 내 삶에 이러한 기적을 가져다 준 너는 스치듯, 흐르듯 그렇게 말한 것들도 전부 빠짐없이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을 해야겠다고. 더 이상 둘이 아닌 세 사람이 함께 이 앞에 서면 성현제는 한유진에게 꼭, 그렇게 말을 해주고 싶었다.


“ 실제로 있는 곳일 줄은 몰랐는데… ”


한 발자국, 유진이 별장을 향해 걸으며 중얼거렸다. 천천히 그 느린 걸음을 맞춰 걸으며 성현제가 말했다.


“ 꼭 이렇게 생기지는 않았다네. 기본적인 골격은 같았지만 외형은 CG, 내부는 대부분이 세트였다고 하더군. ”

“ 그럼… ”

“ 그걸 내가 고쳤지. ”


썩 자랑스러운 태도로 대답하는 성현제를 유진이 올려다보았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눈빛이 미치셨어요? 그렇게 묻고 있어 성현제는 눈꼬리를 아름답게 휘어내며 웃었다.


“ 네게 미친 걸 모르고 있었어, 유진아? ”


솔직히 그 얼굴과 그 말에는 천하의 한유진이라도 속절없이 심장이 뛰어서. 유진은 평소처럼 무어라 대꾸를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문 채 시선을 돌렸다.

CG와 세트였던 별장의 안과 밖이 영화 속 모습과 같게 바뀔 동안. 한유진의 뱃속에 태동하였다가 사그라지었던 생명이 있었다. 상실은 찰나이나 슬픔이 무뎌지는 일은 지리하고도 멸렬하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치열하게 버텼던 날들 끝에 두 사람은 그토록 서러웠던 저들의 시간에 작은 상을 주기로 했다. 던전도, 길드도, 마수도, 사육소도 아주 잠시 그렇게 내려놓고. 이후에도 오래도록 살아갈 날들을 위해 자신들에게 주는 짧은 휴가.


“ 이제 안을 구경해보지 않겠나? ”


적잖이 감동을 받은 모양인지 움직일 줄을 모르는 사랑스러운 연인을 잠시간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성현제가 이내 물으며 유진의 몸을 가볍게 안아 올렸다. 순식간에 성현제의 목을 끌어안고 공주님처럼 안기게 된 한유진은 그러나 이내 그 품에 익숙하게 뺨을 기대며 입술을 삐죽였다.


“ 신혼도 아니고. ”

“ 공주님을 모시는 일은 신혼이 아니어도 소홀할 수 없지. ”

“ 네네, 알겠습니다아. 어서 들어가기나 해요. ”


네가 이렇게 내도록 사랑스러운데, 신혼이 아닌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 성현제의 가슴이 딱 기분 좋을 만큼 쿵쿵 뛰었다. 유진은 성현제의 품에 안겨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숨을 죽이며 그 심장소리를 듣는다. 그 어떠한 폭풍 속에서도 언제나 안정적으로 저를 지켜주었던 바로 그 소리를.

예상은 이미 하였으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의 슬픔이 머물러있는 마음에도, 겨울이 흘러간 계절은 어느새 봄이었다.




* * *




‘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


성현제는 수술실에서 나와 그렇게 입을 뗀 의사가 선택지를 채 불러주기도 전에 대답했다.


‘ 한유진을 살립니다. ’


의사는 절반의 안타까움과 절반의 사무적인 태도를 더해 말을 붙였다.


‘ …다시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


성현제는 거침없었다.


‘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제 안 가질 테니. ’


아이가 생겼다고 했을 때, 성현제는 기뻤다. 신기했고, 각성 전과 후를 전부 통틀어 했던 모든 비현실적인 경험을 다 합쳐도 그 때 느꼈던 감각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었다. 설렜다. 한유진과 저를 꼭 반반씩 닮아도 좋고 전부 한유진을 쏙 빼닮았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집에 오는 길에 매일 아이 용품을 사다 날라 유진의 타박을 듣는 것도 좋았고 타박을 하면서도 똑같이 설레 신기할 정도로 작은 옷이며 신발을 품에 안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한유진을 보는 것도 좋았다. 처음 아이를 안아 올리는 상상을 했다. 처음 아빠, 하고 부를 날을. 첫 걸음을 떼는 날을. 손을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입학식과 졸업식에 가는 날을 매일 밤 빠짐없이 상상했다. 밤이면 유진의 배에 귀를 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입을 맞추었다. 좋은 아빠가 되어주겠다 다짐했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남은 삶을 모두 태워, 한유진과 아이를 위해.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가족을 위해 살겠다고. 그렇게 매일을. 매 순간을. 열렬하게. 성현제는 아이로 인해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 모든 행복도. 그 어떤 아름다운 미래도. 그 무엇도. 한유진에 우선할 순 없다. 한유진이 없이 존재할 수 있는 행복도 없었다. 그것이 유진을 잃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성현제는 기꺼이 그 자신의 행복도 포기할 남자였다.


‘ 그러니까 유진이를… 살려주십시오. 제발. ’


살면서 한 번도, 타인에게 내뱉은 적이 없는 단어가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성현제는 태연한 척 버티고 있었지만 사실은. 혹시라도 이 일로 한유진을 잃을까봐 겁에 질려있었으므로. 그 두려움에 비하면 아이를 잃는 것쯤은. 그랬다. 정말로 성현제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 *




“ 소감은? ”

“ 이렇게 따뜻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


성현제의 품에 안겨 한 걸음도 떼지 않고 별장 안 곳곳을 구경한 유진은 조금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부의 구조나 분명 영화 속에서 본 것과 거의 흡사했으나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는 소리일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습하고, 차갑고, 소름 끼치던 그 공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별장 안은 따뜻하고, 화사했으며,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정수리 위로 성현제의 웃음이 떨어졌다.


“ 휴가를 보낼 우리의 별장이 공포영화 속에 나오는 그런 공간이어서야 되겠나. ”

“ 아… 그렇긴 하지만요… ”


하긴. 유진이 지나가는 말로 이런 별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을 때도 그저 이렇게 한적하고 풍경이 이쁜 곳에 별장을 가지고 싶다는 말이었지 그런 무서운 공간을 가지고 싶단 뜻은 아니었으니까. 가볍게 긍정한 유진은 내려달라는 의도를 담아 성현제의 팔을 두 번 톡톡 두들겼다. 성현제는 왜, 유진아. 하고 되묻는 과정도 없이 조심스럽게 유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 예쁘다… ”


그 길로 곧장 창가로 걸어 커다란 창문 앞에 선 유진은 창밖으로 펼쳐진 드넓은 꽃밭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등 뒤에서 커다란 품이 유진의 허리를 안고, 등을 단단하게 감싸며, 정수리 위에 턱을 무게도 없이 올렸다.


“ 적당한 때에 잘 왔군. 꽃이 예쁘게 피었어. ”

“ 응. 정말이요. ”

“ 그래서… 소감이 어떤지 아직 대답 안 했는데. ”


성현제의 물음에 유진이 허리를 감싼 손을 풀곤 몸을 돌려선 고개를 들어 저의 잘난 남자와 시선을 맞췄다. 그는 대다수의 순간에 그러하듯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한유진은 그를 대하는 대다수의 사람과는 확실하게 다른. 특별한 사람이었으므로. 그 태연자약한 표정 너머에 숨어있는 초조함을 본다. 오로지 한유진에게만 드러나는 성현제의 연약한 세계였다. 그가, 이토록 한유진을 사랑하여 태동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세계.


“ 너무 마음에 들어요. 진짜로. ”

“ ……. ”

“ 고마워요, 성현제 씨. 그러니까. 전부. ”


단지 이 별장을 선물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해주고 있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나를 사랑해주고,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며, 우리를 사랑하여 울음도 없이 버티고 서서 이 세계를 지키고 있는 당신의 존재에 대해.


“ 정말 좋아해요. ”


그것이 이제와 뭐가 그렇게 특별할 고백이라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함께 해왔던 사이에 좋아한다는 말 하나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 말이라고. 마치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던 성현제가 이내 사르르 녹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겹쳐지기 직전. 사랑해, 유진아. 언제나 한유진을 지켜주었던 마법의 주문이 스며들었다.




* * *




성현제는 끝내 울지 않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유진이 더 이상 제 안에서 뛰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지 못해 마른 배를 감싸 안고 울음을 터트렸을 때도. 겨우 기력을 찾은 유진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이미 오래 전에 준비를 마친 아기방을 보았을 때도. 그 안을 가득 채운, 과할 정도로 많은 아이 용품들을 보며 유진이 그대로 주저앉아 다시 울음을 참지 못했을 때도. 성현제는 울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제 반려의 어깨를 끌어안고 다독여주었을 뿐.

한유진은 어느 날 말했다. 당신은 왜 울지 않아요? 슬프지도 않아요? 내 아이가 아니고 당신과 나의 아이잖아. 그런데 왜. 왜, 당신은. 마치 애초에 그 아이가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내게는 세계가 전부 무너져 내린 것과 다름이 없는데. 당신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혼자서 태연한 얼굴을 하고선 나를 달래는 거야.

분명히 그런 마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유진은 연약한 주먹으로 성현제의 가슴을 때리며 또 울었다. 성현제는 그런 유진을 또다시 담담한 얼굴로 안아주었다. 절대로 성현제의 품을 벗어날 수 없을 힘으로 발버둥치는 유진의 작은 몸을 단단하게 끌어안고,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았다가, 입을 맞춰 주었다가, 넓은 손바닥으로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어주었다가. 유진의 울먹임이 조금 잦아들고 난 후가 되어서야 성현제는 말했다.


‘ 네가 있잖아. ’


성현제의 그 대답에 유진의 호흡이 잠시 멈췄다. 성현제는 한유진을 위해 세상의 모든 평온을 제 손으로 지은 사람처럼 그렇게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네가 여전히 내 곁에 있으니, 나는 울 이유가 없다네. ’


그 때 한유진은 그 품에 안겨 자기 대신 결정을 내렸어야 할 자신의 반려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물음 앞에 홀로 내던져졌을 이 남자의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한유진은 다른 말을 더 하는 대신 그의 허리에 팔을 둘러 마주 끌어안고 너른 품에 고개를 묻었다. 자신의 이러한 투정마저도 응당 제가 안아야 하는 일로 기꺼이 받아들인 이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며.




* * *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


두 사람은 커다란 담요를 함께 덮고 나란히 한 쪽 벽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유리창 앞에 앉았다. 유진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을 밖에서 보고 싶어 했으나 밤공기는 아직 차갑고 눈에 띠게 약해진 유진의 몸은 여전히 조심을 해야 하는 때라 성현제는 드물게 한유진의 애교 섞인 청을 거절했다. 유진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커다랗다기 보다는 거대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창문 너머도 보는 밤하늘도 꽤나 절경이었기에 곧 성현제를 자애롭게 용서해주고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주었던 참이다. 그리곤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던 유진은 성현제의 조용한 질문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음, 인생은 정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폭풍 같다는 것? ”


유진의 대답에 성현제는 후후,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가 쑥스러울 만큼 듣기 좋아 자세를 조금 고쳐 성현제에게 더 편하게 몸을 기댄 유진이 말을 이었다.


“ 성현제 씨랑 저랑 이런 관계가 될 거라고 아니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고요. ”

“ 글쎄. 나? ”

“ 정말요? ”


장난인지 진담인지 모를 성현제의 말에 유진이 고개를 휙, 하고 들며 물었다. 그 얼굴이 여전히 천진한 어린 아이처럼 사랑스러워 잠시 뽀얀 이마에 입을 맞춘 성현제가 어깨를 한 번 으쓱 하며 입을 연다.


“ 모두가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내가 만약,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면. ”

“ ……. ”

“ 그 대상은 틀림없이 내 파트너 씨가 될 거라고, 언제나 생각했지. ”


더 말이 없이 허공에서 시선이 친밀하게 얽혔다. 수도 없이 많은 날들이, 많은 밤들이 있었다. 때로는 경계하고, 때로는 거래를 하며, 때로는 의지하고, 그러다 종국에는 특별한 마음을 나누게 되어버린. 때로는 좋은 것을 얻고, 때로는 소중한 것을 잃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채로 걸어왔던. 어느 삶의 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그런 나날들이. 그것이 불현듯 마음에 가득 차오르게 벅차올라서. 그 많은 낮과 밤들을 보낸 후에도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이 새삼스럽게 좋아서. 감동적이기도 해서.


“ …하여간 말은 잘하지. ”


한유진이 투덜거렸다. 성현제는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웃었고.


“ 말만 잘하지 말고 얼른 키스나 해봐요. ”


발그레하게 수줍어진 뺨을 감추려 여느 때처럼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는 유진에게 이윽고 성현제가 웃음 섞인 숨결을 깊이 마주쳐왔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한 움직임이 되어 바닥에 스러지는 몸 위로 별빛이 흘렀다.




* * *




성현제는 그 일의 이유를 찾고 싶지 않았다. 의사는 어떻게든 자신들은 정말로 최선을 다했지만 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탓이 아닌 한유진과 아이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설명하려 애썼으나 성현제에게는 하나 같이 무의미한 일이었다. 결국엔 한유진의 몸이 어떻고, 아이의 상태가 어때서라는 말 밖에는 되지 않을 이유들은 성현제에게는 하나 가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전부 그저 한유진의 죄책감을 깊어지게 만들 이유가 될 뿐이었으니.

대신 성현제는 삶이라는 것이 본디 그러한 것이었음을 그저 상기했다. 한유진을 만나기 전에는 잊고 있었던 삶의 불확실성. 이토록 잘나고 부족한 것이 없던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할 수 없는 이를 만난 후 성현제는 그렇게 삶이라는 건 제 마음, 저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던져지게 되는 일들도 있는 것임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러니 이 일도 그저 그런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실수한 것도 아니며, 한유진이 부족해서 생긴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이것이, 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삶일 뿐.

성현제는 그 무엇보다도 간절하게, 한유진이 그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다.




* * *




“ 당신이 원망스러웠던 때가 있었어요. ”


이불 아래로 빼꼼히 나온 발가락을 꼬물거리며 유진이 속삭였다. 혹시라도 벗은 유진의 어깨가 추울 까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 모로 누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감상하는 냥 흐뭇한 얼굴을 한 채로, 성현제가 그랬나? 하고 다정하게 물었다. 도무지 당신이 원망스러웠다고 하는 말을 방금 들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얼굴이다. 유진은 애써 그 표정을 바로 마주하지 않으며 시선을 내려 저의 발가락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 나는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당신은 아닌 것 같아서… ”

“ ……. ”

“ 울지도 않고 어쩜 그렇게 어른스럽고 태연한지. 그게 너무 서럽고, 서러웠다가. ”

“ 응. 그랬을 테지. ”

“ 당신이 ‘네가 있어서 나는 괜찮다’고 말했을 때야 납득했죠. 아, 나를 살리기로 선택한 것이 당신의 몫이었으니 그 선택을 위해서라도 당신은 괜찮아야만 했겠구나. ”


기어코 나를 살려놓고 본인이 울어버리면 그 선택이 슬픈 일이 되어버리니까. 무언가를 포기하고, 잃어야만 했던 일이 되어버리니까. 성현제는 차라리 기꺼이 모든 슬픔을 감내한 채로 자신은 옳은 선택을 하였고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지켜낸 반려를 기쁘게 마주 했어야만 했을 테다.


“ 그런데 그마저도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

“ 감상이 조금 달라졌나? ”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떠올리는 한유진을 달래듯 성현제가 마치 봄바람과도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현제가 이런 목소리를 낼 줄도 아는 사람이었음을, 아마도 성현제 역시 한유진을 만나기 전엔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 응. 이제야 제대로 알았어요. ”

“ ……. ”

“ 사실은 그 때에도. 사실은. ……당신 역시 괜찮지 않았으리라는 걸. ”


그 순간 유진은 내도록 피하고 있던 시선을 들어 성현제를 마주 보았다. 성현제는, 아주 드문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채였다. 한유진은 이제는 정말 자신이 이 남자를 안아주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 나 때문에. 나를 지키기 위해서 당신은 괜찮아지기로 스스로 결정하였을 뿐, 정말로 괜찮지는 못했잖아요. 괜찮아 보이도록 꾸며냈을 뿐. ”

“ 나는… 나는… ”


성현제는 고장 난 장난감처럼 말을 더듬었다. 천하의 성현제가. 그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당황하거나 여유를 잃는 일이 없는 존재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할 말을 찾지 못해 허둥거리고 있었다. 한유진은 천천히 손을 뻗어 남자의 뺨을 감싼다.


“ 당신이 그렇게 괜찮은 척을 해주어서 나는 마음껏 울었어요. 울고, 서운해 하고, 투정을 부리고, 내 상처를 다 드러내고. 그래서 이제 내 상처는 천천히 아물어 가는데… ”


한유진은 그 언젠가 성현제가 저를 그 어떤 것으로부터라도 지켜주겠다고 제안해왔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유진은 그 때에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랬음에도 성현제는 언제나 같은 태도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주변에 단단한 울타리를 세웠다. 저의 등이 긁히고 다치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처럼.


“ 그런데 여전히 당신은 애초에 상처가 없었던 척을 하니 낫지를 못하는 거잖아요. ”


유진의 부드러운 손길에 성현제의 뺨을 정성스럽게 매만졌다. 성현제는 아마도 유진을 기분전환 시켜주고 싶어 이곳으로 휴가를 오자고 하였겠으나 사실 유진이 가진 이번 휴가의 목적은 그랬다. 이미 많이 늦었다고 하더라도. 이제서라도. 이 남자의 상처를 안아주고 싶어서. 들여다봐주고 싶어서. 그대로 놓아두면 죽는 날까지 자신은 상처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인 척을 할 것이 뻔한 이 똑똑하고도 미련한 구석이 있는 남자를 안아주고 싶어서.

한유진의 손이, 천천히 성현제를 끌어당겼다. 성현제는 그 순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허물어져 그대로 유진의 작은 품에 안겨든다.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한참 전에 묻어두었던 무언가가 툭, 하는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 당신은 괜찮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의 아이를 잃었잖아요. ”


유진은 자신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성현제가 얼마나 해사한 얼굴을 하였는지 기억했다. 매일 아직은 필요도 없는 아기용품을 사다 바치며 그가 어떤 얼굴로 무슨 말들을 종알대었는지. 어떤 소소하고 사랑스러운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었는지. 그가 매일 매일 쌓아올린 세 사람이 함께 하는 미래가 얼마나 행복한 모습이었는지 한유진은 전부 다 기억했다.


“ 나는 이제 괜찮으니, 성현제 씨. 내 유일한 사람. ”

“ 유진아… ”

“ 이제는 조금 무너져도 괜찮아요. ”


마지막으로 아주 고통스럽게 유진의 이름을 부른 성현제가 이윽고, 제 손으로 잘라내야만 했던 생명이 머물렀던 유진의 배에 얼굴을 묻은 채로 울음을 터트렸다. 슬픔이라고 하기엔 심장을 저미는 죄책감이었고, 단순한 죄책감이라고 하기엔 세계가 무너질 듯 거대한 슬픔인 그 울음소리는 너무나도 지치고 고되어 유진은 마음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성현제가 저를 위해 참고 또 참았을 그 모든 서러움들이 이제와 해일처럼 유진의 마음으로 밀려들어왔다. 유진은 천천히 그 남자의 머리를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제가 모든 날들을 눈물로 적셨을 때, 그 남자가 제게 해주었던 것처럼.

성현제와 한유진은. 그렇게 오직 둘만이 남겨진 짧은 휴가의 별빛 아래에서 마침내 서로의 슬픔을 모두 마주 보았다.




* * *




성현제는 한 때 죽음 이후의 세계를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다. 삶의 무료가 극에 다다랐을 때였다. 죽고 싶었던 건 물론 아니었으나 만약 죽음 뒤에 이곳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면 퍽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상관없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천국이나 지옥에 관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누구의 영향인지 성현제는 모르지 않았다. 정말 갑자기 어디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난 한 어린 사내가. 도무지 예측할 수 없게 하고, 짐작하지 못하게 튀며, 어떤 순간에도 사랑스럽기를 멈추지 않던 한 남자가. 그렇게 제 삶에 뛰어들어 모든 것을 완전히 엉클어트리기 시작했을 때, 성현제는 더 이상 죽음 이후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천국보다도. 지옥보다도. 성현제가 전부 다 알지 못하여 호기심을 가질 만한 그 어떠한 세계보다도 가장 알고 싶은 단 하나의 세계가 바로 이곳에 있었으므로.

한유진.

그는 천국보다 가까운 성현제의 낙원이었다.




* * *




“ 완전 속았다구요. ”


성현제는 모처럼 늦잠을 잤다. 유진과 단둘이 함께 하는 휴가라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 것일 수도 있고, 지난밤 아주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감정을 터트린 것이 생각보다 더 큰 에너지를 소비하도록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을 일이다. 아침잠이 많은 유진이 성현제보다 먼저 일어나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느긋하게 눈을 뜬 성현제의 눈동자에 창가에 앉아 멀뚱히 저를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이고 있는 유진의 모습이 보였다. 절로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비로소 전신에 피가 돌아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 속았다고? ”


성현제는 지금 한유진이 정확히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지도 모르면서 말을 받는다. 유진이 예쁘게도 눈을 흘겼다.


“ 최고로 행복한 휴가를 보내고 오자고 하더니. ”

“ 흐음. ”

“ 혼자서 잠만 자고. ”


하나 서운하지도 않으면서 서운한 척을 하는 표정이 여간 잔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서운하기는커녕,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있는 성현제의 얼굴을 꽤나 만족스럽게 바라보았을 것도,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 이런,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군. ”


성현제는 다소 과장되게 시무룩한 표정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눈앞의 한유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완벽한 형태로 근육이 잡혀있는 길고 늘씬한 팔이 허공에 드리워지듯 뻗어지고 세상 그 누구에게보다 한유진에게 더 단단하고 따뜻해지는 손끝이 구애를 하듯 펼쳐졌다. 유진은 따사로운 봄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거기 앉아서 그 예술과도 같은 황홀한 광경을 감상하듯 음미하다가.


“ 알면 이제 보상해주시죠. ”


유진은 이내 저의 몸을 전부 던져 성현제의 품에 가득 안겨든다. 가뿐하게 유진을 받아 안은 성현제가 기분 좋은 울림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유진의 머리를 가만가만 토닥이듯 쓰다듬어 주다가, 이내 몸을 뒤집어 유진을 눕히곤 반짝이는 금안의 가운데에 유진의 모습을 가둔다.


“ 내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


눈을 채 감기도 전에 입술이 다가섰다. 아침부터 무엇을 해도 좋을, 느긋한 두 사람의 휴가였다.




* * *




그 해의 겨울이 유독 길어 유진은 이따금, 이 겨울이 영영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했다. 끝끝내 아이를 저의 품에 안아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았던 것처럼. 당연히 오리라 생각하였던 그 봄도 이대로 떠나 다시 보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럴 때마다 한유진은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이 세계가 만약에 정말로 봄을 잃더라도 제가 가지고 싶다 떼를 쓰면 어느 평행우주의 봄을 강탈해서라도 제 앞에 가져다 줄 그 남자를. 그러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안정되고 서글픔과 추위,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사라져서 이윽고 한유진은.

봄 따위 알게 뭐람, 내게는 저 남자가 있는데.

그런 기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와, 자신과, 아이가 있는 완벽한 천국을 잠시 꿈꾸었었다. 상상 속의 단란한 가족은 너무나도 따사롭고 행복해 보여서 한유진은 신이 인간에게 처음 빚어준 에덴도 그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상실의 거치며 미래로부터 불완전해진 자신들은. 과연 그 천국을 잃어버린 것일까.

다리사이로 파고들며 다정한 입술을 제 심장 위에 내리는 성현제를 가만히 끌어안으며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수도 없이 상상하고 상상하였던 천국보다 더 가까운 낙원은 줄곧 지금처럼 한유진의 품 안에 있을 테니.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우리는 계절처럼 슬픔을 뒤로 하고, 행복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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