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하겠다는 말이 농담은 아니었는지, 구름은 조별 모임 이후 5일 째 매일 카사블랑카에 출근 중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집이 아닌 카사블랑카에 가 아메리카노 한 잔과 쇼콜라 케이크를 주문하고는 카운터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공부나 과제를 했다. 물론 머리에 제대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카페 내 손님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사장님의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거나, 일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훔쳐보거나… 사장님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으니 공부고 과제고 맘처럼 될 리가 없었다.

 

애초에 공부와 과제를 하기 위해 카페에 온 것이 아니니 구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공부나 과제는 방송이 끝나고 자기 전에 하면 됐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해야 할 게 많으면 밤을 세면 됐기에 구름은 카페 안에서는 사장님에게 온 감각을 기울였다.

 

조별 모임 이후 그날 저녁에 민후와 다시 들린 카사블랑카엔 사장님이 없었다. 사장님을 보러 들렸기에 간단하게 음료 한 잔씩 테이크아웃 해 음료가 나오자 바로 카사블랑카를 벗어났다. 아쉬운 듯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사장님이 없는 카사블랑카는 크게 의미가 없어 발걸음을 돌렸었다.

 

사장님은 가끔 출근하시는 건가? 하긴 사장님이 카운터에 있을 리가…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갔지만 이상하게 또 찾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다음 날에 또 찾은 카사블랑카에는 사장님이 부드럽게 웃으며 구름을 알아본 듯 인사해왔다. 그 뒤로 5일 째 카페를 찾았지만, 사장님이 자리를 비운 날은 딱 첫날 저녁 뿐이었다. 사장님은 주문 마감 때까지 언제나 자리를 지켰다. 자길 알아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구름은 생글생글 웃으며 아메리카노와 쇼콜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을 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카운터에 팔을 올려 싱글벙글 웃으며 주문했던 구름을 잊는 게 쉽지 않았다. 잘생겼다 말을 꺼낸 학생들은 꽤 여럿 있었지만 구름처럼 대놓고 쳐다보며 말한 학생은 많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구름처럼 귀엽게 생긴 얼굴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운터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은 구름은 학생들이 들어왔다 나가며 사장님 외모 이야기를 할 때면 괜히 입을 삐죽였다. 그러다 사장님이 서비스 쿠키를 줬다느니 이런 말이 들리면 저는 한 번도 서비스를 받지 못했기에 질투 섞인 한 숨을 푹 쉬며 머리를 헤집기도 했다.

 

구름은 오늘은 질투가 느껴질 법한 이야기들이 많아 뾰로통하게 앉아 노트북 자판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레포트를 썼다. 한 숨을 푹 쉬고는 시간을 확인한 구름이 카운터로 시선을 돌렸다. 주문 마감을 했는지 사장님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카페 정리를 하느라, 카운터는 비어있었다.

 

사장님을 향해 시선을 돌리던 구름의 옆을 안쪽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지나갔다. 구름의 옆을 지나치는 둘의 말은 구름에게 생생하게 전달됐다. 사장님이 잘생겨서 오늘만 2번 째 왔다는 말과 다음에 꼭 번호를 물어보겠다는 다짐이 흘러가듯 들렸다. 사장님이 방금 나간 손님에게 번호를 주는 상상을 한 구름은 인상을 찌푸리고서 반드시 오늘 번호와 이름을 알아내겠다며 혼자 다짐했다.

 

방금 나간 이들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손님들이었다. 카사블랑카는 다른 카페와 달리 9시면 일찍 마감을 하기에 8시가 되면 주문을 마감했다. 카페 마감까지 있고 싶은 마음에 구름은 수업 시간표를 방송시간에 맞출 정도로 중시 여기던 방송시간을 10시로 미루기까지 했다. 그렇게 늘 마감 때까지 카페에 있다 정확히 8시 반이면 카페를 벗어났다.

 

이미 주문 마감까지 끝낸 시간임에도, 구름이 들어서면서 주문한 쇼콜라 케이크가 거의 새 것의 상태로 놓여있었다. 케이크 옆에 놓인 아메리카노는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몇 번 안 먹은 쇼콜라 케이크를 들어 입안에 넣자, 달달한 쇼콜라가 입 안에 퍼졌다. 살짝 인상 쓴 구름은 누가 볼세라 서둘러 남아 있는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평소 단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구름에게 쇼콜라는 지나치게 달았다. 다른 메뉴를 먹어도 됐지만, 구름은 사장님이 추천한 메뉴로 먹을 거라는 고집에 매일 쇼콜라를 고집했다. 하필 많은 메뉴 중 왜 쇼콜라가 제일 인기가 좋았는지 괜히 투덜거리던 구름의 입이 순간 다물어 졌다.

 

제 테이블 위로 불쑥 올라온 접시에 눈을 크게 뜨고 접시에 닿은 손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제 눈앞에 검은 앞치마를 매고서 서있는 카페 사장님을 확인한 구름이 흡- 하고 소리 내며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쇼콜라 별로 안 좋아 하시죠?”

 

“아…아니에요. 좋아해요!”

 

“죄송해요. 오해를 했네요, 잘 못 드시는 것 같아서…”

 

“맛있어서 아껴먹는 중이었어요!”

 

 

과장하듯 높아진 목소리로 포크를 들어 올려 케이크를 큼지막하게 뜬 구름이 서둘러 케이크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입안을 가득 채운 달콤함에 인상을 쓰지도 못한 채 어색하게 웃으며 사장님을 보며 입 꼬리를 조금 더 당겼다. 구름의 행동에 사장님도 고개를 끄덕이곤 입 꼬리를 당겨 웃었다. 아마도 구름의 거짓말을 눈치 챈 듯 했다. 사장님은 내려놓은 접시를 구름 쪽으로 살짝 밀었다.

 

 

“매일 쇼콜라만 드시기에 드리는 작은 서비스에요. 아직 메뉴 출시 전인데 한 번 맛봐주셨으면 해서요.”

 

“아…네!”

 

“블루베리치즈케이크에요. 치즈 좋아하세요?”

 

“그럼요! 전 사장님이 주신 건 다 좋아요. 잘 먹을게요 사장님!”

 

 

사장님은 구름이 혹시나 민망해 할까 배려해 신 메뉴 테스트를 핑계로 다른 케이크를 내밀었다. 이에 구름은 애교 섞인 목소리에 더불어 눈이 접히도록 웃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구름의 인사를 받고서 고개를 숙여 인사한 사장님은 몸을 돌려 다시 카운터로 향했다.

 

케이크 중 좋아하는 케이크가 뭐냐고 묻는다면 구름은 주저 없이 치즈케이크라고 답할 정도로 치즈를 좋아했다. 쇼콜라 케이크를 뜨던 손놀림과 달리 가벼운 손놀림으로 치즈케이크의 끝은 떠 입안으로 넣었다.

 

생 블루베리가 아닌 블루베리 소스가 올라간 치즈케이크는 익숙한 듯 특별했다. 꾸덕꾸덕하게 진한 치즈케이크와 달달한 블루베리가 어울려 순식간에 치즈케이크가 놓여있던 접시가 비었다.

 

순식간에 비워진 케이크 접시를 보던 구름은 포크를 쭉 빨려 입맛을 다셨다. 아쉬운 듯 포크를 쉽게 내려놓지 못한 구름은 시간을 확인하고서 화들짝 놀라며 남은 아메리카노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구름은 마감 시간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서둘렀다.

 

 

“케이크 너무 맛있었어요!”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시는 거예요?”

 

“여기 있는 메뉴는 전부 직접 만들고 있어요.”

 

“블루베리 소스가 치즈케이크랑 너무 잘 어울렸어요. 치즈케이크도 꾸덕꾸덕해서 맛있었고요!”

 

 

신나서 재잘거리는 구름에게 시선을 두고 고개를 끄덕이던 사장님은 싱긋 웃으며 구름을 마주했다. 내일 손님이 다 나가면 또 주겠다는 사장님의 말에 구름이 해맑게 웃었다.

 

 

“그럼 내일 또 올게요. 사장님!”

 

 

사장님은 구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히 가라며 인사했다. 구름이 건넨 컵과 접시를 받아들어 싱크대에 가져다 놓던 사장님이 해맑게 인사도 했는데 여전히 나가지 않고 우물쭈물 거리는 구름에게 의아한 듯 시선을 보냈다. 구름은 매일 8시 반이 되면 인사를 하고서 가게를 벗어났었다. 오늘은 시간이 9시가 다되어 가고 있는데도 나가지 않고 가게 안에 있었다.

 

 

“혹시 할 말 있으세요?”

 

 

나가지 않고 눈치 보던 구름이 사장님의 말에 용기 냈는지 눈을 꼭 감았다 뜨면서 입을 열었다.

 

 

“사장님 혹시 명함 주실 수 있으세요?”

 

“네?”

 

“별건 아니고! 사장님 마음에 들어서요! 나 사장님하고 연락하고 싶은데…”

 

 

눈알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서 이리저리 굴리던 구름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자 고개를 푹 숙였다. 순수해 보이는 구름의 행동에 사장님이 푸스스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에 거절을 못해 어색하게 웃는 것이라 받아들인 구름은 미안하다는 듯 거듭 사과하며 카페를 벗어나려 했다.

 

 

“아…괜히 제가…죄송해요. 내일 다시 올게요!”

 

“내일 오시는 거 맞죠?”

 

“그럼요! 근데 이름이라도 알려주시면 안 돼요?”

 

 

번호를 알려주기 싫은 마음에 난감해서 웃었다 생각하며 혼자 번호 알아내기를 포기한 구름이 포기하지도 않고 이름을 물으며 질척였다. 카운터에 가까이 다가가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하는 구름에게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이환. 제 이름이에요. 손님은 이름이 뭐에요?”

 

“윤구름이요! 내일 오면 구름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그럴게요. 조심히 가요. 구름씨”

 

 

이환의 말에 수줍게 볼을 붉힌 구름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나가기 전 구름은 뒤를 돌아 이환을 보며 이름도 알았으니 내일부터 적극적으로 들이 댈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외치고는 카페를 벗어났다. 이환이 놀란 듯 굳어있다 피식하고 웃으며 이미 닫힌 문에서 시선을 거두자, 카페 안쪽에 놓인 나선형 계단을 타고 한 남자가 내려왔다.

 

 

“내일부터 들이댄다는데 큰일 나셨네요.”

 

“그러게. 귀찮아지겠네.”

 

“그래도 귀엽던데요?”

 

“그래? 난 모르겠던데. 내 스타일은 섹시한 쪽이라서. 네가 꼬셔봐 그럼.”

 

“형님한테 푹 빠져 보이던데 제가 성에 차겠습니까?”

 

 

껄껄거리며 웃는 남자 너머로 이환의 표정은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듯 벌써부터 한껏 질려있었다. 하루 종일 친절해 보이려 잡아 올린 입 꼬리가 경련 오듯 떨려왔다. 이환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 몸을 틀었다.

 

 

“문 닫고 정리하고 내려갈게요. 먼저 내려가세요.”

 

“그래, 성배야 수고해”

 

“네.”

 

 

성배라 불린 사내가 카운터를 나와 카페 문을 잠그고 조명을 낮추고는 간단하게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환이 어느 정도 정리한 상태라 정리할 게 그리 많지 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자 카페 안의 불들이 전부 꺼졌다.

 

불을 전부 끄고도 카페를 벗어나지 않고 안쪽으로 걸어간 성배는 성큼성큼 걸어 내려왔던 계단을 이용해 카페 사무실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선 성배는 익숙하게 탈의실이라 적힌 문을 열고 안 쪽으로 이동했다. 성배가 안쪽 사물함을 열자 성배 앞에 엘리베이터 하나가 드러났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고, 성배가 그 안으로 들어서자 버튼은 위아래 화살표 2개뿐이었다.

 

성배가 아래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아래층으로 이동한 후 열린 문으로 보인 공간은 카페가 아니었다. 카페와 직원 사무실로 2층 건물인 줄 알았던 카페건물은 지하까지 있는 3층 건물이었다. 꾸며지지 않은 지하는 꽤 넓은 공간이었다. 성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로비에 서있던 남자들이 허리를 구십도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손을 올려 가볍게 인사를 받은 성배는 정면에 보이는 문에 노크했다. 짧게 들린 네- 소리에 성배는 문고리를 가볍게 돌렸다.

 

사무실 안에는 검은 앞치마를 매고서 음료와 디저트를 만들 던 이환이 언제 갈아입었는지 깔끔한 정장을 입고서 책상위로 다리를 올린 채 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이환의 다리가 올려 있는 책상 위에는 ‘死血파 도이환’ 이라고 적힌 명패가 놓여 있었다. 피곤한 듯 오른팔로 눈을 살짝 가린 채 앉아 있는 이환에게 굳이 다가서지 않고, 문 앞에서 카페 정리했다는 인사를 한 성배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발길을 돌렸다.

 

구름에게 웃으며 말했던 이환의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차갑게 굳어 무표정했다.

 

이환의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온 성배도 매고 있던 앞치마를 풀며 이환의 사무실 옆문을 열었다. 성배가 들어서자 안에 있던 이들이 우렁차게 인사하며 자리를 비켰다. 익숙하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성배가 노트북을 켰다. 테이블에 팔을 올려 턱을 괸 채로 마우스를 딸깍이며 몇 번 움직이자 화면에는 영상으로 보이는 것이 켜졌다.

 

성배가 이어폰을 연결 해 귀에 꼽자, 애교 섞인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성배의 귓가를 간질였다.

 

 

“헌터형님 어서 와요! 오늘은 조금 늦었네요?”

 

 

가면을 쓴 채 웃는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지만, 성배는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 듯 눈을 깜빡이며 후원금액을 적어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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