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편은 아동에 대한 폭력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읽기 전 유의 부탁드립니다. 



惠氷傳



外傳 一話



툇마루에 검은 점이 앉아있었다. 마루의 나무 틈 사이에 박혀서. 꿈질, 꿈질하고 가느다란 것이 움직였다. 환히 내리쬐는 햇볕에 구워지고 있기라도 한 양, 고통스러운 몸짓이었다. 엉금엉금, 기어가 유심히 관찰했다. 궁둥이에 노란 털이 부숭부숭 나 있었다. 

꿀벌, 관주의 인생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작아. 작은데도 움직여.'


꿀벌의 작은 다리가 가슴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가져다대니, 퍼덕거리던 다리가 끝을 잡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무 틈에서 건져낸 벌을 돌계단 아래로 내려주었다. 벌은 금방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구불거리는 묵빛 머리. 긴 속눈썹, 아이치고는 길쭉하게 생긴 손과 발. 6살의 관주는 마루에 누워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안채 문 밖으로 나가려면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어머니한테, 유랑한테 사정해봤자 아버지의 허락이 없으면 밖으로 못 나간다는 말만 돌아왔다. 심심한데. 눈을 굴려 건넌방을 보았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책상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공부하다 나온 탓에 책과 먹이 어질러져 있었다. 

저렇게 어질러놓으면 유랑이 또 뭐라고 하겠지. 근래 들어 유랑의 잔소리가 심해졌다. 싫어, 짜증나. 도리질을 치고 한숨을 쉬어도 답답함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건넌방에서 나가면 유랑한테 혼이 났다. 저번에도 몰래 나가려던 걸 들켜 크게 혼났다. 


'애기씨가 이러시면 나리마님께 제가 혼납니다! 나가지 말라면 제발 나가지 마세요!'


펑퍼짐한 바지에 묻은 흙을 다 털어내려고 탁탁 다리를 때렸다. 하지 마!… 알겠으니까 그만해! 밀어내면 그 다음은 얼굴을 닦으려 들었다. 콧잔등을 세게 문지르는 게 싫어 고개를 내저었다. 

어머니께 엄한 소릴 듣는 날이면 유랑은 갑자기 무서워졌다. 화풀이를 하는 거지. 알고 있었다. 유랑이 자신을 미워해서 그러는 건 아니란 걸. 자신이 유랑에게 듣는 잔소리보다 유랑이 부모님으로부터 듣는 소리가 훨씬 심하단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왜 그러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안채에서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이유. 그런 거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버지께는 도무지 물어볼 수 없었다. 늘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시니까. 대신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네가 아직 덜 자라서 그렇단다. 언젠가 자연히 바깥을 알게 될게야.'


라고 대답하셨다. 언젠가는 언제인가요? 물으면 대답이 없으셨으니, 그저 어머니만큼 자라면 바깥에 나갈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책으로 보는 세상은 넓었다. 충효니 인덕이니. 천지만물이니. 암컷과 수컷의 구분이니. 그 중 관주가 직접 보고 이해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젠가 자연히 깨치게 되리라. 지금은 머릿속에 넣어두고 새기기만 하라 했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라 했다. 

말을 잘 듣고 싶은 마음. 칭찬 받고 싶은 마음. 이것이 충효냐 물으니 유랑은 그렇다 답해주었다. 충효는 중요한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납득했다. 


낮에는 안채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유랑이 자리를 비울 땐 어머니와 함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머니는 부인회가 있어 나가봐야 한다고 하셨다. 가봤자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가야한다고, 어머니께서 유랑에게 하는 소릴 들었다. 

방금 전까지는 유랑이 저를 봐주고 있었다. 행랑에서 어멈 하나가 달려오기 전까지는. 


'유랑 댁! 아, 아이고 큰일 났어! 지금 뭣 때문인지 향이가 배가 아프다고 난리야!'

'뭐?! 참말이야?'

'빨리 와! 애가 눈이 뒤집혀서 정신을 못 차려!'


딸이 아파서 잠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사이에 잘 계실 수 있겠지요? 네? 별일 없으시겠지요? 급히 떠나야 하는데도, 유랑은 저를 붙들고 몇 번이고 물었다. 고개는 끄덕였으나 얼떨떨했다. 별일이 있을지 없을지 어찌 알 수 있나? 

유랑의 딸은 저와 동년배라 들었다. 그런데도 그 애는 밖에서 지낸단 말이지. 나는 나가지 못하고. 납득이 되지 않았다. 유랑에게 물었지만 애기씨는 귀한 몸이니 더 각별히 취급받는 거라고만 들었다. 

하여튼, 그래서 지금 안채에는 관주 혼자였다. 


"으으응…"


기지개를 켜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벌떡 일어나 마루에 앉았다. 

어딘가 먼 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넘어오는 듯했다. 

지금이야. 이런 기회는 잘 오지 않는다구? 

선녀가 속삭이는 듯했다. 어느새 관주는 신을 신고 문 가까이에까지 와 있었다. 

역시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잠겨 있었다. 문짝을 힘껏 밀고 흔들어 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가게 해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대낮에.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나. 


"나가게 해줘!"


더 크게 소리를 질러 봐도, 누구도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늘 그랬다.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도, 관주가 소리쳐 부르면 조용히 샤샤샥 피했다. 왜? 왜 일부러 피하는 거지? 다음에는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하고 부르기라도 해봐야 하나. 까치발을 들어 담 밖을 보려 해도 눈높이가 맞지 않았다. 

담 아래에 주저앉았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어른이 오길 기다리기만 하는 건 너무 지루했다. 

눈을 감으면 책에서 나온 광야라는 것이 펼쳐졌고, 푸른 하늘보다 더 푸르른 초원이라는 것도, 강물이란 것도 보였다. 얼음이 녹아서 떨어지는 소리가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사나이 기상 같다고 하는데, 직접 듣고 싶었다. 

아까 그 노란 벌레. 그 벌레와 같이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겠지. 돌풍에도 꺾이지 않는 소나무란 것을, 남녀가 서로 주고받고 논다는 모과란 것을 보고 싶었다. 

왜 나는 귀한 집 아이로 나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갇혀 지내야 하나.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고들 하는데, 우물이 뭔지도 모르고 개구리도 뭔지 모르는 나는…. 작은 가슴이 무거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 두 무릎에 고개를 푹 묻었다. 


그 때, 분홍 꽃잎 한 장이 팔랑팔랑 날아와 머리 위에 안착했다. 


"…?"


어디서 떨어졌나 했더니 배롱나무의 꽃잎이었다. 안채에 있는 배롱나무는 크기가 꽤 컸다. 사랑에 심겨져 있는 오얏나무만큼 컸다. 가지는 높고 넓게 뻗어 담 너머까지 자라 있었다. 

잠깐 저것을 타고 넘어가는 생각을 했다. …아냐, 저번에 시도했지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떨어졌었다. 게다가 너무 높았다. 미끄러지지 않는다 해도, 다시 땅에 내려설 때 저 높이에서 떨어지려면 꽤 아플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돕지 않네…."


피이. 입술을 내밀어도 소용없었다. 담 아래에 엉덩이를 더 가까이 붙여 앉으려 했다. 

푹, 하고 밑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앗! 깜짝 놀라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담벼락 밑에 개구멍이 나 있는 것이 풀 사이로 보였다. 


"이런 건 왜 있는 거야?!"


이런 게 있었나?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풀과 돌에 가려져 있어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린아이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구멍이었다. 

낑낑… 흙바닥에 몸을 붙이고 기어가보았다. 아, 된다. 

다행히 담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볼까 재빨리 기어 나왔다. 





어떤 건물의 뒤편이었다.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는데, 불씨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니, 부엌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커다란 무언가가 부스럭거리는 것 같은 소리에 지레 놀라 도망갔다. 


작은 정원이 있었다. 풀밭 사이를 작게 흐르는 개울이 있고, 그 위를 다리 하나가 가로 지르고 있었다. 꽃이 몇몇 심겨 있고 나비가 날아다녔다. 아까 본 꿀벌도 있었다. 

전부 관주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기도 했고. 

신기했다. 이런 곳에 와본 기억은 없는데. 

위를 보면 처마나 단청 모양은 익숙했다. 대체 어디지? 기억이 날듯 말듯 까마득했다. 


'모르는 사람이랑 마주치면 어떡하지? 어머니, 아버지도 아니고, 유랑도 아니고, 얼굴을 아는 행랑 사람도 아닌 사람을….'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모를 감정으로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봄바람이 산들 불어와 귓가를 간질였다. 

모든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개울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고. 꿈에서나 맡아볼 것 같은 향기가 감돌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에, 정신을 빼놓고 멍하니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 이야기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주춧돌 뒤로 바짝 붙어 숨었다. 


'아버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이 담소를 나누며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손님이겠지.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 


아, 기억났다. 이곳은 사랑채였다. 

아주 가끔, 이 사랑채에 불려왔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버지는 손님이 오시면 종종 관주를 불렀다. 부산스럽게 의복을 정돈하고, 유랑의 손에 붙들려 사랑으로 나아갔다. 익숙한 손님도 있고 낯선 손님도 있었다. 할아버지나 당숙 같은 친척이 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자신을 퍽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안채에 계실 적엔 관주가 지내는 건넌방 쪽은 눈길도 주지 않으시는데 말이다. 왔다 가시는 줄도 모를 때가 있었다. 알고 밖에 나가 인사드리려 하면 유랑이 붙들어 도로 앉혔다. 그리고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고는, 쉿 하고 조용히 시켰다. 

아버지는 먼 존재였다. 하지만 사랑에서 자신을 내보일 때의 아버지는 상냥하셔서. 관주는 아버지께서 내심 자신을 아끼시는 줄 알았다. 그걸로 족했다. 

아버지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아버지는 손님을 배웅하려는 듯 사랑채 밖으로 나가셨다. 사랑방에서 노복 하나가 술상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아까 부엌에 있었던 게 저 사람인가. 그리고 금방 또, 사랑채는 조용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사랑방 안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산수가 담백하게 그려진 병풍, 검게 옻칠되어 있는 가구들. 누런 보료. 익숙한 방의 모습이었다. 전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어지럽고 향기로운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아버지 냄새. 시원하고, 달콤한 것 같은 향내였다. 안채의 어느 곳에 가도 맡을 수 없었다. 한껏 들이키면 마음이 편해졌다. 

한 가지, 이전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벽에 무언가 걸려있었다. 


"…? 이건?"


가까이 가서 올려다보았다. 아. 

예전에 이 방에 왔을 때 썼던 글씨 종이였다. 


"아… 아버지께서"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따뜻한 무언가가 두둥실 차올랐다.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피어나고 있었다. 

역시, 아버지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구나. 표현을 아끼실 뿐. 주체할 수 없는 떨림에 손을 뻗어 종이를 만져보았다. 

시경에서 외운 시가 있었다. 그걸 그대로 써서 손님께 보여드렸는데. 맞아, 아드님께서는 영재가 아니냐고, 그렇게 칭찬을 받았다. 시의 해석도 줄줄이 읊었더니 맹랑한 녀석, 그 말뜻이나 아냐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니 그럴 만도 하다며, 언젠가는 다 알게 될 거라 해주셨다. 지금은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이 감정은 감격이라고 하는 건가? 부모를 사모하는 마음만큼은 무엇보다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관주는 웃었다. 통통한 얼굴에 활짝 미소가 펴졌다. 홀로 방에 갇혀 있을 땐 결코 느낄 수 없는 저릿한 마음이었다. 벽에 이마를 대고 부볐다. 

아아, 아버지. 아버지.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부모님의 품에 얼굴을 묻다니, 평소라면 부릴 수 없는 응석이었다. 괜찮아. 알고 있었다. 서로 마음만 깊게 통하면 돼. 군자는 내보이지 않는 속내까지 알 수 있다고 했어. 서로 짐작하고 아낄 수 있다 했어. 

괜찮아…. 괜찮아…. 


"어머, 얘! 너 뭐니?"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잠시간의 환상이 깨졌다. 

행랑에서 일하는 사람인가? 여종이 관주를 보고 놀라서 굳었다. 사랑채를 청소하러 왔는데 웬걸. 처음 보는 아이가 주인나리의 공간에 멋대로 들어와 있었다. 

행색이 남루했다면 당장 끌어냈겠지. 그런데 걸친 옷을 보아하니… 정체를 짐작한 여종은 경악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서, 설마 도련님?!"


도련님? 누굴 말하는 거지? 관주는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유랑을 제외한 행랑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가? 의아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만 있는데, 여종 혼자 겁에 질려, 가지고 온 대야가 바닥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벌벌 떨었다. 


"여, 여긴 어떻게 나오셨담? 아 맞아, 나리! 나리께 말씀드려야"


귀신이라도 본 줄 알겠다. 저기, 하고 부르는 관주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여종은 허둥대면서 어디론가 달려갔다. 나리! 나리마님! 하고 외치면서. 

…기다리면 되는 걸까? 자신이야 말로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다. 하긴… 아버지께서 없을 때 허락도 안 받고 나왔으니, 들켰으면 하는 수 없이 벌을 받아야겠구나. 

손님이 떠나고 남은 방석이 있었다. 그 위에 차분히 가 앉았다. 

들킨 건 아쉽지만 잘못했으니 용서를 빌어야 했다. 아무리 무섭고 힘들어도 참아야 했다. 실망은 부모님께서 더 하실 테니까. 효자라면, 말을 들어야지. 떨리는 주먹을 꾹 쥐었다. 


오래지 않아 아버지가 방안에 오셨다. 뛰어 들어오다시피 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손님을 배웅하실 때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지금의 아버지는 태산 같이 커다래보였다. 

아버지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다. 

그거 외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너무 캄캄해서. 


"아버지. 저"


뒷덜미가 잡혔다. 


마루로 질질 끌려나와, 내동댕이쳐졌다. 작은 몸이 굴러 기둥에 정통으로 박았다. 

방금 자신에게 벌어진 게 어떤 일인지, 관주는 바로 깨닫지 못했다. 기둥에 부딪힌 팔꿈치가, 무릎이 욱신거리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부딪힌 곳이 뜨거웠다.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콰르릉! 눈앞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듯했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뒤통수도 기둥에 부딪쳤나? 

아버지의 손이 뺨을 후려쳤다. 누가 비명을 지른 것도 같다. 


감히, 감히. 머리 위로 날벼락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주변은 깜깜해지고, 번쩍거리는 고통이 이어져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회초리로 종아리 터지게 맞아본 적은 있어도, 이토록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폭력은 처음이었다. 


유랑 댁에게서 아무 말도 못 들었냐고. 그렇게 외치시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아버지. 죽을죄를 졌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자신도 외쳤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입안에 뜨겁고 짭조름한 게 고여서 숨을 막히게 했다. 비린내 나는 그것을 토할 틈도 없이 발길질이 날아왔다. 


귀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소경이 된 건가 덜컥 무서워졌다. 시끄러웠다. 높고 시끄러운 소리가 뭉쳐서 커다란 바늘이 되었다. 귀를 마구 찔러왔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애걸하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샌가 사람들이 몰려와 소동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 중 말리는 이가 누구도 없었다. 


"나리! 나리!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용서해주세요."


누군가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어 멈추게 했다. 유랑인가? 어뜩한 시야 속에 유랑의 치마로 보이는 것이 들어왔다. 

좀 전까지 관주를 차던 다리가 유랑의 복부를 찼다. 마루 아래 돌계단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유랑은 다시 몸을 일으켜 엎드려 빌었다. 


"도대체 단속을 어떻게 하기에 애가 여기까지 기어 나와?!"

"잘못했습니다, 나리! 죽여주십시오! 애, 애기씨는… 애기씨는"

"한 마디라도 더 꺼냈다간 진짜로 죽여 버릴 테다. …애 데리고 안채로 꺼져!"


아버지가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여태껏 잘못을 저질러도 이렇게까지 화를 내신 적은 없었는데. 

안채 밖으로 허락 없이 나온 것이, 아버지의 방에 멋대로 들어온 것이, 글공부를 소홀히 한 것보다 더 죽을죄인가? 어머니 말을 안 듣겠다 떼쓴 것보다도 더 큰 죄인가? 

머리가, 입안이, 온몸이 다 아팠다. 울 기력도 더 없어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2주 휴재 후, 6월 2일 51화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CHEON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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