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터져라 부르고 나오다가 무릎 왕창 깨졌던 날 (전생의 사진입니다)


https://youtu.be/OnO92YGNwD8

"꽃피는 봄이 오면".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고, 노래방에서도 즐겨 부르던 노래다. 당시에 함께 노래방에 갔던 한 동행인은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어쩐지 얼이 빠진 얼굴을 보여줬다. 잘 불러서가 아니라, 내가 노래를 그런 식으로 부를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얼떨결에 같은 자리에 함께했던 동행인은 나를 조용하고 남의 시선을 꺼리는 성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편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격이 그렇다면 가성을 섞어 남들 부르듯 (내 주변에는 고음을 가성으로 처리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부를 줄로만 알았다는 그의 예상과 달리 나는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불렀었다. 어떤 파트든 진성으로, 별다른 특징이나 강점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진성으로.

적어도 중학생 때까지 나는 노래를 진성으로만 불렀다. 낮은 톤의 목소리를 동경하던 나는 비교적 높은 내 일상 목소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노래를 부를 때라도 낮은 톤을 추구했다. 조금 낮아진 톤으로 진성으로만 부른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가성을 어떻게 내는지를 몰랐기에 목이 아파지지 않는 선에서 내가 아는 음악을 따라하는 게 고작이었던 나는 목에서 배에서 나오는 대로만 노래를 불렀다. 노래방의 민족인 한국사람들 사이에서는 차마 명함도 못 내밀 만큼 평범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적어도 목소리의 높낮이 빼고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 때는 그랬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친구들이랑 같이 부를 만한 신나는 노래들과 내 목소리에 잘 맞는, 즉 부르기 좋은 노래들을 아예 리스트로 만들어놓고 허구헌날 애들과 노래방에 들락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웬만하면 부르지 않았다. 노래 망치기가 싫어서. 어설픈 실력으로 부르고 싶지가 않아서, 그냥 적당히 나에게 잘 맞는 곡들을 열심히 찾아내기만 했다. 가성을 낼 줄 몰라 진성으로만 노래부르던 나는 어느새 후렴구마다 가성을 섞어 목소리를 확 줄이는 노래방 인간이 됐다. 코인노래방이든 시간제 노래방(보통 코노보다 넓다!)이든 노래방 가는 건 그렇게 좋아하면서 정작 내 노래는 좋아하지를 않았고, 내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게 싫어 고음부는 되도록 가성으로 처리하는 게 습관이 됐다. 조금만 높아도 가성을 썼더니 이제는 진성으로 음을 올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고, 노래방 갈 일이 줄어든 근 몇 년 간은 노래 부르는 법을 잊고 살았다. 최근에는 노래가 그리워져서 가끔 집에서나 흥얼거리고 있지만, 시끄러울까봐 완전 가성 내지는 허밍으로만 불러버릇 했더니 이제는 내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일 자체를 상상도 못 할 지경이 됐다. 그나마 노래방에 가고 반주가 깔리면 제대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코로나는 잠잠해질 줄을 모르고, 노래방 향수병이 생길 지경이다.

여전히 내 목소리가 조금 부끄럽지만, 과연 진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정말로 그냥 노래방이 그립다. 블루투스 마이크로는 노래방 특유의 그 흥이 살아나지 않아. 정말정말 그립읍니다.......

글로 세상을, 또 당신들을 만나는 여성주의자이자 레즈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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