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바란 건 아니었다.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싱크대 가득 설거지가 쌓인 집에 들어가 오늘은 뭘 먹을지 고민하며 한숨을 쉬는 인생을 살 바에는 돈 좀 더 들여 사 먹고 시켜 먹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바쁜 현대인이었다. 내 주방은 항상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커피 자국이 둥그렇게 남은 머그잔 몇개만 싱크대 안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애인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없었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사랑 그 외엔 그 무엇도 눈에 보이지 않을 시기였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랑을 나누기에 급급해 주변 요소들은 잊어버리는 우리 둘이었다. 그 어떤 사실이 뒤에 기다린다고 해도 나는 이 사람만을 평생 사랑 할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우리의 법적 관계를 인정하는 종이 한 장은 법원을 통과한 뒤였다.

결혼식 따위는 우리 스타일이 아니었다. 신혼 집도 새로 들어 갈 거 없이 조금 더 넓은 내 집으로 애인이 들어 오기로 결정이 났다. 장장 5년을 만나면서 이 만남이 익숙해진 나도 같이 살 날짜가 다가오기 시작하니 문득 애인의 사생활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건 나의 큰 실수였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가까운 곳으로 떠났다. 분위기 좋은 호텔 베란다에 와인 한잔 기울이며 우리는 키스를 하지 않았다. 우리의 앞에는 와인에 잘 어울리는 안주거리가 아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백지장에 이전의 삶을 그리고 이후의 삶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다운 발상이었다.

사 먹자고 설득하려던 건 나였지만 요리가 취미라는 애인은 굳이 저녁만큼은 본인이 해 주고 싶다며 내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나는 그러라 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척을 했지만 누가 밥을 해 준다니 내심 없지 않아 기대가 되었다. 아침 잠이 많아 아침은 못 차려 준다 했다. 그러라 했다.

결혼한지 벌써 6개월째 나는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다리를 달달달 떨기 시작한다. 가끔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듯한 착각도 한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이마를 축축해진 손바닥으로 닦아 내고 현관문 앞에 선다. 손에는 오는 길에 사 온 치킨 한 마리와 맥주 두 캔이 들려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자 묘한 냄새가 거실에서부터 풍겨온다. 나는 조심스레 문 옆에 치킨과 맥주를 내려 놓고 빈 손으로 걸어 들어간다.  거실을 통해 부엌으로 들어가면 그 묘한 냄새가 악취가 되어 내 코를 찌른다. 저녁이라고 꼬박꼬박 찌개를 끓여주는 정성은 고마우나 차라리 타도 먹을 수 있는 구이 라던가 간이 안 맞아도 입에 넣을 수 있는 볶음 등이 아니라 굳이 찌개 여야 했을까. 도대체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가늠하지 못 할 정도로 이상한 냄새가 방 곳곳에 배어있었다.

아직 국자로 수상한 냄비를 휘휘 젓고 있는 애인님 뒤로 다가가 살포시 허리를 껴안았다. 애인이 간을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간을 보는 애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늘은 좀 쉬지. 저녁 만드는 거 안 힘들어?”
“응! 재미있어. 자기 옷 갈아 입고 와요. 다 됐어 이제.”

오늘도 찌개는 황갈색을 띈다. 된장인 듯 하지만 맛을 보면 그 센 된장 맛도 사라져 있다. 가끔 맑은 지리 탕을 끓이기도 하는데 뒷말은 않겠다. 나는 살포시 코를 막고 돌아선다. 한겨울에 덥다며 여기저기 창문을 열어보지만 찬 공기만 들어 올 뿐 이 냄새는 어디로든 빠지지 않는다.

늘 입는 잠옷을 입으려니 옷에도 냄새가 베였다. 그 옷을 집어 던지고 방향제가 있는 옷장에서 새 옷을 꺼내 입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도 나를 피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설익은 밥을 한 숟갈 들었다. 아마 이 집 가득 채우고 있는 냄새가 내 몸 곳곳에 배였으니까 싶다. 젓가락으로 밥을 뜨자 밥알이 후드득 떨어졌다. 내 몸 뿐만 아니라 겉옷부터 속옷까지 이 이상한 찌개의 냄새가 안 베여 있는 곳이 없으리라 장담한다. 떨리는 손으로 찌개에 숟가락을 푹 집어 넣었다. 오늘은 어디서 달콤한 냄새가 난다 싶었다. 국물과 함께 떠 낸 건 반쯤 녹아버린 초콜릿이었다.

“어때? 발렌타인 초콜릿이 남아 있길래 넣어 봤어. 맛있어?”

나는 그냥 싱긋 웃는다 그럼 애인은 또 좋다고 헤헤 웃으며 구역질 날 것만 같은 찌개를 푹푹 퍼 먹는다. 나는 눈을 살포시 감고 다시 숟가락을 찌개에 넣어본다. 사랑하니까.

치열한 상상력을 1000자에 꾹꾹 담습니다

1000words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