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닭 쫓던 개가 지붕 쫓는다더니."

"훌쩍.... 뭔데요!! 그러는 조교님도 댕댕2면서."

"아니거든? 하. 진짜."


누군가의 계획대로(?) 놀다가 날이 저물어 버린 세 사람과 한 마리는 작은 펜션에 머물고 가기로 했다. 미리 애견동반 가능한 펜션이 예약되어 있던 것에 대해 의심조차 품지 않은 지호가 미호 밥을 주러 간 사이, 공원에서부터 잔뜩 토라져 있던 하얀은 결국 후엥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상아는 심란한 와중에 이 꼬마까지 함께 있으니 영 죽을 맛이었다. 


"아 나쁜 년. 어떻게... 어떻게 그래? 치사하게."

"손이 빠르네. 도도해서 안 그럴 것 같더니. 하."

"그니까 그 불여시 조심해야 한다 했잖아요!!"

"왜 나한테 성질이야? 어이없네."

"흐에엥."

"울지 말고. 이래서 애들은...."

"구지호랑 저랑 한 살 차이거든요?!"


베개를 집어던지며 꼬라지를 부리는 모습은 영 10대 같았지만, 상아는 후 한숨을 내쉬곤 곰곰히 생각했다. 어떡하지. 꼬마2가 구지호와 키스까지 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한다. 일단.


"일단 아직 사귀는 건 아니잖아."

"훌찌럭. 뽀뽀 했는데 안 사귀어요? 조교님 왕문란이시네요."

"키스한다고 다 사귀는 건 줄 알아? 원래 요즘 애등른 키스부터 시작한댔어. 사랑을."

"언제 적 노래 가사야. 저 중학생 때 나온 노랜데요."

"너 진짜 꼬마구나. 아무튼."

"방해하자는 거예요?!"

"구지호 닮아서 눈치없는 줄 알았는데."

"어른스러운 줄 알았는데 꼰대기만 하네."


구시렁거림에 상아가 여우 눈을 매섭게 뜨며 노려보았고 하얀은 깨갱하며 손을 내저었다. 


"뭐?!"

"아니에요. 어쩌자고요. 뭘 어케 방해해요. 이미 잘된 것 같은데."

"그건 우리가 머릴 맞대고 고민해 봐야지."

"대책도 없으시넹."

"아까부터 자꾸 깐족거리지...."

"아까부퉈 자꾸 깐족거리쥐~"

"아 열받아."

"킹받으세여?"

"뭐? 킹... 아니 됐어."


머리가 다시 지끈거린다는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는 상아에 하얀은 눈썹을 그러모으곤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곤 다시 다리를 모아 끌어안고 꽁알거렸다. 


"그래서 어떡하실 건데요...."

"구지호는 눈치가 없고 귀가 종잇장이니까."

"넹."

"발렌새아가 걔가 사귀자고 말한 거 아니면 아직 희망이 있어."

"흐음? 아, 근데 불여시 구지호한테 고백했는데, 구지호가 여운이 좋아해서 까인 줄 알걸요?"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봉, 뭐요?"

"어휴. 무식.... 무슨 소리냐고. 여운이? 지호네 전 강아지 아니야?"

"넹. 좋다했는데 여운이 좋다고 그랬는데. 불여시는 여운이가 구지호 전여친인 줄 알아요."

"...멍청이야?"

"그죠. 암튼 그래서 그 불여시가 언제든 먼저 내지를 용기가 있는 불여시예요."


'상당히 자존심이 세 보였는데. 의외네.' 상아는 속으로 생각하고선 턱에 손을 얹고 다시 차분하게 고민했다. 하얀은 뭔 말을 하다가 맨날 혼자 생각에 빠지냐며 삐약거리며 성질을 내고 있었다.


"흐음. 일단 너랑 나랑 상황을 알아보자."

"같이 해요?!"

"상황파악 안 돼? 너랑 나랑 일단 동맹이야."

"동맹?"

"그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책 좀 읽어."

"알거든요?! 어이터져. 아니 뭔 동맹이냐고요. 구지호는 하나야 둘이 될 순 없는데."

"무슨 소리지...? 구지호야 하나지. 일단 상황을 일단락시켜야 기회가 올 거 아냐? 전략적 제휴라는 거지. 아니다. 오월동주가 더 적합할꼬?"

"한자 존나 좋아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입술을 쀼 내민 하얀은 일단 구지호 족치자는 거죠 하며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40.2.


둘이 중상모략을 하는 동안 미호의 밥과 식후 물까지 살뜰하게 챙겨 준 지호는 이히히 웃으면서 서율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아까 먹금당한, 가평과 잣과자에 대한 추억을 나눌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건 전화의 상대는 지호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 뭐? 가평?

"웅...!"

- 누구랑?

"그, 상아 언니랑. 상아 언니가아. 미호 보고 싶대서... 도그런 왔는데 막 놀다 보니까 늦어 갖구 자고 가기로 했는데. 여기 펜션 되게 좋다? 언제 서율이랑도...."

- 전여친이랑? 구지호, 너 돌았어?

"아이! 우리 이제 그런 사이 영 아니야...! 그래도 서, 서율이가 기분 쪼금 그럴까 봐. 한 명 더 같이 왔어...!"

- 쪼금이 아니라... 누구랑 갔는데.

"하얀이...!"

- ...ㅆ


수화기 건너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된소리에 지호는 살짝 쫄았다. 서율은 온갖 세상의 선하고 아름답고 착한 것들을 떠올리며 화를 다스리고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 그니까 우리 지호, 지금 전여친이랑, 그 전에 좋아했던 애랑 같이 여행을 갔다. 이 말이구나~ 와~ 정말 미쳐 버리겠네?

"으아? 서율아."

- 서울 올라와서 데이트 때 봐. 넌 반 죽었어. 

"서율아? 서율아아?!"


끊어진 전화에 황망하게 서율의 이름을 부르며 주저앉은 지호는 미호를 꼭 끌어안고 울먹였다. 미호야 언니 어뜨카지. 사귀기도 전에 차이거나 죽게 생겼어. 땅을 허우적거리던 지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뽀뽀 하면 용서해 주지 않으까...?"

"먕?"

"가서 뽀뽀하고 빌어 봐야게따...!"

"먕...!"

"으이. 근데 너 데리고 어떡하지. itx 타면 되나? 으이."

"먕먕."

"으어 막 택시기사 아저씨가 멍멍이 안 돼요? 이러면...."


그래도 막차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지호가 부산스레 옷가지며 미호의 용품들을 챙기고 있으니 (영양가 없는 작전회의를 마친) 상아와 하얀이 방에서 나왔다. 부산스럽게 짐을 챙기는 지호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구지호! 너 뭐 해?!"

"쌤 뭐 하는 거야?!"

"으어. 서, 서율이가 화나서... 서울 가려구."

"뭐? 무슨 행동파야?!"

"서율이 화나면 무섭단 말이야...."

"걔가 왜 화났는데."

"언니랑 하얀이랑 가평 와서...."

"뭐? 그걸 다 보고를 했어?"

"웅. 가평 얘기 하고 싶어서...."

"너도 너다. 구지호. 일단 앉아 봐. 미호도 내려놓고. 짐 싸는데 미호는 왜 안고 있어?"


차분한 상아의 목소리에 패닉이던 지호는 품안에서 낑낑대고 있던 미호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다시 쪼그려앉았다. 그 모습이 하찮아서 상아는 오늘 152만 번쯤 느낀 현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지호의 까만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달랬다.


"어차피 지금 간다고 상황 바뀌는 것도 아닌걸. 오히려 야밤에 처들어가면 불편하지."

"아, 그러려나...."

"그래. 일단 지호야."

"네."

"너 신서율 학생이랑 사귀는 거야?"

"에에. 그, 에또, 음. 한없이... 회색에 가까운 흰색이랄까요."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겠지. 아직 썸이야?"

"그...."


지호는 서율과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어라? 우리 썸인가. 키스는 40번 쯤 했고 금요일에 데이트 하기로 했는데, 아직 사귀자는 말은 서로 안 하긴 했다. 그러고보니.


"어, 어... 좋, 좋아한다고는 했나...?"

"에헤이. 쌤. 그냥 뽀뽀친구야?"

"뽀, 뽀뽀친구?"

"그냥 그렇고 그런 욕구만 푸는 사이 아니냐구."

"아니. 아니야아...!"

"사귀는 사이 아니어도 키스는 할 수 있지."

"으어?"


혼란에 빠진 지호는 다시 폰을 붙들고 지금 당장이라도 확인하려는 듯했다가 또 용기는 안 나는지 허둥댔다. 하얀은 허둥지둥 하는 지호에 찐한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판사판 공사판이었다. 


"지금 막 달려가서 강아지 안고 고백할 거야? 아니잖아."

"그거야... 흐엉. 어뜩하지."

"상대는 그럴 생각 없는데 들이대면 촌스러 쌤!"

"일단 좀 시간을 두고 생각해. 지호야. 침착하게."

"침착... 릴렉스...."

"그래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해. 일단 오늘 쉬어."

"그래! 쌤 같은 인프피는 결정을 하는 것보다 미루는 게 더 중요하니까!"

"인프, 뭐?"

"그런가... 내가 넘 감정적으로 접근했나...."


'어쩔 거예요. 생각보다 완전 진심이잖아요!'

'나도 몰라. 일단 당장 가서 고백하려는 건 막았잖아.'

'구워 삶는 데 선수시네요. 요리산줄.'

잉잉 우는 지호의 등을 두드리며 두 사람은 입모양으로 숙덕거렸다.



40.3.


"은근 철벽이네."


애인이 아니라 키스프렌드라는 말에 속이 상했는지, 그뒤론 입을 꾹 다물고 서율과 있었던 일을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 지호에 상아는 일단 당장 달려가지 않게 막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같이 잘 거라고 생각한 안방에서 혼자 자게 된 건 좀 아쉬웠으나 울다가 쪽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근 지호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중앙에서 그렇게 누우시면 어캐요. 이기적이시네."

"뭐? 왜 들어와."

"아 뭐예여. 저 침대 아님 못 자요."

"나랑 자자고? 너 내 식 아니야."

"아, 아니. 아니. 아 문란해...!"

"농담이야. 침대? 아야야."


하얀을 보니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 그 모습에 하얀은 다시 쀼 하고 입술을 내밀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약을 건넸다. 


"나이 먹으면 고생이네요. 울 엄마두 맨날 편두통 때메 고생하세요."

"나 그 정도 아니거든...? 어이없어."

"아가 취급 잔뜩 하셔놓곤? 암튼 약이용. 아까 사옴."

"...고마워. 자기 과외 선생 닮아서 눈치 없고 멍충한데 또 자상하긴 하네.'

"안 닮았다니까요. 약 먹으러 안 가세요?!"

"가야... 너?"


베개를 들고 침대로 다이브할 준비를 하는 하얀에 상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약 먹으러 간 사이에 침대를 독차지할 심산이 분명했다. 


"속이 새까만데? 너 여기서 자려고 그러지."

"쳇. 들켰다. 눈치 빠른 어른은 이래서 싫다니까."

"허. 1원 한 푼 보탠 것도 없으면서 상석에서 자겠다? 거실로 썩 가."

"어어? 저 거실서 재우면 문 닫아 버릴 거예요. 에어컨 거실에만 있눈데- 거실 문 앞에서 자야지."

"아 진짜...."

"뻥이에요. 바닥에서도 잘 자여. 작업실에서도 자는데. 멀."

"뭐?"

"그냥... 쫌 심란해서. 같이 있음 안 돼여?"


키도 크면서 베개를 꼭 안고 애 같은 표정을 짓는 하얀에 상아는 한숨을 푹 내쉬고 옆자리를 내 주었다. 하얀은 고개를 꾸벅 숙이곤 옆에 누웠다. 그리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힝 소리가 들렸다. 


"아. 얘. 또 우네...."

"훌쩍. 이씽. 못된 구지호. 고백받아 주고 잠수타더니... 개새끼...."

"고백을 했어? 네가? 지호한테?"

"훌쩍. 넹. 들어보실래요? 눈물 없인 못 듣는 새드스토린데."

"허위 및 과장 광고가 심한 것 같은데...."

"힝."

"...지루한 얘기라서 잠 안 오는 여름밤에 딱이겠네. 약 먹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상아는 한숨을 쉬며 약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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