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전주가 깔린다. 아직 노래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아, 이 노래!"하며 아는 채 한다. 방청객에는 앉은 자리 옆으로 전구들이 보인다. 


 왼쪽부터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그리고 노란색. 흐르는 전주에 맞춰 알록달록 전구들이 하나둘 자기 색을 드러낸다. 


 노래가 시작되기 무섭게 ‘나도 가수다’라는 듯, 함께 노래를 부르는 방청객들. 전등불이 켜진 게 그렇게 대수일까? "와, 역대 최고예요!" MC들이 소리를 높인다. 


  방청객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며 한 남자가 일어난다. 깜짝 놀라는 사람들. 추억의 목소리가 무대 뒤가 아니라 방청석에 함께 앉아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이하 슈가맨은 2016년 7월 12일 종영된 JTBC의 예능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슈가맨'을 소개했다. 사람만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진 음식들이 있다. 


 2017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악의적 보도와 조류인플루엔자 유행으로 치솟은 계란 값 때문에 폐업한 대왕 카스텔라. 


 식용 파라핀을 사용했음에도 ‘어떻게 양초 성분을 음식에 쓰냐’는 파문으로 사라져야 했던 벌집 아이스크림.


 뿐만 아니라 여러 음식들이 별똥별처럼 잠깐 반짝였다. ‘한번 먹어보자’ 하며 시장에 떴을 때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유행’


 특정한 사회 안에서 일정한 사람들이 유사한 행동이나 문화를 일정 시간 공유하는 모습을 ‘유행’이라고 한다.


 초등학생 시절 컴퓨터실에 들어가면 유독 스페이스 바에만 손때가 많이 묻어있었다. 포켓몬스터 게임 때문이었다. 일부러 만화를 보지 않는 이상 피카추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야, 컴퓨터만 하지 말고 밖에서 좀 놀아라!" 어머니의 잔소리가 효과를 본 걸까?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잡았다. ‘우리 집이 포켓스탑이 되었다’며 사람들이 몰려 기분이 좋다며 웃는 사장님 이야기가 가끔 들렸다.


 2016년 7월 출시된 게임 '포켓몬 GO'의 유행으로 포켓몬 인형이 다시 인기를 얻었다. 하나 둘 씩 늘어난 인형 뽑기의 유행은 포켓몬 GO의 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한정판으로 출시되었던 롱패딩은 2000년 중반부터 2014년까지 거리를 수놓았던 노스페이스 패딩이 떠오를 만큼 인기를 끌었다.


  "너야? 날 불러낸 게 너냐고." 얼떨결에 도깨비를 소환한 작은 소녀 은탁에게 따지던 김신의 모습을 아직 기억하는가? 


 tvN 금토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를 비롯한 배우들은 긴 롱코트를 입고 출연했다. 덕분에 2016년부터 약 1년간 롱코트가 유행했다. 

 

 유행은 계속된다. 작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이래로 400번 저어 만드는 커피와 계란. 그리고 닌텐도 ‘동물의 숲’이 인기였다.


 순간적인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은 유독 ‘집단의식’이 강하다. 개인의 취향을 접고 유행을 따라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소외당하는 것 같다. 집단에서 뒤처지는 것 같다. 이런 불안함이 유행을 따라가기 만들지 않았을까? 여기 집단에서 소외될까 봐 불안했던 한 여우의 이야기처럼.


 "아이 씨, 이게 뭐야!"


 여우 한 마리가 덫에 치었다. 꼬리가 잘렸다. "아휴, 창피해서 못 살겠다!" 아픈 것보다 풍성하고 윤기가 흐르는 꼬리가 잘린 것이 여우는 걱정이었다.


 "야, 잘 들어! 너희 모두 지금 당장 꼬리를 잘라라! 이거 별 필요도 없이 무겁기만 하잖냐!"


 다른 여우들을 모아 ‘이까짓 꼬리 뭐가 필요하냐’며 연설을 늘어놓았다. 다른 여우들도 똑같이 되면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우 한 마리가 유심히 그 말을 듣더니 말이 끝나자마자 말했다. "이봐, 우리가 꼬리를 자르는 게 너에겐 뭔가 이익이 되겠지. 안 그래? 아니면 네가 그렇게 침을 튀기면서 말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야."


 여우는 왜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야 했을까? ‘나만’ 꼬리가 잘렸으니까. 여전히 다른 여우들에게는 꼬리가 달려있으니까. 자기만 다르니까. 


 더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여우에게는 공포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꼭 남과 같아야 하는 걸까? 


 대학 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자연스레 지하철을 자주 이용했다. 처음부터 익숙한 건 아니었다. 면접을 보러 갈 때만 해도 승강장에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며 학교까지 갔으니까.


 2호선을 처음 탔을 때 일이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처음이라서 많이 헤맸다. 하필 극악의 환승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 중 하나인 신도림 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하필 퇴근 시간이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내렸던 지하철은 그나마 양호했다.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지나가야 했던 역 안은 개미집처럼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처음 가는 길이라 분간이 잘 안 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더 정신이 없었다. ‘아이 씨, 몰라!’ 사람들 사이에 휩쓸렸다. ‘뭐 그냥 이 사람들 따라가서 물어보지 뭐’ 생각했는데, 잘 못 왔다.


 문래 방향으로 가는 순환선을 타야 하는데, 까치산 방향 지하철이 다니는 승강장으로 간 거다. 그때 알았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간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 똑같아 보이는 쌍둥이조차 지문은 다르다는데, 굳이 모두와 함께 발을 맞춰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잘린 꼬리보다, 꼬리가 잘려 무리에서 소외될 것을 걱정해 울었을 여우의 눈물을 닦아주면 안 되는 걸까?


 ‘리미티드 에디션’


 한정된 수량만 판매하는 고가의 제품에 붙는 이름이다. 보통 제품들보다 비싸게 팔린다. 애지중지 하며 귀하게 모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유일무이한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님은 책 ‘자존감 수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실용성, 쓸모의 가치로 따져서는 안된다. ‘존재의 가치’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이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존재들이다. 각자가, 개개인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란 말이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꼬리 잘린 여우가 그런 것처럼, 당신과 나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괜찮다. '꼬리를 어서 잘라라!' 목에 힘주고 소리 지를 필요 없다. 꼭 다른 이들과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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