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야. 너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요새 바쁘고 피곤해서 그래.”





뭐 시켰어? 여주가 가방을 옆에 놓고 소희를 보며 얘기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시킨 메뉴를 말해왔다. 여주가 살짝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먹고 싶은 거 다 시키지. 나보다 네가 더 말랐는데? 얘기하자 이래도 스크린 화면에서는 엄청 부해 보인다며 말해온다.





“아침에 조금만 부어도 기사는 살쪘다고 올라오고 그래.”


“어디 언론사에서.”


“왜. 네가 어떻게 해보게?”


“못할 거야 없지.”


"아이고- 됐거든요.”





주문한 메뉴가 나왔고 소희는 음식을 덜은 앞접시를 여주 앞에 놔줬다.





“내가 뭐 어린 애니?”


“얼른 먹어. 그러고 보니 내가 너 저번에도 뭐 먹는 걸 못 봤어.”


“잘 먹고 다녀. 걱정하지 마.”


“먹고 다닌 다는 애가 손목이 이게 뭐냐!”


“...어후, 나 이 소리 며칠 전에도 들었어.”


“누구한테. 지환오빠한테?”


“아니. 재민이한테.”





소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주를 쳐다봤다. 나재민? 여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걔는 뭐 바쁘지도 않대?”


“바쁘겠지. 근데 일은 하더라도 끼니는 잘 챙겨 먹어야 되지 않냐 하더라.”


“그래서 그 끼니를 너랑 먹고?”


“응. 혼자 밥 먹기는 싫대.”


“웃겨 정말. 핑계 대는 것 봐.”





소희가 코웃음을 치며 앞에 놓인 샐러드를 먹었다. 야. 여주야. 괜찮은 거 같아. 여주가 시선을 올려 뭐가 괜찮냐는 눈빛으로 소희를 쳐다봤다. 소희가 입꼬리를 올려 빙긋 웃으며 조건도 좋지. 얼굴도 잘생겼지. 게다가 제일 중요한 거. 나재민이 너 좋아하잖아. 여주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







“한번 만나봐. 난 찬성이야.”


“찬성 같은 소리 한다. 그럴 생각 없어.”


“치이, 난 걔보다 나을 거 같은데.”


“...걔하고도 이제 더 뭐 없어.”


“뭐? 정말?”





끝냈어? 궁금한 듯 물어오는 소희의 질문에 여주가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끝내고 말고 할 게 있니. 뭐가 있었어야 끝내지. 여주 혼자 동혁을 보며 가지고 있던 마음이었고, 어차피 처음부터 그 마음을 전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좋은 친구로 남는 거지.”


“친구 같은 소리 하네.”





조금 전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한 소희를 보며 여주가 웃었다. 그동안 여주를 옆에서 봤던 소희로서는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여주의 선택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표현했다. 거기까지였다. 여주는 이런 얘기는 그만하자며 다른 주제로 돌렸다.






*






회사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하던 여주는 아직 퇴근할 시간이 아니기는 했지만 자리를 정리했다. 문을 열고 전무실에서 나오자 차 실장이 여주를 쳐다봤다.





"일이 있어서 오늘 조금 일찍 들어갈게요. 차 실장님도 정리하시고 일찍 들어가요."


"아, 네. 알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엘리베이터를 탄 여주는 지하주차장에서 내렸고 차에 올라타 출발했다. 잠깐 신호를 받던 중 동혁에게 연락이 왔다. 동혁이 예진을 만나기 전에는 아니었지만 예진을 만나고 난 뒤로부터는 여주는 동혁과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을 했었고 전화를 하더라도 딱 할 말만 하고 끊었었다. 그게 예진에 대한 예의인 거 같아서. 하지만 동혁은 그런 신경을 전혀 안 쓰는지 예전처럼 자주, 아니. 예전보다 더 잦게 여주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많이 바쁘냐는 문자에 아니. 나 퇴근했어. 하고 짤막하게 답장을 하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 왜? 왜 벌써 퇴근했어?


"약속이 있어서 일찍 퇴근했어. 너는 안 바쁘니? 신제품 출시 행사가 내일 모레인데."


- 아, 여주야. 너랑 일 얘기하려고 전화 건 거 아니야.


"그럼 왜?"







-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그 말에 여주가 입술을 다물었다. 뭐라 대답해야할지 생각이 안났다. 목소리가 듣고싶었다니. 왜? 그런 말을 왜 해?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동혁은 전화가 끊긴 줄 알았는지 여보세요. 여주야. 하며 여주를 부르고 있었다. 





"동혁아. 나 운전 중이야."


- 약속 언제 끝나?


"모르겠네."





이따 약속 일찍 끝나면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신호가 바뀌어 엑셀을 밟았다. 아마 약속이 일찍 끝나고 동혁에게 연락하지는 않겠지. 여주는 자신의 기준에 맞추기로 했다. 동혁이 생각하는 친구라는 선과 여주가 생각하는 친구라는 선의 기준이 달랐다. 뭐든지 다 동혁에게 맞추려고 했던 어리석은 자신을 고치기로 했다. 동혁에게 유했던 그 모습도 이제 고쳐야지.






*






아는 사람 한 명이 전시회를 열었고 오늘 마지막 날이라 끝나고 뒤풀이가 있다길래 그곳에 가는 중이었다. 뒤풀이 장소는 사람이 많았다.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다른 기업 행사장이나 모임에서 봤던 얼굴들. 전시회를 연 그 사람도 그렇게 알게 된 사이였다. 장소에 들어서 지인하고 인사를 했다.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에 여주는 웃으며 가져온 선물을 건넸다.





"아무것도 안 줘도 되는데-"


"그래도 빈손으로 올 수는 없죠."





여주와 대화를 나누던 지인은 여주 뒤로 보이는 다른 지인을 발견했는지 눈짓으로 인사를 하는 게 보였고 여주는 웃으며 주인공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며 얘기했고 그 사람은 웃으면서 이따 또 보자며 사라졌다. 그 뒤로도 자신을 보며 아는 체를 해오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화답을 해주고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그나저나 나재민 얘는 언제 온다는 거야. 여주는 남들에게 안 들리도록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여주는 오늘 이 뒤풀이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 여주야!"


"어... 어, 오랜만이네."


"그러게- 잘 지냈어?"





사이좋은 오랜 친구인 것처럼 자신에게 인사를 해오는 여자. 여주와 고등학교와 대학 동창이었다. 은주는 여주를 싫어했다. 아니, 정확히는 여주는 은주의 질투의 대상이었다.





'뭐야? 은주야. 이거 새로 산 거야?'


'응- 어제 샀지.'


'와... 너무 예쁘다. 은주야. 나 한번 들어봐도 돼?'


'헐, 야. 여주야. 너 이거 한정판으로 나온 가방 아니야?'


'어... 모르겠네? 선물 받은 거라.'


'이야- 역시 있는 집안은 뭐가 달라.'


'여주야. 저번에 너 바르던 립 어디 거였지? 나 이번 생일선물로 그거 사달라고 하려고.'


'아, 나 그거 새 거 있어. 내가 하나 줄게.'





태생에 있는 집안 자식이었던 여주와 달리 은주는 자수성가 집안이었다. 사업에 실패했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일어나 보겠다고 다시 사업을 시작한 게 잘 됐거든. 그래서 그런지 은주는 뒤늦게 자랑하고 싶어서 사치를 부리는 게 당연했고 여주는 그런 걸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여주가 지금까지 살면서 은주 같은 사람이 한 명뿐이었을까, 그래서 그런지 은주가 아무리 여주 신경을 콕콕 건드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으면서 넘어갔다. 불편하긴 했어도 이런 얕은 인맥에도 적을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대학 졸업 후 당연히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다.





어디에서든지 주목을 받아야 하는 사람. 그게 은주였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대기업 중 하나인 A 기업의 사람이라는 것 하나로 여주가 어디를 가면 많은 시선을 끌었고 은주는 그런 여주에게 붙어 그 시선을 같이 받았다. 여주는 자신에게 향한 그 많은 시선을 은주가 가로채는 게 반가웠다. 어차피 인사만 하고 짧은 안부를 물은 후에 바로 떨어져 나갔거든. 가끔 모임에서 마주칠 때 자신에게 인사를 해오는 은주를 보며 아, 얘 정말 똑같다.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안부 인사만 하고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자신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길래 의아했다.





"세상에. 여주야. 너 얼굴 뭐 했어?"


"...아니. 안 했는데."


"그래? 난 저번이랑 좀 달라진 것 같길래 뭐 시술이라도 한 줄 알았지."





혼자만 예뻐지지 말고 같이 공유 좀 하자- 얄궂게 호호 웃으며 얘기하는 은주를 보며 공유할 게 뭐가 있겠어. 나 그런 거에 관심 없는 거 알잖아. 예전처럼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려는 질문에도 여주는 웃으면서 의젓하게 대답했다. 아, 피곤해. 일 있다 하고 그냥 먼저 빠져나갈까. 속으로 생각하는데





"아, 맞다. 여주야. 나 그 소식 들었어..."


"응? 소식? 어떤 거 말하는 거야?"


"너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 신경 많이 쓰이겠다 너."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요새 바빠. 원래 그런 소문들 신경 안 쓰긴 했는데 가만히 있으니까 도를 넘더라고."


"근데 여주야. 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뭐가?"


"그 소문들이 정말 싹- 다 거짓말이야?"





물론 조금 부풀려서 소문이 돌겠지만,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는 말이 왜 있겠어. 은주의 말에 여주가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걱정하는 척하며 자신을 까내리려는 의도가 너무 훤히 눈에 보였다. 은주가 작게 얘기한다고 하긴 했는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여주는 어디를 가서도 많은 시선을 받는 주인이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척하며 여주와 은주 쪽을 향해 귀를 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은주는 여주가 난감해하라고 한 얘기였는데 오히려 웃는 모습에 살짝 표정을 굳혔다가 곧바로 다시 웃었다.





"여주야."





그러던 중 여주의 한쪽 어깨를 감싸는 따스한 느낌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재민이었다. 은주는 놀랐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재민을 쳐다봤다.





"재민...이?"


"어, 안녕. 근데 우리 아는 사이였나?"





여주와 은주가 고등학교 동창이라면 재민도 은주를 알아야 할 터인데, 재민은 은주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쳐다봤다. 그럴만한 게 재민은 예나 지금이나 여주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여주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웃으면서 대하긴 했지만 그것도 다 여주 때문이었다. 하지만 은주는 재민에게 관심이 엄청 많았다. 재민을 좋아하는 수많은 여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재민아. 우리랑 고등학교 같이 다녔잖아."


"아아- 미안. 내가 기억을 못 했네."


"아, 아니야. 괜찮아..."





몇 년 만에 본 재민은 그대로였고, 은주는 그때와 똑같이 웃는 재민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여주는 기가 찼다. 좀 전까지는 자신을 까내리려고 했던 재수 없던 행동들은 어디 갔는지. 여주는 혀를 내어 입술을 살짝 축이고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은주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은주 너는 그 소문 중에 뭐가 진짜 같은데?"


"응? 어... 글...쎄?"


"내가 뭐, 룸에서 남자들 수십 명 불러다가 돈 뿌리며 논다는 소문? 아니면."





내가 어떤 배우를 뒤에서 스폰 해주고 있다는 소문? 차라리 내가 그런 비슷한 행동이라도 해서 소문이 났으면 모르겠어. 그런데 나 술 마실 시간도, 무슨 영화나 드라마 볼 여유시간도 없거든.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지. 당당하게 말하는 여주였고







"맞아. 여주 진짜 바빠.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챙겨줘야 한다니까."





옆에서 재민은 고개를 주억이며 말하다가 여주야. 잠깐만. 얼굴에 뭐 묻었다. 하며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여주 뺨에 묻는 먼지를 떼어줬다. 둘의 모습에 오히려 은주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은주야. 내 걱정 안 해줘도 돼. 나 변호사 구했거든."


"아... 아, 다, 다행이네..."


"그치. 다행이지? 은주 너도 조심해. 괜히 이런저런 소문에 휩쓸리지 말고."


"나는 안 그러지."





여주는 은주에게 몸을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닌데. 너도 소문 돌던데? 은주는 눈을 크게 뜨며 여주를 쳐다봤다. 이 바닥에서 도는 소문들 내가 다 모르겠니? 네가 배우 Y 씨랑 만난다는 소문이 있던데. 여주가 눈을 반으로 접어가며 사르르 웃었다. 배우 Y는 첫사랑이랑 결혼했다고 방송에서 애처가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고 이게 알려지면 은주는 불륜녀로 낙인이 찍히겠지. 은주는 불안한 눈빛으로 여주를 쳐다봤다. 아, 걱정하지 마. 내가 이런 거 어디에 가서 말하고 다니겠니?





"근데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더라."


"...."


"미리 대비를 좀 해두던가 해."


"...."


"은주 너는 나랑 다르게 소문이 아니라 진짜잖아."





여주가 먼지를 털어주는 척 은주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고서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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