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펭/줄리스킵] Party

 리퀘로 드린 글입니다.

* 언제나 그랬듯이 의인화!

* 줄리언x스키퍼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친 스키퍼는 마지막으로 소매 끝을 정리했다. 정석적인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거울 앞에 서있었다. 그의 파란 눈동자가 빛났다. 넥타이를 정돈한 그는 문 밖을 나섰다.

 밖에는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길가로 나오다 우편함에 비죽 튀어나온 편지를 발견하고선 집어 들어 뒷면을 살폈다.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봉투는 고급스러워 보였다.


‘친애하는 스키퍼 씨에게’


 직사각형 형태의 봉투 겉면에는 받는 사람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보낸 이가 ‘줄리언’이라 있는 것을 보고 스키퍼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보낸 편지라니!

 스키퍼는 뜯어보지도 않고 버리려다가 읽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에 가까운 문구가 있는 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 그의 시답지 않은 편지를 웃어넘기고 버렸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기에 그는 스키퍼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어쩔 수 없지.”


 스키퍼는 클래식 실링왁스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내용물을 꺼냈다.


“파티 초대?”


 카드를 든 스키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파티라니? 물론 줄리언이 파티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키퍼는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날짜는 일주일 후, 장소는 어느 호텔의 홀에서였다. 그의 성격이라는 호화로운 곳이 틀림없겠지. 물론 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스키퍼는 한숨을 쉬며 자동차에 올라탔다.

 



 스키퍼가 향한 곳은 유명한 패션 회사였다. 그는 이 회사 CEO의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꽤 유명한 패션업계답게 건물은 외관부터 눈에 확 띄었다. 그 경영자는 다름 아닌 스키퍼의 고용주, 줄리언이다.

 건물에 들어선 스키퍼는 1층 안내데스크를 지나며 그곳의 직원에게 간단한 아침인사를 한 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버튼을 누르고 닫힘을 누르는 순간, 밖에서 급하게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듯 문이 활짝 열렸다.


“이게 누구던가? 스키퍼 아닌가!?”


 특유의 발음으로 스키퍼란 이름을 강조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사람은 줄리언이었다. 그는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에 회색과 검은색 배합이 화려하게 들어간 털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줄리언은 스키퍼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지었지만, 스키퍼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스키퍼. 좋은 아침이로구나.”


 사실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키퍼로선 그와 업무 외적인 사담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줄리언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스키퍼 옆에 선 줄리언은 밝은 표정으로 싱글 웃고 있었다. 틈만 나면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 해서 스키퍼는 언짢아하지만.


“스키퍼. 내가 보낸 초대장은 받았느냐?”

“네. 받았습니다.”


 스키퍼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줄리언은 화색을 띄며 말을 이었다.


“그래. 엄청 중요한 일이도다. 그게…”


 줄리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는 7층에 도착하였고, 스키퍼는 그를 한번 흘깃 쳐다본 후 내렸다.


“가시죠.”

“그래. 오늘은 당장 중요한 일이 있도다.”

“중요한 일이요?”

“가보면 알 것이다.”


 줄리언은 앞장을 서더니 어떤 문을 가리켰다. 스키퍼는 의아해하며 그를 따라 들어갔고, 그곳은 스튜디오였다. 뜻밖의 장소에 놀란 스키퍼가 조명과 촬영 기기들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줄리언이 정장을 들고 와 그에게 내밀었다.


“자. 입고 나오게.”

“네?”

“방금 들었지 않았는가? 기다리고 있겠네.”


 줄리언은 정장을 손에든 스키퍼를 피팅룸으로 밀어 넣었다.


“기다리고 있겠도다!”

“네? 이걸 왜 입어야 하는지…”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이 몸이 기다리고 있노라.”


 문 밖에서 줄리언의 목소리가 들렸고, 정장을 바라보던 스키퍼는 한숨을 쉬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줄리언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키퍼는 어색한 표정으로 겸연쩍은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은 수트는 조금 넉넉해 스키퍼는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오오,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역시 이 몸의 눈은 정확하구나!”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회장님?”

“이 몸의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준비 작업이니라!”

“네? 이곳은 스튜디오 아닙니까?”

“그렇도다. 영감을 돋우기 위해서 내, 너를 특별히 피팅모델로 초빙한 것이다!”

“네?! 중요한 일이란 게 이겁니까?”


 스키퍼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줄리언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옷핀으로 이곳저곳 고정시키고 있었다.


“오, 역시 각이 살아있구나! 잠시 거기서 포즈를 잡아 보거라!”


 줄리언은 뒤에 하얀 배경을 가리켰고, 뒤를 돌아보던 스키퍼는 할 수 없이 정장 마이 깃을 잡고 어정쩡하게 포즈를 잡았다.


“지금이 딱 좋구나! 아니, 조금만 더 뒤로!”


 황금색 눈을 동그랗게 뜬 줄리언은 양 손의 검지와 엄지로 손가락 액자처럼 만들어 스키퍼를 바라보고 있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그를 보던 줄리언은 카메라를 가져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안에는 사진이 찍힐 때마다 플래시가 번쩍였고 스키퍼는 눈을 찡그렸다.


‘도대체 이게 뭐하자는… 시키는 걸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스키퍼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줄리언이 하라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정장 넥타이를 고치는 척을 한다던가, 뒤를 보는 등의 간단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좋구나, 좋아!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줄리언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으로 사진을 연속으로 찍어대다가 손뼉을 짝짝 쳤다. 이제 끝난 건가 생각한 스키퍼가 스튜디오에서 내려오려고 나오자 줄리언이 어느새 준비했는지 다른 정장을 내밀었다.


“스키퍼는 네이비 블랙이 잘 어울리는 듯하구나! 좋은 조합이다! 이 수트에는 버건디 넥타이가…”

 계속 되는 줄리언의 말에 스키퍼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주 업무 외로 부리면 수당 더 줘야하는 거 아니야?’

 스키퍼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줄리언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수고했다, 스키퍼. 웬만한 모델보단 내 전속 보디가드가 백 배, 아니 몇 천배는 더 나은 거 같구나. 이참에 모델로 데뷔해보는 건 어떻겠느냐?”

“사양하겠습니다.”


 스키퍼는 지친 목소리로 낮게 대답했다. 줄리언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맞아. 스키퍼! 네게 임무를 내리겠다!”


 문득 생각이 난 듯 줄리언은 스키퍼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스키퍼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임, 임무라뇨?!”

“그렇다! 아침에 초대장을 받았지 않았느냐? 파티에 가는 것이 스키퍼, 네 임무다!”

“네?!”

스키퍼는 아까보다 더 놀랐으나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푸른 눈을 빛냈다.

“이 파티에는 중요한 손님이 올 것이다. 네가 스파이가 되어 그에게 정보를 빼오는 것이 목표다.”

“어떻게 중요한 손님이죠? 신상과 정보를 알려주시면…”

“그 정보는 때가 되면 알려주겠도다. 지금은 파티 초대를 위해 의상을 맞춰야하니 디자이너를 불러주겠다. 아, 벌써 점심시간인데 같이 식사를 하지 않겠느냐? 여기 근처에 레스토랑이 새로 생겼다던데. 스키퍼, 너는 청어를 좋아하던가? 식사 후에는 과일 스무디가 어떻겠느냐?”


 줄리언은 승낙을 얻지도 않은 제안에 신이 나서 재잘거렸고, 스키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정오가 갓 지난 햇볕이 따사로운 시간. 줄리언은 패션용 선글라스를 쓴 눈으로 시선은 해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보기 좋은 구릿빛 팔을 들어 햇빛을 가렸다.


“오늘 햇빛은 정말로 좋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스키퍼?”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스키퍼는 눈이 부신지 까만 선글라스 너머로 해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무료한 표정으로 앞에 막 다 비운, 텅 빈 접시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 왜 레스토랑 실내를 놔두고 테라스를 고집하는지. 아무리 그늘이 있다고 해도 뜨거운 햇볕을 모두 가리긴 역부족이었다. 스키퍼가 찬물을 들이키고 있을 무렵 주변이 시끄러웠다. 줄리언와 스키퍼 주위에 몇 무리의 여자들이 이쪽을 보며 서로 작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상기된 얼굴로 줄리언 쪽으로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J컴퍼니’의 줄리언 디자이너님 아니세요? 저 팬인데 사인 좀 부탁드릴게요!”


 줄리언은 온화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이곤 여자가 내민 종이와 펜을 받아들여 멋들어지게 사인을 해 돌려주었다. 여자는 줄리언에게 악수를 청하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런데 그들 테이블 앞에 여성들 몇 무리나 몰려 저마다 줄리언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했다. 줄리언은 그때마다 환한 미소로 응했고, 스키퍼는 애꿎게 물만 들이키며 줄리언을 흘깃 바라보았다.


‘팬 서비스랍시고 하는 건가. 듣던 거보단 어지간히 인기가 좋은 가보군. 매일 봐서 몰랐지만.’


 투명한 물잔에 가득 담긴 찬물을 들이키던 스키퍼는 다른 쪽을 바라보다가 문득 환하게 웃던 줄리언과 눈이 마주쳤다. 구릿빛 피부에 어울리는 황금색 눈동자, 그리고 복슬복슬해 보이는 털목도리를 두른 줄리언의 모습에 스키퍼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그의 눈을 피했다.


‘그가 원래 이렇게 잘 생겼던가?’


 확실히 줄리언이 미남이긴 해도 매일같이 그의 얼굴을 보는 스키퍼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햇살 아래 하얀 이를 드러내며 눈부시게 웃는 줄리언의 모습에 스키퍼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가도록 하지. 과일 스무디 먹겠느냐? 블루베리? 망고? 딸기도 좋도다.”


 어느새 주변에 여자들이 사라지고 자리에서 일어선 줄리언이 스키퍼를 그윽이 보고 있었다. 스키퍼는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위 스무디로 하겠습니다.”


 스키퍼가 대답하자 앞장 서 걷던 줄리언이 뒤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스키퍼는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래서 임무라는 거에 대해 언제 더 설명해주시는 겁니까? 디자이너를 불러준다고 하셨는데 그분은 언제 오시는 거죠?”

“곧 알려주도록 하지.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줄리언은 느긋한 미소로 뒤에서 따라오는 스키퍼를 향해 손짓했다.


“오늘은 파티 의상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디자이너를 불러준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분은 이미 오셨도다.”

“벌써요? 아무리 그래도 기다리게 하시면…”


 줄리언은 재단실 앞에 서있었고, 그 문을 열었다. 재단실 안을 한번 둘러보던 스키퍼는 줄리언을 돌아보며 물었다.


“안…계신데요?”


 스키퍼의 말대로 재단실에는 스키퍼와 줄리언 둘 뿐이었다. 줄리언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에 찬 말투로 말했다.


“앞에 훌륭한 디자이너를 두고 너무 하도다, 스키퍼.”

“네?!”


 의기양양한 줄리언의 말에 스키퍼는 당황한 듯 한 발자국 물러섰다. 줄리언은 어느새 미소를 띤 채 줄자를 가져왔다.


“자, 갈 길이 멀다! 스키퍼!”



 줄리언이 줄자로 스키퍼의 치수를 재는 동안 그는 어색한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스키퍼는 줄리언의 손이 닿을 때 잠깐 움찔해 잠시 숨을 멈췄고, 줄리언은 줄자를 든 손을 멈추었다.


“왜 그러느냐?”

“아, 아닙니다.”

“긴장한 것이냐?”


 그의 표정을 눈치 챈 줄리언은 피식 웃으며 스키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스키퍼는 당황하여 고개를 저었지만 줄리언은 치수를 재던 손을 다시 놀리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도 참 귀엽구나.”

“네?!”

“아니다, 아무 것도. 다 되었느니라.”


 줄자를 거둔 줄리언이 미소를 띠었고, 스키퍼는 한숨 돌렸다. 줄리언은 그사이에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부지런히 디자인 북에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스키퍼와 눈이 마주치자 줄리언은 나가봐도 된다는 눈빛을 보냈고, 스키퍼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뭘 이런 걸 한담…”

 스키퍼는 그가 있는 방을 돌아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느덧 찾아온 파티 당일, 줄리언은 그 직전까지 스키퍼에게 지시한 ‘임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저녁 6시까지 정해진 장소로 오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


 줄리언이 손수 제작한 정장을 입은 스키퍼는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정리하였다. 스키퍼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장은 꽤나 맵시 있고 스키퍼 몸에 딱 맞춘 듯 잘 어울렸다. 항상 정장을 입는 스키퍼지만 특히 이번에 입은 정장은 마음에 들었다.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더 이르게 도착한 스키퍼는 홀로 들어섰다. 남성용 구두가 뚜벅거리는 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울렸다. 스키퍼는 어렵지 않게 와인 잔을 들고 있는 줄리언을 찾을 수 있었다. 줄리언 역시 스키퍼를 알아본 듯 황급히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그쪽으로 다가왔다.


“오오, 놀랍도다! 스키퍼! 내가 맞춰준 옷이지만 이렇게 잘 어울린다니. 놀랍도다, 놀라워!”


 줄리언은 과장된 몸짓으로 반응하며 손가락을 까딱여 사진사를 불러왔다. 사진사는 능숙하게 스키퍼에게 포즈를 취해보라는 제스처를 하며 카메라를 고쳐들었다. 스키퍼는 약간 멋쩍은 듯하지만 포즈를 취했고 찰칵찰칵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다가온 줄리언은 스키퍼에게 와인잔을 내밀었다.


“이번 파티는 우리 ‘J컴퍼니’의 신상품 홍보가 주요 목적인 건 이미 알고 있을 터. 타깃은 한 여자다. 우리의 경쟁기업의…”

와인잔을 받아들고 가볍게 건배를 한 스키퍼의 눈빛이 일순 진지하게 바뀌었다.


“…네. 알겠습니다.”


 줄리언의 이야기를 들은 스키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줄리언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 파티가 시작되고 1시간 후부터가 임무의 시작이었다. 스키퍼는 잠잖고 서서 줄리언이 초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유명 패션업계의 파티답게 연예인 및 경쟁사 관계자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잔뜩 있었다. 줄리언의 인사말에 박수가 터져 나왔고, 스키퍼는 한 박자씩 늦게 박수를 쳤다. 단상에서 내려다보던 줄리언이 스키퍼를 발견하고 살짝 윙크했고, 스키퍼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키퍼는 힐끗힐끗 주변을 바라보았다. 줄리언이 지시한 임무의 타깃인 여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패션업계에서 유명한 관계자라고 하는 여자인데, 그쪽 경쟁사의 정보를 얻어오는 게 목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와중 스키퍼는 그녀를 한눈에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있는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그녀에게 가던 스키퍼는 슬쩍 눈으로 줄리언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았고, 타깃 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는 그녀는 이미 문 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스키퍼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지만 느리지 않게 그녀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홀 밖에는 정원이 펼쳐져있었다.

 



 언제 날이 저물었는지 하늘은 남색빛으로 물들어있었고, 달이 환하게 떠있었다. 정원의 나무들은 달빛을 받아 뿌옇게 빛나고 있었다. 스키퍼가 발걸음을 멈췄을 때는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를 찾으셨나요?”


 구두 소리와 함께 수풀 뒤쪽에서 나타난 여자는 스키퍼를 향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스키퍼는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고, 여자는 말을 이었다.


“줄리언 사장의 지시를 받고 오신 건가요?”

“줄리언 사장이라뇨…? 저는…”

“다시 홀로 가보세요.”

“네?”


 스키퍼는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며 말하려 했으나 당황하고 말았다. 여자는 말을 마치고 홀 쪽으로 뛰어갔고, 당황한 스키퍼는 그녀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홀로 통하는 문 앞에 선 스키퍼는 힘차게 문을 밀었다. 그때, 스키퍼는 아까보다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레드카펫이 쭉 깔려있는 홀에는 익숙한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멋들어지게 화려한 차림의 줄리언이 스키퍼 앞에 서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스키퍼, 나와 함께 춤을 추지 않겠느냐?”

“춤…이라고요?”

“그렇다.”


 줄리언은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고, 아까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들은 조용히 뒤쪽에 서있었다.


“스키퍼. 사실 임무는 꾸며낸 것이니라. 진짜 임무는 나와 춤을 추는 것이니라.”

“…….”

“좋아한다, 스키퍼.”

“네?”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다. 파티는 너에게 고백하기 위한 이벤트일 뿐이다. 수트는 너에게 주는 선물이니라. 이렇게 잘 어울린다니…”

“…….”

“좋아한다, 스키퍼. 나와 함께 춤을 추지 않겠느냐?”

“…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셨군요…….”


 스키퍼는 그제야 이제까지의 줄리언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들이 이해가 된다는 듯 손으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줄리언은 황금빛 눈을 빛내며 스키퍼를 바라보고 있었고, 스키퍼는 못이기는 척 손을 들었다.


“그러도록 하죠.”


 스키퍼는 줄리언의 손을 맞잡았고, 줄리언은 스키퍼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홀 가득 음악이 울려 퍼졌고, 손을 맞잡은 두 남자는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 고백을 받아주는 것이냐?”

“아직 받는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스키퍼는 줄리언을 보며 살포시 웃었고, 둘의 춤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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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선수인 줄리언과 철벽인 스키퍼, 하지만 줄리언에게 뚫리는 스키퍼로 줄리스킵입니다. 


2차 창작 위주 글 연성 & 썰 & 감상 등 /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을 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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