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반전 설정+데미안 일반인(?) AU.

  배트맨을 비롯하여 다른 히어로들도 없습니다.

  모님이랑 한창 썰풀었던 설정이고, 허락 받고 올려봅니다.

  끝이 날지는...(사라진다)


  *데미와 딕의 친구들은 제멋대로.




2.




  긴 여름 방학은 누군가에게는 신나는 휴가철이겠지만, 가난한 학부생인 딕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일 저일을 알아보았지만 방학 때만 할 수 있는 것은 몇 없었고, 그나마도 낮 시간에만 바짝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적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파트타임이 있기는 할까?"

  결국 바바라에게 징징거리는 소리를 하러 온 딕이 그리 말했다. 노트북 두 대와 데스크탑 모니터가 줄줄이 놓여있는 넓은 책상에 앉아던 바바라가 몸을 돌렸다. 냉각팬 소리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전동 휠체어의 진동음이 들렸다.

  "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바라가 팜플렛을 내밀었고 딕은 좋아라 받아들었다.

  "내가 너 사랑한다고 말했지?"

  "뭔지나 보고 말해."

  픽 웃으며 바바라가 그리 대꾸하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바바라가 운영하는 인터넷 까페가 자경단 활동의 중심지였다. 컴퓨터 사용량이 많은 것도, 그래서 냉각기를 사용하는 것도, 또래들이 모이는 것도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새도록 사람들이 들락거려도 어색하지 않다. 필연적으로, 코미콘에서나 볼 법한 매니아들도 많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는 최적화된 장소였다.

  "라이프가드?"

  "여름한철 낮에만 할 수 있는 일 찾는다며."

  그건 확실히 그랬다. 그렇지만... 하다가 딕은 다시 팜플렛을 보았다. 일은 다음달부터 시작이지만, 그 전에 교육을 받아야 한단다. 게다가 조건에는 인명구조자격을 필요로 했다.. 더 읽어보니, 자격이 없으면 무료로 자격 취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긴, 고담 시에서 사람 구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으음..."

  "아님 다른 거 알아봐줄게. 튜터링 어때?"

  "...그냥 이거 할게."

  "그게 뭔데?"

  여느 손님일 거라 생각했는 데 헬레나가 들어온다. 얼굴에 긁힌 자국이 연하게 남아 있었다. 바바라와 딕이 그걸 본 다음 마주보고는 쿡 웃었다. 당연히 왜 웃는 지 눈치 챈 헬레나가 흥, 하고 코웃음쳤다.

  "만만찮은 꼬맹이구만."


  자경단이라 자칭하고 나선 지 꽤 되었고, 그래서 그 나름 구역도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 바바라와 딕이 그 중심에 있었다. 헬레나가 그 다음이었다. 셋은 비밀리에 활동하기로 했지만, 딕이 로이에게 비밀을 공유한 건 금방이었고, 어쩌다보니 전학생인 월리에게도 말하게 되었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불평하던 헬레나조차도 누군가를 데려왔고- 그게 도나였다.

  그럴 때마다 바바라가 무시무시하게 화를 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럿이 활동하는 게 좀 더 좋을 수도 있겠다고 바바라가 납득했다. 그래, 딕과 바바라가 자경단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겨우 열 다섯일 때였다. 지금도 그렇게 늙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였다.

  "그냥 어린애가 아니야."

  헬레나가 투덜거렸다. 그러더니 그냥 입을 꾹 다문다. 잠깐 그러고 있더니 곧 스툴을 끌어와서는 바바라 옆에 앉았다.

  "나도 늬들처럼 편안하게 데이트나 하면 좋겠네."

  "...화면에서 안 나오는 남자친구랑 하는 데이트?"

  바바라가 그렇게 말하며 픽 웃는다. 딕은 무어라 대꾸하려다 그냥 따라 웃었다.


  데이트라.

  바바라와 함께 활동하기로 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딕은 바바라를 좋아했다. 바바라도 알고 있었고, 딕을 좋아했다. 연인 사이가 될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자경단 활동 중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바바라의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때다. 그 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심장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곤 했다. 차라리 바바라가-

  /나이트윙.

  생각하고 있는 데 들린 당사자 목소리에 딕은 필요 이상으로 놀라 일어설 뻔 했다.

  '응'

  /상황은?

  '이상없음.'

  바바라가 제 탓을 하며 화를 내기라도 했다면 나았을 텐데.

  물론 딕의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바라가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다음부터 둘의 관계는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였다. 그리고 딕은, 본인의 이중 생활을 숨기고 누군가를 만나기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 그리고 오늘은 월리가 열심히 일하고 있어.

  그래서 감정을 접어두기로 했다. 그러자 모든 게 명쾌해지고 단순해졌다.

  /바빠 죽겠다. 좀 도와달라고!

  '말할 여유도 있네. 힘내.'

  딕의 그 대꾸에 월리가 악악대며 무어라 투덜거렸지만 곧 들리지 않았다.


  인생은 단순하지 않으니까.

  월리 쪽에 잠깐 들렀다가 딕은 열심히 교수님네 맨션으로 가고 있었다. 답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 한 병에 테이핑 한 개만큼- 그리고 몇 번이고 들러서 쉬어갔었으니.

  ...는 핑계고, 사실 그 폐허같은 공간이 그냥 좋아서 또 가고 싶은 것 뿐이다. 머릿속도 복잡했다. 그냥 팜플렛만 챙겨서 나올 걸. 가만히 덮어놓고 있던- 그리고 모른척 덮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이 들쑤셔진 채라 오늘은 누구든 그냥 만나고 싶었다. 딕 그레이슨이 나이트윙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을.

  -어라라...?

  그리고 근처 높은 곳에서 바라본 교수님의 맨션은 오늘따라 환했다. 제가 알기로 한 번도 없던 일이라 딕은 진심으로 놀랐다. 웬일로 수영장을 쓰고 있었다. 음악소리도 들렸다. 조명이 환한 루프탑은 굉장히 멋진 분위기였다. 딕이 자주 이용하던 자그마한 정자도 깨끗해져 있었다. 날렵한 지붕의 추녀가 조명과 어울려 무척 멋있었다.

  하지만,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의 주인공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손님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의 인영과, 집 주인의 모습을 확인한 딕은 발길을 돌렸다. 저를 기다리는 고담의 가고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


  데미안은 친구가 몇 없었다. 그나마 가장 만만하고 친한 친구는 고담 시민도 아니었다. 원래부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데미안은 한줌밖에 되지 않는 친구들조차도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그래서 저택의 집사가 대신 신경쓰곤 했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 종단을 하다 잠시 쉬러 왔다며 들이닥친 가필드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맨션을 빌려줘야했다. 가필드는 파티라면 사족을 못 쓰는 타입이었고, 데미안은 어쩌다가 얘랑 친해졌지? 하는 생각을 하루종일 했다.

  ...하지만 이 녀석이 보내주는 사진은 정말 멋있지.

  거실에 대충 깔아둔 에어 매트리스에 엎드린 자세로 자고 있는 가필드의 뒤통수를 보며 데미안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친해진 이유는 안다. 가필드도 동물을 좋아한다. 그럴 것이,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던 데미안을 발견한 가필드가 데미안을 쫓아다니기 시작한 게 친해진 계기였다.

  "안 일어나냐."

  "#!@&*%)-=\]..."

  뭐라 웅얼거리기는 하는 데 사람 목소리라는 것 말고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데미안은 혀를 차고 말았다. 술냄새가 지독했다. 가필드가 일어나든 말든 오늘은 청소를 하라고 해야겠군.

  "무-우ㅜ우우..ㄹ..."

  몸을 뒤채며 웅얼대는 가필드를 보고 데미안은 조금 전에 내린 결정을 수정했다.

  저.것.도. 같이 치워버리라고 해야지.


  그러고보면.

  메트로폴리스에 사는 존은 기자였고, 가필드는 여행가다. 조니, 아니 조나단은 인류애가 충만한, 그야말로 사람의 좋은 점만 꽁꽁 뭉쳐놓은 것 같은 녀석이고, 가필드는 제가 주인공인 걸 아주 좋아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끌어안고 사는 인류였다.

  난 좀 관종이지만.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데 동의한다.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래서 데미안은 가끔 매칭 어플을 이용했다. 누군가와의 하룻밤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데미안 말고도 많았다. 그걸 누구는 외롭기 때문이라 했지만, 데미안은 그 말에 혀를 차며 웃기만 했다.

  외롭지. 누가 그걸 모르나.

  노트북 모니터를 한참 노려보다 데미안은 그냥 덮었다. 어제는 어울리지 않는 짓을 했더니 피곤하고 눈도 아팠다. 맨션 근처의 카페테리아였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청소를 하는 데, 학기 중이야 상관없지만 방학 중엔 항상 여기에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청소가 끝나고 나면 경호원 두 사람 중 하나가 청소 후 맨션 안을 점검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다.

  "야 임마- 이 사람도 아닌 자식"

  익숙한 인영이 멀리서부터 보인다 했더니 가필드였다.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달려들더니 목에 팔을 걸고는 가볍게 조르는 시늉을 하며 반가운 인사(?)를 한다. 왜 이러는 지 알고 있어서, 가필드의 팔을 탁탁 두드리는 걸로 항복(?) 표시를 한다.

  "그러게 깨웠을 때 일어나야지."

  "새벽에야 잤다고! 살게는 해줘야지."

  "누가 그러래냐."

  "나쁜 놈. 어휴, 그나저나 여기는 뭐가 맛있어? 나 배고픈데."

  "여긴 커피. 식사는 다른 데서 하지."

  "그래. 아참, 레이첼도 방학 아냐?"

  "...그렇겠지."

  레이첼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걸 보니 역시 가필드 다웠다. 하긴, 다른 이들이 너무 눈치를 보는 걸 테지. 정작 레이첼과 데미안은 괜찮았다.

  "으음.. 존에게 시간 나는 대로 오라 했거든? 그 때 같이 보자. 괜찮지?"

  레이첼과는 약혼했다가 파혼했다.

  주변 사람들은 자세한 이유를 모른다.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였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아쉬워했지만 정작 파혼한 두 사람은 아쉽지 않았다. 

  "연락 열심히 하는 구만."

  그저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너랑은 달라서 말이야~"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

  굳이 저와 레이첼을 표현한다면 그런 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파혼했다.

  서로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된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같이 자살할 거야.

  "그래,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죽는 사람, 아니 토끼였지."

  "그렇게 말하다니~"

  그리 말하며 제게 주먹질을 하는 시늉을 해대는 가필드에게 일부러 맞춰주면서 데미안은 웃었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았다. -그러니까 아주 가끔, 한 오년에 한 번쯤 말이다.

  "개복치라고 안 한 게 어디야."

  "야-!"



  가필드 한 사람이 오인분, 아니 백인분 몫은 한 것 같다. 한동안은 정말 혼자서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청소가 끝났다며 데리러 나온 경호원까지 제멋대로 부려먹은 가필드를 반억지로 호텔에 밀어넣고 나니 저녁을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그제서야 맨션에 들어선 데미안은 버릇처럼 침실만 불을 켜둔 채, 컴컴한 거실의 소파에 앉은 채 숨을 돌리며 고개를 젖혔다. 소파 등받이에 뒤통수를 대고 있으려니 하루의 피로가 모두 몰려왔다. 그냥 이대로 자고 싶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제 가필드가 쓴다고 한 바람에 청소해뒀던 루프탑에 뭔.가.가 또 나타난 느낌이었다. 이거 약간 초능력인가. 엉뚱한 데로 활발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친구와 하루종일 있었더니 전염된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또 물병을 하나 꺼내 들고는 거실 창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며칠 전에 만난 검은 인영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엉뚱한 녀석이군.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데미안은 문을 열고 루프탑으로 나갔다. 적당히 건조하고 기분 좋은 밤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사람 꼴도 보기 싫다고 생각한 지 오 분도 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데미안에게 저 까맣고 파란 자경단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약간 도둑고양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

  정자 쪽으로 가까이 서자, 발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손을 내밀었다. 하얀 종이포장이 비닐에 싸여 있었다. 샌드위치 같았다. 내미는 손이 한참을 멈춰있는 것에 데미안은 덥석 그것을 받아 들였다. 샌드위치 맞네. 소박한 모양새로 보아 직접 만든 것 같다.

  순간 데미안은 허기를 느꼈다. 생각해보니, 가필드와 식사를 한 이후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포장을 술술 벗기고 한 입 덥석 물었다. 경호원들이 보면 기겁을 하겠지. 그리고 데미안 스스로도 의외였다. 만난 지 두 번 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내민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다니.

  먼저 먹기 시작한 데미안의 옆에, 곧 그도 쪼그리고 앉더니 가져온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그 후로 대화도 없이 둘은 한동안 먹기만 했다. 물병을 열어서 물도 나란히 나눠 마시고 -그리고 거부감이 없다는 것에 데미안은 또 놀랐다- 나자, 그가 입을 열었다.

  "You're welcome."

  놀라 눈을 크게 뜨자마자 그가 날렵하게 몸을 일으켰다. 체중을 거의 느낄 수 없는 동작이었다. 절로 감탄이 쏟아지고, 데미안은 혀를 차는 대신 몇 번 쿡쿡 웃었다. 그 순간 그가 잠깐 저를 쳐다보았다가,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듯 몸을 몇 번 비틀더니 곧 루프탑에서 바깥으로 몸을 날리듯 움직였다.

  설마, 떨어진 건 아닐테지.

  평소보다 조금 급하게 걸어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자, 벌써 건너편 건물로 이동한 상태였다. 고양이 맞네. 그리고 데미안은 돌아서서- 비닐과 구겨진 종이포장지와 물병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레이첼과도 이렇게 한 적은 없는데.

  모르는 이와 아무 의심도 없이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물병을 쓰고, 손만 뻗어도 닿을 수 있을 만큼 거리에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일에 웃음을 터뜨린 것도 이상했다.

  첫눈에 반하기라도 한 건가.

  그와 동시에 이런 취향이었나? 하는 물음도 들렸다. 코웃음이 절로 나오고 데미안은 거실로 들어섰다. 꼼꼼하게 문을 잠그고는, 같이 사용했던 물병의 물을 마저 마셨다.

  나이가 몇인데 본인 취향도 몰라.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독기만 어린- 알 굴 저택에서의 데미안 웨인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지금의 제게 타박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바람이랑 고양이 탓으로 하자.

 문득 오늘 가까이에서 본 그의 얼굴이 묘하게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두고, 데미안은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피곤했다.




BL/2차창작중심/성인/부녀자/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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