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나는 2-3반에서 셋을 만났다. 나재민. 이동혁. 이제노. 성장기를 거치기 전, 비슷비슷한 키에도 셋은 가장 먼저 보였다. 이상할 것 없이 당연하단 듯 붙어 다녔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그 애들 스스로가 선택한 친구였다. 열여섯의 어린 나이, 2학기가 끝날 무렵 전학 온 나를 자연스레 끌어당겼다. 이미 형성된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해 목만 긁적거리던 내 앞과 옆을 차지했다.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껌 하나를 건네며 씩 웃었다. 전학생. 껌 먹을래? 거절하기 뭐해 받은 노란 포장지에 둘린 껌은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몇 달 남지 않은 열여섯의 겨울을 찬란하게 만들었다. 타지에 와 친구 하나 없을 나를 위해 퍽 애쓰고 또 애썼다. 덜 여문 남자애들과는 달리 침착하게 어른 흉내를 냈다. 축구를 하다가도 계단에 앉아있는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야! 소여주! 기다란 팔이 양옆으로 흔들리자마자 야유가 쏟아졌다. 남자애 셋과 여자애 하나. 풋내나는 이야기가 피기 딱 좋은 관계였다.




  3학년이 되던 해, 거짓말처럼 같은 반이 됐다. 이건 진짜 우리 운이라니까?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재민이 싱글벙글 웃는 낯을 했다. 껌 하나를 씹던 동혁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시 한번 반을 재차 확인한 제노까지 완벽했다. 친구 하나 없던 타지에서 든든한 친구 셋이 생겼다. 기념일이 다가올 때면 잊지 않고 챙기기 급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건 다 모르겠다. 무슨 날이든 공평하게 서로에게 달콤한 간식을 넘겼다. 제각각 다른 포장과 제품이었으나 마음만은 같다. 그게 좋아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공평하게 갖는 마음이 좋아 내내 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서로의 하루를 익혀갔다. 시간이 달라 만나지 못할 때면 따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학원이 끝나던 길에 들렸다던 이제노. 떡볶이나 같이 먹으러 가자며 집 초인종을 누른 이동혁. 독서실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만나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거라는 나재민. 색이 달라 다채로웠다. 무거운 책을 남몰래 빼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넷이 모여 공부를 할 때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펜을 돌렸다. 아무도 모를 미래보다 지금이 더 값졌다. 코피 터지게 공부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빛나는 대학보다 눈앞에 있는 치킨이 더 행복했다. 닭다리를 가장 먼저 내게 넘겨주곤 다른 하나를 먹겠다며 투닥거렸다. 콜라보다 사이다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따라 사이다를 주문했다. 반반이 좋다는 말 하나가 셋의 머리에 깊게 박혀 같은 메뉴만 고집했다. 열여섯부터 지금까지 바뀌질 않았다. 영영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대수롭지 않은 상처에서부터 시작됐다. 얇은 종이에 베인 상처 안으로 재앙이 꿈틀거렸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한 아둔함이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욱신거리고 말 상처 위로 지옥의 씨앗이 심어졌다. 핏방울 한 번 떨어지지 않은 상처, 그게 감염의 시작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잠든 밤, 겨우 붙기 시작한 살점을 가르고 태어난 악. 밤을 헤매고 있던 눈이 고통에 움찔거린 것도 잠시 두 눈이 찢어질 듯 번뜩거렸다. 누군가 뒤집어 까듯 올라간 눈꺼풀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진다. 보드라운 이불 위로 선혈이 어렸다. 앞이, 앞이 보이지 않아. 첫 근원지가 눈을 매만지며 타락해갔다. 앞,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아. 한껏 확장된 동공은 앞을 보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눈. 눈. 눈. 눈이 하나도 보이질 않아. 점점 더 높아지는 목소리는 고함을 닮았다. 옆집 앞집 할 것 없이 모두가 소음에 눈을 뜬 순간 영영 끊기지 않을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익숙하게 누렸던 모든 게 느긋하게 파괴됐다. 의식주. 당연하게 가졌던 것들이 삭아 사라진다. 돈과 명예가 있다 싶은 이들은 재빨리 나라를 버렸으나 어딜 가든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땅과 바다, 하늘. 어디든 상처를 입는 순간 감염돼 변이가 시작된다. 작든 크든 상관없다. 피의 유무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상처뿐이다. 스친 상처도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싸매기 시작했다. 다치는 순간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는 건 국회의원도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렸다. 살고 싶어서. 적어도 마지막 모습은 인간으로 남고 싶어서 자신을 고립시켰다. 더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 부모가 아이를 안아주는 것도 연인이 사랑을 나눌 수도 없었다. 살기 위해 감정은 모두 외면해야 했다. 창밖의 그것들처럼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다쳐선 안 돼. 상처 하나 남는 순간 창밖의 그것이 되고 말 거야.

  창밖의 그것. 귀신도 인간도 아닌 중간의 생명체.

  예외는 없었다. 상처가 생기는 순간 기다렸단 듯 변이가 시작됐다. 발현이 일어나는 건 개인마다 달랐다. 눈이기도 했고 혀일 때도 있었다. 어디든 일그러져 터져버리고 만다. 눈을 잃고 말을 잃었다. 살려달라고 손을 뻗을 때면 뼈를 다시 맞추듯 비틀린 고통에 눈을 뒤집어 깠다. 거품을 물고 죽기 위해 절벽까지 스스럼없이 뛰었으나,



절대 죽지 않습니다.



  절대 죽을 수 없었다. 높은 건물 아래로 떨어져 두개골이 으깨져도 끈질긴 숨은 끊어지질 않았다. 온갖 오물을 뱉어내며 죽여달라 빌어도 죽을 수 없다. 누구도 죽일 수 없다. 상처 안으로 자리 잡은 숙주가 모든 걸 방해했다. 팔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져도 원상태로 돌아와 억지로 삶을 살게 만든다. 삶. 삶. 그걸 삶이라고 부를 수 있나. 죽지 않는 괴물이 됐다. 눈을 잃고 마음을 빼앗긴 채 바이러스의 숙주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기괴한 그것은 점점 더 진화하기 급급했다. 길게 늘어진 두 팔이 바닥을 쓸고 다닐 때며 쭈뼛거릴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탈골된 손목이 덜렁거리며 부식된 도로 위를 기었다. 부러진 턱은 걸을 때마다 덜렁거리기 일쑤였다. 사람이었으나 더는 사람이 아닌 것. 분명 총명했을 눈은 검은 공간만 남아있다. 아이들은 공 대신 시신경이 달린 눈알을 짓밟고 일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배운 건 언어가 아닌 생존이다. 더는 사람이라고 불릴 수 없을 창밖의 그것. 손질하지 못한 긴 머리카락이 허리 근처에 맴돈다. 이가 빠져 더는 먹지 못하면서 소리가 들리는 쪽을 응시했다. 썩어빠진 잇몸으로라도 주린 배를 채워보겠다며 잡초 따위를 킁킁거렸다. 짐승. 아니.




창밖의 그것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만 당할 수 없다. 악한 심보가 가장 깊은 곳에 깔려있다. 나만 괴물이 될 순 없다. 평생 주려야 하는 굶주림과 앞이 보이지 않는 질긴 삶.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죽어도 죽을 수 없는 하루. 신은 공평도 하지. XX. 공평도 하지. 공평. 공평. 그래. 공평해야지? 상처 주변을 맴돌면 바이러스가 뇌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공평의 의미를 틀어 방향을 새롭게 설계했다. 공평해야지. 우리 모두 같이 공평해야지. 어두운 밤을 닮은 눈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달릴 준비를 끝낸 두 무릎은 퍽 앙상했다. 숨소리도 내지 마. 공평해야지. 움직이지 마. 공평해야지. 무서워하지 마. 공평해야지. 가만히 있어. 공평해야지. 그들이 갈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우리 다 같이 공평해야지?



  살아남을 수 있어.

  아니. 이젠 지쳤어.

  어느 쪽이 정말 행복한 삶인지 헷갈리기 시작해.

  그냥 우리 창밖의 그것이 될…….



**



  기면증, 잠을 충분히 자도 갑자기 졸음에 빠져드는 증세. 선잠이 들어 착각과 환각에 빠지는 것도 특징. 나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세상에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약점을 가졌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까무룩 잠드는 정신이 야속했으나 당해낼 수 없었다. 자지 않기 위해 각성제를 씹고 몰래 훔친 원두를 씹어봤으나 바뀌는 건 없었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잠들어 모두를 위험에 빠트렸다. 자면 안 돼. 자면 안 돼. 자면 안 돼. 자면 안 돼. 자면 안 돼.

  때는 이른 봄이었다. 애들과 학교를 돌아다니던 중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소리가 공포를 알렸다. 일상이 된 재난 문자 더는 일상일 수 없는 현실을 알렸다. 언제나 맞춤법을 정갈하게 맞춰 보내던 경고 문자. 대부분이 자연재해를 알렸으나 이번은 달랐다. 길고 오래 이어진 음은 괴랄한 문장을 보였다.



대ㅍㅎ사세요. 다침면 안 돼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었다. 같은 문자를 동시에 받게 된 애들은 정부를 비난하며 낄낄거리기 바빴다. 졸면서 쓴 거 아니야? 이거 보낸 사람 잘리겠다. 불쌍해서 어떡해. 이런 걸 보낼 수 있도록 컨펌이 난 것도 웃기지 않아? 먹잇감을 잡은 짐승처럼 신나 웃었다. 서로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조롱하기 급했던 당시, 문자를 유심히 보던 제노가 팔을 툭툭 쳤다. 이거 봐.



“보이는 대로 읽어봐.”

“……대프흐사세요. 다치면 안 돼?”

“대피하세요.”

“…….”

“다치면 안 돼.”



  곧 학회장 선거에 나갈 놈이었다. 돌아가는 머리가 퍽 좋은 놈이었다. 대대로 이어지는 학생회의 비리를 뿌리 뽑겠다며 이를 갈던 이제노. 제노의 말을 듣던 동혁이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맞는 것 같은데?



“그냥 잘못 보낸 거 아닐,”



  아니!

  세상이 깔깔거렸다. 우린 절대 거짓말 안 해. 아이들처럼 웃으며 방향을 가리켰다. 난생처음 듣는 비명이 안일했던 하루를 찢었다. 처음. 문자를 보며 장난을 치던 중 바닥에 넘어져 팔이 쓸렸다. 둘. 넘어진 상대가 짜증을 내며 상처를 보인 순간 일이 터졌다. 셋. 사람의 형상이 아니다. 넷. 용암처럼 부글거리던 눈이 터졌다. 다섯. 살려달라고 우는 순간 목이 부풀어 올라 더는 아무 소리도 나질 않았다. 여섯. 붉고 검은 자국이 우리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식하기 전, 제노와 동혁이 동시에 팔을 당겨 끌었다. 피해야 해. 왜?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괴로워하는 학생의 발밑엔 터진 눈알의 잔해가 선명했다. 피가 낭자했다. 울며 소리 지르는 방향을 따라 걸으며 손을 뻗었다. 살려줘. 도와줘. 제발 나 좀…….

  충격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 기면증을 얻었다. 잠을 충분히 자도 난데없이 쓰러지곤 했다. 상처가 나선 안 된 방송 때문에 매일 무릎 보호대와 헬멧을 해야 했다. 언제 어디서 쓰러질지 몰라 대비를 해야 했다. 넘어지는 건 좋다. 그러나 상처는 용납할 수 없다. 상처가 생기는 순간 감염된다. 제노와 동혁은 핏발 선 눈으로 내 곁을 지켰다. 다리의 힘이 풀리는 순간 누구라 할 것 없이 허리를 끌어당겼다. 감긴 눈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한 명이 업고 다른 하나가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안락한 집은 없다. 셋의 부모님은 감염 첫날 모두 창밖의 그것이 됐다.



우리는 그들을 창밖의 그것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동혁이 어렵게 튼 라디오에서 상황을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창밖의 그것. 더는 사람일 수 없는 것. 상처가 나면 창밖의 그것으로 변해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죽기 위해 노력하지 마라. 죽지 못하고 상처만 남는다면 즉시 창밖의 그것이 되고 만다. 죽길 바란다면 상처 없는 죽음만이 최선이다. 수면제. 그 방송 이후 약국에선 수면제 비슷한 것도 찾기 어려웠다. 죽기 위해 약탈하고 죽고 상처 입어 창밖의 그것으로 탄생했다. 죽길 바랐으나 평생 살아야 했다.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길을 떠돌았다. 소리를 낼 수도 볼 수도 없다. 암흑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형벌. 무슨 짓을 해야 용서받을 수 있나. 아니. 아니. 아니.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오랜 시간 암흑에 살던 이들의 눈이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공평해야지. 그토록 바라던 평등. 공평. 우리 같이, 같이 공평 하자. 공평하게 살아가자.




 그러니 너도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 사는 거야. 알겠지?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왜?

  ……싫어.




  끝나긴 하는 지옥인가. 유토피아가 있을 거란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는 것도 지쳤다. 따뜻한 물줄기가 몸을 감쌌다. 물을 쓸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깨끗한 물이 없다면 사람은 죽고 만다. 샤워를 할 수 있는 호사는 둘의 힘이 컸다. 이제노와 이동혁. 기면증이 생기기 전의 행동 패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씻지 않으면 잘 수 없단 과거의 말을 꽉 붙들고 산다. 이젠 어디든 상관없이 잠들고 만다는 걸 알면서도 욕실로 등을 밀었다. 집을 옮길 때마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역시 물. 마실 물이 충분하다 생각되는 순간 욕실로 떠밀렸다. 씻어. 씻고 자야지. 괜찮다는 말에도 손전등 하나를 놓고 사라진다.



“…….”



  쓸데없는 물 낭비가 아닌 과거를 잊고 싶지 않은 거다. 인간의 삶을 영위하던 하루를 잃기 싫어서일 거다. 풍족하던 과거의 나를 잃고 싶지 않아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이제노와 이동혁 역시 그랬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 이제노와 다른 사람에게 다 들릴 정도로 음악을 크게 듣는 이동혁. 죄다 한정적인 자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난다면 우리 역시 삶의 영역을 잊은 채 살아가야 했다.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해야 했다. 샤워가 없고 책과 음악이 없는 삶. 한숨을 쉬며 샤워기 헤드를 잡았다. 이젠 씻는 것도 버겁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사람도 창밖의 그것도 없는 곳으로 가 조용히 살고 싶다. 조금 부족하고 배고파도…….



“아…….”



  깨달았다. 아니. 느꼈다. 머리를 감기 위해 샤워기 헤드를 바꿔 잡는 순간 직감했다. 베였다. 베였다. 베였다. 힘이 풀린 손은 잡고 있던 샤워기를 놓쳤다. 큰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물줄기가 평화로운 분수를 보였다. 베였다. 공포로 터질 듯 뛰는 심장과 달리 정신은 느리게 흘러가다 멈춰버렸다. 아. 베였다. 베였구나. 베였……어. 이명이 들려왔다. 현실감이 나질 않아 꿈 같았다. 욕실의 벽을 타고 울리는 소란을 듣고 뛰어오는 둘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재빨리 문을 걸어 잠갔다. 억지로 들어올 리 없으나 불안했다. 옷을 입고 벗고의 문제가 아니다. 목숨의 문제였다. 창밖의 그것. 상처. 상처. 피도 나오지 않을 정도의 작은 상처가 셋의 사이를 갈랐다. 욱신거리는 통증만이 상처가 있다는 걸 알렸다. 심장이 손가락에 달린 것처럼 거세게 뛴다.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랬나. 아니. 터질 것 같다고 했다. 창밖의 그것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통증. 아니. 고함의 크기. 문을 두드리는 둘의 표정이 어쩐지 상상된다.



“문 열어.”

“여주야. 문 좀 열어봐.”

“열라고!”

“……동혁아. 잠깐 진정…….”



  우습다. 죄다 우스웠다. 부수고 들어올 수 있으면서 지나치게 배려했다. 목숨이 우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정을 잊지 않았다. 불편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생각하며 멈춰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경첩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쿵쿵 두드리는 동안 문의 칠이 떨어졌다. 덜덜 떨면서도 침착하게 대처했다. 문과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창밖의 그것으로 물들일 순 없다. 바이러스가 뇌를 먹는 순간 공평만을 안다. 둘을 오염시키기 위해 애쓸 것을 알기에 멀어져야 했다. 수건걸이에 걸린 옷을 잡아 대충 걸친 뒤 슬리퍼를 질질 끄셨다. 몇 평 안 되는 욕실, 멀어져 봐야 거기가 거기다. 최대한 벽에 붙어 몸을 웅크렸다. 다가올 고통을 기다리며 다리를 당기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아니. 손끝이 덜덜 떨렸다. 현기증 같은 게 아니다. 꼿꼿하던 눈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기면증. 어울리지 않을 상황에 잠이 몰려왔다. 바르게 서 있던 무릎이 무참히 꺾여 추락했다. 기우뚱거리는 몸은 중심을 잡기 위해 퍼덕거렸으나 안타까운 날갯짓에 불과했다. 점점 더 어두워진다. 정신을 잡기 위해 뺨을 연달아 내리쳤다. 반대편으로 돌아갈 정도로 거세게 때렸으나 화끈거리는 뺨이 무색할 정도로 아득해진다. 점점 더.



“……안, 되는데…….”



  어두워졌다.

  아. 일어나면 난 창밖의 그것이 될까.



**



  차분히 들이쉰 숨 안으로 고요한 적막이 섞였다. 보이는 건 오직 어둠이기에 짐작했다. 창밖의 그것이 됐구나. 용암을 부은 것처럼 부글부글 끓다 터져버리는 안구. 고막이 먹혀가듯 피가 흐르는 귀.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뼈. 사람의 몰골이 아닌 창밖의 그것. 작은 상처 하나로 지옥을 고향 삼아 살아야 했다. 찬란한 태양 대신 축축한 어둠을 찬양하며 죽음을 갈구해야 하는 삶. 아. 애들은 날 죽이기 위해 노력했을까. 정신을 잃은 그 순간 어떤 심정으로 목을 졸랐을까. 더러운 바닥에 무방비하게 잠든 날 보고, 상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나를. 나를. 나를. 굳게 감긴 눈꺼풀 아래로 흐르는 피를 보고 짐작했을 거다. 구슬픈 소리를 울리며 꺾이는 뼈를 보며 깨달았겠지. 창밖의 그것이 됐구나. 창밖의…….



“이상 없을 거라고 했잖아.”

“…….”

“이번 일.”

“…….”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

“이제노, 네가 그랬어.”



  이해할 수 없는 대화. 익숙한 목소리와 이름. 단단히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상황도 맥락도 파악하지 못해 눈꺼풀 아래 놓인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아니. 뭔가 이상했다. 눈. 눈. 눈꺼풀 아래 놓인 눈알. 눈. 아. 소리. 눈과 소리. 아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창밖의 그것이 되지 않았다는 첫 번째 신호. 눈와 귀가 있었다. 절망에 고정됐던 눈꺼풀이 어둠을 헤치며 올라섰다. 말로 설명할 순 없으나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았다. 어쩌면 백신의 가능성을 찾은 걸 수도 있다. 상처를 가지고 있어도 예외가 있다면 이는,



“…….”

“…….”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 바르르 떨던 눈이 화를 내던 너와 정통으로 맞았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 머리를 쓸어올리며 몸을 돌리던 중, 정확하게 마주했다.



“……일어났네.”

“…….”

“소여주. 너.”

“…….”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해. 너 우리 생각은 하나도,”

“……누구,”

“…….”

“……누구세요?”



  이동혁의 얼굴을 했으나 이동혁이 아니다. 이제노의 얼굴을 했으나 이제노일 수 없었다. 세상 반대편을 보는 것처럼 기이했다. 같은 얼굴, 같은 성격, 같은 말투. 이상함을 느낄 수 없는 모든 부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하체를 아래로 느껴지는 보드랍고 푹신한 침구. 깨끗한 병원복.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손등의 링겔. 내가 아는 세상은 이렇게 깨끗하지 않다. 우리가 있는 곳은 이렇게 단정하지 않아. 아니.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더 이상한 건.



“……뭐?”

“여주야.”



  둘의 목에 걸린 굵은 밴드. 아니. 목줄. 매끄럽게 빠져 움직임엔 불편함이 없어 보였으나 확실했다. 동물의 목에나 채워두는 목줄. 놀란 몸이 튕기듯 침대에서 떨어져 나왔다. 아무리 망했다고 해도 사람에게 저런 걸 채우지 않아. 아. 아. 아. 아. 아. 창밖의 그것이 된 거야. 아. 되고 만 거야. 창밖의 그것이 돼서 환각을 보는 거야. 눈이 없어서 지옥에 갇히고 만 거다. 의자에 앉아있던 이제노가 놀라 벌떡 일어난 순간 맨발로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뼈를 긁는 찬 기운은 뒷전이다. 당황으로 점철된 이동혁의 눈이 커지는 걸 보자마자 창가를 향해 뛰었다. 죽어야 해. 죽어야 해. 죽기 위해 노력해야 해. 창밖의 그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 젖 먹던 힘을 다해 왼쪽 창문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아마 진짜 둘도 이런 모습을 보고 있을 게 틀림없다. 나는 환각을, 너희는 진짜를 보고 있는 거야. 죽어야 해. 죽어야 해. 이런 지옥에서 평생 살 바에 죽기 위해 노력할 거야.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이 연달아 바닥을 밟고 떨어졌다. 침대와 멀어진 순간 링겔 바늘이 무자비하게 뽑혀 나갔다. 공중으로 튀는 진한 핏방울과 함께 창문으로 팔을 뻗었다. 반쯤 열린 문을 향해 마지막 뜀박질을 떼던 그때,



“너 진짜,”

“…….”

“날 어디까지 엿 먹일래.”



  허리를 잡혔다. 속부터 끓는 목소리가 귓바퀴를 자근자근 씹는다. 거친 숨 하나 없이 깔끔한 호흡으로 등을 감쌌다. 툭. 가볍게 닿는 등과 가슴 치고 온도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묵직했다. 화를 눌러 참듯 꾹꾹 짓이기는 발음이 귓불을 매만진다. 이동혁이 이런 목소리를 낸 적이 있던가. 고막이 터졌을 게 분명했으나 생생하게 들렸다. 눈이 사라졌을 게 분명하나 안도의 숨을 내쉬는 이제노가 선명했다. 보는 상황과 느끼고 있는 체온이 우스울 정도로 뚜렷했다.



“……가이딩 해달라고 안 할게.”

“…….”

“알겠으니까 그만하라고.”

“…….”

“대답해. 답은 들어야겠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은 가중됐다. 맥락을 잡을 수 없는 대화와 지나치게 환한 하늘. 부식되고 망가진 건물은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모든 게 완벽했다. 깨끗하고 쾌적하다. 멀쩡한 것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저 멀리서 들리는 비행기 소리. 손등을 타고 뚝뚝 흐르는 피. 창밖의 그것이 없는 세상. 살려달라고 우는 사람이 없는 곳. 꿈을 꾸는 것처럼 아득하나 가까이 있는 것처럼 존재했다. 꿈. 현실. 어느 쪽인지 헷갈릴 정도로 잘 꾸며진 허상.



“이동혁. 너무 몰아세우지 마.”

“고고한 척은 혼자 다 하시겠다?”

“……여주도 사정이 있었겠지.”

“사정?”

“…….”

“사정이 있어서 그런 곳으로 무턱대고 뛰어들어?”

“…….”

“소여주. 네가 말해.”

“이동혁.”

“넌 빠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눈이 자연스레 이동혁에게 흘렀다. 어깨 위 올라간 손이 몸을 뒤돌게 만든다. 흐르듯 둥글게 도는 시선이 네 손등을 스쳤다. 낙인처럼 박힌 검은 다이아. 아. 이건 꿈일 게 분명해. 이동혁의 몸엔 문신이 없다. 바늘을 견딜 자신이 없다며 몸을 부르르 떨던 과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니. 그 전에 지금 문신을 할 여유가 있던가. 해줄 사람은?

  아니.

  아무것도 없어.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내내 멍하던 시선이 그제야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완전히 돈 몸과 시선이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 섰다. 이동혁이나 이동혁일 수 없는.



“거기에 포자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

“치료제 없는 거 알면서 왜 뛰어들었는지.”

“…….”

“그리고.”

“…….”

“지금 왜 가이딩이 이렇게 줄줄 새는지,”

“…….”

“설명해.”






  끝없이 타오르는 불.

  눈앞에 있는 건 이동혁이 아닌,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단 하나의 화마.



**




숲속으로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 안에 있는 버려진 건물을 통해서 나가.

흑과 백으로 나뉜 우리는 영원히 섞이지 못해.

내가 악이라면 넌 선.

물레 바늘에 찔릴 누군가를 지지하는 건 네 선택이야.

차를 우리는 건 이 정도면 됐어.

자, 모자 장수.

이번엔 네가 선택할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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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젤리들!

본 글은 그냥... 샤워하다가 샤워기 헤드에 손가락을 싹 베였는데 ㅋㅋ 이 상처가 파상풍으로 감염되진 않겠지...??? ㅜㅜ 하는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얼렁뚱땅... 이 글도 첫 글만 썼어요...안 쓴 지 좀 됨.


1. 중2 때부터 만나게 된 재민, 동혁, 제노와 여주. 근데 이 글에서 재민은 나오질 않았네용. 셋과는 다른 대학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얘들이 가는 길도 재민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재민이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민의 집으로 가보자! 해서 셋은 이동합니다. 상처, 감염의 시작이 됩니다. 이 바이러스는 어디든 상처만 나면 감염이 되는데요. 왜 감염 되는지. 바이러스의 종류가 뭔지. 감염의 경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물인지. 공기인지. 그냥 사람 자체인지!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저 당하기만 합니다. 아주 작은 생채기만 나도 감염이 돼요. 즉 다치지 않아야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밖의 그것, 그냥 괴물로 부를게요. 괴물은 죽여도 죽지 않아요. 죽여도 죽지 않는데... 괜히 죽이려고 했다가 나만 다치면 ㅜㅜ 나도 창밖의 그것이 되니까... 여기서 창밖의 그것 이름의 유래가 짐작가질 않나요? 나는 창안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고 그것들은 창밖에 위치하니까. 창밖의 그것. 고로 창밖은 그들의 세상. 나가지 못한다는 걸 뜻합니다. 



2. 셋은 재민을 찾기 위해 창밖의 그것을 피하며 도망다녀요. 바이러스가 학교를 덮친 이후 여주는 기면증을 얻게 됩니다. 왜인지는 몰라요. 그냥 까무룩 잠이 듭니다. :) 그러던 중 샤워를 하다 상처가 나고 그 충격에 문을 닫고 혼자 웅크린 채 잠듭니다. 그리고 눈을 반짝! 떴는데 엥? 병원이야. 이제노. 이동혁 너무 깨끗하고... 동혁이 손엔 문신까지 있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세상은 너무 깨끗하고 안전해요. 바이러스가 발병하기 전의 세상처럼 깔쌈-합니다. 근데 여기서 몇 가지 단어가 걸리죠.  가이딩. 포자. 치료제. 목줄처럼 걸린 밴드.



3. 세상에 바이러스가 퍼지자마자 시작된 기면증. 손가락을 베이자마자 잠들게 되는 것. 그 후 눈을 뜬 곳은 가이딩, 이라는 것이 있는 세상. 즉 센티넬 세계관이 이어집니다. 이 세계관은 센티넬이 통제되는 세상입니다. 목에 그...강아지 짖음 방지기ㅜㅜ 같은 게 채워져 있어요. 비슷합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고 탈출을 감행할 시 충격이 이뤄집니다. 이는 가이딩을 한번에 확 몰아넣는 장치로 목에 박힌 바늘로 가이딩 농축제가 주입됩니다. 그렇기에 거의 반죽음을 경험하게 돼요. 이걸 막기 위해 팀 가이드가 있습니다. 그 가이딩을 다 뽑아내야 하니까. 센티넬을 죽일 순 없잖아요ㅜㅜ 그 가이드가 바로 여주가 되는 거죠. 근데 감염 여주로 깨어나기 직전, 가이드 여주는 뭔가를 발견한 듯 뛰어들었다고 해요. 포자가 거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 이 말은 곧 이곳과 현실의 감염이 연결돼 있단 걸 알 수 있어요. 이동혁과 이제노. 모두 똑같으나... 다르죠. 평범한 대딩 둘과 통제받는 센티넬 둘은 다름. 여주는 혼란을 느끼며 동혁이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야 센티넬 세계관 알지만...여주는 모르잖아요ㅜㅜ




4. 여주는 잠을 매개체로 해 감염 세상과 센티넬 세상을 넘나듭니다. 감염된 세상과 감염되기 전의 세상. 같은 인물. 우연이라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들어맞는 기면증의 시작. 이 뒤는 쓸지 안 쓸지 모르겠지만... :) 



+ 마지막 구절은 상상...해보세요. :) 이 글... 젤리의 상상으로 결말을 이룰 수 있습니다...전...쓸 거란 확신이 없거든요...:) 이미 몇 달 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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