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고 나발이고 쉴드에 이송당한 아이든은 피떡이 된 옷가지를 갈아입고 간단히 씻은 뒤, 페기 카터의 방으로 직행했다.


"테서랙트, 어디 있지?"

"....마리아가 다 말해준 건가?"

"입단속 시켜놨나 보군. 걔는 아무 말도 안했어. 내가 대충 추리해서 때려맞춘 거지."


설명해, 아이든이 통보했다. 페기 카터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를 설명하기 전에 잠깐 들이쉬는 숨일 뿐, 그가 입을 연다.


"암살 위협을 당한 후에, 나는 몇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 네 존재를 아는 자들, 혹은 내 행적을 아는 자들. 이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쉴드 내부의 인원 뿐이야."


아이든이 벽에 몸을 기대었다. 경청의 신호다. 두 눈이 페기 카터를 향했다.


"쉴드 내부의, 스파이가 있을 가능성을 두고 네게 임무를 보냈지. 표면적으로는 '용병 아이든 헌터와 요원 니콜라스 퓨리의 미확인 에너지 회수'. 하지만 간부진들과 레벨 7 이상의 요원들에게는 '테서랙트의 에너지 탐색'."


페기의 얼굴이 잠깐 일그러졌다. 아이든 헌터는 꽤 덤덤해보였다.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지만, 헌터는 별 상관 없다고 여겼다. 쉴드 내부의 일은 자신이 알 필요 없는 것이다.


"스파이라면, 테서랙트 에너지에 마음이 동할 거라고 여겼지. 그리고 어떤 암살자가 와도 너라면 살아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만약 그 목표가 너라면 의구심을 느꼈을 테니까."


그리고 난, 이제 쉴드 내부에 스파이가 있음을 확신했어. 페기가 말을 잇는다. 아이든은 고요히 경청한다. 쉴드의 국장 자리는 날로 먹은 것이 아니로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그 윈터솔져가 너에게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누군가 정보를 흘렸어. 너에 대한 것을."


아이든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 정보라, 어디서 샜지?


"테서랙트는, 하워드 스타크가 발견한 거야. 알고 있지? 쉴드의, 또 다른 창립자 중 하나."

"....."

"바다 속에 파묻혀 있던 걸 그가 발견했지. 지금은 쉴드의 소유고."

"그런데 그 정보가 샌 건가."

"...지금까지도 마리아와 연구결과를 몇번 흘려봤어. ..아무래도 그 와중에 마리아를 마킹한 것 같아."

"그러다 내가 걸린 거야? 하지만 그러기엔, 그 윈터솔져가.."


아니, 페기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너에 대한 정보를 아는 건 나와 전 하울링 코만도스 뿐이야. 그건 확신할 수 있어. 어떤 곳에도 기록하지 않았어."

"퓨리는?"

"그는 네 정보에 접근 못해. 애초에 네 정보는 완전히 조작된 것 뿐이고."


페기 카터가 확신하듯 말했다. 아이든은 그의 부드럽지만 단단한 갈색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페기는 아이든의 심해처럼 어두운 눈동자가, 꼭 자신을 낱낱히 파헤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장담할 수 있어?"

"장담할 수 있어."

"...그럼 다른 곳에서 정보가 샜다는 건데."


아이든이 얼굴을 찡그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내 정보는 기록되지 않았어. 체스터가 몰래 기록하려고 할 때마다 내가 전부 깨부숴버렸으니."

"..그랬어?"

"그랬지."


아이든이 거기까지 말하고 홍차에 설탕을 퐁당 집어넣었다. 달그락, 홍차를 휘휘 저으며 아이든이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럼 누구지? 애초에 내 정보를 아는 건 극소수야. 2차 세계대전 당시 체스터 필립스와, 몇몇 장교들..은 체스터가 알아서 입을 막았고. 하울링 코만도스는 애초에 이런 걸 말할 놈들이 아니고. 그렇다고 쉴드에서 흘러나갔다기엔 내 정보를 기록한 매체가 아예 없어."

"....."

"..좋아, 이건 제쳐두자. 애초에 이 놈들은 나에 대해 가진 정보가 극히 적으니까. 페기, 일단, 싱가포르 출신의 내 정보는 사망처리로 돌려줘."

"이미 그렇게 했어."

"빠르네."


다 식은 홍차를 벌컥벌컥 들이킨 아이든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찻잣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더 줄까? 페기의 물음에 아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레베카와 로버트의 안전 가옥은, 더 경계를 강화하는게 좋겠어. 소거법으로 봤을 때, 날 아는 건 배너 가족 밖에 안 남는데, 혹시 레베카가 브라이언의 면회를 갔었나?"

"내가 알기론 두번."

"..그때인가..."


아이든이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일단 레베카에겐 내가 편지라도 보내보지. 혹시 내 이야기 했느냐고. 마리아는 거처를 옮기라고 하는게 좋겠는데. 애초에 걔랑 내가 한세트인 걸로 인식이 됬을 거야. 처음에 마리아를 회수하러 간 것도 나였으니까. ..그리고 다음부턴 날 미끼로 쓸 때 미리 말해."

"속인 건 미안, 하지만 급작스럽게 나타난 테서랙트의 에너지원을 안전하게 회수할 필요가 있었어. 설마 그런 무기를 들고 있을 줄은 나도 몰랐지."

"아오..."


아이든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화났어?"


페기가 물어왔다. 아이든은 페기를 쳐다보았다. 싱긋 웃는 그를 보며 아이든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너는 네 일에 충실했던 거니까, 화 안났어. 나라도 그랬을 걸 아니까."

"이해해줘서 고마워. 사실 하이드라가 거기 관련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어. 오히려 내가 노렸던 건 쉴드 내부의 스파이가 어디 포진했느냐 였어."

"너 그때 이미 확신하고 있었구나?"

"모를 리가. 이래뵈도 쉴드의 국장인데."

"하...."


날 용병으로 고용하라고 했을 때 오케이한것도 그건가. 발을 뺄 수 있으니. 아이든은 홍차를 무심코 들이키다 얼굴을 찡그렸다.


"언제 따른거야.."

"후후."

"아, 빡쳐.."


아이든은 얼굴을 있는대로 구겼다. 그런 아이든을 보던 페기는 조금 씁슬하게 웃었다. 어떤 조직의 리더가 되면 항상 강요받는 순간이 있다. 효율을 따를 것인가, 정의를 지킬 것인가. 이번에 페기 카터는 효율을 선택했다. 그걸 알기에 아이든 역시 페기에게 분노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든 역시, 효율을 택할 테니까. 이해할 수 있어.


"하여간, 난 그 테서랙트랑은 상성이 안 좋아. 알고 있으라는 소리다. ..나 말고 다른 놈들이 맞으면 바로 녹을 테니 내가 전담임무를 맞게 될 것 같은데.."

"맞아."

"너 보수 똑바로 줘라."

"내가 돈 떼먹는 거 봤어?"


나 졸부야. 페기가 몸을 의자에 기대며 씩 웃었다. 페기를 졸부로 만들어준 아이든 헌터가 이를 갈았다.


"됐어. 난 테서랙트의 행방과 각 조직들의 상관관계가 궁금했던 거니까. 보고서는 오늘 중으로 보낼 테니까 확인하고."

"그래. 그리고 거처는 내가 이미 옮겨놨으니까, 거기서 지내도록 해. 퓨리가 안내할 거야."

"그래."

"그리고..."


페기 카터가 잠깐 주저하다 물었다.


"-몸상태는 어때?"

"멀쩡해."

"..마리아가 보고한 걸 들었어. 사지가,"

"그건 마리아가 과장한 거고."


페기가 아이든을 말끄러미 쳐다봤다. 갈색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아이든을 쳐다본다. 아이든 헌터의 눈 역시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고요한 심해 속에 깃든 어둠과 같이 차분하다. 거짓이 없음을 확인한 페기가 한숨을 쉬었다. 일종의 경고를 감지한 탓이다. 더 묻지 말라는, 아이든 헌터의.


"...넌 어린데, 널 이용..할 때마다 이게 맞는 건가 의심이 들어."

"...."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로 넌 정의로워, 페기."


아이든이 단정한 낯으로 말했다.


"내가 어린 건 맞지. 객관적으로 그리 생기기도 했고. 하지만 페기 카터, 난 내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고, 오히려 먼저 거래를 청하기도 했어. 이용당할 때는 좀 빡친다만, 나는 유용한 장기말인게 맞아."

"...."

"다른 말들을 사용했을 때와 달리, 배신할 수도 없고, 정보도 상당히 알아서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다가 전투력도 최상급이지. 날 이용하는 게 윤리적으로 맞을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 봐. 곰을 죽이는 임무에 농부를 보낼거야, 포수를 보낼거야?"

"..포수를 보내겠지."

"그래. 나라면 그 포수한테 대포라도 들려 보낼거고. 난 원하면 산불도 낼 수 있고 수습도 가능한 포수야. 곰한테 절대 죽지 않을 훌륭한 포수지."

"...."

"넌 옳은 선택을 하는 거다. 매일같이 사람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서, 가장 사람 많이 살릴 수 있는 선택 하는거라고."


페기는 침통하게 침묵을 택했다. 아이든 헌터의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와, 말랐지만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뺨, 그리고 그 몸에 자잘이 남은 잔상처나 흉터를 볼 때마다 페기 카터는 죄책감을 느끼고는 했다.


이게 맞는 걸까? 나는 정의와 지구의 안보를 핑계로 어린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속삭인다. 아이든은 이미 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어. 싫으면 싫다고, 위험하다면 거부할 능력도 주관도 가졌어.


두 가지 주장이 상반되어 부딪힌다. 양심의 가책, 침묵하는 페기를 보던 아이든이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미안하면 브라이언이나 빨리 잡아서 감옥에 처넣자고. 그 새끼 테서랙트에 손대고 있는 것 같은데. 애초에 하이드라에 테서랙트도 없는데 어떻게 그 지랄을 떠는 거야?"

"...미리 만들어 놓은 무기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거지. 예전 쉴드처럼."

"자크가 쓰던 무기가 하이드라에서 약탈해온 거였으니까... 그럼 쉴드는 그 에너지를 무기를 계발하는 중에 알았겠군."

"그런 셈이지.. 테서랙트는 하이드라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돼."


아이든은 페기의 말을 듣다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아, 인생 개같다."

"너 퓨리 시킬테니까 건강검진 받아."

"아, 젠장."


지구가 망해도 밥은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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