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걸이랑 일을 다녀오겠다고?"

산처럼 치솟는 신어머니의 눈썹을 본 현걸은 물론 근혁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방석 위에 얌전히 무릎을 꿇어 앉았다. 밖은 시끌시끌 했는데, 묵직한 기세가 눌러앉은 방 안은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했다.

현걸의 나이는 갓 스물이었다. 사회와 무속의 세계 어느 곳에서도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한참 미숙할 나이. 하지만 뛰는 법을 배우기 전에 어머니의 경무를 따라 추고 자장가 대신 경을 듣고 자란 현걸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빠른 습득력과 훌륭한 암기력 그리고 일찍 신을 모신 그는 애동이라기엔 무척 과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홀로 독립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으나, 현걸의 신어머니는 유독 현걸을 치마폭에 감싸고 보호하는 편이었다. 실력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마치 물가에 어린애 내놓는 것과 같이 느껴지는 건지 어떤 굿판에도 홀로 내보낸 적이 없으니, 과보호라고 할 수밖에.

'이해 못할 것도 없지. 아니, 당연한가.'

마주한 기세에 눌려 긴장으로 손에 땀을 쥐면서도 근혁의 납득은 빨랐다. 왜냐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무속인치고, 아니. 근 30년 안에 활동하고 있는 무속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굿판이 있었으니까. 굿을 진행하던 무당은 물론이오 악사부터 굿을 한 집 근방의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죄 끔찍한 몰골로 피를 토하고 죽은 최악의 사건이었다. 그나마 희생이 아예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끝내 악귀는 물러났다던가. 어쨌든 모두가 쉬쉬하면서도 뒤에서 부르기를 혈굿이라 부르던 그 일은, 무속인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중요한 건, 바로 그 굿에서 현걸이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지.'

신자매의 끔찍한 죽음을 겪은 사람이 선택할 방향은 참으로 뻔하지 않은가? 아이가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을 수련하게 하면서도, 최대한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늘 곁에 두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근혁은 칼같이 거절당할 걸 각오한 채로 다시 한번 허락을 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개발 예정인 마을에 계신 서낭신*을 뵙는 일입니다. 근데 그분이 꽤 오래 그곳을 지키신 분이셔서요."

"현걸이가 필요한 이유는."

"아시잖아요, 그런 분들은 절 별로 안 좋아하시는 거……. 하필 고속도로가 서낭나무를 가로지르는 위치라, 점안식* 제안도 드려야 해서 그렇습니다."

이야, 이거 결혼 허락받는 예비 사위라도 된 기분인걸. 현걸의 신어머니가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법한 생각을 하면서도 근혁은 꼿꼿이 허리를 펴고 그의 눈을 마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은 현걸이 없어도 그저 근혁 혼자서도 시간을 더 들여 충분히 성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미움받는 제자라고 하나, 신의 제자가 아닌가. 더군다나 근혁의 몸주신*은 격이 높은 신이니 어지간한 신령들은 그를 봐서라도 근혁에게 해를 가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경험은 중요하잖아?'

사람이 천년만년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고 현걸을 신어머니가 지켜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제 스승이 한 것처럼 너무하다 싶게 굴릴 것까진 없지만, 홀로 일을 경험하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사람을 모으는 일은 해봐야만 터득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여 근혁은 현걸을 위해 물과 소금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허락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기묘한 대치 속에서 한참의 침묵을 깨트린 건, 방문 밖에서 들려온 바라지의 목소리였다.

"선생님들, 점심상 들이겠습니다."

이윽고 방에 들어오는 큼지막한 상 위에 놓인 삼계탕, 정확히는 삼계탕이 담긴 뚝배기를 본 순간 근혁의 동공이 결심과 함께 흔들렸다. 저걸 맞으면 당장 나도 일 못 나가겠는데? 우습게도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린 현걸도 급히 제 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평소 불같고 호방한 그의 성격을 떠올리면 근혁에게 뚝배기를 던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으니!

"그래라."

"배 선생님, 제발 허라악…! 예?"

"어머ㄴ…! 네?"

한 놈은 머리를 감싸쥐고 엎어지고, 다른 놈은 급히 제 옷자락을 붙들려다 멈춘 몰골을 바라보던 이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내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나, 몸주신께서 나직하게 둘을 함께 보내라 하시니 도리가 있나. 나는 방법을 배울 때를 놓친 새는 영영 둥지에 갇혀있다 죽을 테요, 현걸을 그런 최후로 등 떠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뭣들 해? 밥 식는다."


* * *


"어서 와. 내 신당에는 처음이지?"

든든하게 점심을 먹은 뒤, 신어머니께 잘 다녀오겠노라 인사를 드린 다음 간만에 사복 차림을-그래봐야 흰 저고리가 흰 셔츠가 되었을 뿐이지만-한 현걸이 대문을 나서자, 고급스러운 검은색 외제 차에 기대어 웃는 근혁이 있었다. 제아무리 차에 관심이 없는 현걸이라도 눈치 못 채기 어려울 정도로 값이 나가 보이는 그 모습에 뒤늦게야 밖에서 집안의 일꾼들과 제자들이 시끄러웠던 것이 이해됐다. 그런데, 신당?

"김 선생님이랑 같이 청주에 차린 게 아니야?"

"응. 거긴 선생님 신당. 이게 내가 차린 신당. 신개념 이동식 신당이랄까."

"바라지나 악사, 법사님들은?"

"다 전문 객원 팀이 있지. 걱정할 거 없어."

별나다는 소리를 듣긴 했어도, 이렇게 별날 줄이야! 요즘의 젊은 무속인들이 선생님들 때와 많이 달라져서 이젠 무구며 무복도 그저 돈을 써서 사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신당을 차에 차렸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경우였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차 이름에 고스트가 들어가서라니!

"근혁이 너, 정말 엉뚱하구나."

"그래서 싫은 건 아니지?"

마치 자길 에스코트하듯 조수석의 문을 여는 근혁에게 푸스스 웃어준 현걸이 차에 올랐다. 과연, 신당이라더니. 뒷자리까지 가득 차 있는 물건들은 전부 무구 아니면 비방인 모양이었다. 어느새 운전석에 들어와 앉은 근혁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며 다시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오늘 의뢰주는 마을 사람들은 아니고, 건설사. 땅이나 건물 만지는 양반들이 겪은 게 많아서 더 조심스럽거든."

"당장 굿할 일은 없는 거지?"

"뭐, 오늘은 답사 차원이니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오래되신 신령님이시니 점잖길 바라야지. 가서 얘기 나눠보고, 굿이랑 점안식은 공사 전으로만 잡으면 될 거야. 다른 선생님들은 그때 모시면 돼."

처음으로 신어머니 없이 나가는 외출이었다. 내심 긴장으로 떨리던 가슴은 걱정하지 말라며 눈을 찡긋대는 근혁의 얼굴을 본 순간 설렘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저 가벼운 걸음으로 가면 되는 일, 간밤 꾸었던 길몽. 무엇보다 곁을 지켜주는 근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 현걸은 비로소 탁 트인 숨을 뱉었다.

출발하는 차의 백미러로 문득 보인 것은, 어느새 대문 밖까지 나와 떠나는 신아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눈에 담는 중년 여인의 모습이었다. 평생 곁에 있으리라, 자신의 앞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습이 점차 뒤로 멀어지는 것은 묘한 감각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창문 밖의 풍경처럼 현걸의 세상도 변하고 있었다.


* * *


한적한 도로를 달려 근혁과 현걸이 마을에 도착한 건 늦은 오후가 되기 전이었다.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작고 조용한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운 뒤 둘은 곧장 서낭나무*가 있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함께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 속에 풍경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현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아깝다."

길에 피어난 들꽃부터 무성한 숲에 있을 짐승들 그리고 사람이 살지 않을지언정 곳곳에 보존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 자체인 옛 건물을 도로와 시멘트로 밀어버려야 한다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 현걸을 바라보던 근혁은 덤덤하게 주민들이 사는 몇 없는 낡은 집에 시선을 던졌다.

"원래 빈곤은 사람을 아귀로 만들기 마련이야. 제 살, 남의 살을 뜯지 않고 땅으로 달래질 허기면 싸게 치는 거지."

빈곤, 굶주림, 가난. 어지간한 악귀보다 더 지독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것들에 몸서리치듯 고개를 휘휘 저은 근혁은 가만히 현걸의 어깨를 다독였다.

"도로가 아니었어도 망했을 마을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현걸아."

주민 중 가장 어린 사람의 나이가 57세였다. 젊은 사람도 방문객도 없이 쇠락의 길을 걸으며 소멸만을 기다리고 있던 마을의 중심에 다다른 둘은 거대한 나무 앞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분명 오색천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고목인데…….

"안 계시지?"

"어. 기운이 빠진 지 좀 된 것 같은데……."

근혁도 현걸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벙찐 얼굴로 한참 나무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을 때였다.

"거기 누굽니까?"

처음 보는 차와 낯선 이들이 보이니, 저 멀리에서부터 달려온 것은 마을의 이장이었다. 한때 청년회장이었으나 이제 청년도 아니게 됐고, 다른 어르신들은 워낙 노쇠하셨으니 가장 어린데도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그에게 근혁은 자연스럽게 건설사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남일 건설에서 나왔습니다. 마을 좀 미리 둘러보려고요."

"아아, 그러셨구나!"

"어르신. 마을에 서낭나무가 이거 말고 또 있습니까?"

"아뇨. 마을에 서낭나무라곤 이거 한 그루뿐인데요."

고개를 내저은 그는 허리를 짚고 우뚝 솟은 나무를 올려보았다. 그래도 그가 젊었을 적에는 서낭나무를 중심으로 잔치도 많이 열리고, 치성도 드리고 했는데 그것도 이젠 오래된 일이었다. 사람들이 떠나니 잔치를 준비할 손도 없고, 지갑이 얇아지니 무당 모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일이 아닌 해 단위로 바뀌어 어느새 지금이었다.

"그나마 저쪽 언덕배기에 사시는 할머님이 종종 전 같은 걸 두고 가시는데, 그뿐이죠."

정말 신령님이 지켜주셨다면, 마을이 이렇게까지 됐겠습니까? 그 말에 현걸은 입술을 달싹였다. 신, 더군다나 조상신도 아닌 천신이 빌어주는 것은 하찮은 돈과 명예가 아닌 인간의 안녕일진대. 감히 바라면 안 될 것을 바라는 그들이 괘씸하면서도 딱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겪지 못한 가난에 어찌 말을 얹겠는가.

결국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을 이장의 몇 차례의 푸념을 끝으로 그가 내려간 뒤에야 다시 마을을 둘러보던 근혁과 현걸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서낭신이 자리에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이곳에 들어섰을 때부터 느껴진 묘한 기시감.

"근혁아. 너도 느꼈지?"

"그래. 이 마을……. 영가가 하나도 없다."

죽은 자는 어디라도 있기 마련이다. 물이든, 땅이든. 나무든, 하늘이든. 어둡고 환한 곳을 가리지 않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비정상적으로 비어있는 것은 실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하물며 나무와 마을을 지키던 선황신령 같이 큰 신이 정말 마을을 떠났다면, 그 자리를 대신할 만큼 엄청난 수의 귀신들이 들이차야 정상인데.

"혹시 모르니 더 살펴보고 가자."

스산한 바람이 노을이 물드는 산등성이를 타고 조용히 불어오기 시작했다. 


*서낭신 : 마을의 수호신. 선왕신, 성황신과 같은 뜻.

**점안식 : 신앙의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의식. 본래 불교의 의식으로, 물건에 깃든 신을 다른 곳에 옮기기 위한 의식으로도 쓰인다.

***몸주신 : 무당이 가진 영력의 주체가 되는 신격

****서낭나무 : 서낭신(=성황신)을 모시는 나무 형태의 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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