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갈거야?"

"가야지.. 물론 여긴 뉴욕이고 거기는 캘리포니아라서 더럽게 멀겠지만."


아이든의 대답에 페기가 픽 웃었다.


"가기 전에 제안하고 싶은게 있는데."



.

.

.




"쉴드 요원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야?"

"그래, 넌 신분을 얻고, 우리는 언제든지 협력할 수 있는 좋은 동료를 얻고. 그리고 네가 어디로 떨어지던지 그 나라에 있는 쉴드 본부에 찾아오기만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돼. 의식주, 돈, 신분.. 그런 것들."


페기 카터의 제안이었다. 아이든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기만 할 뿐이었다.


"주식 떼 달라고 했지? 쉴드 요원에 들어오면 요원 전용 통장에 바로 넣어줄게."

"아니, 기다려. 페기 카터."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쉰 아이든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내 정보가 기록되는 건 꺼려지는데."

"..어째서?"


아이든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보가 기록된다는 것은 즉 이곳에서 지냈다, 혹은 함께 살았다는 것의 증거를 만드는 것. 그리고 아이든 헌터는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증을 그렇게 철저히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과거 나라가 분단되면서 간첩과 국민을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서다.


정보가 기록된다는 것은, 언젠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새어나간다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든은 언젠가 이곳에서 다시 왔을 때 쉴드가 자신에게 우호적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수장인 페기 카터와 다른 하울링 코만도스가 살아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지만, 만약 수장이 바뀌면? 그들이 자신의 정보를 악용한다면, 그것으로 자신을 협박하지 않는단 보장이 있는가?


...그리고 실상, 아이든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현대인의 도덕개념과 윤리관이 머릿속에 있다 한들, 그것은 아이든 헌터의 가치관이 아닌 정보였다.


...부락, 나의 편에 방해되는 것은 배제한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현대의 법이라면 경찰에 신고하는게 답이겠지만, 아이든의 세상에는 경찰이 없다.


아이든은 이미 살인자고, 살인을 했고, 이곳에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살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정보의 보안은 중요하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로 목숨줄을 쥐어잡힌다. 아이든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여, 소녀는 페기 카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난 쉴드를 믿기 힘들어."

"..그게 무슨 뜻이지?"

"..언젠가 쉴드의 수장이 바뀌었을 때 과연 쉴드가 내 편일까? 내 정보를 악용할 이들이 없을까? 페기 카터, 말해줘. 캡틴 아메리카의 혈청 하나 때문에 그렇게 많은 범죄가 일어났었는데, 내 피를 노리지 않는 자가 없을까?"

"쉴드는 지구에 위협이 되는 것들과 대적하고 막는 기관이야. 민간인을 안 건드려."

"난 민간인이 아니야, 카터."


아이든이 단언했다.


"난 민간인이 아니고, 될 생각도 없어. 내가 링크될 이가 민간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고."


아이든이 한숨을 쉬었다.


"나와 링크된, 그리고 링크될 사람을 위해서라도 내 정보는 숨기는 게 맞아. 물론 내 정체가 쉴드에 기록되고 그로 인해 얻을 혜택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난 그것보다 내 정보가 노출되는 게 더 싫어. 내가 링크된 게 누구였는지 생각해 봐. 무려 그 캡틴 아메리카에 반즈 병장이야. 걔넨 민간인이 아니라고."


내 정보를 노출하는 것은 싫다. 그것은 단서가 되기 마련이니까. CCTV에 찍힌 아이든 헌터의 신형과 쉴드에 기록된 정보를 가지고 범죄 용의자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이든 헌터는 자신을 찾을 단서가 될 정보가 기록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아이든 헌터가 반드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페기 카터가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무언가 설득을 시도하려는 페기 카터에게 아이든이 역으로 제안했다.


"차라리 나한테 의뢰를 넣던지."

"의뢰..라고."

"왜, 나 정도면 좋은 거래 상대일텐데. 어디 정보 팔아먹을 일도 없고. 쉴드 정도의 국제 기관이면 임시로 신분 하나 만드는 건 쉬울테니까."



*




디즈니랜드, 저작권 부자 디즈니가 만든 세계 최초의 테마파크. 페기 카터가 만들어준 임시 여권으로 캘리포니아까지 날아온 아이든은 눈을 반짝거리는 레베카와 로버트를 보며 흐릿하게 웃었다.


"..여기가 바로 세계 최초의 테마파크인가.."

"세상에, 너무 멋지다! 그렇지, 아들?"

"응! 너무 멋져! 꼭 마법나라같아!"


아이든은 잔뜩 흥에 겨운 모녀를 바라보며 회한에 찬 눈으로 번쩍거리며 네온사인을 빛내는 디즈니랜드의 구조물을 응시했다. 파스텔 톤의 빛과 페인트가 있는가 하면 보기만 해도 눈이 아플 정도로 쨍한 원색의 장식물들이 전기의 힘을 빌어 덜컹거리고 있었다.


로버트는 제 엄마의 손을 잡아 끌고 가까운 기념품 가게부터 들어가, 바삭하게 튀긴 츄러스와 초콜릿 시럽, 그리고 미키 마우스 머리띠를 사들고 나왔다.


"아이든, 아이든도 하나 줄게."


괜찮은데. 미묘한 얼굴을 지으면서도 아이든은 순순히 도널드 덕의 모자를 쓴 채 음료수를 홀짝였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디즈니 랜드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이 중에 몇몇은 동양인이었고, 흑인과, 더 멀리 있는 나라의 인종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든도 이 안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않았다.


저 한구석에서 미키 마우스와 사진을 찍는 로버트를 보며 아이든은 픽 웃었다. 아무리 어른스럽다 해도 속알맹이는 여섯살에, 이제 생일이 지나면 겨우겨우 일곱이나 될 애였다. 아이든은 남은 음료수를 입에 털어넣고 남은 컵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뒤, 발발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니는 로버트를 따라갔다.







한동안 돌아다닌 디즈니 랜드는 완전히 별세계였다. 20세기 생인 레베카와 로버트 모자에게 그러했던 것과는 별개로 아이든에게 까지 말이다.

하기사, 아이든이 사는 21세기엔 파스텔이며 원색은 색칠 벗겨진 회색이나 모래에 물든 눅눅한 황색 뿐이었다. 아이든은 우뚝 선 하늘색 지붕에 성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예전에 나갔던 원정에서 저 성을 봤었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 디즈니 랜드의 상징들 중 하나. 하늘색 지붕과 황금색 기둥, 그리고 도개교. 저 안에 공주들이 지낸다던가, 레베카는 로버트를 안아들고 어릴 적 꿈꾸던 공주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어 하고 있었다.


"오, 저 지붕 저런 모양이었구만."


아이든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신데렐라를 가장 좋아했다고 말하던 레베카가 아이든을 돌아봤다. 뭐라고? 아뇨, 아무것도.

차마 설레어하는 레베카와 로버트에게 자신의 세계의 디즈니 랜드는 갱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말하지 못한 아이든 헌터였다.

아이든이 기억하는 성의 지붕은 빨간색 스프레이로 도배된 흉한 몰골이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뭐, 그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좋은게 좋은 것이다, 생각하며 성 안을 구경한 아이든은 아직 인어공주가 개봉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살짝 놀랐다. 아, 아직 1976년이었지.


이후로도 아이든은 둘을 따라다니며 가끔 간식을 얻어먹었다. 귀신의 집과 회전목마, 돌리는 컵을 지나 두더지 잡기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아이든은 로버트에게 큼직한 미키마우스를 안겨주었다.


"내가 들고 있을까?"

"아냐, 내가 들래."

"무거울 텐데."

"안 무거워."


아니, 이미 미키마우스 발이 흙투성이가 됬다고. 빨면 되겠지, 아이든은 그렇게 넘기고는 분수 근처에 앉았다.


"세상에, 꿈만 같구나."


레베카가 핫도그를 베어물며 중얼거렸다. 아이든은 열심히 와플을 오물거리는 로버트의 입가에 묻은 시럽을 냅킨으로 훔쳐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참.. 별세계네요."

"비행기 타고 온 보람이 있어. 세상에.."


꿈이 현실이 된다면 이런 곳이겠지.. 레베카가 꿈꾸듯 중얼거렸다. 아이든은 말없이 제 몫의 샌드위치를 먹어치웠다. 안타깝게도 꿈도 희망도 없는 이 소녀는 진즉 디즈니 랜드에 적응이 끝난 상태였다.


"오늘 저녁에 불꽃놀이 한다고 피터팬이 그랬어. 우리 불꽃놀이 보고 가자."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퍼레이드도 보고 갈 거야."


레베카가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든은 둘의 모습을 보며 힐긋 웃었다.




이후로도 세 사람은 디즈니 랜드를 종횡무진하며 즐겁게 놀았다. 아이든은 그 중에 상품이나 경품이 걸린 이벤트에 많이 참가했다. 예를 들어 다트 던지기나 장난감 총으로 상품 맞히기.


아이든 헌터는 귀신같이 모든 이벤트에서 최고 경품을 따냈고, 귀신같이 모든 뽑기에서 꽝을 뽑았다. 로버트의 손에 이끌려 코스프레 하는 곳으로 들어간 아이든은 후크 선장이 된 로버트와 웬디가 된 레베카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본인은 별 분장을 하지 않았다(전 옷 갈아입기 귀찮아서요...).


그렇게 저녁, 토끼 굴같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끝마친 셋은 퍼레이드를 실컷 구경하고 근처 호텔에서 곯아떨어졌다. 정확히는 레베카와 로버트만 그랬다.


"...."


아이든 헌터는 혼자, 호텔 바깥으로 나와있었다. 도저히 잠들 기분이 아니어서 그랬다. 부락이, 자꾸만 생각나서 잠들 수가 없었다.


아이든은 가능하다면 이 '이상한 나라'와 현실을 구분하고자 했지만, 그게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두 현실 모두 이렇게 오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아이든 헌터의 부락은 인구과다 상태다. 부족한 집에 사람만 가득하다. 그나마 아이든 헌터의 감지 능력과 자비없는 판결로 범죄율은 극히 낮지만, 그렇다해도 없을 수는 없다. 겨울, 번잡한 사람들, 없다시피 한 개인 공간, 그리고 갑작스레 들어온 새로운 약자들..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없는 와중 범죄가 일어나면 어쩌나 생각한다. 물론 코코나 루시안, 바타르 같은 이들은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감지 능력은 아이든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기실 아이든이 월등한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어들."


또 무슨 일로 부른 걸까. 그들은 포레스터의 리더인 세와 아폴라비를 믿지 않는 주제에, 고작 변두리 부락의 리더인 아이든 헌터는 믿었다. 또 정치싸움에 휘말리는 건 아니겠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에이씨."


아이든은 투덜거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

.

.



"찾았습니다. '아이든 헌터', 현재 디즈니랜드 호텔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누군가의 귀에 꽂혀들어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이든 헌터마저도 알아채지 못한 것.

결국 이 곳에도 평화는 없었다.


지구가 망해도 밥은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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