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스트 내용:












이대로면 정말 자살할지도 모른다.

베이더 경이 요즘 한가할 때마다 떠올리는 생각이다. 실로, 최근의 그는 시간이 무척이나 남아돌았으므로(인퀴지터들이 제법 쓸만해져 슬슬 손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 생각의 빈도는 제법 잦았다.
 물론 자살이라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냥 죽어버리기엔 아까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으며, 또 그동안 축적된 권태는 가뜩이나 무거운 그의 팔다리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라이트 세이버를 휘두르는 단순한 동작도 베이더 경에게는 너무나 귀찮은 노동이다.


 "... 병사. 그건 뭐지?"

 "베, 베이더 경. 탐지견입니다."


때문에 한심하게 말을 더듬는데다 제대로 경례조차 올려붙이지도 못하는 말단 트루퍼를 죽이고픈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가 주목한 짐승은 의젓한 군견이라기엔 어딘지 털이 푸실푸실 힘이 없고, 그다지 크지도 않고, 무엇보다 얌전히 있기는 하지만 시커먼 갑주를 보고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것이 참 모자라보였다. 

베이더는 허둥지둥 잘못된 경례를 고쳐 꼿꼿이 서는 트루퍼를 무시하며 뒤를 따르던 이에게 물었다.


 "성을 개집으로 만들자는 안건은 누가 올렸나, 대령?"


순식간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대령은 베이더 경의 행차길에 멍청하게 개새끼를 끌고 나온 트루퍼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건... "

 "아니, 됐네."


제국의 장교와 병사들은 무스타파의 건조한 공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마침내 평화가 깨어질 시간이 되었음을 예감했다. 비통한 일이다.


 "......?"

 "......"

 "......?"

 

치열한 눈짓과 무언의 속닥임이 드라마틱하게 펄럭이는 망토 뒤에서 오가고, 그러나 놀랍게도 누구도 즉결 해고당하지 않은 채 평화는 유지되었다. 베이더 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느릿하게 복도를 걸었다. 기적같은 변덕이다.

이에 마악 누군가가 안도의 숨을 쉬기 전, 검은 갑주가 우뚝 멈춰 섰다. 뒤이은 행렬이 우수수 발을 헏디디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군중들의 머릿속에 씨발이라는 두 글자가 두둥실 떠오를 무렵, 베이더 경은 몸을 돌려 개의 목줄을 잡고 있던 병사에게 다가갔다. 가엽게도 그 이는 갑옷이 달달그락 다라닥닥 울릴 정도로 떨고 있었고 개는 훈련사의 불안을 느낀 건지 작게 앓기 시작했다.
 베이더는 병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베, 이더 경... "

 

기계음 섞인 호흡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퍼진다. 갑옷 속의 병사는 겉껍데기만큼이나 새하얗게 질려 얼어붙어있었다. 베이더는 짜증 섞인 몸짓으로 벌린 손을 까딱 흔들어 보였고 개와 함께 지내서인지 비언어적 소통에 익숙했던 병사는 저가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그 손에 빨간 리드 줄을 넘겼다.

개는 시커먼 갑주를 쓰윽 올려다보더니 털래털래 발을 옮겨 새 주인의 곁에 섰다. 멍청하게 생겼군. 줏대도 없고. 그래도 서열을 빠르게 파악하는 점만은 칭찬할만해.
 베이더는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다 이 세상에 난지 40년 만에 얻은 반려견을 이끌고, 그리고 알 수 없는 상관의 행태에 패닉하여 스르르 무너져내리는 병사를 두고 갈 길을 떠났다.




40년. 그래, 40년. 오늘은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살아있었다면 40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다. 베이더는 묘한 표정으로 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부린 변덕인가. 뭐? 선물이라도 받고 싶은 거야?


 "하."


그럴 리가. 베이더는 코웃음치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개는 착착착, 발소릴 내며 암흑 군주에게로 다가왔다. 그것의 털은 노랗고, 어딘가 붉은 기가 돌기도 해서...


 "... 닮은 구석이 있군."


개는 멀뚱히 베이더 경을 올려다 보았다. 한참 그 새카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다 그는 생각했다, 이건 닮지 않았네.

목줄에 인식표가 달려있었다. 베이더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포스로 재빨리 그것을 떼어내 구겨 던져버렸다. 알 게 뭔가. 이름 따위.
 개는 갸우뚱거리며 킁킁 허공에 코를 휘젓더니 혀를 쑥 빼고 헥헥거렸다. 마치 사람이 활짝 웃는 것도 같아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되었다. 이 녀석도 제국의 말단 부품이니만큼 제법 눈치가 있는 거겠지. 누가 주인이고 우위인지 확실히 인식하는 거야.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떠는 게 짐승의 본능이니까.

그는 손을 뻗어 개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주고 집을 마련해주었다. 베이더 경의 세련된 미감에 따라 역시 검은색의 깔끔한, 그리고 제법 일반적인 형태의 개집이었다. 개는 눈치가 빠른 것인지 새 주인이 설치된 집을 쳐다보고있자 꼬리를 붕붕 흔들며 그 안에 들어가 몇 바퀴 돌고 털썩 드러누웠다. 개에 비해 집이 좀 큰 것 같긴 하지만 뭐... 좁은 것보다는 나을 테니 상관없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변덕에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방의 한 가운데에 놓인 박타 탱크로 향했다.


놀아주는 건 나중에. 베이더 경은 늘 피곤하고 지쳐있으니까.





그러나 경께서는 길게 휴식할 수 없었다. 갑자기 없었던 일거리가 솟아난 것은 아니었고 단지 얼결에 주워온 개가 정신 사납게 끙끙거렸기 때문이다. 망할 놈의 개새끼.

베이더는 잔뜩 신경질이 나 예민한 상태로 갑주를 걸치고 구석의 개집 앞에 섰다. 개는 틀어박혀 서럽게 으응, 응 거릴 뿐 꼬리털 하나 비추지 않고 있었다. 


 "시끄럽군."

 

개는 더 시끄럽게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


경께서는 더 이상 인내심을 시험받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딱히 그 짐승을 죽이려는 생각은 없었으므로(그것 마저 귀찮다고 그는 생각했다) 개집 앞에 무려 그 비싼 무릎(사이보그 기술이란)을 꿇고 앉아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개는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하자 헥헥거리며 꼬리를 팔락펄럭 휘저었다. 그러나 여전히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는데, 베이더는 그것이 불충해서가 아니라 불가항력임을 깨달았다. 익숙한 남자 하나가 개를 꼭 끌어안고 둥글게 몸을 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오비완."

 

개는 저를 부르는 줄 아는지 반갑다며 입도 벌리지 않고 작게 한 번 짖었다. 울. 그러나 새 주인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간식을 주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을 붙들고 있는 이 무거운 남자를 치워주지도 않고 쌩 사라지자 서러운 끼잉 소리를 내며 바닥에 턱을 대고 체념했다. 도록도록 순하게 눈알을 굴리던 그것은 새 주인이 막대기 하나를 들고 나타나자 또 반가움에 머리를 번쩍 들고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놀아주려는 것이 분명하군! 조금 귀찮긴 하지만 저는 충성, 준비 완료!

그러나 개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 주인은 가만히 보금자리 안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막대기를 들고 다시 사라져 버렸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불법 점거한 침입자를 꺼내어 치워주기만 할 뿐 놀아주지는 않았다. 개는 실망감에 몸을 축 늘어뜨리며 편히 누웠다. 그래 뭐 나도 귀찮았어. 충성, 다시 잔다.






오비완은 낮게 신음하며 눈을 떴다. 잠을 어떻게 잔 건지 원, 여기저기 쑤시는 구만. 그래도 아직 젊은 몸뚱인데. 뭐, 마스터 케노비는 아직 서른여섯이었고... 음 그래, 몸이 아픈 건 전쟁통이라 좁은 곳에 불편하게 구겨져 자서 그렇다. 그리고... 오 포스여.


눈앞에 검은 갑주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있었다. 오비완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목의 이거는 포스 제어기, 손목과 발의 저것들은 사슬 달린 구속구, 다행히 재갈은 물려두지 않았군. 우리 고객님은 마스터 케노비의 명성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나 보다.
 고객님, 그러니까 납치범은 아무 말도 않고 그 소름 끼치는 꺼먼 대가리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비완이 아는 바로 은하계에 이런 인사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튀는 외관이라면, 그리고 마스터 케노비를 소리 소문 없이(확실치는 않다) 납치할 정도라면 존재감을 숨기기는 어려울 거라고. 그리고 이 숨소리도 참 숨기기 힘들겠군.

두 사람(확실치는 않다)은 한동안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제법 넓은 방은 삭막한 검은 금속으로 도배되어있고 있는 가구라곤 오비완이 묶여있는 의자 하나뿐이었다. 하나. 그래, 저 소름 끼치는 납치범은 오비완을 의자에 앉혀두곤 멀뚱히 서서 십수 분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어쩔 수 없네, 입이 무거운 납치범이라니. 마스터 케노비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겉으로는 싱긋 웃어 보였다.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

 

납치범은 대꾸가 없었으나 어쩐지 언짢아 보였다. 또 한참의 침묵을 견디다가 오비완은 입을 열었다.


 "그래요, 원하는 게 뭔지 들어나 봅시다."


이상하게도, 납치범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지만 오비완은 어쩐지 그의 기분이 느껴진다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어떤 상태냐면...
 느낀 바를 직접 말하는 것이 유리할까, 침묵하는 것이 유리할까. 이 사람은 어떤 유형이지? 정보가 너무 적어. 왜 나를 납치했을까. 아직 아픈 곳이나 무언가의 흔적이 없는 걸 보면 곧장 죽이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얻어낼 것이 있는 거지. 그보다 웃기게 생긴 가면이군.


 "원하는 바를 아직 정하지 못하셨나 보군요."


상대는 이쪽으로 서너 걸음 다가섰다. 오비완은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비협조적으로 굴 생각은 없습니다."


납치범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키가 참... 크군. 오비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새까만 투구를 올려다보다가 망토 사이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안쪽, 허리춤에 라이트 세이버가 번뜩이는 것도. 제다이의 입매가 살짝 굳으며 눈가의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시스.

아니야. 다른 제다이에게서 빼앗은 걸 수도 있고 어딘가의 암시장에 나타난 매물을 손에 넣은 것일 수도 있다. 단정 지어서는 안 돼.
 하지만 마스터 케노비의 직감이 이 사람은 시스 군주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포스 제어기를 차고서도 어쩐지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장갑을 낀 검은손이 얼굴로 뻗어오자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오비완은 직전까지 웃음을 유지하며 가만히 있다가 그 손이 닿기 전에 고개를 휙 돌렸다.


 "컥...!"


으음, 역시 시스가 분명하군. 이런 극단성. 오비완은 괴한의 다른 쪽 손이 허공을 쥐는 것을 바라보며 숨을 쉬어보려고 헐떡였다. 포스를 이딴 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냥 시스라는 말이지. 


 "흐윽, 윽... 큭... "


시끄럽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오비완은 눈앞이 색색으로 잘게 점멸하는 것을 느끼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이마를 덮는 손. 차가운 가죽 장갑의 감촉. 정신을 헤집는 무례한 손길, 불쾌감. 짧은 순간에 오비완은 그가 어떤 세뇌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중요한 정보를 들키는 것은 아닌가 무수히 많은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이 극악무도한 납치범은 관대하게도 그의 기억을 이리저리 들쑤시기만 할 뿐 특별히 암시를 걸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걸 당하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걸지도. 지금의 오비완은 포스를 느낄 수 없으니까.


 "윽... 하아... 하아... "


기침 섞인 숨을 몰아쉬며 제다이는 고개를 크게 젖혔다 도로 숙였다. 검은 손이 느릿느릿 떨어져 나가는 듯싶더니 다시 머릿속을 휘젓는다. 눈물이 뺨을 축축하게 적시고 숨을 쉬어보려 벌려져 있던 입가로 맑은 침이 흘러 깔끔하게 정리된 수염 위로 방울졌다.
 수염은 외교에 있어 오비완에게 아주 중요한 도구였지만(어쨌든 나이가 적어 보이면 무시당하는 것이다), 고문당하는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붙잡힌 것이 한두 번은 아닌지라 잘 알고 있긴 했는데 협상가 양반으로 일하는 횟수가 더 많아 여지껏 밀 생각은 없었다. 좀 연륜 있게 보여야 할 사람도 있고.

젠장, 아나킨. 구하러 오고 있니?


그리고 별안간 정신을 들쑤시던 손길이 쑥 빠져나가고, 마스터 케노비는 실질적으로 그의 머리에 느껴지는 강렬한 물리적 충격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폭력에 익숙해져서일까 아니면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해서일까. 베이더는 조금 얼떨떨하게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주먹을. 그러다 금세 시큰둥해졌다. 인내해야 할 감정 목록은 빈곤해진 지 오래였고 그중 분노는 가장 빠르게 지워진 항목이었다. 참든 참지 않든 심정적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매한가지라 굳이 고상하게 굴 필요도 없었으며 애초에 그의 강대한 힘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 혹은 증오 따위를 동력으로 하였으니 따지고 보자면 그런 감정을 스스로 부추기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그렇게 대략 17년을 살아오고 오늘이 됐다.

그의 앞에 서른여섯의 오비완 케노비가 뚝 떨어진 오늘이.
해피 버스 데이, 해피 포스 데이, 투...



어쨌든 요점은, 이런저런 타액으로 엉망이 된 젊은 케노비의 얼굴이 만사가 귀찮은 베이더 경에게서 기묘한 감상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최초의 감정은 밑도 끝도 없는 분노와 증오였다. 다스 베이더의 무거운 팔다리를 끼릭끼릭 움직이게 하는 지리멸렬한 삶의 동력. 죽여 없애고 싶은 것들에 대한 원망.
 당연한 수순으로 살해하려 했다. 이 가여운 사내에게 남은 것은 비탄에 빠진 조잡한 몸뚱이와 고통스러운 상념뿐이니 해야 할 복수가 있다면 마땅히 해치워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문득 베이더 경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이것이 과거의 오비완 케노비라면, 이것이 여기서 죽는다면 세상은 바뀌는 걸까.

어떻게?

불쌍한 개새끼의 보금자리를 차지한 불청객은 클론 전쟁 당시의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모든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때이다. 

아니, 무슨 상관이야. 


그러나 베이더는 오비완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눈을 뜬 오비완은 정말 그 시절의 케노비 장군이어서, 갓 파다완을 졸업시킨 마스터 케노비여서, 하루하루가 권태로울 뿐인 시스 군주가 분노토록, 그리고 그리워하도록 만들었다. 그래, 그게 진실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지.

만약 그의 눈앞에 떨어진 것이 그와 같은 시간을 절망하고 늙어온 오비완 케노비였다면 망설이지 않고 라이트 세이버를 휘둘렀을 것이다. 그러나 베이더 경의 개집 귀퉁이를 차지한 남자는 무려 그보다 네 살이나 연하의 오비완 케노비, 미래에 저가 누구와 칼을 맞댈지 모르는 태평한 마스터 케노비라... 충성스러운 제국의 역군은 그저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일거리가 늘어봤자 좋을 것도 없고 개를 한 마리 더 키운다고 해서 따로 지출 걱정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꿈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깨어난 곳은 현실이었다. 오비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눈을 굴렸다. 간신히 웅크리고 누울 수 있는 공간, 어둡고, 앞쪽이 트여있다. 옆에는 개가 한 마리 있군.

개?

의혹의 눈길이 저를 향하자 엎드려 퍼질러져 있던 개는 꼬리를 한 번 들었다 내렸다. 오비완은 자연스럽게 호의적인 웃음을 내보이며 만사가 어지간히도 귀찮아 보이는 그 녀석을 한 번 쓰다듬어주고 개집(추정) 밖으로 몸을 빼냈다. 

 넓고 검은 공간이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가운데에 무슨 탱크가 있고, 흠, 박타 탱크로 보이는군. 목에 걸린 금속을 만지작거리며 제다이는 몸을 일으켰다. 팔목 발목에 고리가 채워져 있긴 한데 사슬이 연결되어있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성이나 레이저 같은 것을 이용하는 걸지도 모른다. 
 빙 둘러다 보니 저쪽에 문이 있다. 그 앞으로 걸어가 유심히 틈을 살펴보는데 아무리 보아도 열 수 있는 방도는 없어 보였다. 라이트 세이버가 있다면 좋을 텐데, 당연히 있을 리는 없고.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으며 우뚝 서있던 오비완은 갑자기 문이 열리고 검은 인영이 코앞에 놓이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리곤 이내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헉, 아윽, 아아악!"


베이더는 눈앞의 남자가 저에게 무언가 말하려다(그 표정은 아마 인사말일 것이 분명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내리는 것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파직 거리는 전류의 잡음과 울음기가 섞여 잦아드는 신음 소리, 발작이 온 것처럼 덜덜 떨리는, 잔뜩 웅크려 둥글어진 등.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땅에 처박고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바닥을 긁는 꼴이 제법 봐줄 만했다.
 어느새 작은 개가 보금자리에서 기어 나와 주변을 맴돌고 있다. 끄응 끄응 불안한 소리를 내면서도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 교육을 잘 받은듯해 베이더 경은 흡족하였다.

동그란 뒤통수를 잡아끌어 또 엉망이 된 얼굴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스 군주는 헐떡이는 남자, 아니, 개의 옆을 둘러 묵직한 걸음을 옮겼다. 호흡기의 기계음 사이사이 날것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마저 그쳤다. 
 작은 개는 눈치를 보다 쓰러진 이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그것이 혀를 내어 핥아주려 하자 베이더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아흑, 윽...! 큭...!"


작은 개는 깜짝 놀라 깨갱, 소리를 내며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쓰러져있던 개(큰 쪽)는 역시 배우는 것이 빨라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신음을 삼키고 있었지만 시스의 손이 더 곱아들자 결국 억눌린 비명을 짧게 토해내고 말았다.
 전류가 흘러 몸이 무력하게 파들파들 떨리고 검은 손이 위를 향함에 따라 개는 무릎으로 서서 목을 부여잡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울긋불긋 달아올라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베이더 경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조금 자세히 볼까 하여 개를 제 앞으로 끌어왔다. 고통에 흐려진 눈이 다시 날카롭게 번뜩이며 이쪽을 노려본다.


그래. 당신 이런 사람이었지. 


무심코 그 얼굴에 손을 뻗으려다 베이더는 개를 놓아주고 돌아섰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마저 작게 죽이는 것이 나름 교육이 되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계획은 지키지 않기 위해 세우는 겁니다. 네 번째 정도 순서로 업로드 하려고 했던 글이었는데... 

리퀘스트는 항상 어렵습니다 수위 조절이요 ! 적당히 헉 이건 유료 발행해야한다 싶은 너무 빻은 소재는 빼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개는 제가 좋아하는 키워드라 언젠가는 어떤 무언가를 쓰게 될 것같네요

나름 힐링물입니다. 그런데 결말이 조금 제 안에서 흔들리고있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항상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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