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녀석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상황을 얼추 파악하고 나니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감을 얼추 잡을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점은 기장실이 객실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만큼 기장실은 단단한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한쪽의 소란은 다른 쪽에 들리지 않았다.

 

물론 상대편 또한 그걸 감안했는지 소통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다.

 

허리춤에 숨겨져 있어 처음엔 파악하지 못했지만, 둘은 기장실에서 구경하며 놀던 중 정기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조금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늘어놓고 있는 카쿄인을 보고 있자니 놀다 왔다고 더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무전 간격은 의외로 짧았다. 지켜본 결과 10분에 한 번씩은 신호를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객실에서는 미처 몰랐던 부분이었다. 한쪽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경우를 경계했기 때문인지 말로 주고받는 게 아니라 간단한 소리 신호로 무사함을 알리고 있던 모양이다.

 

신호의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느라 본의 아니게 늦어졌던 모양이다.

 

확실히 이 녀석들이 아니었더라면 죠타로 또한 몰랐을 상황이다.

 

다만.

 

“정말 놀다 온 거 아니거든요, 죠타로?”

 

“글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정말 그것 때문이었더라면 너희 둘 중 하나는 와서 말해 주었겠지.”

 

카쿄인은 정곡을 찔린 표정으로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그럴 줄 알았다, 요 녀석들아.

 

죠타로는 슬쩍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에 관해 더 말을 얹지는 않았다.

 

제 옆에서 인지되지도 않은 채 붙어 있던 게 10년이다. 조금 다른 곳에 한눈이 팔릴 수도 있지.

 

무엇보다 죠타로는 녀석들이 다른 곳에 조금 정신이 팔린다고 역할을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그것도 한 번 신호를 주고받은 직후를 맞춰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죠타로가 스탠드사라고 해도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스탠드로 전부 때려눕힌다고 가정해도 상대는 무장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양쪽 모두 인질을 잡기 좋은 조건이다.

 

한쪽은 수많은 승객들을 향해 얼마든지 총을 쏠 수 있고 한쪽은 기장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있다.

 

자칫하다간 많은 승객 중 누군가 총에 맞아 소란이 일거나 기장이 다쳐 비행기가 그대로 추락하게 된다.

 

스탠드의 힘은 대단하지만, 그게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단 뜻은 아니다.

 

죠타로는 혼자였고 혼자서 이 상황을 빠르게 해결하기에 사정거리가 짧은 근거리형 스탠드로는 사실상 충분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기장실에서 붙잡아 두는 사이에 밖의 사람들을 네가 먼저 처리하는 건 어떤가요?”

 

“네 녀석이 기장실로 들어갈 핑계도 없기도 하겠지. 거기에 네 쪽이 안으로 들어가면 이 몸이 바깥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문제고.”

 

“근데 세 명이면 우리가 묶어 두긴 조금 힘들려나.”

 

“뭐, 이 녀석이 제대로 처리하기만 한다면 이 디오가 움직여야 할 필요도 없겠지. 설마 ‘쿠죠 죠타로’가 이런 일도 처리하지 못하려고.”

 

물론, 이 두 녀석이 없었더라면 그랬겠지만.

 

죠타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잇는 두 녀석들을 보았다.

 

살펴보고 와 달라고 말할 때만 해도 불평을 늘어놓던 녀석들은 정작 그랬던 태도와 다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행동하는 걸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을 지적하면 적어도 디오만큼은 발끈하겠지만.

 

같이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는 건 나쁘지 않다.

 

혼자서는 조금 힘들 수도 있는 상황에도 별다른 위기감이 들지 않는 건,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혼자 있는 게 아닌데 그런 부담감을 느낄 리가.

 

죠타로는 자연스럽게 둘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는 없었다. 기장실과 객실 사이에 단단한 문이 버티고 있어 어지간한 소란도 전해지지 않을 테지만, 10분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만 한다.

 

앞쪽이기에 기장실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죠타로는 디오의 의견에 동의했다.

 

밖의 놈들이 모르게 기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놈들이 뒤쪽으로 몸을 뺀다면 아무리 이 디오라도 쫓을 수 없지.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다.”

 

“다른 사람을 붙잡는 정도까지의 힘은 역시 힘들 것 같아요.”

 

디오의 말처럼 공간이 한정된 기장실과 다르게 바깥은 조금 더 넓다. 그리고 디오와 카쿄인은 죠타로에게서 어느 정도 떨어져 행동할 수는 있었지만 아주 먼 거리는 불가능했다.

 

바깥에서 붙잡아 두는 역할을 맡겼다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간다면 둘은 속수무책이다.

 

죠타로는 그들에 비해 그런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일단 기장실까지의 거리는 정해져 있었다. 눈으로 그 정도 거리를 가늠해 멀찍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들 또한 기장실 내에서 발생하는 돌발 상황 정도에는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때는 신호를 주고받는 모습을 확인한 직후이다. 무전기를 끄자마자 기장실과 객실 쪽으로 갈라져 각자의 행동을 하면 된다.

 

제일 먼저 총을 든 녀석을 차례로 제압하고 다음엔 앞에서 지시를 내리는 녀석이다. 뒤쪽에 있는 녀석들은 앞의 녀석들만 제압한다면 총이라도 빼앗아 겨눌 수 있었다. 총을 쏴 본 일은 없지만, 스타 플라티나를 이용하면 목숨에 지장 없는 정도의 정밀 사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동안 두 녀석들이 기장실 안의 소란만 어떻게든 막아 준다면 큰 소란 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카쿄인은 조금 자신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긴 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라는 걸 아는 듯 결국엔 고개를 끄덕였다.

 

큰 물리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 손 정도는 막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두어 번 힘을 쓰면 엄청 피곤해지겠지만…….”

 

“그러면 이쪽이야 환영이다. 네놈들, 솔직히 재잘재잘 시끄러웠으니까. 그렇게 되면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는 조용해지겠지.”

 

“죠타로, 너 밤이 무섭지 않은 건가요? 잠 못 자게 소란 떨어 버릴 거야.”

 

입을 비죽인 카쿄인이 샐쭉한 목소리로 한마디 보탰다.

 

죠타로는 그런 카쿄인을 슬쩍 노려봤다. 농담인 걸 알긴 했지만 그 말에 순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며칠간이 떠올랐다. 그 시간 정말 끔찍했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일이 쌓여 있다. 아마 당분간은 오랜 시간 자지 못할 것이다. 그 와중에 방해까지 받는다면…….

 

저도 모르게 표정이 뚱해졌다.

 

그의 표정을 흘깃 쳐다본 카쿄인이 까르르 웃었다.

 

즐겁게 웃는 목소리가 무거운 이야기로 쌓였던 긴장을 잠시 풀어 주었다.

 

그런 카쿄인에게 진지하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정말 둘이 작심해서 밤중 내내 설쳐대더라도 짜증만 더 내고 화를 내지는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죠타로는 결국 카쿄인을 따라 피식 웃어 버렸다.

 

슬쩍 내다보고 온 디오가 시간을 확인해 주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았다. 아주 촉박한 건 아니지만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미국까지의 비행 거리는 굉장히 길다. 여분 연료가 별로 없다는 걸 양측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하이재킹 측은 비행기가 떠 있는 동안 결판내려고 할 게 뻔했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 온 둘에게 말을 전해 듣고 나서 죠타로는 행동을 결심했다. 어차피 빨리 처리해야 할 상황, 시간을 끌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지.”

 

“좋아, 문제는 없어요. 디오, 너도 괜찮지?”

 

“하, 지금 누구에게 뭐라고 묻는 건지.”

 

“괜찮대.”

 

“……카쿄인 노리아키.”

 

거기에 가만히 묶여 있는 게 슬슬 불편하기도 했고.

 

디오는 카쿄인을 노려보았다. 카쿄인은 죠타로가 흘길 때와는 다르게 대놓고 ‘뭐 어쩌라고’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익숙한 신경전은 무시한 채로 죠타로는 스타 플라티나를 불렀다.

 

스탠드의 손 아래에서 밧줄이 아무렇지 않게 뚝 끊어졌다.

 

잠시뿐이지만 힘껏 묶여 있었다고 저려 오는 손목을 돌려서 풀며 죠타로는 잠시 고민했다. 이곳에 묶여 있는 승무원들도 지금 같이 풀어줄까.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죠타로, 그런데 괜찮아요?”

 

“뭐가 말이지?”

 

“음…… 아까부터…….”

 

머뭇거리는 카쿄인의 말을 디오가 거들었다.

 

“미친놈 보듯이 보고 있다만.”

 

“…….”

 

죠타로는 디오가 가리키는 곳으로 슬쩍 곁눈짓을 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그러니까 커튼 뒤쪽의 승무원들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사이에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까 구해달라는 듯 간절하게 쳐다보던 시선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네놈이 허공에 대고 말을 거니까 말이다.”

 

“……이거야 원.”

 

두 녀석에게 너무 익숙해지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안 풀어주는 게 낫겠군. 죠타로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옆에서 디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웃었다.

 

죠타로는 희미하게 밧줄 자국이 남은 손을 신경질적으로 휘둘렀다.

 

손은 디오를 통과해 그대로 허공을 휘저었다. 디오는 더욱 요란하게 웃었다…… 웃지 말라고, 이 개자식아.

 

 

 

*

 

 

 

셋, 둘, 하나.

 

속으로 거꾸로 숫자를 세어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문 바깥에서 손가락을 딱 마주치는 팔 하나가 보였다. 정해 두지는 않았지만 그게 신호라는 걸 모를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10분마다 한 번씩 주고받는 연락이 오갔다는 신호. 죠타로는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따 봐요, 죠타로.”

 

문을 빠져나가기 전에 눈앞을 휙 스쳐 지나간 카쿄인이 손을 팔랑 흔들었다. 습관적으로 카쿄인의 인사에 태평하게 대답할 뻔한 죠타로는 입을 황급히 틀어막고 그를 흘겼다.

 

하지만 그 원망은 잘 전해지지 않은 감이 있었다. 죠타로가 본 광경이라고 해 봤자 디오에게 목덜미가 냉큼 잡힌 카쿄인이 기장실 안으로 내던져지는 모습뿐이었으니까.

 

하여간 저 녀석들도 산만하기는.

 

카쿄인을 먼저 떠민 디오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붉은 시선이 이렇게까지 도와주는데 실수했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따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디오의 시선을 한 번 맞받아 주고 죠타로는 고개를 돌렸다.

 

두 녀석들을 믿고 있다.

 

그러니 이젠 자신의 일에 집중할 때다.

 

상대의 시선이 전부 객실 승객들을 향해 있는 걸 확인하고 죠타로는 태연스레 걸어 나왔다. 안쪽에서 붙잡혀 잠시 묶여 있긴 했지만 그 사실을 일반 승객들은 알지 못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와 번 잠깐의 틈 동안 녀석들의 위치를 살폈다.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동선을 그린 건 전투에 익숙한 사람의 본능이었다.

 

동선을 그리자마자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상황은 처음 예상했던 대로 빠르게 흘러갔다.

 

가운데 서 있는 감시자의 시선을 피해 돌아가 오른쪽의 총을 들고 있는 남자를 뒤에서 낚아챘다.

 

“허억, 이런 무- 큭!”

 

뭐, 셋 중에 가장 익숙한 녀석이라고 할까. 벌써 몇 번이나 얼굴을 봤으니까.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쳐다본 남자가 마찬가지로 ‘네놈이냐’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쪽이 우세다. 죠타로는 재빨리 남자의 손목을 비틀었다.

 

스탠드사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매여 있는 어깨끈은 스타 플라티나의 한쪽 팔이면 충분히 끊을 수 있다. 제 몸으로 시야가 가린 곳에서 어깨끈을 끊어낸 죠타로는 남자가 힘껏 움켜잡고 있는 총신을 움켜쥐었다.

 

“뭐야?!”

 

“젠장, 꼼짝 마!”

 

뒤에서 목울대를 누르고 팔목을 꺾어 제압하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순식간에 한 명을 제압하는 것과 동시에 감시 역할로 있던 남자가 달려들었다.

 

무기가 없다고 해서 만만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비행기 납치라는 큰 건을 계획한 녀석들이니까. 그 정도쯤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제압한 녀석을 앞세워 남자의 손길을 피했다.

 

다만 조금 예상하지 못했던 건 좁은 비행기 통로였다. 생각보다 균형을 잡기 쉽지 않은 걸 넘어 움직이기 불편했다. 거기에다가-.

 

“-이런, 스타 플라티나!”

 

혼자 상대해야 하는 이상 이렇게 방심할 수도 없고.

 

죠타로는 스타 플라티나로 그를 덮치려던 감시 역에게서 무전기를 빼앗아 힘껏 구겨 버렸다.

 

금속 소리를 내며 와락 구겨져 버린 무전기가 스타 플라티나의 손에서 후드득 떨어졌다.

 

좋아, 이걸로 당장 연락하는 건 막았군. 죠타로는 스탠드의 힘을 팔에 더해 감고 있던 목을 힘껏 죄었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던 남자가 이내 정신을 잃고 고개를 푹 꺾었다.

 

기절한 녀석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죠타로는 제게로 날아드는 나이프를 피했다.

 

고작 그런 공격에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만.

 

희미하게 금속음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방아쇠를 걸어 탄창이 맞물리는 소리였다. 다시 날아오는 나이프를 피하며 죠타로는 남자의 뒤로 돌아갔다.

 

이 녀석들은 스탠드사가 아니다. 스타 플라티나에 대항하지 못하겠지만.

 

젠장, 죠타로는 속으로 낮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차라리 뒤쪽이라면 모를까 온 승객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게 느껴졌다. 숨을 죽이는 긴장감이 아슬아슬하게 더해졌다.

 

스탠드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이상하지 않게 보여야 한다. 대놓고 쓰긴 조금 힘들 수밖에 없다.

 

휙, 날아드는 손목을 붙잡았다. 빠져나가려는 힘이 거셌다.

 

윽, 하필이면 다 낫지 않은 팔이었다. 희미한 통증이 치밀어 움찔하는 순간 잡았던 손이 빠져나갔다. 아차 하는 잠깐 사이에 칼날에 손바닥이 길게 베였다.

 

아픔 정도에 물러서지는 않지만 손바닥에 고이는 핏물에 잡은 손이 몇 번 미끄러졌다.

 

죠타로가 남자의 어깨를 빼 나이프를 떨어뜨리게 했을 땐 덕분에 이미 통로 끄트머리에 물러선 나머지 한 명이 총을 겨눈 채 방아쇠에 손을 얹고 있었다.

 

남자를 잡아 두려고 한 건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손만 당기면 쏠 수 있는 위치에서도 쏠 수 없게 만든다. 상대는 사이를 가로막은 저희 편을 어떻게든 피하려 하고 있었다.

 

거기에 비행기 안인 만큼 아무 곳에나 쏠 수 없는 것도 한몫하겠지.

 

조금만 거리를 좁히면 스타 플라티나의 사정거리다. 그렇게 되면 총을 들고 있든 말든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다.

 

머릿속으로 거리를 그려 보면서 앞으로 막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총을 겨누고 있던 남자의 시선이 아주 잠깐 옆으로 돌아갔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눈치챌 수 있었던, 꼭 신호 같은 미세한 동작.

 

순간 심상찮은 불안감이 머리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문득 잠시 잊고 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뒤쪽에도 두 명이 더 있었지.

 

다만 뒤쪽의 녀석들은 총이 없다고 했는-

 

-그 순간 무언가 쏜살같이 접근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스타 플라티나!”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스탠드를 불렀다.

 

쿠웅!

 

직감에 의존한 반응이었지만 좋은 선택이었다. 막는 순간 묵직한 중량감이 몸을 두드렸다. 방비해 맞닿는 순간 이해하듯이 흘러 들어왔다. 스탠드 유저, 그것도 뒤쪽으로부터 쏘아져 나온 공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디오 녀석이 뒤쪽의 둘은 무기가 없다고 했지.

 

그 말을 듣고 단순히 감시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니 무려 비행기 납치를 기획하면서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처음, 이 녀석들 사이에 스탠드 유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앞의 셋을 상대하는 동안 스탠드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아 잠시 그에 관해서는 안심했던가.

 

뒤의 놈들이 무기가 없던 게 아니었다. 그쪽에 들려진 가장 큰 무기인 ‘스탠드’가 있기에 무기가 필요 없던 것이었다. 무슨 스탠드인지 모르겠지만, 묵직한 충격이 총 정도는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는 공격형 스탠드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스타 플라티나에 당하면서도 놀라지 않았었군. 최대한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스타 플라티나를 활용했지만, 승객들을 위시한 보는 눈 기준이었다. 난데없이 정체 모르는 공격에 당한 것치고 상대는 기겁한 반응이 없었다. 그저 그럴 경황이 없는 것뿐이라고 여겼었는데. 그저 그런 존재에 익숙했던 것뿐이었다.

 

“윽!”

 

죠타로는 바로 이어지는 공격을 한 번 더 막았다. 이제 보니 저쪽이 진짜였군. 더 실력이 괜찮은 녀석들을 객실 앞쪽에 배치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후방의 중요성을 아는 녀석들이었다.

 

상대 스탠드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파워보다는 속도 우선의 스탠드인 모양이었다. 이 충격은 속도를 이용한 거겠지. 날카롭게 좁혀 드는 공격 범위가 마치 총알을 쏘아낸 것 같았다.

 

물론 속도가 강점이라 해도 잡을 수 있었다. 특수한 능력이 없이 접근전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라면.

 

죠타로는 스탠드의 위치 파악에 집중했다. 빠른 속도라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막는 것엔 지장이 없었다. 다만 공격하기 위해선 위치를 알아야 한다. 상대가 움직이는 패턴을 파악하기만 하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 순간 섬뜩하면서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흐흐, 걸렸군.”

 

귓가에 혼잣말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가늠한 순간 죠타로는 자신이 스탠드에게만 너무 신경을 쏟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그보다 먼저 그를 향해 겨누어져 있던…….

 

“……!”

 

고개를 돌린 순간 자신에게 정면으로 겨누어져 있는 총부리에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눈치챘다. 이게 바로 상대의 노림수였다. 한쪽에서는 스탠드로, 한쪽에서는 총으로 압박해 상대를 처리하는 것.

 

이쪽이 스탠드사인 줄은 몰랐겠지만, 그래도 똑같이 먹히는 수였다.

 

제 스탠드는 상대의 스탠드에 잡혀 있다.

 

제압한 남자로 인해 당장 손이 비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온 총부리와 그의 사이엔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

 

상황이 쉽게 풀린다고 해서 방심했다.

 

시간을 멈추더라도 짧은 순간뿐, 두 공격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한쪽은 머리를 겨누는 총이고, 한쪽은 총만큼 빠른 속도로 가슴을 향해 쏘아져 나오는 스탠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지만 최선의 수를 찾을 수는 없었다.

 

거기에 찰나의 순간조차 아쉬운 상황.

 

고민으로 채운 아주 잠깐의 여유는 순식간에 없어졌다.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방아쇠에 올려진 상대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죠타로는 이를 악물었다. 젠장. 생각이 많아 머리가 엉켰다.

 

방아쇠가 힘껏 당겨지고.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춘 순간-

 

-찰칵.

 

……찰칵?

 

커다란 총소리 대신, 뭔가 잘못 걸린 듯한 소음이 작게 들렸다.

 

“뭐, 뭐야?! 왜 갑자기 이게 안 당겨져?”

 

방아쇠에 손을 올린 남자는 그의 스탠드에 동료가 당하는 모습을 봤을 때보다 더욱 당황한 모습으로 허둥지둥했다.

 

방아쇠에 분명 손을 얹고 힘껏 당겼는데 총이 발사되기는커녕 아주 조금 움직이다가 걸리는 느낌만 났던 탓이다.

 

하지만 예상외의 상황에 당황스러운 건 남자만이 아니었다.

 

죠타로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두 눈을 깜박거렸다.

 

갑자기 고장이라도 난 건가 하는 생각의 남자와는 다르게 죠타로에게는 그 상황의 ‘원인’이 두 눈에 똑똑하게 보이는 채였으니까.

 

한심한 표정을 한 디오가 손가락이 걸린 방아쇠를 움켜잡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그 손에 걸려 방아쇠가 마저 당겨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까 카쿄인을 내던져 놓고 기장실로 들어간 줄 알았는데.

 

그런 녀석이 나와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더 놀란 건 분명히 그 총을 ‘막아 준’ 디오의 행동이었다.

 

“뭐, 이럴 줄 알았지.”

 

시선을 마주친 디오가 한심한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겨누고 있던 총부리가 슬쩍 아래를 향했다.

 

예상외의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얻은 기회를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죠타로는 잡아 두고 있던 동료를 내팽개치고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총을 쏠 생각은 없는지 상대는 뒤늦게 총을 고쳐 쥐고 총신으로 후려치려고 했지만, 싸움이라면 제법 이골이 난 몸이다. 스탠드전뿐만이 아닌 육탄전까지도.

 

빠르게 행동한 보람이 있게 죠타로는 어렵지 않게 상대를 제압했다.

 

손목을 반대로 꺾어 총을 빼앗는 걸 끝으로 앞쪽의 상대들을 모두 처리한 죠타로는 스타 플라티나로 붙잡고 있던 상대의 스탠드를 세게 날려 버림과 동시에 다른 한 명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뒤쪽의 두 명이 전부 스탠드사였던 건 아니었는지, 멀찍이서도 총이 겨누어지는 걸 본 상대는 분한 표정을 하면서도 자리에 멈추어 섰다.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려준 것처럼 조용하던 디오가 그제야 한심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멍청하기는. 도대체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지 모르겠군. 그 ‘쿠죠 죠타로’가 이런 식이라니.”

 

디오 역시 뒤쪽의 두 녀석 모두 총과 같은 무기를 안 가지고 있던 점을 신경 썼다. 단순히 안 가져왔다는 걸 넘어서,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소란을 멀찍이서 제압할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미심쩍음에 카쿄인만 떠밀어 놓고 살피다가 역시나 하는 상황에 끼어들어 상대를 방해한 것이다.

 

디오의 말은 매번 짜증스러웠지만, 이번은 솔직히 옳은 말이긴 해서 드물게 반박할 수 없었다. 죠타로는 속으로 맞는 말이라고 인정은 하면서도 불퉁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디오 녀석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싶진 않은데.

 

뒤쪽까지 죠타로가 직접 움직일 필요 없이 상황은 정리됐다.

 

숨을 죽이고 긴장 속에 지켜보던 승객들 중 몇몇이 상대가 제압되었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빠르게 행동했던 탓이다.

 

각자 수소문해 묶을 만한 줄을 찾더니 기절해 쓰러진 녀석들과 제압되어 있는 녀석들을 묶어 버렸다. 작은 반항은 있었지만 몸을 쓴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자진해서 일어났던 탓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탄창의 총알을 빼 던지면서 죠타로는 디오를 돌아보았다.

 

한마디하고 쌩하니 돌아갈 줄 알았던 디오는 주변에 머무르고 있었다. 꼭, 무슨 일이 다시 생긴다면 언제든 도와주기라도 할 것처럼.

 

아니, 그런 것처럼이 아니라 도와주겠지.

 

문득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제 옆에 있는 디오가 더없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부탁하는 것도. 이렇게 도움을 받는 것도.

 

묘한 기분을 담은 채 고개를 돌렸다.

 

정작 그를 구해 준 디오는 다 끝났냐는 듯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는 얼른 이 귀찮은 걸 끝내고 낮잠이나 자고 싶은 얼굴을 했다. 유령이 낮잠을 잘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죠타로는 그런 디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디오.”

 

“뭐지?”

 

“아까 일.”

 

평생 이 녀석에게 쓸 일은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만큼 그 생각은 진심이었다.

 

도와줘서 고맙다. 그들 사이엔 좀체 어울리지 않는 낯간지러운 말을 막 입에 올리려고 했을 때.

 

우우웅-

 

순간 발밑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걸 넘어 한쪽으로 쭈욱 기울어졌다.

 

“꺄악!”

 

“으악, 뭐야, 뭐!”

 

순식간에 사방이 놀라고 경악한 목소리로 소란해졌다.

 

땅이라면 지진이려니 했겠지만 지금 이곳은 하늘 위, 오갈 곳 없는 비행기 위.

 

비행기가 공중에서 엉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다.

 

“……기장실!”

 

말을 꺼낼 생각을 전부 날려 버린 채 죠타로는 기장실 쪽을 향해 몸을 홱 돌렸다.

 

 

 

*

 

 

 

요란하게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아무리 죠타로라도 균형을 잡기는 아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주변 좌석들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길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 댔다.

 

그가 이곳 일을 처리하는 건 모든 승객들이 지켜보았다. 죠타로는 꼭 그가 이번 일까지 해결할 수도 있다고 믿는 듯 필사적으로 부르는 목소리들을 지나쳐야만 했다.

 

“네 녀석은 사고를 몰고 다니는 팔자인가 보군.”

 

“시끄, 읍.”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려다가 혀를 씹을 뻔한 죠타로는 입술을 꾹 문 채 디오를 노려보았다.

 

밉살스런 목소리지만 지금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디오보다도 조부인 죠셉이다. 무슨 말을 하든 허허 웃어넘기고 금세 잊어버리는 영감이지만, 돌아가 얼굴을 보면 꼭 한 방 먹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유전은 안 받고 싶다고.

 

오갈 곳 없는 하늘의 커다란 감옥.

 

죠타로야 기장실의 놈들을 알아 두었으니 짐작 가는 바라도 있지만 승객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건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이리라.

 

그래도 이렇게 달라붙으면.

 

“뭐, 이 몸은 먼저 가야겠다. 카쿄인 놈은 허술하니까.”

 

죠타로는 간절히 제 옷자락을 붙잡는 손에 걸음을 멈추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것보단 앞의 상황이 급하다.

 

디오 녀석은 붙잡혀 곤란해하는 얼굴을 감상하듯 슬쩍 보더니 아예 몸을 돌려 쌩하니 가 버렸다. 위급상황이라면 몰라도 이런 곤란은 도와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아니면 의외로 정말 카쿄인 녀석이 걱정되었을 수도 있겠다만.

 

죠타로는 자신을 붙잡는 뜯어내듯 뿌리치고서야 가까스로 기장실로 향하는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아까 붙잡혀 있던 방 안에 승무원들이 나뒹구는 게 보였다. 묶여 있는 상황에서 비행기까지 흔들리니 중심을 잡으려다 실패한 모양이었다. 슬쩍 마주친 눈이 절박하게 겁에 질려 있어서, 죠타로는 급한 상황에도 잠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죠타로는 잠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 얼굴을 알아보고 그들은 안도보다 약간의 불안을 머금었다. 그러고 보니 혼잣말하다가 뛰쳐나갔었지.

 

“스타 플라티나.”

 

미친 사람 취급까지야 그럭저럭 괜찮지만, 스탠드라는 이질적인 힘을 들켜서 좋을 건 없었다. 죠타로는 승무원들을 묶은 줄에 손을 대는 것과 동시에 스탠드를 불렀다.

 

억센 줄이 한 번에 끊어진 것도 의심하려면 의심할 만했지만 가뜩이나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상황에서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쓰긴 어려울 것이다. 죠타로는 묶여 있는 승무원들을 전부 풀어 주고 당부하듯 말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승객들부터 진정시켜 줬으면 하는데.”

 

대답은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일어설 기색이 없던 사람들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장실 문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안내 방송이 들리는 걸 보니 그저 다리라도 조금 풀렸던 모양이었다. 뒤쪽의 소란이 한껏 줄어들었다.

 

비행기는 익숙했지만 친하지는 않았다. 여러 나라를 일로 오가느라 타 본 것 말고는 즐기지 않지만 기장실 문이 밖에서 안 열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급한 상황이란 걸 알기에 죠타로가 한 아주 잠시의 고민은 하나뿐이었다. 부술까, 안쪽에서 열-

 

“죠타로, 빨리!”

 

“스타 플라티나!”

 

문에서 홱 튀어나온 팔이 빨리 오라는 것처럼 그를 재촉했다.

 

그 말로 고민은 끝났다. 죠타로는 그 다급한 손길에 더 생각할 것 없이 스탠드로 기장실 문을 힘껏 후려쳤다.

 

콰아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폭격을 맞은 듯 찌그러진 문이 안쪽으로 접혔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걸로 착각이라도 한 건지 비명 소리와 더불어 진정하라는 방송 소리가 들렸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그 추락이 기정사실화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죠타로는 반쯤 열린 문을 뜯어내듯 밀치고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죠타로!”

 

“이런!”

 

들어서는 동시에 무언가가 휙 날아들었다.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스탠드로 그 방향을 가로막았다. 무엇인지 파악할 겨를은 없었다. 많은 전투를 겪어 온 사람의 반사 신경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건 좋은 선택이었다.

 

쿠우웅!

 

“윽!”

 

스타 플라티나로 가로막는 것과 동시에 묵직한 충격이 몸을 강타했다. 스탠드로부터 가해진 충격에 몸이 쭉 밀렸다.

 

구겨진 문틀이 오히려 지탱해 주는 역할을 했다. 통증은 있지만 등을 받쳐 주는 단단한 감각 때문에 빠르게 정신이 들었다.

 

꽉 짜여진 긴박함과 몸을 울리는 통증은 전투 상황 특유의 감각을 일깨운다. 몸을 울리는 통증 한편으로 희미하게 피 냄새가 났다. 순간적으로 제 몸을 확인했지만 문에 부딪친 곳 말고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기장실 내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제일 먼저 시선을 준 조종석에는 기장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뚝, 뚝. 늘어진 손끝을 따라 핏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런. 죠타로는 미간을 왈칵 찌푸렸다. 피 냄새의 원인을 여기서 찾다니.

 

거기에 비행기가 도무지 균형을 잡지 못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늘어진 남자의 몸이 조종석 계기판을 덮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자동운항장치를 사용하는 비행기의 특성상 조종사에게 이상이 있어도 착륙 직전까지는 괜찮을 테지만, 쓰러지면서 계기판을 건드려 엉망이 된 모양이다.

 

“죽진 않았어요.”

 

그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카쿄인이 답해 주었다. 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일렀다. 당장 깨어나도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뭐, 깨어날 것 같지도 않지만.’

 

죠타로가 밖의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카쿄인은 기장실 안쪽에 머물러 있었다.

 

무전을 주고받자마자 행동했기에 한동안은 몰랐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기장실 문이 두껍다고는 해도 바깥의 소란도 소란이었다.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기장실 안쪽의 녀석들은 수상쩍은 걸 느꼈던 모양인지 무전기를 다시 들었다.

 

무전기에 대고 호출했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게 느껴져 연락한 만큼 심상치 않다고 여기는 건 당연했다. 여유롭게 위협하고 있던 분위기가 다급하게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가 봐야겠다고 한 명이 문으로 향하던 때.

 

위협받고 있던 기장은 그때가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움직였다.

 

카쿄인은 최대한 옆에서 총을 막으려는 등 기장을 도왔지만 한계가 있었다.

 

기장은 옥신각신하는 실랑이 속에 발사되는 총에 맞은 채 쓰러졌다. 하필이면 계기판 위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당장 위급하지는 않았다. 혈관을 스쳐 큰 출혈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의외로 그건 유령 혼자라도 어렵지 않게 지혈할 수 있었다. 가장 큰 혈관을 손으로 틀어막으면 얼추 지혈이 된다나.

 

남들이야 헛소리로 듣겠다만, 스탠드사인 죠타로는 얼추 이해했다. 실체는 없지만 물리력은 있는 속성은 어찌 보면 스탠드와 비슷하게 느껴지고는 했으니까.

 

“알리려고 했지만…… 혼자는 힘들었다고요.”

 

카쿄인은 디오를 샐쭉하게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기장실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디오가 바로 따라붙지 않은 걸 알게 된 모양이었다.

 

제법 눈초리가 매서웠지만, 죠타로는 이번만큼은 카쿄인을 편 들 수 없었다. 그 제멋대로인 녀석이 필요했던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기장은 당장 위급하지는 않았다. 혈관을 스쳐 큰 출혈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카쿄인의 도움 덕분에 과다출혈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기장실에 있는 상대는 하나만이 아니었으니까.

 

죠타로가 내심 안심하려던 그 순간, 희미한 금속음이 들렸다.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자리에서 구르듯 떨어졌다. 타앙! 공기를 가르는 미약한 기척과 함께 구겨진 철제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황급히 바라본 방향에 총을 재장전하고 있는 남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여기 있는 건 한 명이 아니었지. 스타 플라티나로 밀려드는 압박감은 못 견딜 정도로 버겁지는 않았지만, 지금 당장 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잠시 혼란스러운 상황 속, 죠타로는 돌아본 쪽에서 디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재빨리 선택한 건 역시 스탠드사 쪽이다. 죠타로는 몸을 돌려 총부리를 등진 채 스탠드사를 바라보았다. 반대쪽, 인상이 흉흉한 놈 하나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자식은 뭐야? 죽어라!”

 

남아 있는 녀석들 중 어떤 녀석이 말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허겁지겁 방아쇠를 당기는 기척이 나는 것과 동시에 죠타로는 주먹을 힘껏 말아쥐었다. 스타 플라티나가 맞붙은 스탠드를 힘껏 날려 버리는 것과 동시에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콰앙!

 

“커, 커억! 이, 이게 무슨……!”

 

들려오는 소리는 ‘역시’ 총소리와 거리가 먼 소리였다.

 

툭,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죠타로는 흘깃 뒤를 돌아봤다.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총 한 자루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끝이 아주 약간 휘어져 있는 총은 가운데가 터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총을 쥐고 있던 남자는 제 손을 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아주 약간 건드리는 것만으로 손과 함께 폭발한 모양이다.

 

보통 이런 일에 사용되는 총이 불법 개조를 마치거나 공장 외의 곳에서 따로 제작된 것들이라는 건 죠타로 또한 알았다. 아무래도 디오는 그 틈을 제법 잘 건드린 모양이다. 하여간 수단은 좋은 녀석.

 

혀를 차는 듯한 감탄은 어디까지나 속으로 할 뿐이다. 지금은 그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니깐. 죠타로는 제 뒤에서 관심을 아예 껐다. 우선 상대해야 할 쪽은 ‘이쪽의’ 스탠드였다.

 

마침 벽에 내동댕이쳐졌던 상대가 스탠드와 함께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윽, 이런 곳에 스탠드사가……!”

 

이를 악물고 노려보는 눈길이 흉흉했다. 잠시 사라졌던 듯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스탠드가 선명해졌다. 일부가 갑옷으로 감싸여져 있는 듯한 인간형 스탠드는 둔해 보였지만 그건 편견일 뿐이다. 죠타로는 조금 전 쏜살같이 달려들던 속도를 기억했다. 무시할 게 아니다.

 

상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일행이 없다는 걸 알자마자 금방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크크…… 보아하니 스탠드를 믿고 혼자 덤비는 모양인데, 금방 처리해 주지, 가라!”

 

상대가 순식간에 여유를 되찾자마자 옆자리의 스탠드가 깜박거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상대의 능력을 모르는 상황에서 집중하고 있었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자리에서 깜박거리던 스탠드가 흐려지자마자 죠타로는 재빨리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파였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상대의 스탠드가 바닥을 향해 주먹을 깊게 내리꽂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죠타로는 날려갈 뻔한 모자를 움켜쥐었다.

 

빠르지만 ‘볼 수 있다’.

 

싸움 같은 건 저쪽이 더 많이 해 봤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스탠드사와의 싸움만 따지면 만만치 않다. 눈이 습관적으로 스탠드의 흔적을 쫓았다.

 

인간형 스탠드에 사정거리는 스타 플라티나에 비해 몇 미터 긴 걸로 추정. 반격당했을 때의 타격이 적은 걸로 보아 스탠드 자체에 견디는 능력이 있다고 보임. 움직이기 전 잠시 시야에서 사라지는 능력이 있음. 밖의 녀석처럼 가속인가 싶었지만, 사라지고 나서 공격받는 시간까지 간극이 거의 없는 걸 보아 짧은 거리의 순간이동에 가까워 보였다.

 

공간을 넘는 내구력 위주의 스탠드라니, 하이재킹까지 하는 상대인 만큼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쾅, 쾅! 연신 쫓아온 스탠드가 공격을 가했다. 좁은 기장실에서 피할 수 있는 공간은 한계가 있었다. 한 번은 피하고, 한 번은 막았다. 힘 자체만으로는 스타 플라티나를 넘진 못했지만 덜하다고 말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도 않았다.

 

“으앗!”

 

상대 스탠드의 주먹을 움켜잡고 버티고 있을 때 카쿄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주고 나서야 상황의 문제를 깨달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의자에 걸쳐지듯 쓰러져 있던 기장이 어느새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곳은 비행기 위였다. 충격이 그대로 비행기의 몸체를 흔든다. 지금쯤 객석에서 어떤 소란이 나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기장도 흔들리는 와중에 떨어진 모양이다. 바닥에 닿은 상처 등지에 피가 고여 있었다. 뒤늦게 허겁지겁 상처 부위를 막으려는 카쿄인을 보고 나서야 오래 끌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물리적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뿐이다. ‘진짜’ 육체를 가진 게 아닌 유령인 만큼 흔들림에 따라 기장이 움직이면 놓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물리력’ 또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고.

 

썩 쉬운 일은 아닌지 카쿄인은 안색이 나빴다.

 

“고작 인간 하나가 뭐라고. 그냥 죽게 놔 둬도 되는 거 아닌가?”

 

“이 사람이 조종사라고 했잖아.”

 

“이깟 거 조종 하나 못해서 이런 고생을 자처한다, 라.”

 

“살아생전 비행기도 안 타 본 주제에. 너, 뭐가 손잡이인지는 알기나 해?”

 

“……카쿄인 노리아키.”

 

아니, 그건 디오가 옆에서 시비나 걸고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시간을 끌면 안 된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다행히 이 공간은 그에게 유리했다.

 

상대 스탠드의 ‘공간이동’은 기척을 바로 잡을 수는 없었지만 약점이 분명했다. 몇 번의 빠른 공방 끝에 죠타로는 상대 스탠드가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금방 파악했다.

 

공간이동을 하기 전 스탠드는 모습이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공격하기 전에 모습을 감추는 만큼 자칫하다간 당하기 쉬운 능력이었지만 공격하는 그 순간에는 모습이 드러났다.

 

공간이동 후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의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았다. 거리 제약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연속으로 시전하지 않는 걸 보니 그것도 힘든 모양이다.

 

공간이동을 위해 사라지기 전 모습이 흩어지는 시간이 잠깐 있다. 평범한 사람이 상대라면 눈 깜짝할 순간이겠지만 스탠드 사이의 전투라면 공격을 하고도 남을 만큼 긴 틈이다. 공격할 때는 사용해도 방어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추측을 뒷받침했다.

 

다만 그 분명한 약점을, 스탠드 자체의 내구성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스탠드가 받는 타격은 스탠드사에게도 간다. 하지만 스타 플라티나로 맞받고 있는 데도 비해 상대에게는 타격이 크게 가지 않고 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굉장히 유리해지는 타입의 스탠드일 거다.

 

적당히 받아 주면서 피하는 동안 상대의 능력도 얼추 파악했다. 패턴도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다시 한 번 스탠드의 모습이 눈앞에서 흐려졌다.

 

공간이동 하기 전 흐릿하게 희미해지는 스탠드를 보았지만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피하지 못한 걸로 생각했는지 상대방의 미소가 짙어졌다.

 

“네놈, 이걸로 끝이다!”

 

상대의 스탠드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본능을 건드리는 경고같은 섬찟한 예감이 머리를 두드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고 싶은 걸 눌렀다. 도망가지 않는 건 상대방에게 일부러 타겟이 되어 주는 것이다.

 

이제껏 상대는 공간을 이동한 스탠드를 반드시 죠타로에게로 보냈다. 당연히 공격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 패턴이 반복되는 건 너무 직설적이지 않나?

 

상대의 ‘공격 지점’만 고정시킨다면, 얼마든지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

 

상대의 얼굴에 의기양양한 고양감이 스쳐 지나가던 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바로 ‘근처’에 섬뜩한 위기감이 고이는 것과 동시에-

 

“-스타 플라티나 ‘더 월드’.”

 

상대의 스탠드가 미처 모습을 다 보이기도 전.

 

주위의 시간이 숨 죽은 듯이 멈추었다.

 

다루기 부담스러운 능력. 덕분에 멈춘 건 1초조차 안 되는 찰나의 시간이지만. 이처럼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에서 ‘스탠드사’를 잡기에는 충분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스탠드의 내구성이고 뭐고 무시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상대의 스탠드는 자신 쪽에 있다. 방심한 상대는 주변이 비어 있다. 순식간에 쏘아져 나간 스타 플라티나가 ‘스탠드사’의 목을 힘껏 죄었다.

 

멈추었던 시간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흡!”

 

“윽!”

 

콰앙-!

 

멈추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순간. 스타 플라티나는 상대의 목을 움켜잡은 채 바닥에 내리쳐 박고 있었다.

 

졸리다시피 잡힌 목에서 충격으로 인한 가쁜 신음이 튀어나왔다. 그조차 졸린 목 때문에 바람 소리가 섞여 들렸다.

 

죠타로는 팔을 감싼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시간을 잠시 멈추었다지만 ‘사람의 육신이’ 반응하기엔 턱도 안 되는 시간이다.

 

정말 직설적으로 가슴 한가운데를 노리고 있던 터라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은 면했다. 다만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팔을 스쳐 지나갔다.

 

하필 다쳤던 쪽 팔이었다.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위로 공격이 스쳐 가자 풍압에 온통 휩쓸렸다. 코트의 팔 한쪽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걸로도 모자라 안쪽의 팔까지 엉망이었다. 다시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걸로도 모자라 뼈까지 틀어진 듯했다.

 

굳이 상처를 감수하지 않아도 상대할 자신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팔 하나 내준 정도면 그럭저럭 싼 거지.

 

뒤늦게 신경을 긁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이 정도의 상처는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부상을 감수한 보람은 있었다. 상대의 스탠드는 그 공격을 마지막으로 모습이 사라졌다. 스타 플라티나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남자의 목을 죄고 있었다. 이런 고통도 익숙하게 느끼는 게 지금 상황에서는 다행이었다.

 

“흑, 컥, 크…….”

 

욱신거리는 팔에 숨을 간신히 돌리고 있을 때 발버둥 치던 남자는 그 와중에도 허리춤의 총을 꺼내 들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도 겨누는 손길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친 팔이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느라 죠타로는 그 모습을 뒤늦게 보았다.

 

하지만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이쪽은 ‘혼자’처럼 보이지만 정말 혼자는 아니었으니까.

 

상대는 마지막 숨을 들이켜며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그런 그의 옆으로 발소리조차 없는 한 명이 다가왔다.

 

몸을 숙인 디오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놀리는 것처럼 잡았다. 죠타로는 왠지 그 손가락에 다음으로 벌어질 일을 알 것 같,

 

우득.

 

“……!”

 

디오는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을 반대 방향으로 홱 꺾었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디오는 그대로 놓아주는 대신 꺾은 손가락을 꼬듯이 비틀기까지 했다.

 

그렇지 않아도 숨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게 마지막 타격이 되었던 건지, 남자는 그대로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확실히 정신을 잃은 걸 확인하고서야 죠타로는 숨을 조르고 있던 스타 플라티나를 놓았다. 뒤늦게 몸이 휘청였다. 이 정도 부상에 크게 지장을 받진 않지만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벌어진 상처를 타고 뚝뚝 피가 떨어졌다. 코트는 팔 한쪽이 날아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급한 대로 써야지.

 

“후, 피곤하군.”

 

스타 플라티나로 코트 자락을 찢어 급한 대로 상처를 동여매는 와중에 디오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쳐다본 얼굴에 드물게 지친 기색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지친 기색을 보고서야 죠타로는 ‘손가락을 꺾을 정도의’ 물리력이 상당히 버거운 일이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총을 못 쏘게끔 하는 일에 그렇게까지 과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신경 써 줬단 거겠지.

 

그 상대가 디오라는 점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 돌아본 디오와 눈이 마주쳤다. 입 밖으로 한 마디도 안 꺼냈는데 디오는 그가 하고픈 말을 아는 것처럼 슬쩍 눈가를 접었다.

 

“마지막 희망이 꺾이는 순간은 흥미롭지. 쿠죠 죠타로, 네 녀석도 그 표정을 봤겠지? 네놈을 따라다니는 꼴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순간이군.”

 

죠타로는 떨떠름하게 디오를 쳐다봤다. 그러게, 디오는 지친 한편으로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죠타로는 순간 갈등했다. 내가 다음으로 처리해야 되는 건 이 자식이 아닐까?

 

“저기요, 죠타로! 죠-타-로!”

 

카쿄인의 새된 목소리가 생각을 깼다.

 

“아직 안 끝났거든요? 좀 도와달란 말이야!”

 

한쪽 구석에서 카쿄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카쿄인은 정신을 못 차리는 기장과 함께 구석까지 밀려나 있었다. 바닥에 보이는 핏자국을 보니 흔들리는 동안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꽤 시끄러웠다. 반파된 기장실 문의 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목소리들은 온통 혼란에 빠져 있었다.

 

카쿄인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조종사를 잃고 자동항법장치조차 엉망이 되어 어디로 어떻게 날아가는지 모를 이 비행기.

 

죠타로는 계기판에 시선을 주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숫자와 뭘 가리키는지 모를 지침이 꽉 차 있었다. 언뜻 보기엔 답이 없어 보이지만……. 죠타로는 나머지 둘을 빤히 쳐다보았다.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한 둘은 눈을 깜작거리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누르다 보면 될 거 같은데…….”

 

“그냥 당기면 가는 거 아닌가?”

 

“……이거야 원.”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없었다. 죠타로는 순간 아득해지는 기분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아득함에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겁에 질린 승객들, 휘청이는 비행기, 쓰러진 기장, 거기에 얼마 안 남은 시간.

 

그 모든 것 중 어느 것도 그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면하는 것도 불가능했기에.

 

죠타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욱신거리는 팔이 지금 순간 정신을 예리하게 깨워 주었다. 머리를 차갑게 가라앉히고 죠타로는 가장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을 생각했다. 그럼 우선으로.

 

“승객들 중에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찾아봐야겠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죠타로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

 

 

 

죠타로가 기장실 밖으로 나섰을 때 객석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차분했다.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쉴 새 없이 이어졌고 흔들리는 와중에서 모두가 안전벨트를 착용한 채 지시를 듣고 있었다.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을 거란 생각과는 반대였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느 정도 소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간신히 이것저것을 잡고 버티는 승무원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모양이다.

 

죠타로는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승무원 곁을 지나쳤다. 반쯤 쉰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승무원이 인기척에 돌아보곤 놀란 얼굴을 했다.

 

“아까 그분……! 어, 어떻게 됐나요? 그 나쁜 놈들은……!”

 

대답해 줄 시간이 없었다. 죠타로는 무시하다시피 제 용건을 꺼냈다.

 

“승무원 중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아, 아니요…….”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묻는 말로 상황을 짐작한 모양이다.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하기야 이런 상황에서 조종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기장과 부기장 모두 조종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하지만 죠타로는 다른 사람이나 안심시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위태위태하게나마 날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는 없었다.

 

죠타로는 비행기를 몰랐다. 자동항법장치가 있다지만 방향을 제대로 지키며 날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혹여 방향이 틀어지기라도 했다면 다른 비행기와 부딪칠 가능성도 있었다. 제 목숨 하나 문제가 아닌, 그야말로 대참사였다.

 

거기에 도착할 때가 거의 다 됐다. 이대로라면 착륙도 하지 못한다. 긴 거리를 날아 연료도 부족할 텐데 언제까지나 날아다니게 둘 수는 없다.

 

죠타로는 대답을 무시하며 객석으로 향했다.

 

혹시 싶어서 아까의 하이재킹범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꽁꽁 묶여 있어 안심이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다시 실랑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덜컹, 비행기가 다시 한 번 흔들렸다. 평형 쪽에 이상이라도 생겼는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죠타로는 눈앞에 보이는 빈 좌석을 잡아 몸의 균형을 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기장과 부기장이-”

 

“으악!”

 

“꺄악, 비행기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죠타로의 목소리는 마구 쏟아지는 비명에 묻혔다. 죠타로는 다급한 마음을 누르고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다만 틀린 선택이었다.

 

“앗, 저 사람! 아까 납치범들을 잡은……!”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우, 우리 무사히 나갈 수 있는 겁니까? 여, 여기서 주, 죽고 싶지는…….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어…… 없단 말이야…….”

 

생각보다 차분하다고 했던가. 죠타로는 그 생각을 취소했다.

 

그저 상황을 잘 알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던 모양이었다.

 

비명이 잦아들지도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그를 발견하고 알아보았다.

 

아주 잠깐 봤을 뿐이라고 해도, 승객들은 총부리가 코앞까지 겨누어져 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을 구해 준 게 누군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죠타로는 그냥 봐도 잊을 만한 외견은 아니었다.

 

그를 인식하자마자 순식간에 객석에서 소란이 일었다. 끔찍한 비명 소리와 울음소리 등 종류는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그가 구세주라도 된 것처럼 매달리고 있었다.

 

책임을 지우기보단 책임을 지는 편이지만, 원해서라기보단 항상 이렇게 상황에 떠밀리게끔 된다. 그렇지 않아도 방도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 호소하는 가지각색의 소리에 어깨에 짐이 더 쌓이는 듯하다.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무슨 말만 꺼내면 소란이 더해졌다. 시끄럽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이미 소란스러운 와중에 묻혀 버렸다.

 

마음이 급하던 와중이었다.

 

기계음이 섞인 커다란 소리가 웅웅거리며 비행기 안을 메웠다.

 

[승객 여러분, 지금 기내에 응급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승객 여러분 중 비행기 조종이 가능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지금 당장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지금 기내에…….]

 

안내 방송 소리였다.

 

죠타로는 뒤를 돌아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도 스피커를 잡고 있는 승무원이 보였다. 몇 명이나 모여서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다. 이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싸움이겠지.

 

죠타로는 각자 싸울 수 있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싸움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좋다.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희미한 미소가 스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내 방송은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승객들의 소란에 비해 훨씬 침착했다.

 

방송이 품고 있는 내용에 소란은 더욱 늘어났지만 죠타로의 시도와 다르게 이야기는 잘 전달되었다. 저마다 서로를 돌아보며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초조함을 누르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구석에서 눈치를 보던 몇 명이 머뭇거리며 손을 들었다.

 

“조종해 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파일럿이셔서 어깨너머로…….”

 

“그…… 개인 헬리콥터 면허가 있긴 한데 운전한 지가 좀…….”

 

“1년 전부터 유로-에어플레인 1998 플레이 경험이…….”

 

마지막 뭔데. 죠타로는 마지막으로 손을 든 사람을 냉큼 노려보았다.

 

영 아닌 시선과 마주하자 움찔한 마지막 사람은 조심스레 손을 내리고 딴청을 피웠다. 적어도 카쿄인 녀석과는 잘 맞을지 모르겠군. 여전히 게임이라면 눈부터 빛내는 녀석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런 감상에 잠길 시간이 없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 죠타로는 빠르게 한 명을 손짓해 불렀다. 다행히 헬리콥터 면허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천운이었다.

 

작은 목소리지만 면허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기저기서 살았다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일어난 남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금방이라도 가슴을 움켜잡고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창백해진 걸 보니 대담한 성격까지는 아닌 모양이다. 그는 부담스럽다는 걸 넘어 도망가고 싶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섬세한 배려를 할 상황이 아니다. 죠타로는 재빨리 다가가 손목을 쥐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주변에서 가해지는 부담보다 그가 더 무서운 모양인지 남자는 뻣뻣하게 굳어 그대로 따라 나왔다.

 

기장실로 향하는 동안 뒤에서는 안내 방송의 목소리와 소란이 섞여 들렸다. 남자는 죠타로에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다. 심지어 다리까지 굳어서 죠타로가 질질 끌고 가는 형색이었다.

 

이래서야 협조 요청이 아니라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죠타로는 떨떠름하게 남자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한 남자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더듬더듬 변명했다.

 

“제, 제, 제가…… 좀 소, 소심해서…….”

 

그건 말 안 해도 알겠다.

 

“죠타로, 빨리, 빨리!”

 

어느새 기장실 밖으로 모습을 보인 카쿄인이 휙 날아들어 재촉했다. 카쿄인이 기장의 상처를 막아 두느라 끙끙대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건지 잠시 당황한 시선을 주는 사이에 카쿄인은 떠밀듯이 남자의 등에 손을 댔다.

 

아무 물리력도 없지만 재촉하는 듯한 동작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죠타로에게는 잘 보였다. 죠타로는 저도 모르게 남자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덜덜 떠는 기가 약한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지금 웬 유령 하나가 제 등에 바짝 붙어 떠밀고 있다는 걸 알면 놀라서 기절하려나.

 

서둘러 기장실에 들어서고 나서야 죠타로는 상황을 알았다. 쓰러진 사람들 외엔 디오만이 있어야 할 기장실에는 다른 사람들 두 명이 더 있었다. 복장을 보니 승무원이었다.

 

“덕분에 한숨 돌렸어요.”

 

바짝 따라온 카쿄인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가 기장실을 나가자마자 두 사람이 들어왔다고. 기장실에서의 위급한 상황이 얼추 끝났다는 걸 눈치챘던 모양이다.

 

한 사람이 들여다보곤 다급하게 다른 한 사람의 손까지 빌렸다. 한 명이 쓰러진 기장을 살펴보는 동안 다른 한 명이 바닥에 널려 있는 사람들을 챙겼다.

 

확실히 그가 내팽개치고 간 하이재킹범들은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었다. 기장의 상처 위쪽도 천으로 강하게 동여 매여져 있었다. 밖에서 승객들을 진정시키는 승무원들과 다르게 안쪽의 상황을 맡기로 생각한 모양이다.

 

기장은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카쿄인이 안간힘을 써 가며 돌봐 놓은 보람이 있다. 상황이 잘 풀린다면 착륙까지 얼마 안 남은 지금 상황이 목숨을 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죠타로는 남자를 계기판 앞까지 떠밀었다.

 

기장이 쓰러졌던 자리에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본 남자는 힉 숨을 들이켰다. 면허가 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영 못 미덥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죠타로는 짧게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비행기를 조종할 만한 건 그쪽밖에 없다. 알다시피 미국까지 향하는 직항이기에 이미 오래 비행했어. 이 비행기의 사정은 잘 모른다만 예비 연료가 남아 있으리란 생각은 안 드는군.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여기 탄 사람들 모두가 그대로 함께 추락하겠지.”

 

그러니까 주저할 상황이 아니었다. 남자는 핼쑥해진 채로 말을 더듬었다.

 

“그, 저, 전…… 워, 워낙 예전에 조종해서…… 기억이 잘…….”

 

그러나 말한 보람은 있었다. 정신을 잃은 기장을 흘긋 본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나마 계기판을 살폈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좀처럼 서 있지 못한 채 휘청이는 몸을 옆에서 대신 잡아 주며 죠타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복잡한 계기판 따위는 봐도 모르겠다. 그저 이 못 미더운 사람을 믿고서 잘 되기만을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면허까지는 따지 못해도 조종법 정도는 배워 둘 걸 그랬다.

 

물론,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만은.

 

일단 눈앞의 남자가 책임감이 버거운 부담감을 책임감으로 이겨 보길 바랄 뿐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다. 남자는 이곳저곳 손을 대었다 말았다 반복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아마 저 담이 작은 성격도 한몫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윽박지를 수도 없고. 이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없는 일이 없단 사실이 죠타로는 답답했다.

 

남자가 버튼 앞에서 손을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즈즈즉-

 

지직거리는 소리가 요란한 비행기의 소음에 섞였다. 집중하고 있던 남자가 낯선 소리에 숨을 들이켜며 뛸 듯이 놀랐다.

 

죠타로는 단번에 통신 소음이란 걸 눈치챘다.

 

다만 어딨는지는 모르겠다. 죠타로가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남자가 조종석 근처를 더듬어 통신기를 찾아냈다. 통신기를 집어 들자마자 소음과 함께 무전이 흘러나왔다.

 

[A702호에 전한다, A702호에 전한다. 원하는 건 당장 들어줄 수 없지만 협상 가능성이-]

 

당장 인질들을 놓아주지 않아도 되니 우선 비행기를 착륙시키고 이야기하자고 하는 조심스런 제안을 들으면서 죠타로는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은 이 비행기를 통째로 인질로 잡아 협상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은 죠타로가 남김없이 쓰러뜨렸고.

 

죠타로는 뭐라고 말할지 모르는 얼굴을 한 남자의 손에서 통신기를 뺏어 들었다. 이런 건 영화에서 말고는 못 봤지만 얼추 비슷하겠지.

 

“A702호다. 이곳을 점거한 놈들은 전부 처리됐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무슨 소리지? 처리됐다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나?]

 

통신 너머에서는 당황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태가 영 좋지 않아 계속 지직거리는 와중에도 느껴질 정도였다. 하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테러하겠다는 급박한 상황이 다짜고짜 해결되어 있으면 놀랍겠지.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죠타로는 내부 일당의 인원을 불러 주곤 전부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

 

상대측에선 단번에 믿지 않았다.

 

무전만 오가고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그 말조차 인질들을 기회 없이 죽여 버리려는 수작으로 느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일일이 고쳐 줄 시간은 없었다. 죠타로는 상대측에서 물어오는 의문을 무시한 채 빠르게 말했다.

 

“기장과 부기장의 상태가 좋지 않아. 비행 면허가 있는 승객이 임시로 운행 중이다. 다만…….”

 

죠타로는 말끝을 흐리며 남자를 흘깃 보았다. 영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면허는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죠셉 덕분에 날아다니는 것들에는 관심이 없어져 딸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헬리콥터 면허가 발급받기 굉장히 까다로운 종류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조종해 본 경력도 어느 정도 필요했다. 헬리콥터를 몰고 다닐 정도라면 비행기 정도는 얼추 괜찮을 거다.

 

그런 시선을 느낀 건지, 온통 식은땀으로 덮인 남자가 더듬거렸다.

 

“그, 저, 저…… 담이 조, 조금 작아서. 면허가 있긴 한데 그 이후에 우, 운전을 해 본 적이…….”

 

“…….”

 

……아뿔싸, 장롱면허였다.

 

남자는 한 번 말을 꺼내고 난 후부터 숫제 우는소리를 계속했다. 예전에 비행기를 조종해 보긴 했지만 거진 10년은 지난 일이라 기억이 영 나지 않는다고 했다. 차로 따지자면 브레이크와 엑셀을 헷갈리는 수준이라고 하니 말 다 했다.

 

거기에 개인 비행기를 몰아본 경험이 있을 뿐 이처럼 커다란 대형 여객기는 몰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듣다 보니 비행기면 다 똑같지 않느냐는 물음이 혀끝까지 치밀고 올라왔지만 엉망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아닌 것 같다.

 

거기에 진짜로 입술까지 창백했다. 자리에서 그대로 기절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죠타로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렀다.

 

[A702호.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지?]

 

다행히 계기판을 볼 줄 아는 남자가 더듬거리는 소리로 방향을 읽었다. 방향이라면서 무슨 숫자로 점철된 대답을 들은 통신 너머에서 잠시 후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A702호, A702호. 다급하게 알린다. 지금 당장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 그대로 향하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니 서쪽으로 27도 3분가량…….]

 

“으, 으으……!”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죠타로는 오가는 통신을 들으며 상황 파악이나마 하려고 했다. 아무리 봐도 긴장으로 굳어 있는 이 녀석이 제대로 된 중개를 해 줄 것 같진 않았다.

 

통신에서 흘러나오는 건 의사 전달이라보단 지시에 가까웠지만 그것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흔들리는 항공기가 멀쩡히 날아가고 있길 바란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간신히 고도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방향은 이미 틀어졌다. 운이 없게도 공항보다는 시가지 쪽인 걸로 보였다.

 

얼핏 조종석의 화면을 보았지만 움직이는 숫자판 몇 개를 제외한 위치 모니터는 깨져서 보이지 않고 있었다. 깨진 모니터 구석에 깜박거리는 의미 모를 숫자가 지금의 위치를 간신히 알려 주는 중이었다.

 

대형 여객기는 경험이 많은 조종사들이 조종한다. 실제 면허가 있는 사람이라도 이만한 크기의 비행기에 빠르게 적응해 조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물며 면허를 따기만 하고 오래도록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장롱면허의 소유자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용케도 고도를 유지하며 몇 번 방향을 바꾸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시끄럽게 이어지던 통신에서의 목소리가 잠시 끊기더니 조금 더 차분한 빛을 띠고 이어졌다.

 

[A702호. 지금으로부터 90초 후, 긴급 착륙을 시도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90초 후, 긴급 착륙을-]

 

“기, 긴급 착륙이요? 저, 전 못해요, 모, 못한다고요……!”

 

이제까지의 방향 지시와는 다르게 착륙 지시가 흘러나온 순간 남자가 사색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전히 비행기는 흔들리고 있었고 당연히 남자는 비틀거렸다. 죠타로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남자를 반사적으로 잡아 주었다. 사색이 된 채 남자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것만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자동차 운전에서 주행보다 주차가 더욱 어려운 것처럼 비행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애물이라곤 없는 하늘을 날 때야 방향이 조금 바뀌는 실수가 있었어도 어떻게든 다닐 수 있었지만 착륙은 그런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칫 실수했다간 비행기에 탄 모두와 함께 그대로 땅에 처박히게 되는 것이다.

 

비행기 사고의 생존율은 어마어마하게 낮기로 유명하다. 남자는 그 많은 목숨이 제게 달렸다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다.

 

덜덜 떠는 팔이 손아래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억지로 자리에 앉히면 숨이라도 넘어갈 것 같다.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는 없었기에 어떻게든 협박이라도 해서 도로 앉히려던 때였다.

 

[착륙 시도까지 45초. 착륙 시도까지 40초. 착륙 시도-지직-3-즈즉-초…… 남-즈즈즉…… 간…….]

 

단호한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해 주던 통신에 잡음이 요란하게 섞였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었는데. 지직거리는 소리가 강해지는 것과 동시에 스파크가 눈에 보일 정도로 파득 튀어 올랐다.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그대로 통신은 끊겼다.

 

목소리 대신 지직거리는 소음만이 주변을 더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젠장, 낭패군. 죠타로는 드물게 낭패감을 숨기지 못했다. 산 넘고 산을 반복하는 상황이다.

 

“지, 지금 통신이 끊긴 거예요?”

 

“우, 우리 다…… 다 죽을 거야…… 엄마, 아빠…….”

 

옆에서 승무원들이 새된 비명 소리를 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상황이 나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죠타로는 다독이는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껏 애써 침착하게 행동했던 게 오히려 대단한 것이다. 이렇게 답이 없는 상황에서 위로가 먹힐 리 없다.

 

아니, 오히려 위로받고 싶은 건 이쪽이겠지. 죠타로는 어느새 조종석 의자를 붙잡고 기도문을 외는 남자를 보았다.

 

통신은 끊겼고 기장은 정신을 잃었다. 어깨너머로 봤던 놈이나 게임하던 놈을 끌고 올 수는 없으니 조종법을 아는 건 조종법 대신 기도문에 유창한 여기 이 녀석뿐이다.

 

죠타로는 비어 있는 조종석을 바라보았다.

 

시간도 없고 방법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는 건 쿠죠 죠타로의 성미에 조금도 맞지 않는다.

 

죽음이 가깝다면 그래도 뭐든 시도해 보는 게 훨씬 나으니까.

 

죠타로는 조종석에 몸을 들였다. 걸리적거리는 남자는 다리로 밀어 버렸다. 밀쳐진 남자가 기도문을 멈추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묻지 않아도 그 눈 속에 서린 질문을 알 것 같다. 혹시 이거 조종하는 법…….

 

“아니, 그딴 건 모른다. 알았다면 진작 내가 했겠지.”

 

죠타로는 입가를 씩 말아 올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얹혔지만, 그 정도로는 무수한 역경을 넘어선 ‘쿠죠 죠타로’를 망설이게 할 수 없다.

 

남의 목숨 같은 건 많이 짊어져 보았다. 지금 이 자리만 해도 그에게 영원처럼 얹혀 있는 목숨이 하나-.

 

-아니, 둘. 죠타로는 구경이라도 난 듯 나란히 붙어 쳐다보는 두 녀석을 보았다. 어느새 조종석에 쪼로록 매달려 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사이좋아 보인다니까.

 

상황에 맞지 않는 시시한 생각을 머리 한 켠으로 넘겨 버리고. 죠타로는 팔을 뻗어 남자의 멱살을 쥐고 홱 끌어당겼다.

 

“그러니까 이제 네 녀석이 알려 줘야겠어.”

 

“힉.”

 

나오다 끊긴 카운트다운은 아직도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있다.

 

죠타로는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남자를 윽박질렀다.

 

그래도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일까, 남자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도 계기판 위 기능을 줄줄 외웠다.

 

죠타로는 뭐든지 빨리 배우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들을 몇십 초 만에 다 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도 없이 답이 없는 일에 뛰어든 건 아니다.

 

가장 복잡한 건 현 비행 상황을 살피는 계기판과 항법 장치, 그다음으로는 비행기 기체 및 내부의 환경을 조정하는 현황판과 조절 패널. 단시간에 보는 방법을 익히는 게 불가능한 것들이다.

 

다만 지금, ‘비상 착륙’에 필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다.

 

오직 조종하기 위한 장치들만 필요할 뿐.

 

몇 분 안에 착륙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나는 상황. 앞을 보는 패널이 있든 없든, 비행기 내부의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든 말든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그런 것들의 조작법은 상대적으로 직관적이고 간단하다. 죠타로는 간단한 설명을 빠르게 머리에 담았다.

 

조종간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기회는 단 한 번뿐.

 

아무리 그라도 긴장이 거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원래 ‘죠스타 가’랑 날아다니는 것들은 안 친하단 말이다, 젠장.

 

긴장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카쿄인이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죠타로. 우린 죽어서도 친구죠?”

 

“…….”

 

죠타로는 고개를 홱 돌려 카쿄인을 노려보았다. 아주 처박히라고 악담을 해라, 악담을.

 

“큽.”

 

옆에서 디오가 신음했다.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아예 고개를 홱 돌려 버리는 걸 보니 이 자식은 아주 처웃는 중이었다. 긴장이 풀리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짜증이 나서 이가 갈렸다. 이 망할 자식들, 다 끝나기만 해 봐라.

 

두고 보자는 생각을 가슴 한켠에 꼭꼭 눌러 놓은 채 죠타로는 머릿속에서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헤아렸다. 3초, 2초, 1초-

 

-0초.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순간 죠타로는 조종간을 힘껏 움켜잡았다. 조종간은 비행기의 상승 및 하강과 날개를 제어한다. 방향을 바꾸는 데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것이다.

 

조종간을 움직여 도움날개를 접고 비행기의 앞머리를 아래로 내렸다. 홱 당긴 조종간에 들어간 힘처럼 불안정하던 비행기가 거세게 흔들렸다.

 

바닥에 짐짝처럼 늘어져 있던 기절한 사람들이 비행기가 흔들리는 방향에 따라 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사이에 묻히듯 함께 데굴데굴 굴러간 남자가 숨이 넘어갈 듯 빽빽댔다.

 

“그, 그러다간 자칫하면 뒤, 뒤, 뒤집힌단 말입니다……! 계, 계기판에서 수평을 봐, 봐야……!”

 

도움이 되는 것처럼 들려도 실상 쓸모없는 조언이었다. 죠타로는 시끄러운 소리를 무시했다. 그걸 볼 줄 알면 면허를 이쪽이 땄겠지.

 

계기는 봐도 몰랐지만 창문으로 앞은 보인다. 자동차 같은 것들과 달라 보는 걸로 자세한 거리감은 잡을 수 없었다만 대신 높이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뭐, 비행기가 머리를 앞으로 향한 채 놀라운 속도로 땅을 향해 하강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젠장.

 

죠타로는 정말 딱 필요한 만큼만 외운 조종 장치들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그러니까 방향을 잡아 주는 건 페달이고, 양력을 유지하는 게 조절 레버…… 조종 실력이 없는 거지 상식이 없는 게 아니다. 유체 사이에서 무언가를 띄우는 힘이 양력이라는 건 학위까지 딴 쿠죠 죠타로에게 아주 당연한 상식이었다. 죠타로는 조절 레버를 잡아당겼다.

 

“으악!”

 

“꺄악! 비, 비행기가 옆으로!”

 

두어 번의 시도 끝에 가파르게 흔들리던 기체가 아슬아슬 평형을 찾았다.

 

기체의 평형과 함께 비명 소리도 따라왔다. 기장실에 남아 있는 승무원 둘과 바닥을 구르는 남자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러댔다.

 

“뒤, 뒤집힐 거야…… 뒤집힐 거야…….”

 

남자는 덜덜 떨다가 흔들림이 멈추고부터 모아쥔 두 손을 힘껏 맞잡고 있는 대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빽빽대는 비명 소리에 짜증이 잔뜩 난 디오가 이를 갈았다.

 

“쿠죠 죠타로. 약속해라. 무사히 착륙한다면 저놈부터 죽여 버린다고.”

 

디오의 말에 평소처럼 개소리라고 핀잔을 주지 않은 건…… 드물게 죠타로 또한 솔깃했기 때문이다.

 

도움이라도 착실하게 되던가, 겁을 집어먹는 거야 심약한 탓에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용기도 내지 못하면서 빽빽 목소리만 높이는 건 아주 질색이었다. 버겁다고 도망쳐 놓고 구석에서 이래저래 소리만 지르는 꼴이라니. 덕분에 속성으로 대충 외운 것들이 같이 헷갈리고 있다.

 

죠타로는 지금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디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페달에 발을 얹은 채로 죠타로는 남자에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한 번만 더 쓸모없는 소리를 할 거면 비행기가 뒤집히기 전에 그쪽부터 뒤집어 주지.”

 

“흡!”

 

나지막한 경고는 다행히도 잘 통한 모양이다. 남자는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조용해졌다. 덩달아 같이 있던 승무원들도 조용해졌다. 그쪽은 그렇게까지 거슬리진 않았는데.

 

하지만 그 번잡하던 소리가 사라지니 눈앞의 일에 훨씬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예민한 상황에서 제 생각보다 더 거슬렸던 모양이다. 죠타로는 급하게 외운 기능들을 다시 한 번 머리로 굴려 보고는 하나씩 차례로 손을 가져갔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위급한 상황. 잘못 조작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보다 기능이라도 하나 더 확인해 보는 편이 유리했다.

 

겉으로야 대책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죠타로는 지금 제가 떠맡고 있는 것들을 조금도 잊지 않았다. 잃는 건 신물이 난다. 그 씁쓸한 기분을 느끼는 것에 비한다면 부담을 떠맡고 무모하게 구는 것 정도는 가벼운 일이다.

 

복잡한 계기 장치에 비해 조종 장치는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남자를 마저 다그치는 대신 차라리 제가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 또한 그 탓도 있었다. 비행기는 처음이지만 그냥 운전 정도는 곧잘 한다.

 

죠타로는 차례로 버튼을 하나씩 눌렀다 떼 보았다. 레버를 당겼다 밀어보기도 했고 페달을 강하게 약하게 밟아 보기도 했다. 그동안 기체는 엉망으로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처럼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한쪽만 펼쳐진 보조 날개에 급한 회전을 하기도 했고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갑작스레 상승 고도를 타기도 했다.

 

오래지 않아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머릿속으로 얼른 외우기만 했던 기능들을 감각과 하나씩 맞추어 보았다.

 

옆에서 핀잔을 주는 것처럼 번갈아 한 마디씩 보태는 둘도 도움이 됐다. 아무래도 비행기 안에 앉아 계기 장치도 보지 못한 채로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으니까. 그에게 붙은 ‘악령’들은 일정 거리 안이기만 하면 그게 설령 비행기 안과 밖이라도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다.

 

카쿄인은 비행기가 기울어질 때마다 왠지 ‘우와’ 하고 감탄했고 디오는 나갈 수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비행기가 신기한 것처럼 안과 밖을 마음대로 통과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면서도 상황을 알려 주는 것처럼 한두 마디씩 보태 주는 건 지금 상황에서 죠타로가 가장 바라던 형식의 도움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하나씩 움직여 보고 나서야 죠타로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제야 얼추 알 것 같은데.”

 

조금 위태위태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약식으로나마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안전한 착륙은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기체 자체를 움직이는 것 정도는 약간이나마 감을 잡은 후였다. 어차피 무언가를 조종한다는 큰 틀 자체는 같았으니까.

 

무모하게 상황에 뛰어들긴 했지만 이 정도면 영 없는 소리는 아니다.

 

그 자신감을 눈치챘는지 카쿄인이 옆에서 불만스레 종알거렸다.

 

“진짜 죠타로 너는 뭐든 잘하네. 재수 없- 아얏.”

 

저 녀석은 진짜 악담을 해라. 스타 플라티나를 꺼내 카쿄인을 냉큼 쥐어박은 죠타로는 이내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이젠 남은 시간이 없었다.

 

‘상식’의 일환으로 겉핥기나마 과정은 알고 있다. 향하는 방향을 아래로 바꾸면서도 날개는 최대한 수평을 유지해 양력을 계속 받도록 하는 것. 고도가 어느 정도 낮아졌을 때 엔진의 활성을 늦추어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 하강하면서 바뀌는 공기의 움직임에 비행기가 뒤집히지 않도록 방향을 조종하는 것. 죠타로는 파악한 조종 장치들을 그에 맞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부딪쳐 굴러다니는 것들의 소리가 요란했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객석으로부터 들려오는 비명이 온몸을 긴장시켰다.

 

무모한 일만이 아니라는 자신감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다는 것도 알고 있는 나이.

 

죠타로는 온 집중력을 지금 상황에 쏟았다. 판단 하나라도 잘못될까 봐 신경이 예민해졌다. 이런 걸 조종하는 데 순수한 조종 실력보다 계기 파악이 더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게 없이 오로지 눈에만 의존해야 했다.

 

앞으로 보이는 창밖이 빠르게 바뀌었다. 희끄무레한 게 구름인지 뭔지 했던 게 아까 전인데 어느새 아래로 향한 방향 끝에서 하늘과는 다른 땅의 색이 눈에 들어왔다.

 

죠타로는 고장 난 통신의 마지막 지시를 생각했다. 구체적인 시간을 지시하더라니, 이곳이 임시로 착륙하기에 적당하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잡풀이 섞인 넓은 공터 특유의 얼룩덜룩한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간혹 차라도 다니는지 위에서 내려다보기에 희미한 흔적의 자연 도로가 나 있었고 인적은 없었다. 색만 봐서는 잡풀보다 흙이 더 많아 보였다. 인위적인 곳은 아니지만 착륙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일렀다. 그대로 땅에 가져다 박지 않기 위해 조종간을 비틀고 있던 때.

 

“이봐.”

 

디오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어느 순간에도 이질적이라, 집중을 단번에 깨 놓는 효과가 있다. 죠타로는 화들짝 놀라듯 고개를 들었다.

 

앞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 살짝 치켜 올라간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공터의 끝이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죠타로는 순간 안색을 굳혔다.

 

저쪽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건 분명 도시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득하게 보이는 거리였지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여유가 있진 않았다. 아래로 하강하고 있는 비행기였지만 아직 착륙 전이라 속도가 빨랐다. 정확한 거리를 몰라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슬아슬했다. 기능을 확인하는 동안 생각보다 시간을 더 잡아먹은 모양이다.

 

이것보다 더 충분한 거리가 필요했다. 이 상태로라면 자칫 도시에 돌진하는 꼴이 된대도 이상하지 않다.

 

판단은 빨랐다. 가장 먼저 눌러 밟은 건 방향을 조절하는 페달이었다.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기체가 허공에서 큼지막하게 원을 그리며 선회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의 것들이 아무렇게나 쓸려 내려갔다. 급격한 회전으로 기류를 잘못 받은 비행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떨렸다.

 

죠타로는 이를 악물었다. 계기를 몰라도 이대로라면 정말 뒤집힐 거란 걸 못 느낄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다급한 상황이니 대충 외운 기능들이 헷갈려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카쿄인이 다급하게 레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유령의 몸은 당연히 머무르는 대신 바로 통과다. 홱 헛손질을 한 카쿄인이 이를 앙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름 도움은 됐다.

 

죠타로는 어쨌든 기능 설명을 같이 들은 건 카쿄인 녀석도 마찬가지라는 걸 떠올렸다.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죠타로는 조금 전 카쿄인이 잡으려다 실패했던 레버를 쥐고 반대편으로 당겼다.

 

보조 날개를 당기고 엔진 출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추진력은 빠르게 생겼다. 옆으로 눕다시피 날던 비행기는 위태롭긴 했지만 가까스로 제자리를 찾았다.

 

얼추 평형을 잡은 걸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엔진 출력을 내렸다. 고도야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 어차피 안전이 조금도 담보되지 않은 상황, 지금 제 실력으로는 괜스레 잘해 보겠다고 시간을 끌다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불분명하기만 했다.

 

막상 손바닥에 땀처럼 찬 긴장과는 다르게 아까까지의 소란이 액땜이라도 되었던 모양이다.

 

기체는 순조롭게 고도를 낮추어 땅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평선도 낮아지는 고도만큼 서서히 낮아졌다. 완벽한 수평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래저래 살핀 바로는 착륙할 때 다짜고짜 날개부터 들이박지는 않을 모양이다. 간신히 한숨 돌릴 상황이다.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 죠타로는 창밖 보이는 광경으로 높이를 가늠했다. 착륙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에 엔진을 꺼야 할지. 객관적인 수치로 하는 판단이 아니라 완벽하진 않았지만 죠타로는 나름 감이 정확한 편이었다. 많은 전투를 헤쳐와서 그런가, 감보다는 그런 쪽의 본능에 가까운 것 같기도.

 

엔진 출력 수치는 배우지 않아도 얼추 알 수 있었다. 엔진 스로틀을 조종할 때마다 움직이는 수치들이 당연히 엔진 출력에 관련된 거겠지. 정확한 건 아니지만 참고할 정도는 됐다.

 

고도 또한 확연히 낮아졌다. 기체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땅에도 겹쳐 보였다. 이때가 착륙 시도를 하기 적당한 때가 아니라면 다른 때는 없을 듯했다.

 

확실히 한숨 놓을 참이었다. 모든 문제는 이곳이 하늘이기 때문이었다. 땅에 내려선다면 모든 일이 쉬워진다. 모두를 비행기 밖으로 인솔하는 건 승무원들이 있었고, 사고의 뒤처리는 전화로 도움 요청을 하면 되니까. 착륙이 어렵다고는 해도 그렇게 암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비행기가 조금 파손되는 걸 감수한다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이왕이면 마음 편히 생각하고 조종간을 쥐었다.

 

페달을 밟으려다가…… 문득 죠타로는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가 착륙할 때 보통 어떻게 했더라.

 

하늘에서부터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바닥에 가까워진 비행기의 기체에서 접었던 보조 바퀴가 내려온다. 바퀴를 보조로 삼아 단단한 땅에 내려서서 미끄러지는 마찰로 속도를 줄인다…….

 

……보조 바퀴는 어떻게 내리는 거지? 죠타로는 침묵했다.

 

막상 조종해야 하는 일에만 신경이 팔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행기 조종’에 바로 보조 바퀴까지 떠올리는 평범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죠타로도 그 축에 들었다.

 

혹시나 싶은 심정으로 죠타로는 카쿄인에게 물었다.

 

“카쿄인, 보조 바퀴는 어떻게 내리는지 알…….”

 

“헉.”

 

……모르나 보군. 죠타로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답을 알았다. 카쿄인 또한 ‘평범한 사람’의 한 명이었고, 심지어 죠타로가 말을 꺼내고 나서야 그 문제를 떠올렸다.

 

디오에게는 묻지도 않았다. 당연히 모를 테니까…… 이 자식은 비행기가 언제 발명되었는지조차도 모를 것이다.

 

한숨을 내쉬기 전에 그나마 이곳에서 유일하게 알 만한 사람이 떠올랐다. 죠타로는 고개를 홱 돌렸다.

 

시선으로 바닥을 더듬어 남자를 찾은 순간, 절로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까부터 조용한 게 제 경고를 제대로 들어먹은 줄 알았는데. 이미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기에 그랬던 거였나 보다.

 

상황을 파악한 카쿄인이 제가 더 미안한 목소리를 했다.

 

“죠타로 네가 레버들을 하나씩 당겨 볼 때 이미 기절해 뒤로 넘어갔어요.”

 

“젠장.”

 

뭐 이렇게 심약한 자식이. 죠타로는 승객 아무나를 데려와 기장실의 이 꼴을 보여 준다면 똑같이 기절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는 상황. 죠타로는 조종석의 계기판을 휙 훑어보았다. 엔진 출력으로 추정되는 수치는 빠르게 감소 중이었고 높이로 추정되는 수치도 거의 땅과 맞닿기 직전이었다.

 

이래서야 다시 고도를 높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땅에 거의 다다른 상태, 아무거나 시도해 보기엔 위험이 컸다.

 

조종석 앞 계기판을 다시금 쳐다보다가 죠타로는 결국 미간을 왈칵 찌푸린 채로 두 손을 내렸다. 어중간하게 모르는 걸 조작하는 것보다, 그냥 현 상태를 유지하며 무사히 착륙하길 바라는 게 지금 상황에선 최선의 수였다.

 

엔진은 날개 밑에 있으니 기울어지지만 않으면 안전하다. 속도에 의한 충격을 분산시킬 방법이 없으니 충격이야 가겠지만, 그래도 추락까지는 아니니 조금 더 나았다. 땅에 맞닿는 비행기의 아래쪽은 객석보단 짐칸이니 어쨌건 ‘사람’들은 무사하지 않을까.

 

포기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게 최선의 방법일 뿐.

 

이대로라면 몇백 킬로미터 속도의 충격을 기체에 그대로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편이 최선이었다.

 

스탠드사라는 것도, 자신도 만능은 아니다. 모든 일을 항상 잘 해결할 수는 없다. 알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어 이렇게 손을 놓고 있게 되는 상황에 괜스레 입 안이 썼다. 이 다음부터는 말 그대로, 믿지는 않는 신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지상을 보며 마지막으로 비행기의 기울기를 확인한 후 죠타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큰 충격이 다가올 상황이다.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모두에게 경고해 주는 것 정도는 지금 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승무원들에게 상황을 전달할 시간도 없었다. 아까까지 비행기가 엉망으로 흔들리던 상황에서 안전벨트도 없이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있을지야 모르겠다만, 마음의 준비라도 해 놓는 편이 당황스러움을 대비하기에 더욱 낫긴 하겠지.

 

조정석을 빠져나와 바닥에 발을 디뎠다.

 

빠져나가기 위해 문쪽으로 걸음을 막 옮기려고 할 때.

 

턱,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무슨-”

 

죠타로는 드물게 놀라 뒤로 흠칫 물러섰다. 잠시 잊고 있던 경계심을 바짝 불러일으켰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아까 쓰러뜨렸던 하이재킹 놈들이다. 호되게 손을 쓰긴 했지만 숨은 붙여 놓았으니, 이런 상황에서 눈을 떠도 이상할 건 없다.

 

착륙까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방해받는다면……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은 건 다른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그를 붙들어 놓은 얼굴은, 익숙하진 않았지만 모를 수 없는 얼굴이었다.

 

“너는…….”

 

그가 기장실에 들어섰을 때 이미 호되게 당한 채 기절해 있던 남자, 바로 이 비행기의 기장이었다.

 

걱정했던 놈들은 아까 승무원들이 묶어 놓은 그대로 구석에 굴러 처박혀 있다. 흘깃 돌아보니 아직까지 당연하다는 듯 정신은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지금 무, 슨…… 상황, 어떻게…….”

 

손이 부상 당한 부분을 맴도는 걸 보아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피도 상당히 흘렸으니 정신이 멀쩡하진 않을 터였고.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상황 걱정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책임감 하나는 믿을 만했다.

 

역시 믿지는 않지만, 말 그대로 ‘신이 도운 듯한’ 기적 같은 타이밍이었다. 그로서는 할 수 있는 게 남지 않는 상황에 깨어나다니. 죠타로는 다른 생각을 지우고 황급히 기장을 부축해 자리에 앉혔다. 그를 보자마자 놀라던 기장은 그가 정신을 잃기 전 무리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걸 다행스레 빨리 깨달았다.

 

일일이 상황 설명을 해 줄 시간이 부족했다. 죠타로는 황급히 필요한 것만을 말했다. 지금 상황이 엉망이라고.

 

다행히 이 정도 크기의 여객기를 모는 사람인 만큼 실력은 있어 보였다. 긴급 착륙 직전의 상황이라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계기판들을 보며 비행기의 위치를 파악했다. 몇 개의 스크린이 고장나 있었지만, 다행히 지금은 필요 없는 것들이었던 모양이다.

 

조종간에 올라가는 손이 떨리는 걸 보고 조금 불안했지만.

 

막상 움직이는 팔은 흔들리지 않아 마음을 놓았다.

 

죠타로는 기장의 몸이 굴러떨어지지 않에 벨트를 매 주면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다시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망할 비행기는 끝까지 책임져라.”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앓는 듯한 신음이 답례처럼 돌아온 것만으로도 죠타로는 한껏 마음이 놓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러 몸을 돌려 객석으로 향하는 걸음은 아까보다 무게가 훨씬 덜어져 있었다.

 

 

 

*

 

 

 

여객기 공중 납치 사태.

 

승객 297명과 승무원 8명을 포함해 합계 3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오갈 데 없는 하늘에서 위급해질 뻔한 이번 사태는 결과적으로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기장은 과연 관록 있었다. 기장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상황은 더 이상 급박할 것 없이 안전하게 흘러갔다.

 

기장이 있든 없든 할 수 있던 게 없던 상황. 죠타로는 승무원을 찾아 대신 스피커를 잡았다.

 

객석에 안내 방송을 하는 동안에도 객석의 소란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곡예비행에 가까운 위험천만한 상황을 지나는 동안 어지간한 사람들은 전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절해 버렸기 때문이다.

 

온통 겁에 질리다 못해 푹 지쳐 깨어 있는 사람들조차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도 꿈쩍도 하지 못하고 늘어져 있기만 했고, 결과적으로 죠타로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추가의 큰 소란 없이 창밖을 볼 수 있게 됐다.

 

지면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기장은 엔진에 약간의 동력을 돌리고 보조 바퀴를 내리는 걸 넘어 살짝 비틀어진 균형을 어찌어찌 수습했다. 비행기는 어느 한쪽으로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보조 바퀴에 무게를 싣고 멈출 때까지 기다란 대지를 미끄러져 갔다.

 

다른 때보다 더욱 길게끔 느껴지던 하늘 여정이 완전히 멈추었다는 걸, 사람들이 바로 실감하지 못한 건 그 상황에서 무리도 아니었다.

 

죠타로는 유일하게 창밖을 보며 상황 파악을 하던 사람이었다. 비행기가 멈춘 걸 제일 먼저 알게 된 것도 당연히 그였다. 창밖이 더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죠타로는 몸을 돌렸다.

 

제일 먼저 승무원들을 찾았다. 쿠죠 죠타로는 장내를 ‘차분히’ 정리하고 이해시키는 데 별로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승무원들이라고 해도 다 간담이 큰 건 아닌지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고작 몇 명뿐이었다.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고, 하이재킹범들은 꽁꽁 묶인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제 정신을 추슬러 내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기에 그 몇 명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승무원들은 그가 도착했다는 말을 전하자마자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싶었다. 후들대는 다리로도 황급히 일어서 주변을 살펴보더니 뒤늦게 자신들이 할 일을 생각해 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내리고 싶은 심정은 다른 사람들과 같을 텐데 문으로 향하기보단 주변 점검을 우선 하는 행동은 감탄스러웠다.

 

당장 해야 하는 당부를 마치고 죠타로는 기장실로 향했다.

 

기장은 제 역할을 전부 끝내고 축 늘어져 있었다.

 

처음 기장실에 들어와서 발견했던 늘어져 있던 모습이 생각나서 조금 놀랐지만, 그것과 다르게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있는 채였다. 다만 몸에 기운이 없어 지탱하고 있지 못할 뿐.

 

이 정도면 충분히 기장으로서 할 일을 다해 준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얼른 밖으로 날라 조금 더 편하게 쉬게 해 주고 싶었지만 승객들과 부딪치는 건 곤란했다. 거기에 혹시 무슨 돌발상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끝까지 남아 있는 게 나았고. 기장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적어도 그는 비행기를 두고 혼자만 몸을 빼는 그런 성격의 사람은 아니었다.

 

기장은 그를 위협하던 하이재킹범들이 제압되다 못해 기절해 바닥에 널려 있는 꼴을 보고 안도가 섞인 헛웃음을 쳤다. 그로서는 기절했다 눈을 뜨니 모든 상황이 끝나 있는 것일 테니 조금 급작스러운 면 또한 있을 것이다.

 

이왕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려야 하는 만큼 죠타로는 빈 시간 동안 기장에게 그동안의 일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기장은 생각보다 오래 기절해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고 승객 중 사망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으며 마지막 아슬아슬한 때에 자신이 깨어났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죠타로는 크게 안도하는 기장에게 궁금했던 점을 슬쩍 물었다.

 

“그런데, 바퀴 없이 착륙하면 어떻게 되지?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기는 건가.”

 

“아무리 엔진을 낮췄대도 몇백 킬로미터의 속도를 그대로 받으면…… 운이 조금만 없어도 엔진에까지 충격이 가 그대로 대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제법 운이 좋았군.”

 

뭐…… 지나간 일은 됐으니까. 하지만 한 켠으로는 역시 그런 생각도 조금은 든다. 이런 것들이랑은 썩 안 맞지만, 역시 한 번쯤은 배워 두는 게 좋을까…….

 

간단한 대화가 오가는 사이 객석 쪽의 소란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창문으로 내다본 바깥에도 빠져나온 승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죠타로는 기장을 도와 몇 가지 조작을 더 하고 나서야 그를 부축해 일으킬 수 있었다. 제 다리로 버티려고 기를 쓰던 기장은 결국 당장은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그에게 온통 기댄 채 늘어졌다.

 

그에게 무게를 실은 채 함께 끌리다시피 걸음을 옮기면서 기장은 허허 웃었다.

 

“하필 눈을 뜬 게 그때라니. 꼭 누군가 정신 차리라고 깨워 준 것 같지 않습니까? 이거야말로 신의 돌보심이지요. 얼른 눈을 떠서 모두의 목숨을 살리라고.”

 

떨리는 손으로 가볍게 성호를 긋는 앞에서 어느새 길게 늘어진 목걸이가 달랑거렸다. 반짝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죠타로는 속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신의 돌봄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알맞은 때에 눈을 떠 줘서 다행이었다. 그대로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죠타로는 속절없이 비행기가 땅에 부딪쳐서 엉망이 되는 걸 지켜봐야만-

 

“-어이쿠!”

 

막 문턱을 넘던 기장이 휘청거렸다.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기장을 잡아 주었다. 부축을 해야 한대도 두 명이 나란히 빠져나올 만큼 넉넉한 통로는 아니기에 그가 먼저 빠져나와 있었다.

 

힘이 부족한 몸으로 넘기엔 턱이 너무 높았다. 거기에 날려 버린 문에 맞물려 있어 조금 구겨져 있기까지 하니 더 위험하다.

 

이래서야 아예 스탠드로 들어서 나르는 게 편할 판이었다.

 

막상 그런 생각이 드니 혹했다. 심지어 그편이 조금 더 안전할 것 같다. 슬쩍 후려쳐 기절시키면 들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기장을 살피던 중.

 

“음?”

 

시야에 생각지도 못한 낯선 모습이 잡혔다. 기장의 얼굴 한쪽이 유달리 부어 있었다.

 

부어 있는 모습이 정말로 무언가에 맞은 것 같았다. 그것도, 맞은 다음에 시간이 조금 지난 모습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아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세게 후려쳐 맞은 부위가 붓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거기에 부축하고 있던 반대 방향이기도 했으니 눈에 안 띌 수밖에.

 

꽤나 아파 보이게끔 부어 있었지만 죠타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조종이 제대로 안 되는 기장실 안에서 바닥을 구르던 건 기장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그런 와중에 어딘가에 부딪칠 수도 있지.

 

별생각 없이 넘기며 문턱을 넘어오는 기장을 마저 부축해 주다가, 죠타로는 문득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하필 그때.’

 

죠타로 또한 기장이 깨어난 걸 보고 운이 좋았다고 여겼다.

 

혼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방도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 눈을 떠 주었으니까.

 

마치 기적 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런 ‘기적 같은 우연’이 때를 맞춰 찾아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죠타로가 파악했던 기장의 상태는 치료라도 받기 전엔 혼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쪽이었으니까.

 

거기에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바로 의심할 수 있는 원인도 분명 있다.

 

그래, 아까부터 왠지 조용하던 녀석이.

 

죠타로는 이제껏 제 신경이 온통 기장에게만 쏠려 있었다는 걸 알았다. 제 옆에서 거슬릴 정도로 조잘조잘 시끄럽게 굴어대던 녀석들도 같이 조용해졌다는 것도 뒤늦게 알 정도로.

 

그제야 고개를 돌린 저편에서 평소처럼 얼쩡거리며 따라오기는커녕 추욱 늘어져 있는 두 녀석이 보였다.

 

거리가 멀지 않아 둘은 아직도 기장실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냥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장을 ‘호되게 때려서’ 깨운 쪽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나마 한두 마디씩 말참견하곤 했던 카쿄인과 다르게 유독 조용히 있더니.

 

‘신’이 아닌 ‘귀신’의 도움 쪽인가.

 

왠지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났다.

 

죠타로, 눈이 마주친 카쿄인이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수고했어요’ 하고 덧붙이는 어깨 위로 ‘드물게’ 기운이 없어 보이는 디오가 툭 기댔다. 평소와 다르게 짜증스럽게 밀어내지 않는 카쿄인을 보면 이런 상황도 익숙해 보인다. 제가 모르던 언젠가 이런 상황도 있었을지도.

 

저렇게 익숙해 보이는 사이에 이제 곧 자신도 섞이게 되겠지. 녀석들의 존재를 모른 채 긴 시간을 보냈지만, 남아 있는 긴 시간은 줄곧 알고서 함께하게 될 날들이니까.

 

둘 모두 따라올 생각이 없어 보여 잠시 신경 썼지만, 얼마 가지 않아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지금은 저렇게 늘어져 있어도 일정 거리 이상을 넘어가면 알아서 끌려오게 되어 있다.

 

“……그거 하나는 편해 보이는군.”

 

“예?”

 

“아, 아니. 그쪽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젠장.”

 

죠타로는 낮게 혀를 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기장은 이제 완전히 기운이 빠졌는지 그에게 온통 몸을 싣고 있었다. 기장을 들다시피 해 빠져나가면서 죠타로는 속으로 작게 탄식했다. 어쨌건 셋 모두 내가 끌고 가고 있잖아. 이렇게 생각하니 사서 고생하는 기분이다.

 

복도와 객실에는 사람이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빠져 있었다. 조용한 비행기 안과 다르게 열린 문 너머로 조금은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온다. 죠타로는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밝은 오후 햇살 아래 제각기 늘어진 사람들은 저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뻐하고 있었다. 방금 전 기장처럼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벅차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통적인 건, 그들 모두가 살아 있다는 사실.

 

기장과 함께 내린 그를 제일 먼저 발견한 승무원이 달려왔다. 긴급상황인 만큼 경찰에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내리자마자 그럴 생각이었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연락을 할 수 있는 게 지금 상황에서는 다행이다.

 

경찰과 처리반은 해가 저물기 전에 도착했다. 도시가 가까웠던 탓도 있겠지만, ‘하이재킹’당한 비행기인 만큼 온 신경을 쓰고 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늘에서의 다급한 소란. 사망자는 없고, 중상자는 두엇뿐인 기적과 같은 상황.

 

그 중상자 중 한 명인 기장은 생명에 지장이 있을 만한 부상자는 없다는 걸 듣고 나서야 들것에 누운 채 편안한 표정으로 마저 기절했다. 그때까지 그의 손안에는 힘껏 움켜쥔 십자가 목걸이가 쥐여 있었다. 나름 마음 부담이 심했던 모양이다.

 

중상자는 기장 외에 다른 곳에 박혀 있던 부기장과 하이재킹범들 뿐이었지만, 경상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하이재킹범들에게 화를 내던 죠타로는 경상자 중 절반 이상이 비행기가 기울어지던 때 안전 벨트를 하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는 걸 뒤늦게 듣게 되었다. 이건…… 이쪽 잘못으로 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하이재킹범들의 잘못이라기에도 애매했기 때문에 죠타로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기절해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도 제외하고. 남은 사람 중 제대로 된 진술을 할 수 있는 승객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기를 쓰고 정신을 붙들고 있던 승무원들의 증언으로 죠타로는 이번 상황에 대한 대부분을 도맡아 진술했다. 학위증에, 재단 소속의 증명에, ‘죠스타’라는 이름까지 더해지자 그렇지 않아도 나름 정중하던 경찰 측의 태도는 더욱 깍듯해졌다.

 

죠타로는 진술에 대한 협조를 기꺼이 약속하는 대신에 이번 일에 관해서 공개적으로 제 이름이 거론되지 않도록 하는 협상을 마쳤다. 어차피 다른 일행은 없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드러나면 귀찮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번 사건에 어쨌건 스탠드사가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하이재킹 패거리에 섞여 있던 스탠드사에 관해서는 바로 재단에 연락을 취했다. 스탠드사가 얽힌 일이니만큼 따로 지시가 있게 될 것이고, 책임자는 이번 사건을 ‘직접’ 겪은 자신이 될 게 뻔했다. 오자마자 또 일거리를 떠맡게 되다니.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며칠간을 바쁘게 보낸 끝에, 죠타로는 드디어 지겨운 진술 일을 모두 마쳤다.

 

물론 그의 일이 끝났다고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범죄자들의 인도나, 사건의 뒤처리나, 피해자들의 치료 및 상담이나, 사건에 관한 언론 보도나. 남은 일들은 많았지만 거기부터는 전부 그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들뿐이었다. 애초에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러다가 그저 운이 나빴는지 이렇게 사건에 말려 버리게 되었지만.

 

어쨌든 이 지긋지긋한 것도 드디어 끝이군. 죠타로는 건물 밖으로 발을 딛자마자 크게 기지개를 켰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머무르고 있으니 그저 지긋지긋했다. 바깥에는 이렇게 볕이 잘 드는데 왜 저 건물은 그리도 어두컴컴한지 모르겠다.

 

얼마 가지 않아 ‘재단’으로부터 주어지는 업무를 다시 맡게 되겠지만, 그걸 알고 있기에 지금 잠깐 느끼는 자유가 그만큼 달았다.

 

한껏 개운한 표정을 하고 있는 옆에서 마찬가지로 한층 후련한 목소리가 울렸다.

 

“으, 드디어 끝이네요. 정말 지긋지긋했어.”

 

카쿄인은 치를 떠는 것처럼 고개를 파르르 흔들었다. 며칠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가장 지겨워 죽으려고 했던 녀석이었다.

 

“기껏 너도 우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같이 구경이라도 하며 놀러 다니지는 못할망정, 이런 기분 나쁜 건물에 내내 갇혀 있어야 하다니.”

 

카쿄인은 반복되는 진술만큼이나 지겨운 녀석이었다. 하루 이틀까지는 얌전히 같이 견뎌 주는가 싶더니 사흘째 되는 날부터는 사람이 있건 없건 가리지 않고 옆에서 조잘조잘 말을 걸었다. 주로 가 보고 싶었던 관광지에 대한 것이었다. 디즈니랜드나 호수공원이나 그런 곳들.

 

‘쿠죠 죠타로’의 옆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선 그가 가는 곳들만 볼 수 있었고 죠타로는 그런 유쾌한 장소들에는 별반 흥미가 없었다.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자 기대 또한 되는 건지, 카쿄인은 나름 차곡차곡 쌓여 있던 불만을 내내 떠들어 댔다.

 

“너는 그동안 너무 일만 했어. 하지만 이젠 우리가 도와줄게요. 그러니까 재밌는 곳 놀러 가자, 응?”

 

“하, 카쿄인. 지금 네놈 멋대로 나까지 끌어들이는 건가?”

 

옆에서 디오가 발칵 짜증을 냈다.

 

비행기에서의 사건 이후, 디오는 며칠간 굉장히 조용히 있었다. 아무래도 기장을 깨우느라 상당히 무리했던 모양이었다. 죠타로는 반쯤 조는 것 같은 모습을 걱정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생전 디오 녀석을 걱정하는 날이 오다니.

 

다행히 디오는 죠타로가 반복되는 상황에 붙들려 며칠을 허비하는 사이에 회복했다. 회복되자마자 카쿄인과 주거니 받거니 시끄러운 모습을 보며 죠타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둘 모두’ 멀쩡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니 내심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제 딴에는 악령이라는 녀석들이기에 재단에 이야기해야 하나 했던 고민은 간단히 사그라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 안도가 조금 후회될 지경이다.

 

카쿄인도 디오도 하나같이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들이다. 서로 양보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 번 시작하면 굽히지 않았다. 말끝 하나로 시작한 다툼은 죠타로가 팔짱을 낀 채 기다리는 동안에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대로라면 이목을 끄는 다른 일이 생길 때까지 하루 종일 이러고 있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쿠죠 죠타로 또한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소란스러웠던 사건도 얼추 마무리되고 간만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둘 모두 협조해 주지 않는다.

 

죠타로는 소란스러운 게 싫었다. ‘조금 조용한’ 상황을 위해서라면 10년 전부터 알던 악령 둘 정도를 쥐어박는 일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죠타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타 플라티나.”

 

“아얏……!”

 

“윽……!”

 

모습을 드러낸 스타 플라티나는 카쿄인을 냉큼 쥐어박고 디오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방심하고 있다가 나란히 스탠드에 당한 둘은 짧은 비명과 함께 조용해졌다. 죠타로는 이 틈을 타 아예 둘을 갈라놓았다. 카쿄인은 이쪽 왼쪽으로, 디오는 저쪽 오른쪽으로. 그를 사이에 둔 채 양쪽으로 갈라진 둘은 그제야 조금 차분해졌다.

 

스타 플라티나를 돌려보내기 전에 죠타로는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망할 자식들. 숙소까지는 제발 얌전히 돌아가자,”

 

“네에.”

 

“흠.”

 

대답은 시원찮았지만, 죠타로는 그래도 제 말을 들어줄 걸 알고 있었다. 24시간 내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어야 하는 고충은 둘 쪽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입을 비죽인 카쿄인이 그의 어깨에 팔을 감고 냉큼 매달렸다. 카쿄인을 가만 쳐다보던 디오는 아예 다른 쪽 어깨가 의자라도 된 것처럼 올라탔다.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던 것도 옛말이다. 딱히 느껴지는 무게도 없는 데다, 이게 이제껏 그들이 제 옆에 있던 방식이라면 자신이 익숙해지면 될 뿐.

 

죠타로는 건물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볕 좋은 오후의 햇살이 계단에 길게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에는 비치지 않아도 양쪽에 나란히 매달린 두 녀석은 걸어 내려갈 때마다 한들한들 흔들리듯 번갈아 시야에 걸렸다. 오른쪽 한 번, 왼쪽 한 번, 그렇게 양쪽 모두.

 

한가롭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두 녀석들이 ‘악령’이라고 말하지만.

 

이제껏 그가 보지 못하는 긴 시간 동안에도 내내 그의 주변을 맴돌며 지켜 주던 녀석들이다. 이번만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이래서야 마치 악령보다…….

 

……꼭 수호천사 같지 않은가.

 

어깨 위, 등 뒤쪽에. 오른쪽 하나, 왼쪽 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나란히 매달려 있는 녀석들이 꼭 한 쌍의 날개라도 된 것만 같고.

 

10여 년간 쉬운 일이라고는 정말 없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많았고 금방이라도 모든 걸 던지고 포기하고 싶던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쿠죠 죠타로’는 이곳에 무사히 서 있다. 꼭 그에게만 깃든 행운이 도와준 것처럼.

 

그러니 남들이 다르게 생각해도, 어쩌면 제게는 그게 맞을지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죠타로는 정작 입으로 꺼내지 않고 슬쩍 미소 지었다. 그저 속으로만, 둘이 앞으로 ‘지켜 줄’ 오랜 시간을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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