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부(5)








 

밤늦게 찾아가 이제 막 침소에 들려던 수령을 붙잡고 나는 미안해하는 기색도 들지 않아 다짜고짜 낮에 있었던 일들을 토해냈다. 처음에는 얼떨떨한 표정이던 얼굴이 곧 내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이 일을 알고 있었나?”

“그럴 리가요. 전에 말씀드린 기록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 저 또한 알던 내용은 아닙니다. 조사한 내용도 모두 대감께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저 집에 가서 한 번 더 조사해 보는 게 어떻겠나?”


나는 수령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더 살펴볼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이 좀 곤란해 보였다.


“안 그래도 요 몇 번 그곳을 갔다 온 뒤로 호신리 이장이 어찌나 성을 내던지-”

“성을 냈다고?”

“예, 큰일은 아니라서 그냥 넘기긴 했는데, 오늘 대감 말씀을 듣고 나니 좀 의뭉스럽긴 하군요.”

“뭐라 했길래 그러나?”

“음. 진짜 별일이 아니긴 했습니다. 이장의 말로는 검은 집이 몇백 년 전부터 마을에 있던 거라 함부로 가면 안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아무래도 마을에 다른 미신 같은 게 있는 모양이긴 했는데, 그거에 대한 건 또 기록에 없더군요. 이장에게 물어보니 자신도 자세히는 모르나 그저 흉한 곳이라 가까이 가지 않는다 했습니다. 마침 폭설이 내려서 정신없기도 하였고....”


이장이라-. 호신리 이장 최승철은 예순이 훌쩍 넘은 남자로 박철한을 도와 마을을 관리했다. 나 또한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그를 만났고 잘 알고 있었다. 최승철 또한 박철한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호신리에 자리 잡은 향리 출신 중 한 명으로 집안이 대대로 이장직을 겸하고 있었다.

나는 수령이 말한 ‘미신’이라는 문장에 집중했다. 아까 그 나이든 여인에게 들었던 것과 뭔가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한양에서는 아직도 기별이 없는가?”


수령이 올린 장계는 관리들의 손을 거쳐 이미 임금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물론 내 서찰도 마찬가지일 테지. 시각도 늦고 더는 수령과 얘기할 게 없어서 나는 일단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마도 내일은 마을 이장을 만나봐야 할 듯하다.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배웅나온 수령이 멋쩍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닐세. 이게 왜 수령의 탓이겠나. 나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인걸.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늦게 찾아와서 내가 더 미안하구먼.”


나는 넉살 좋게 웃어 보이며 다음을 기약하고 수령의 처소를 빠져 나왔다. 그러다 얼만 못 가 이방과 마주쳤다.


“이런 야심한 시각에 혼자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아직 눈길이 많아 자칫 몸에 해가 될까 염려됩니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를 가진 박철한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묵직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걱정해 줘서 고맙네. 그래도 내가 생각보다 튼튼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이 역시 에둘러 그의 호의를 거절한 것이나, 그는 어쩐 일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박등을 든 채 내 앞을 비추었다.


“밤길이 무척 어둡습니다. 저 또한 홀로 가야 한지라, 안 그래도 조금 적적하고 무서웠는데 소인의 종지 그릇만 한 담을 헤아려 주십시오.”

“무섭다고? 자네가?”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그의 배려를 결국 받아들였다. 이러나저러나 딱히 거절한 이유도 없었다.


“자네 그러고 보니 검은 집에 다녀왔다면서?”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꺼냈다. 나와 수령이 이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는 걸 모를 수 없을 테고 방금도 수령과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하고 나온 참이니 말이다.


“예.”


그는 고저 없이 대답했다.


“그곳에 사람이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수령 나리의 말로는 최 이장이 무척 성을 냈다고 하더군.”


잠시 조용히 침묵하는 그와 나의 발아래로 흔들리는 호롱불이 아른거렸다. 한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박철한은 꼿꼿이 걸어가고 있었다. 돌다리 부근에 다다르자 그가 별거 아닌 것처럼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유랄 게 뭐 있겠습니까. 그저 어르신들의 고리타분한 믿음 때문이지요.”


짧은 거리의 돌다리를 다 건너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금세 마을의 초입이 보인다.


“원래 어르신들은 맹목적인 믿음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제 아버님도 사람은 절대 삿한 것과 가까이하면 안 된다고 하시는데, 솔직히 그 기준이 참으로 당신 마음대로라.”


초입으로 들어서자 어쩐지 사위가 더욱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발밑을 비춰주는 박등이 어둠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둥둥 떠다니는 듯 보인다. 눈길을 밟는 뽀득뽀득 발소리가 고요함을 깨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이리 길었던가.


“대감께서는 그 집에 가고 싶으신 겁니까?”


멍하니 호롱불 빛만 바라보던 내가 스르르 고개를 움직여 박철한을 쳐다보았다. 빛이 부족하긴 하나 그의 얼굴이 저리 흐릿할 수 없었다. 아니, 무언가 뿌연 안개가 그의 얼굴 앞에 흩어져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그의 눈앞에서 휘휘 손을 저었다.


“밤 안개가 피나보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박사박. 나는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대감께서 그리 원하신다면 검은 집에 가셔야지요.”


박철한의 목소리가 사뭇 들뜨게 느껴졌다.


“이곳의 고리타분한 믿음이 뭔지 아십니까?”


나는 그에 고개를 저었다. 딱히 내 의지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는 아직도 마을의 초입이었다.


“자신이 믿는 것이 가장 옳다 하는 겁니다. 여기 사람들은 예부터 모두 단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 믿음을 실천해 오고 있지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나는 박철한을 보고 있었으나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 어둠 속에 두 사람만 떠다니는 기분. 빛이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박등의 불이 꺼졌다.


“도착했습니다. 대감.”


정신을 차려보니 내 집 대문 앞이었다. 분명 좀 전까지 마을 입구였는데.


“그렇군. 고맙네, 조심히 들어가게나.”


얼떨떨한 기분으로 사람을 부르곤 열린 문으로 들어갈 찰나 박철한이 행랑아범에게 여상히 말했다.


“날이 추우니 고뿔에 걸리시지 않게 오늘 밤은 뜨끈하게 불을 지피시게. 아직은 필요하니 말일세.”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뒤로하고 박철한은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10월 24일

 

 

 

[내일. 묘시(오전 5시~7시). 검은 집으로. 최승철 이장.]

 

어제 오전에 받은 서신의 내용에 한동안 고민하다, 나는 행동하기로 했다. 어차피 검은 집에는 몰래라도 가볼 생각이었다. 이것을 수령에게 얘기한다면 소문이 새어 나갈 수도 있기에, 나는 기록만 해두기로 했다.

누가 이 서신을 건네주었는지는 모른다. 대문 틈에 껴 있는 것을 이른 아침 하인이 발견한 것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는 건가. 혹시 그 나이든 여인? 아니면 다른 누구..... 설마....?

 

 

 

10월 26일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일어났다. 어제 알려준 데로 나는 검은 집을 찾아갔다.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겠다. 축시(오전 1시~ 3시)는 지난 것 같다. 나는 어제 내가 본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아직 결론 짓지 못했다.

 

 

 

미시(13시~15시)가 지났다.

내가 본 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아이 한 명이 또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사라진 건가. 어제 보았던 것이 결국 사실이었단 확인이 나를 괴롭혔다. 아니길 바랐건만. 나는 그저 수령에게 얘기하면 되는 것일까. 그런 아무도 믿지 못할 일을?

 

 

10월 27일

 

 

어젯밤 너무 끔찍한 비명을 들었다. 내 집은 검은 집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매우 가깝게 들리는 듯했다. 이건 사람 소리가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내가 미쳐가는 건가. 수령은 검은 집을 다시 알아보겠다 했다. 일단 기다려야 한다. 그래. 그 여인도 그랬지, 기다리라고.

 

 

 

10월 28일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수령과 박 이방, 마을의 각 이장과 관원들이 계속 쏟아지는 눈과 한파에 어찌해야 할지 의견을 나눴으나 실상 걱정과 근심을 토로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 말고도 창천리의 이한올 대감과 최문수 영감이 유지로서 참석했다.

아직 버틸 곳간이 남아 있었지만, 길이 끊겨 외부와 차단된 것이 제일 큰 걱정이었다. 일단 사태를 대비해 한성으로 다시 기발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어차피 길이....”

“....청정산으로 오라 하면 어떨는지요?”


박철한 이방이였다. 나는 언젠가 그와 같이 있었던 밤의 시간이 떠올랐다. 애매하고 모호한 말과 기묘한 기운을 풍기던 이방의 창백했던 표정이.


“거기도 이젠 눈이 많이 쌓였을 겁니다.”


최승철 이장이 말했다.


“그래도 다른 길보다는 오기 수월할 겁니다.”


이방이 되받아치자 이장이 못마땅한 표정이 된다. 두 사람은 예전부터 호신리에서 같이 마을을 관리했던지라 박철한이 이방이 되었어도 최 이장은 아무 거리낌 없이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찌 되었나?”


회의의 결론은 청정산으로 안내한다는 걸로 끝을 맺었다. 나는 모두가 나가길 기다렸다 수령에게 물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수령이 가까이 다가 왔다.


“...별로. 다를 건 없었답니다.”


나는 분명 서신의 내용도 이미 전달한 터였다.


“진정 이상한 점이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오?”

“예. 문이 열리지 않아 역시나 내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필시 그 어떤 기척도 이상한 점도 없었다 합니다.”


나는 아쉬우면서도 찝찝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


“저, 대감. 그, 이런 말씀 드리기 참 송구하오나, 그 나이든 여인을 너무 믿지는 마십시오.”


수령은 짐짓 걱정하는 투였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허황된 시점에 매달린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입니다. 어쩌다 시신을 발견했을지는 몰라도 그게 결코 그 여인의 능력 때문이라고는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고, 우연일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우연이 반복되면 그 또한 필연이라 했던가.

수령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어쩌면 이게 당연하겠지. 미신 따위.


“알겠네. 나는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그리했네. 아무래도 내게도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어서 더 몰두했는지도 모르지.”


수령은 이에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안쓰럽게 나를 응시했다. 나는 다시 흐릿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청명한 하늘빛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대신 한 번만 더 부탁 좀 하겠네.”


나는 한양에 있는 오랜 친우에게 서찰을 보낼 생각이다. 더는 나라님들의 느려터진 일 처리에 기댈 수는 없었다. 아마 성규라면 이 일에 대해 분명 실마리가 될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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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성규에게 서신을 보내고 일주일이 지나 그사이 아이 한 명이 또 사라졌다. 창천리에도 어느새 소문이 널리 퍼져 수령은 난감해하고 있었다. 흉흉한 분위기를 고려해 입단속을 해도 재난에 고립되고 위축된 불안감으로 인해 볼멘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있는 호신리 만은 조용했다. 아니, 담담하다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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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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