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응, 별일 없어. 그냥 일이 좀 바빠져서."

   "아니야, 그런 거. ……. 알겠어. 안 까먹었어. 알겠다니까."

   "내일 출발하기 전에 연락 드릴게요."


 통화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화면에 떠오른 후에야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휴대폰은 침대 위로 던져 버리고. 커피 테이블 위에 잠시 엎드린 채 머릿속을 정리해 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해가 밝을 때마다 어디서 구해오셨는지도 모를 탁상 달력을 두세 개씩 나눠 주시던 아버지 덕에 내 티비 옆은 늘 너저분했다. 달력은 두세 달 넘기다 말아 이 추운 날씨 속에서도 봄을 간직하고 있다. 어차피 쓰지도 않을 것들인데도 버리는 과정은 왜 항상 어려울까. 어쩌면 집안 내력일지도. 엄마나 아빠는 집안 여기저기 쌓인 잡동사니들을 보고도 도무지 버릴 줄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굴었다. 그건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아빠랑 관련된 물품이라면 그걸 어리석게 끌어안고 살 궁리만 하셨다. 이번에 본가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위와 같다. 그 한심하고 답답한 모습을 이틀 내내 보다 와야 한다는 거. 내가 정당히 누려야 할 휴식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된다는 거. 그런 것들이 싫었다. 적어도 나만큼은 구질구질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2.

 몇 달 만에 올라온 집은 상태가 더 심각해져 있었다. 거실에는 온갖 옷가지들이나 상자들이 잔뜩 나와 있었고, 내가 쓰던 방까지 가는 데에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싸온 짐들을 양손에 들고 끙끙대면서 겨우 방안까지 도착했다. 가쁜 숨을 내쉬는 와중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솟는 느낌이었다. 뭐 하자는 거야, 이게? 다시 방 문을 쾅 열고 나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어디 있어! 나 온 거 안 보여?"

   "대답 좀 해!"


 곧 서재의 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앓는 소리를 하며 나왔다. 내가 온 것조차 몰랐는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결국 참았던 뭔가가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더욱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람 보고 여기까지 오라고 했으면 제대로 인사라도 받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이고,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 잠깐 서재에서 뭘 좀 찾다가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못 들었어. 우리 딸 왔니, 그래."

   "미안하면 다음부터 올라오라는 소리 좀 하지 마, 차라리. 우리가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니고."

   "……."

  "누구는 다음 날 출근 안 해? 주말에 안 쉬어? 내가 왜 쉬는 날까지 반납해 가면서 새벽 기차 타고 본가에 올라와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젠 아빠도……."


 아빠를 입에 올리고 나니 신기하게도 감정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물론 이어 하려던 말에도 틀린 곳은 없었다. 그대로 해도 됐을 말이다. 아빠도 없는데, 내가 이 집에 올 필요가 있냐는 말. 대학 시절에는 주말마다 본가에 올라왔었다. 엄마는 늘 밖에 나가 있었고, 집에는 아빠만 있었다. 그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던 적이 더 많다. 끙끙 앓으면서까지 굳이 일을 하고 들어오는 엄마가 미웠고, 병든 아빠를 집에 혼자 두는 것도 미웠고, 내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엄마가 미웠다. 취직해서 집에다 돈을 보내 줘도 엄마는 바깥일을 계속했다.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내리자 마침 발치에 놓여 있는 상자가 하나 보였다. 제일 위에 있는 건 아빠와 함께 찍은 우리 세 사람의 모습이 담긴 액자였다. 그 아래로는 또 아빠와 관련된 온갖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게 뻔했다. 신경질적인 움직임으로 액자를 주워 들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나무 장식이 으스러지는 소리. 엄마는 깜짝 놀라 어디 다친 데 없냐며 나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짜증이 났다. 그 자리에서 없어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3.

 저녁 때가 되어 식탁 앞에 엄마를 마주하고 앉았다. 요리를 하다 그런 건지, 깨진 액자를 정리하다가 유리에 베인 건지, 손가락 마디마디에 밴드를 붙이고 있는 게 꼭 나 보라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입맛도 없었다. 반찬은 죄 아빠나 좋아할 법한 것들 뿐이었고. 밥 생각 없다는 말과 함께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 방에서 쉬고 싶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하나하나 뜯어 보면서도 말이 없었다.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밥을 밀어 넣고, 씹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할 말 없으면 나 들어가도 되지? 방에."

   "요즘 어떻게 지내니."

   "아, 정말……. 어제도 말했잖아. 일이 바빠졌다고."

   "반찬이 맛이 없어서 그래?"

   "입맛 없는 거랑 반찬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 엄마 참 웃기는 사람이다."

   "아니, 엄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나 나쁜년 만들고 싶어? 열심히 차린 밥상 앞에서 애처럼 반찬투정이나 하는 그런?"

   "그런 뜻 아냐. 엄마가 잘못했어. 응? 기분 풀어. 밥은 조금이라도 먹어 둬야지……."

   "됐고, 나 밥 차려 줄 시간 있으면 집이나 좀 치우고 살아. 아빠 물건도 다 버리고. 진짜 지긋지긋하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엄마는 돌아서는 나에게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았다. 화난 마음을 알아 달라고 시위라도 하듯 문까지 요란하게 닫고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곧 문 너머로는 식기들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후에는 거실 쪽에서 기척이 전해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박스 테이프 뜯는 소리. 이제야 정신 차리고 버릴 거 남길 거 구분하기 시작했나. 그런 생각이나 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4.

 잠에서 깬 건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일부러 아는 척도 않고 그대로 냉장고 앞까지 걸어가 물병을 꺼내왔다. 언젠가부터 방문을 꽁꽁 닫고 살기 시작했는데도 엄마는 혹여나 내가 잠에서 깰까 걱정된다며 집안에 불을 잘 켜 두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누렇고 희미한 불빛은 엄마를 꼭 닮아 있었다. 낡을 대로 낡고, 별 도움도 안 된다는 점에서.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그러고 있을 거야?"

   "정리하느라……."

   "그냥 다 버리면 되잖아."

   "어떻게 그래."

   "안 될 건 또 뭔데."


 퉁명스러운 말투로 엄마와 몇 마디 주고 받으면서 옆에 가 앉았다. 여태 앨범이나 뒤적거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허벅지 위에 펼쳐 놓은 사진첩은 내가 알던 가족 앨범과는 어딘가 달랐다. 가족 앨범이 아닌 사진첩이라면 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거 엄마야?"

   "얘는. 그럼 아빠가 결혼을 두 번이라도 했게."

   "지금이랑 너무 다르니까 그렇지. 나 몰래 어디 고친 거 아냐? 봐 봐. 눈도 좀 다른 것 같은데."


 아까 내가 했던 모난 말들이 기억도 안 나는지, 아니면 속이 없는 건지. 엄마는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까르르 웃었다. 처녀 때는 제발 밥 한 번만 같이 먹자는 남자들이 학교 정문에서부터 줄을 서 있었다고. 아빠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는 엄마의 손을 붙들고 턱짓으로 결혼식장 사진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날짜 보니까 5월의 신부셨네. 여자는 5월에 결혼하면 그렇게 행복하게 산다던데."

   "어이구. 그거 별 의미도 없어. 그 말만 믿고 시집 왔더니, 지금 엄마 꼴을 봐라. 어떤지."

   "그래도 둘이 안 싸우고 사이 좋았잖아."

   "네 앞에서나 안 싸웠지, 무슨……."

   "슬펐어?"

   "그럼."

   "말이라도 하지."

   "네가 곁을 주길 하니, 뭘 하니.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매 툴툴거리기나 하고. 넌 애기 때부터 그랬어."

   "참나. 내가 언제 툴툴거렸다고. 엄마가 답답하게 구니까 그렇지."

   "너도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길러 봐. 내가 상전을 모시고 살지, 상전을……."

   "엄마도 엄마 딸로 태어났어 봐. 머리가 터지고도 남을걸. 나니까 이 정도인 거야."

   "나이 먹을 수록 아주 지 아빠랑 똑같은 소리만 하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앨범의 마지막 장에 다다를 때까지 서로의 말꼬리나 물고 늘어졌다. 엄마는 사진 하나 하나를 볼 때마다 모습이 달라졌다. 사랑을 처음 배운 수줍은 소녀였다가,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아줌마였다가, 당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자였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한 아이의 엄마이자 홀로 남은 과부로. 지금의 엄마로 돌아왔다. 내 속이란 속은 다 터뜨려 놓은 바보 같은 엄마. 아직도 아빠가 돌아가신 그 시간 속에 사는 답답한 엄마. 몇 번이나 못된 말을 해도 사과부터 하고 보는 소심한 엄마. 꼴도 보기 싫을 만큼 미우면서도 정작 미워할 수는 없는 내 하나뿐인 엄마.


   "엄마."

   "응."

   "짜증내서 미안해."

   "엄마도 미안해."

   "엄마가 뭐가 미안해."

   "너 소풍 가는 날 도시락 한 번을 못 들려 보낸 게."

   "그래도 먹을 건 챙겨 줬잖아. 어디서 옆구리 터진 김밥 같은 걸 사다가는."

   "필요할 때 옆에 없었던 것도 미안해."

   "지금 있으면 됐어. 아빠 봐. 혼자 그렇게 가 버린 거."

   "그래서 네가 아무리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해도 그게 다 내 탓이구나 싶어."

   "아직 짜증낼 일 한참 남았으니까 긴장하셔."

   "진짜로 미워하는 건 아니지?"

   "몰라. 예전엔 그랬는데, 이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싱겁기는……."

   "엄마가 나 안 미워하면 나도 안 미워."

   "그래."

   "나도 엄마 따라서 꼭 5월에 결혼할 테니까, 꼭 와. 결혼 하고서도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봐."

   "그래야지."

 


5.

 그 새벽을 기점으로 나는 매주 본가에 올라와 엄마의 짐 정리를 도왔다. 얼토당토 않은 이유를 들먹이며 아빠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쟁여 놓으려는 통에 말다툼도 종종 했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집에 오는 게 싫지는 않았다. 엄마가 해 준 밥도 잘 먹으면서 그렇게 지냈다. 이런 생활을 3년 정도 계속 했을 즈음인가. 나는 엄마에게 말했던 것처럼 5월의 신부가 되었다. 


 엄마는 결혼식에 오지 못했다. 엄마가 살던 집을 비울 때가 오고 나서야 엄마가 보냈을 무수한 새벽들이 이해가 갔다. 상자 하나는 고사하고 그 안에 담긴 물건 하나에도 손을 못 대겠더라. 겨우 얻은 방 2개짜리 오피스텔에 그것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 해서든 처분은 해야겠고. 근데 마음처럼 되는 게 하나 없었다. 엄마가 즐겨 입던 다 헤진 니트를 품에 안고 동이 틀 때까지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그 많은 것들 중 내가 남길 수 있는 건 고작 사진첩 두 권이 고작이라는 게 원망스러웠다.


 요즘도 가끔 엄마와 함께 앨범을 뒤적이던 새벽을 떠올리며 홀로 책장을 넘기곤 한다. 엄마의 웨딩 사진 옆에다 나와 남편의 사진을 끼워 놓고 보니 어찌나 못나 보이던지. 5월의 신부니 뭐니.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저 우리 엄마가 고왔던 거구나. 아, 내가 너무 늦게 알아 버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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