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하면 되지 않습니까. 고발해서 형사 처벌받게 하고, 민사로 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지민이 흥분하며 분개해 말했다. 두 눈에 핏발이 선 것처럼 보였다. 말아 쥔 주먹이 당장이라도 그 검사를 찾아 멱살을 잡을 것처럼 보였다. 영재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알기로, 지민은 정의감 넘치는 열혈남 타입은 아니었다. 남의 일엔 무관심하고, 어떤 일이건 나서는 법도 없었다. 감정적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아서, 그 점이 오히려 변호사로서 강점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지민의 모습은 뭔지 모르겠다. 심하다 싶게 의뢰인에게 감정이 이입 돼 있었다. 이게 과연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 영재는 헷갈렸다.

 

“고발? 고발 좋지. 니 말대로 고발하고, 형사 처벌 받게 하고 민사로 가는 방법도 있지. 근데 그럼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3달 정도요?”

 

영재가 택도 없는 소리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영재의 인상이 저랬던가. 얇게 접힌 입술이 얄미울 정도로 비틀렸다. 영재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며 지민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파티션을 괜히 치웠다고. 목소리만 들리면 됐는데, 둘 사이를 가로막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피곤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못 해도 반년. 6개월은 걸릴 거야. 상대 쪽에서 불리하다 생각되면 더 질질 끌겠지. 그럼 1년이 걸릴 수도 있어.”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의뢰인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거야. 의뢰인이 왜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지 않고, 이쪽으로 왔겠느냔 말이지.”

 

아, 그렇구나. 그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다. 현직 검사의 성폭행 사건이다. 만약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스캔들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의뢰인의 신분이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일 거다. 의뢰인은 5살 딸을 양육하고 있는 평범한 30대 여성이었다. 절도를 한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검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가능한 조용히, 그리고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고 말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배님.”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처리 해야지. 또한 이 사건의 수임료는 20프로로 책정할 거야.”

 

“20프로요?”

 

20프로가 어쨌다는 건지. 지민은 그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도 모르겠다. 변호사 수임료에 관한 건, 전적으로 사무실의 재량에 달렸다. 마트처럼 가격표가 붙은 것도 아니고, 얼마를 받든, 얼마를 챙기든, 영재가 받고 싶은 만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영재는 이제껏 지민에게 수임료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정국의 사건을 처리할 때도 그랬다. 끝나고 문자로 얼마를 입금하라는 통지만 왔을 뿐이다. 사건을 처음 상담한 게, 지민이라서 얘기해주는 걸까. 새삼 수임료를 얘기하는 영재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보통 위자료가 나올만한 사건은 수임료를 10프로에서 15프로 받아. 이혼 소송이나, 민사 소송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런데요?”

 

“근데 이 사건은 20프로를 받겠다는 말이지. 왠지 알아?”

 

“아니요오?”

 

도대체 무슨 소리야? 김영재가 일을 너무 많이 했나 싶다. 과로로 정신이 나간 걸까. 지민은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하고 있는 영재에게 짜증이 났다.

 

“있는 대로 뜯어와 보려고. 이걸로 변호사 한 명 더 구할 수 있을 만큼.”

 

“선배님 마음대로 하세요.”

 

“되게 관심 없는 척이네?”

 

“척이 아니고, 관심 없는데요. 수임료는 선배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죠. 저랑 상관있습니까?”

 

영재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고 말했다.

 

“상관있지. 이건 니 사건이니까. 사무실이 갖는 수임료 중 1프로는 니가 가져가는 거야. 계약서 안 봤어?”

 

“아아- 그거요. 알죠.”

 

변호사들은 연봉 말고도, 사무실에 가는 수임료 중 일정 부분의 인센티브가 붙었다. 현재 대부분의 변호사 사무실이 그런 방식을 취했다. 이 방식은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장스 로펌이 도입했다. 장스 로펌은 어느 곳보다 까다로운 채용 과정을 거쳤지만, 어딜 가나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있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업계 1위인 로펌이,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사람을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안한 고육책이었다. 일을 많이 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간다는 단순한 논리였지만, 돈을 향한 사람들의 욕심은 끊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론 장스 로펌의 인센티브 정책은 대히트였다. 그렇지만 지민에겐 다른 나라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미 연봉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인센티브 건 뭐건 간에 지민은 이 의뢰를 맡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이래서 돈 많은 도련님들이란.”

 

“선배님, 선배님이 하실 소린 아니죠.”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일단 너는 내일 의뢰인한테 연락해서 그 검사가 누군지 알아봐.”

 

“알아봐서요?”

 

“알아봐서 뭐 하겠냐? 돈이 얼마나 있는 새낀지, 쪼아봐야지.”

 

지민이 입을 벌리고 영재를 쳐다봤다. 영재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윤기 탓이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윤기랑 너무 가까이 지내니까, 저런 저질스러운 말투도 입에 벤 거라고. 지민은 곧 고개를 흔들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선배님, 그게 할 소립니까?”

 

“못 할 말도 아닌데? 우리가 판검사도 아닌데, 그 새낄 어떻게 하겠냐. 조용히 빠르게 일을 해결하자면, 돈이 최고야.”

 

영재가 말하는 빠르고 조용한 방법은 바로 합의를 말하는 거였다. 합의는 재판이나 소송을 통하지 않고,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원만하게 조율하는 것을 말한다. 합의는 절차나 과정이 소송에 비해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또 당사자 간의 직접 조율로 비밀 유지에도 효과적이므로, 두루두루 널리 쓰이는 방법이었다. 영재가 제시한 방법은 현재로썬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걸, 지민도 안다. 의뢰인은 검사의 처벌을 원한다고 했지만, 동시에 조용히 일을 처리하길 원했다.

 

“선배님, 의뢰인이 그걸 원할까요?”

 

“그건 니가 설득하기 나름이지. 봐, 너도 벌써 납득했잖아. 그게 내가 널 설득했다는 소리 아니겠냐?”

 

으, 잘난 척하는 김영재는 재수 없다. 그렇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처음 영재와 의견을 나눌 때만 해도, 지민은 검사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뢰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여자이며,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였다. 검사의 처벌을 바라면서도, 경찰이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로 온 것에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아마 우리 쪽에서 먼저 제시하지 않아도, 내용 증명을 보내는 순간, 공이 수없이 붙은 숫자를 적어올 걸? 우린 얼마를 뜯어낼지 그 궁리만 하면 된단 말이지. 그러기 위해선 그 검사가 누군지 먼저 알아낼 필요가 있다 이거야.”

 

이런 영재는 낯설다. 나쁜 놈에게서 돈을 뜯는, 나쁜 놈 같은 발언이었다. 영재가 유연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영재가 검사를 처벌하는 쪽 대신, 합의를 말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영재는 유연하지만, 바른 사람이었다. 아쉬운 것 없는 사람답게, 길이 아닌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국의 일을 처리할 때도 그랬다. 정국에게 말하지 않으면, 가짜 위임장도 소용없을 줄 알라고 엄포를 놨던 영재다. 그런 영재가 이쪽 길이 아닌 것 같으면, 저쪽 길로도 갈 수 있다며 지민을 유혹했다. 달라질 건 없다고, 처벌 대신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그쪽이 의뢰인에게도 나은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영재의 말도 틀리지 않다. 아니,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쪽이 맞는 길이다. 하지만 지민은 저라면 돈보다 검사가 처벌 받는 쪽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쓰레기는 검사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그건 돈이 아쉽지 않고, 시간이 얼마 걸리든 상관없는 제 입장이고, 결정을 하는 건 의뢰인의 몫이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의뢰를 맡기러 온 사람들은 법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변호사를 찾아온다. 그러니 보통은 변호사의 권고대로 따르기 마련이었다. 영재의 말대로, 변호사가 어떻게 설득하냐에 따라 의뢰인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소리다. 어느 쪽으로 설득을 할 것인가. 지민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이었다. 지민의 선택에 따라, 의뢰인의 인생이 달라질 지도 모른다.

 

“선배님, 이런 사람을 그냥 놔둬도 되는 걸까요.”

 

“누가 그냥 놔둔대? 챙길 건 챙기고, 벌 줄 건, 벌 줘야지.”

 

“그게 말이 됩니까. 틀림없이 기밀 유지 각서를 요구할 텐데요.”

 

“뭐, 그거야 당연하지. 우리가 만약 이 얘기를 논의하고, 실행하면, 불법 공모가 된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러니까 넌 어떻게든 의뢰인을 설득하면 되는 거고, 벌 줄 방법은 각자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

 

와- 김영재, 지금은 진짜 악당 같았다고. 진로를 법대로 정한 것은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지민에겐 무엇 때문에 변호사를 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없었다. 그런 지민이 처음으로 의뢰인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뢰인의 마음이니까. 돈일까, 아니면 상대의 처벌일까. 또는 공개적인 사과나 망신 주기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의뢰인이 받았을 상처, 두려움, 분노 같은 것들을 삭혀줄 만 한 건, 과연 무엇일까. 지민은 자포자기를 말하던 의뢰인의 눈빛을 떠올려본다.

 

 

 

이 정도로 사무실이 잘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1년 동안 쌔빠지게 한 보람이 있었다. 줄을 선 의뢰는 영재 혼자서 감당하기 부족할 정도였다. 그런 시기에 마침 지민이 와줬고, 지민 덕에 의뢰를 욕심껏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지민은 들어올 때, 아빠의 방해가 있을 지도 모른다며 걱정했지만, 의뢰는 끊이지 않았고, 이제와선 지민도, 저도, 살인적인 업무량에 치여 죽게 생겼다. 매일이 야근이고, 매일이 중노동이었다.

 

[변호사 구함, 업무량 빡셈, 면접 빡셈, 모집인원 1명, 친분 관계 고려 안 함, 단, 페이는 섭섭지 않게 챙겨줌. 문의처: 김영재 변호사 사무실]

 

영재는 동기들과의 단톡방에 모집구인을 올렸다. 영재의 사무실은 형사 사건이 주를 이루고, 프로 보노의 건수도 다른 사무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프로 보노 건수가 많다는 것은, 각 변호사에게 돌아갈 인센티브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페이를 섭섭지 않게 챙겨주겠다는 것에는 그런 뜻도 담겨있었다. 단톡방에 구인을 올린 것은, 무엇보다 영재를 알고, 영재가 아는, 그리고 이왕이면 지민과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램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구인 공고를 내느니, 같은 학교 동기가 차라리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동기들과의 단톡방은 무려 5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친구와 동료 그 어디쯤에 적을 두고 있는 사이였다. 서로 장난을 치기도 했고, 심각한 말들이 오고가기도 했지만, 미우나 고우나 7년을 함께 한 사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수석은 아니라도, S대 로스쿨 졸업자들이다. 이들 중 하나가 와준다면, 영재에겐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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