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AU

* 리퀘박스에 들어왔던 오이히나아카를 썼습니다. 드라마를 같이 찍고 있고, 히나타는 후배라는 설정입니다! 리퀘 신청 감사합니다><

* 공미포 10200자






의외의 사실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있는 오이카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 그의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로 있는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이카와 때문에 나날이 늘어가는 주름만 해도 몇 개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정말이지, 싫다니까?”

 “싫으면 혼자 일하던지. 왜 아침부터 짜증이야.”


  드라마 촬영 중에 인터뷰가 있다는 말을 전하자마자 뒤틀어진 반응을 보였다. 촬영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꿍얼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불만을 표출했다. 한 때는 밥 먹는 것보다 자주 했던 인터뷰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를 일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는 오이카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그때였다.


  “오늘 치비쨩 촬영 없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알겠지.”

  “그렇지, 내가 알지. 오늘 치비쨩 촬영 없다고 했었어. 뭐 다른 스케줄이 잡혔다나―”


  그 말을 내뱉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한숨 때문에 대기실 바닥이 푹 꺼질 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차마 준비를 다한 오이카와에게 물리적인 힘을 가할 수는 없었던 이와이즈미가 심호흡을 했다. 말이 곱게 나가지 않겠지만, 욕이 덜 섞이지 않을까. 평정심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그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오이카와가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아카아시 군이랑 둘이서 해야 하잖아.”

  “…….”

  “그게 싫다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애랑 인터뷰라니. 죽어도 싫으니까 가서 일러둬. 따로 하자고.”


  저걸 지금 이유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황당하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한 마디로 아카아시와 둘이서 인터뷰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다는 건데, 여기서 오이카와가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건 오이카와도 마찬가지였다. 누군들 같이 하고 싶을까. 아마 아카아시도 썩 내키지는 않을 터였다.


  “너 그러다 기사 난다.”

  “나면 나야 좋지. 대체 누가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거야?”

  “글쎄다.”


  몇 달 전부터 오이카와와 아카아시를 둘러싼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죽고 못 살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배우로 데뷔했던 시기도 비슷했고, 여러 작품에서 많이 만났던 탓에 끈끈한 우정을 다녀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두 사람의 지인들은 혀를 끌끌 찰뿐이었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다고. 두 사람의 성격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어디서 그런 소문이 새어나온 것인지 의문을 가져볼 터였다. 취미 하나같지 않은 두 사람이 친해질 명분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이카와만 이런 반응이면 모난 성격 때문이라고 혀를 찼겠지만, 아카아시도 만만치 않았다. 오이카와를 향한 날선 반응에 이와이즈미 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정말로 누가 이상한 소문을 낸 걸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등 터지던 히나타가 몰래 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도 히나타가 사이에 껴 있으면 서로를 향하는 날선 신경전은 사라졌다.

  언제 대본을 손에 든 것인지 비교적 조용해진 오이카와를 쳐다봤다. 미간을 찌푸린 채 대본을 훑는 오이카와는 쿡 찌르면 대사를 줄줄 읊을 정도로 대본 숙지를 끝낸 상태였다. 물론 실수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신경을 다른 곳에 두고 싶어 하는 행동이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저렇게 중얼거리면서 할 필요가 있을까. 가만히 듣자하니 특정 인물을 향한 저주나 다름없었다. 사실 인터뷰 직전까지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그랬다가는 아카아시와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상태였다.


  “야, 오이카와.”

  “준비하래?”

  “그게 아니라 그 인터뷰…….”

  “따로 시켜줄 거 아니면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으면 하는데.”


  단호하게 떨어지는 말에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을 던지려다 꾹 참았다. 어떻게 된 게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걸까. 방송에서의 모습과 가장 다른 연예인을 꼽으라고 하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말하고 싶다.


  “아, 그러냐? 그럼 넌 혼자 하고.”


  대화할 생각이 든 것인지 대본을 쳐다보고 있던 두 눈이 이와이즈미를 향했다. 정말 그렇게 해줄 거냐는 눈빛에 의미모를 미소를 지었다.


  “진짜?”

  “그러라니까. 아카아시는 히나타랑 하면 되니까, 알아서 짜깁기 하겠지.”


  고개를 끄덕이던 오이카와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리 위에 올려뒀던 대본이 바닥을 뒹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쳤냐. 갑자기 왜 그래.”

  “방금 전에 히나타라고 했어? 그거 치비쨩이잖아.”


  오늘 다른 스케줄 때문에 촬영 스케줄을 바꾼 히나타를 왜 여기서 찾냐는 오이카와의 말이 이어졌다. 그 중간에 시간을 내서 온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나 보다. 황당하다는 얼굴로 오이카와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다 대답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혼자서 인터뷰하겠다며.”


  잠시 전화를 하러 나가는 건지, 휴대폰을 손에 쥔 이와이즈미가 뒤를 돌았다.


  “자, 잠깐, 잠시만!”

  “왜?”


  대기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이와이즈미를 다급하게 붙잡은 오이카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건만 당사자만 말을 번복하기 힘들어했다.


  “할 말 없으면 나갔다 올 테니까, 잠시 대기―”

  “나도 그 인터뷰 할게!”

  “그래, 혼자 한다며. 그거 말하러 나가잖아.”

  “아니! 치비쨩 있으면 같이 해도 좋으니까. 그리고 매니저가 수고할 일도 없고. 어때, 괜찮지?”


  애초에 오이카와만 인터뷰를 시킬 생각도 없었다. 만약 히나타가 인터뷰에 응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면, 이와이즈미가 먼저 인터뷰를 쳐냈을 거다. 거기까지 다 계산된 행동이었다. 자신이 한 수 굽히고 들어가겠다며 애써 선심 쓴 척 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오이카와였다.


* * *


  오늘의 마지막 신을 찍은 오이카와가 인사를 하며 세트장을 벗어났다. 한시가 바쁜 상황이었다. 인터뷰는 느긋한 마음으로 응해달라고 했지만, 지금 오이카와에게 인터뷰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

  촬영 도중에 세트장을 돌아다니던 히나타를 발견한 오이카와였다. 반가운 마음에 하마터면 엔지를 낼 뻔 했다. 한 번 이어지던 호흡이 끊어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탓에 간신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나저나 히나타는 어디로 간 걸까. 분명 10분 전까지만 해도 세트장 안에 들어와서 눈인사를 건넸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말고 제자리에 우뚝 선 오이카와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동안 히나타가 갔을 만한 곳을 생각하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건지. 인터뷰 때문에 잠깐 촬영장에 온 히나타가 있을 곳은 한 군데 뿐이다. 인터뷰가 진행될 장소. 하지만 걸음을 떼려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소를 들었던 기억이 없었던 나머지, 흘려들었던 자신을 탓하며 대기실로 향했다.


* * *


  한 편, 세트장에 조심스럽게 잠입했던 히나타는 아카아시의 손에 붙잡혀 온 상태였다. 물론 잠입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스태프들 사이에 섞여서 오이카와의 연기를 지켜보다 눈이 마주쳤으니까. 눈인사까지 했으니 지금쯤 자신이 온 것 정도는 알지 않을까 싶다.

  세트장에 들어간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게 아니었다. 보통은 세트장에서 인터뷰를 했기에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건만 오늘은 아니라는 말이 돌아왔다. 내일 있을 촬영 준비 때문에 폐를 끼칠 수 없어서 대기실에서 하게 되었다며, 아카아시가 자신의 대기실로 이끌었다.


  “히나타, 그럼 인터뷰만 하고 돌아가야 해?”

  “네……. 오늘 다른 촬영 없었으면 선배님들이랑 저녁 먹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히나타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휴대폰을 확인하는 히나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혹시라도 세팅된 머리가 흐트러질 수 있어서 허공에 머리를 쓰다듬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이 된 것인지, 조금 전과 달리 한결 밝아진 얼굴로 아카아시를 쳐다봤다. 그렇게나 좋을까. 밝은 표정의 히나타를 보며 마주 웃어주던 그때였다. 손뼉을 치며 벌떡 일어난 히나타가 소파로 향했다.


  “응? 이게 뭔데?”


  똑같은 쇼핑백 두 개를 든 히나타가 하나를 아카아시에게 건넸다. 묵직하기까지 해서 궁금증은 더욱 늘어만 갔다.


  “이거 팬들한테 받은 간식들인데, 선배님들 드린다고 가져왔어요!”

  “내가 받아도 되는 거야?”

  “그럼요― 선배님들도 저 많이 돌봐주고 계시니까, 받으셔도 되죠.”


  고맙다며 쇼핑백 안을 구경하던 아카아시가 네모난 상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옆에 앉은 히나타가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아카아시가 꺼낸 상자 안에는 갖가지의 수제 쿠키가 들어있었다. 정성이 가득한 탓에 맛도 좋다며, 엄지를 든 히나타가 칭찬을 늘어놨다. 그 옆에 볼록한 뚜껑의 용기를 꺼내자, 달콤한 과일이 들어있다는 말과 함께 아카아시의 팔을 붙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이건 빨리 드셔야 해요! 아직 날씨가 좀 더워서 상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 그럼 인터뷰 끝나고―”

  “에, 안돼요. 지금! 지금 꼭 드셔야 해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단호함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듣지 않고 넣을 정도로 매정하지 않았다. 과일이 담긴 용기 뚜껑을 열자,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나머지 상자들을 설명하는 히나타를 빤히 쳐다봤다.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마냥 입술을 달싹였다. 이어질 말을 기다리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하고 히나타가 먼저 입을 뗐다.


  “무슨 할 말 있으세요?”

  “히나타, 조건이 하나 있는데.”

  “……네?”


  조금 전에 두 사람이 나눈 말 중 조건이 붙을만한 것이 있나. 히나타를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매사에 신중한 아카아시였지만, 할 말을 두고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지는 않았다. 재촉하면 버릇없어 보일까. 궁금해서 더는 못 참겠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앞으로 아카아시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면 지금 이 과일 먹을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못 부를 것도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에 아카아시를 빤히 쳐다보던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아카아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읽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불가능할 것을 아니까.


  “좋아요! 케이지 선배님, 얼른 과일부터 드세요.”

  “‘님’도 빼고.”

  “엑, 그건―”

  “좋아. 방송에서는 괜찮지만, 우리끼리 만날 때는 ‘님’자도 빼야해.”


  정말 이유를 모르겠네. 뭐라 말을 하고 싶어도 연차가 10년 이상 났기에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시키지는 않을 테니 알겠다고 하자, 그제야 포크를 손에 들었다. 용기 속에 담긴 과일을 보던 아카아시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성이 대단했다. 히나타 앞으로 온 정성스러운 간식을 자신이 받아도 될지에 대한 의문이 재차 들었다.


  “케이지 선배, 안 드세요? 좀 있으면 인터뷰 시작할 시간인데!”

  “먹어야지. 그런데 히나타 너는?”


  예쁘게 잘라져 있는 딸기를 콕 찍은 아카아시가 히나타를 쳐다봤다. 사실 먹었다고 해도 먹여줄 생각이었다. 히나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입가에 갖다 대던 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


  “뭐야, 이 기분 나쁜 장면은?”


  한참 좋을 때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오이카와였다. 대기실 문을 벌컥 열고는 삐딱한 표정으로 아카아시를 쳐다봤다. 촬영을 빨리 끝낼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다. 대사가 꼬였으면 적어도 한 시간은 걸렸을 텐데 아쉽다며 혀를 찼다.


  “그리고 치비쨩, 세트장에 있다가 어디 가버린 건데?”

  “아, 아카…아니지, 케이지 선배랑 대기실에 와 있었어요!”


  ……케이지 선배?


  아카아시를 부르는 히나타의 호칭에 오이카와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촬영을 하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몰라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화기애애한 저 분위기를 깨트리고 싶다는 것. 문을 세게 닫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선 오이카와가 히나타의 곁에 가서 앉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카아시와 히나타 사이를 파고들었다. 오이카와의 그런 행동에 히나타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옆으로 옮겨 앉았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오이카와와는 달리 아카아시의 표정은 구겨진 종이와도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분위기가 오이카와의 등장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꼭 둘 사이를 파고들어야 했나. 떨떠름하게 쳐다보자 시선을 느낀 오이카와가 코웃음을 쳤다.


  “치비쨩, 나는? 나는 토오루라고 안 불러줘?”

  “불러드릴게요! 일단 그것보다 이거 드셔야 해요.”

  “응? 우와, 이게 다 뭐야. 치비쨩이 날 위해서 준비한 거?”


  아카아시와 마찬가지로 쇼핑백을 받아든 오이카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딱히 오이카와만을 위해서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네! 사실 팬들한테 받은 건데 선배님들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응, 그렇구나. 고마워, 잘 먹을게! 그래서 지금 먹어야하는 게 뭘까―”


  쇼핑백에 있는 상자와 용기들을 전부 꺼내서 쭉 훑었다. 히나타가 옆에서 알려주려고 했지만 필요가 없었다. 과일이 담긴 용기 하나를 제외하고 전부 쇼핑백에 넣고는 뚜껑을 열며 물었다.


  “그래서 넌 좀 먹었어? 많이 먹어야 쑥쑥 자라지. 물론 지금도 충분히 귀엽지만.”


  이어지는 오이카와의 말에 어설프게 웃던 히나타의 얼굴에 고민이 스쳤다.


  “아, 저는 지금 좀…….”


  뒷머리를 매만지며 대답을 피하는 모습에 혀를 찼다. 기껏 세팅해둔 머리를 망가뜨리면 어떡해. 히나타의 손을 잡아챈 오이카와가 빤히 쳐다봤다. 혹시 다이어트 중인 거냐고 묻자,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여온다. 그런 히나타의 반응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카아시도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도 빼빼 말라서 잔뜩 먹여야 할 판에 무슨 살을 더 빼라고 하는 걸까. 소파에 기댄 채 황당하다는 얼굴로 히나타를 바라봤다.


  “그렇구나. 일단 파인애플부터 먹을래?”

  “엑, 안돼요. 저 먹으면 진짜 혼나요!”

  “흠, 그렇겠지. 근데 여기 매니저 없잖아.”


  괜찮으니까 먹어보라며 파인애플을 콕 찍은 포크를 내밀었다. 그에 히나타가 고개를 뒤로 빼며 울상을 지었다. 저걸 먹으면 저녁에 먹을 수 있는 샐러드도 양이 줄어들 게 뻔했다. 계속해서 저항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오이카와가 말했다.


  “좋아. 만약 들키면 내가 먹였다고 해. 선배님이 먹으라고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먹은 거라고. 됐지?”

  “에.”

  “자, 그럼 얼른 아― 해.”


  정말 안 되는데……. 울상을 지으면서도 오이카와가 얼마나 집요한지 아는 탓에 입을 벌렸다. 입에 들어온 파인애플을 우물거리며 먹던 히나타의 두 눈에 별빛이 스친 것 같다. 그렇게 용기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부지런히 히나타에게 과일을 먹이며 뿌듯함을 느끼는 오이카와였다.


* * *


  오이카와가 먹여준 과일로 배를 채운 히나타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과일을 싹 다 비우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시작된 인터뷰였다. 이 드라마를 시작한 뒤로 두 번의 인터뷰를 했지만, 이번에 하게 된 인터뷰는 조금 더 뜻 깊었다.


  “계속해서 자체 시청률을 갱신하고 있는데, 시청률 공약 같은 거 없으실까요?”


  사실 히나타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청률이었기에, 그저 두 사람 사이에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미즈의 장난스러운 농담에도 웃기만 하며 받아칠 생각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시청률 공약을 한 방송이나 기사를 접할 때면 ‘나도 저런 날이 올까’하는 생각에 잠기고는 했었다. 그래서 사실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흥행과 이슈가 보장된 두 배우와 신인 배우의 조합도 나름 신선했지만, 더 중요한 건 드라마 전개였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여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드라마는 청춘들의 대학 생활을 그려냈다. 거기까지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는 여자 주인공이 없었다. 주연은 세 명이 전부였다. 물론 조연들 중 여자가 있어도 그들은 분량이 많지 않았다.

  학교 후배인 히나타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일을 그려내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히나타의 파트너가 오이카와와 아카아시 중 누가 될지 정하는 게 또 다른 묘미였다. 마지막 회 방송 전에는 온라인 투표도 받을 예정이었다. 드라마 종영 후 맞힌 시청자 중 추첨을 통해 큰 선물까지 안겨주는 탓에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음, 지금 저희가 14퍼센트 정도 되니까, 20퍼센트 되면 뭐 하나 할게요.”

  “예를 들면 어떤 걸 하실 생각이세요?”


  두루뭉술한 아카아시의 말에 시미즈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했다. 그에 여전히 넋을 놓고 있는 히나타를 관찰하던 오이카와가 웃으며 입을 뗐다.


  “히나타 군이랑 다정한 사진을 찍어서 올릴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그건 20퍼센트 달성했을 때 확인해주세요! 그치?”

  “네, 네! 달성했을 때! 근데 뭘 하는 거예요?”


  멍한 물음에 인터뷰가 진행되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 이 상황이 익숙지 않은 히나타의 멍한 표정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혀를 차면서도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여온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었던 탓이 컸다.


  -


  30분 째 이어지던 인터뷰는 어느덧 끝을 향하고 있었다.


  “이건 마지막 질문인데요. 히나타 군에게 물을게요.”

  “네!”

  “지금 드라마 중반 쯤 왔는데, 자신의 파트너가 누구인지 들은 거 있으신가요?”

  “아, 파트너요…….”


  어딜 가나 이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제 회사를 가도 직원들이 귀띔 좀 해달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히나타는 울상을 지었다. 본인도 몰랐으니까. 드라마 장르가 추리물은 아니었지만, 내용 관계상 어쩌다 보니 추리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매회 받는 대본으로 추측을 해야 한다며 기대에 못 미치는 대답을 내놓았다.


  “음, 그럼 두 사람 중 누가 파트너일 것 같으세요?”

  “어, 저, 저는, 두 분 다 좋아서―”

  “그런 형식적인 대답은 편집하는 걸로 할게요. 편하게 말해주시면 된답니다.”


  짓궂은 시미즈의 물음에 히나타가 울상을 지었다. 전혀 편할 리가 없다. 이곳에서 햇병아리와도 같은 존재인 자신이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침을 꼴깍 삼키며 두 사람을 번갈아보던 히나타의 어깨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전 정말 두 분 다 좋아서…….”


  우물쭈물 거리는 히나타를 조금 더 괴롭혀보려고 질문을 생각하던 그때였다. 히나타의 허벅지 위에 손을 얹은 오이카와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여성분들은 츤데레인 토오루를 더 원하지 않으실까요? 다들 귀엽다고 말씀해주셨고, 다정하기도 하니까. 그치?”


  무언의 압박을 가하듯 히나타에게 되묻는 모습에 아카아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답하지 않으면 비품실에 데리고 가서 혼내기라도 할 표정이었다. 그런 오이카와를 향해 혀를 차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아카아시가 입을 뗐다.


  “오이카와 씨가 뭘 모르시네요. 요즘 트렌드는 순정남이죠. 그러니까 제가 파트너로 적합하지 않을까요?”


  히나타를 힐끔 쳐다보고는 오이카와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껴서 곤란해 하던 히나타는 지금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사전에 알려줬던 질문과는 별개의 질문들이 섞여 있었던 것도 고된 지금, 신경전에서 이겨낼 자신이 없다.

  이쯤 되면 시미즈가 상황 정리를 해줄 법도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볼 생각이었다. 어찌된 게 사이좋다고 소문이 나 있던 오이카와와 아카아시를 가까이서 지켜보다보니 의문이 들었다. 물론 사이좋은 사람들 사이에도 신경전은 있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애써 포장된 관계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껴서 힘들어 하는 히나타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히나타 군, 이제 그만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시미즈의 말에 히나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상체를 흔들다 말고 내뱉은 한 마디에 전부 못 말린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작가 선생님, 그냥 파트너 없이 끝내주시면 안될까요?”


  인터뷰를 진행했던 30분 동안 이토록 진심이 가득한 말은 처음이었다.




소뇨 / 히나른 연성&썰 / 트위터 @sogno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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