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건 딱 질색. 여긴 연중 햇살 좋지, 바람 따뜻하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굴에 뒤덮여 있던 책을 들어낸 소녀는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멀리 내다보니 파도에 신나게 몸을 내던지고 있는 동양인 남자애의 모습이 보였다. 와... 더는 못 기다려주겠다.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늘 가는 카페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당연하단 듯이 정해진 테라스로 향했고, 거기서도 바다는 충분히 보였다.



"우유?"

"아 놔... 나 애 아니라니까."



장난스럽게 웃으며 우유를 건네는 종업원을 보고, 늘 하는 장난처럼 커피포트를 빼앗아 커피를 또로록 담았다. 커피가 담기며 회오리치는 잔은 곧 색을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먹는 메뉴가 미리 주문서에 적혀있었고, 소녀는 그 우유잔을 턱을 괴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태어나서부터 줄곧이었다. 저기 저 높은 파도에 빠지는 게 뭐가 신난나고 맨날 서핑에 살을 까맣게 태우는 녀석이 미국에 온 지는 3년쯤 됐고.


같은 남매이긴 하나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생각을... 하긴 하나?


빨대를 휘휘 저어 나름 커피우유를 만들고는 쭈욱 들이켰다. 음, 이거 오늘 커피 향이 뭔가 더 좋은데?



"더 줄까?"



새로운 잔에 커피를 담으려 하길래, 우유잔을 냉큼 내밀었다.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웃으며 잔에 커피를 따랐고, 우유의 색은 더 진해졌다.



"한국인이에요?"



소녀의 물음에 그녀는 어색한 미소로 답을 대신하고 음식을 앞에 놓아두었다. 그러자 소녀는 더 묻지 않겠다는 의미로 웃었다.


아... 그나저나 이 눔의 쉬키는 언제까지 파도에 자빠지고 있을 셈이야. 배도 안 고프냐! 이렇게 강렬하게 째려보는데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아마 해 떨어지기 전에는 안 올 셈이다.


뭣이 어쩌고 어째? 하루에 한 끼는 같이 밥을 먹어?! 까불고 있네!




대충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잊어버린 거."

"아, 고마워요."



아까 얼굴에 덮고 있던 책이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어쩐지 묻지도 않았던 이야기가 먼저 들리기 시작했다.



"스텔라야... 내 이름."



물론 알고 있었다. 허리춤에 걸린 이름표를 봤으니까.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하고도 어쩐지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달이에요, 김 달."



달이 고맙다는 표시로 손에 든 책을 흔들며 다시 뒤돌아서 사라졌다. 소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 동생도 지금 딱 저만큼 컸을 것 같다고.






* Stella /스텔라 -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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