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비가 온대 그날처럼 - 정세운





아네모네

11화









유 회장의 샷이 페어웨이에 떨어졌다. 공이 굴러 정착한 곳은 홀의 목전이었다. 목적지에 아깝게 가닿지 못한 지점을 새벽 찬 서리 같은 눈으로 내다보던 유 회장이 캐디에게 미들 아이언을 건넸다. 일흔 세 번째의 샷이었다.

 

“최저점이 좀 왼쪽으로 처진 것 같네.”

“예, 회장님. 발목 자세가 평소랑 조금 다르십니다.”

“바람 때문이라던가, 잔디 컨디션이라던가… 빈말이라도 듣기 좋은 소리는 안 하는군.”

“라운딩에 있어서 모든 요소가 늘 빠짐없이 같을 순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결과에는 항상 편차가 없어야 한다는 건가. 그러려면 원인을 직시 해야 한다?”

“맞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없어지면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나야 말로 빈말이 아니야. 이 다음의 퍼팅지점으로 걸어가며 유 회장의 웃음에 연기 같은 입김이 퍼졌다. 젖은 잔디 사이에 처박힌 공 앞에서 유 회장이 자세를 잡았다. 신경써서 발목을 안쪽으로 모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골프공이 제법 안정적인 포물선을 그리며 홀 안으로 안착했다. 유 회장은 이제야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태경은 새벽공기에 질린 얼굴을 하고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이만하지. 유 회장이 가까워져오는 태경을 보며 일렀다. 골프가방을 챙겨 캐디가 가지런히 인사했다. 먼저 올라가 카트를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캐디가 뒤돌아 이내 태경에게도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유 회장이 몸을 숙여 홀 안의 공을 주워들었다. 고개를 들었을 땐 태경이 앞에 와있었다. 며칠사이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다. 유 회장의 새벽 라운딩도 이제 끝물인 걸 알아서 어지간히 조급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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