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문단순적소미호’를 모티브로 썼지만, 제가 보고 싶었던 것들이 짬뽕되어 있어요.

 

 


 

“김명수, 좋아해!”

 

성열의 밝은 목소리가 뭉게뭉게 울려 퍼졌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얼굴로 눈을 똘망거리며 뜬 성열이 환하게 웃어보였다. 잇몸이 다 보일 정도로 해맑게 웃은 성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명수가 고개를 돌렸다.

 

“집이나 들어가.”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명수에게 차이는 건 아마……. 슬프니까 몇 번째인지 세지 말기로 했다.

 

 

  성열은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다. 알람은 오 분 단위로 네 개 정도를 맞춰 놓는데 항상 마지막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눈을 다 뜨지 못한 체 힘없는 칫솔질을 한 성열은 대충 머리를 정리하고 집을 기어 나왔다. 아직 7시 반이 겨우 넘은 해가 겨우 다 뜬 시간이었고, 8시 반까지 가는 등교 시간과는 아직 한참이나 남은 시간이었다.

 

“………”

 

아마 원래의 성열이라면 등교 시간과 맞춰 간당간당하게 집을 나왔겠지만 그 잠을 뿌리치고 이렇게 일찍 나온 이유는, 사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유였다. 누가 들으면 대체 왜 그렇게 까지 하는 거냐고 묻겠지만 성열에게는 작은 행복이랄까.

 

“안녕!”

“…어.”

 

그 작은 행복은, 이 시간에 나오고 이 골목길을 지나면 만나는 명수 때문이었다. 푸히히. 성열은 이 시간에 나오면 항상 보는 명수가 분명 어제 봤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보는 것 마냥 좋았다. 아침부터 잘생겼어. 진짜 너무 잘생겼다.

 

  등교 시간이 가까워지자 교실에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성열은 명수와 같이 등교를 하기 위해 포기한 몇 십 분의 잠을 학교에서 자다 대호의 부름에 겨우 일어났다. 얘는 맨날 학교에 일찍 와서 처 자, 집에서 자고 와. 그런 말들은 언제나 듣는 소리라 오늘도 흘려들은 성열은 눈을 뜨자마자 명수를 찾았다. 정말 신은 나를 돕는 건지, 내 옆자리에 명수를 앉혀주셨다. 우린 운명이 아닐까?

 

“밥 먹었냐?”

“아니. 명수야! 넌 아침 먹었어?”

 

아침, 맞아 아침! 명수도 안 먹었을 텐데. 성열은 대호의 물음에 명수의 아침이 걱정돼 명수 쪽으로 몸까지 돌려 물어보았다. 야, 내가 물어봤거든. 대호는 성열을 툭 쳤지만 항상 일어나는 일이라 익숙해 성열과 같이 명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숙제를 하고 있던 건지 뭔가를 집중해서 하고 있던 명수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옆을 보았다가 눈을 티 나게 껌뻑이더니 다시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안 먹었어.”

“매점 갈까?”

“아니. 배 별로 안 고파.”

 

아휴. 명수와 매점 갈 기회를 놓친 성열은 정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의 첫 시작이 그 누구보다 밝아질 수 있었는데. 성열이 책상 위에 볼을 대고 엎드려 명수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설레도 되는 건가? 아아, 명수는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 정말로.

 

 

  성열은 명수를 오래 좋아했지만, 연애편지를 받는 명수는 적응되지 않았다. 볼 때마다 짜증나고 불안했다. 쟤는 또 왜 저렇게 예뻐서. 성열은 물을 뜨러 가다 우연히 본, 연애편지를 손에 쥐고 오는 명수를 보고 기분이 안 좋아졌다. 하아. 명수는 왜 이렇게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인기가 많은 건지.

 

“오-, 또 받았냐?”

 

대호는 그걸 또 언제 본 건지 명수의 연애편지를 성열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자기도 모르게 뚱한 표정이 나온 건지 대호는 성열에게 얼굴 좀 피라며 이야기를 했지만 성열의 얼굴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아니, 어떻게 좋아지겠어. 명수가 덜컥 연애편지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애인을 만들어버리면 난 어떡하지.

 

“편지 받으면 좋냐?”

“…고맙지.”

 

새끼, 재미없긴. 아, 나도 연애나 해보면 좋겠다아. 대호는 성열의 등에 엎어져 그치, 열아? 하며 성열에게 물었지만 지금 성열은 어떤 말도 귀에 들리는 거 같지 않았다. 성열은 명수가 연애편지를 받으면 고맙다는 그 말이 제대로 머리에 꽂혔다. 아, 나는 왜 편지를 쓸 생각을 못 했을까? 아니, 너무 구식인가. 그래도 명수가 좋다잖아.

 

“쓰지 마.”

“어?”

“…편지 쓰지 말라고.”

 

그리고 명수는 이미 성열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성열이 좋아하는 반찬은, 예를 들어 닭고기, 아니면 닭고기였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 나오긴 하지만 매 달 처음이 되면 가정통신문처럼 나눠주는 식단표는 성열이 매일 보는 것들 중 하나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에 노란 형광펜까지 쳐놓는데, 오늘은 노란 형광펜뿐 만 아니라 빨간 별이 세 개나 들어간 반찬이었다.

 

“야, 이거 먹어.”

 

자신이 좋아하는 게 아니면 거의 먹지 않는 성열이라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은 흔하지 않았다. 대호도 물론 그걸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성열의 급식판 위에 올려주었다. 대호 대호! 내 사랑 대호!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성열은 대호에게 애교까지 부리며 윙크를 날려주었다. 기분이 좋다는 뜻이었다.

 

“………”

 

그 중 웃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명수뿐이었다. 사실 명수는 성열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았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티내는 게 어색한 명수라 오랜 시간 성열과 이런 관계를 유지해왔다. 물론 정확히 하지 않는 자신이 나쁘다는 건 알았지만, 알긴 했지만 어려웠다. 자신의 마음을 성열에게 표현하는 게 정말 맞는 일일까 싶기도 했고.

 

“나 먼저 일어난다.”

 

그래서 성열이 이렇게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질투할 자격이 없는 것도 다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였다. 명수는 급식실을 들어오기 전, 오늘 성열이 좋아하는 게 나오는 걸 알고 일부러 먹지도 않고 있었다. 안 먹으면 혹시 이거 안 좋아하냐고 물어볼 거 같았고, 그러면 자신은 자연스럽게 주면 되는 것이었으니.

 

“왜왜, 입맛 없어?”

“어.”

“이거 다 버려?”

“응.”

“나 주면 안 돼? 하나도 안 건드리지 않았어?”

 

너 주려고 했으니까. 명수는 속으로 잠시 생각하다, 대호에게 성열이 애교를 부렸던 게 갑자기 떠올라 괜한 짜증을 냈다.

 

“안 돼.”

 

  그리고 성열은 얼마나 먹은 건진 몰라도 배탈이 났다. 대체 왜 이렇게 무식하게 먹은 건데? 명수는 걱정을 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말이 예쁘게 나가지 않았다. 원래 이 정도로 찌질 했었나 싶을 정도로 구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성열은 결국 보건실을 갔고 한 시간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는 성열에 걱정이 더 되기 시작했다.

 

“그냥 찾아가 보지 그러냐.”

“………”

“성열이 걱정돼서 계속 기분 안 좋은 거 아님? 너 지금 세상 우울함을 혼자 다 가지고 있는 얼굴이야.”

 

그렇게 티가 났다고?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을 한 명수가 대호를 바라보았고 대호는 응, 너 지금 그래. 하는 얼굴로 명수를 마주했다.

 

“그냥 둘이 사귀지 그래.”

“뭐? 뭔 소리야.”

“너도 좋아하고, 이성열은 누가 봐도 너 좋아하는데 왜 둘이 안 사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난.”

 

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숙제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프다고 하고 야자 빼, 성열이랑 같이. 네가 뺀다고 하면 담임은 오케이 할 걸. 이건 대호 나름 둘을 도와준다고 하는 말이었다. 명수는 너무너무, 정말 심각할 정도로 표현을 할 줄 몰라서 보는 대호의 속이 뻥 터져버릴 정도였다. 대호가 본 것만 해도 벌써 몇 년인데 그 전부터 성열이 이러던 거 같으니…. 대호는 성열이 명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손가락으로 세어보다가 한 손을 넘어가는 걸 보고 질렸다는 얼굴로 더 이상 세는 것을 포기했다.

 

 

  대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담임은 명수의 말 한 마디에, 사실 명수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빼준 거였지만, 야자를 흔쾌히 빼주었다. 성열이 이야기를 하려는데 꼭 누군가 돕는 것 마냥 먼저 성열이한테도 야자 하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전하라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명수는 성열의 가방을 들고 보건실 앞에 서 있은 지 십 분 정도 지났다. 왜 이렇게 들어가는 게 어렵지.

 

“어! 명수야!”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성열이 문을 열고 나왔다. 한 눈에 봐도 아픈 게 다 나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쌩쌩해진 성열에게 명수는 들고 있던 가방을 건넸다. 무거워. 성열은 뭐가 좋은지 또 실실 웃으며 가방을 건네받았다.

 

“야자 안 해?”

“너 아프니까 오늘 빼래.”

“너는?”

“…나도 뺏어.”

 

진짜? 왜? 어디 아파? 성열은 종일 자기가 아파서 방금 보건실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잊은 건지 한껏 걱정하는 얼굴로 명수를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열은 안 나는데. 배가 아파? 내 배탈 옮은 거 아냐?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며.

 

“안 아파.”

“그럼 왜 빠져?”

“집에 안 갈 거야?”

 

아니 아니! 성열은 단순해서, 같이 간다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금세 환하게 웃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거리는 생각보다 조금 멀었다. 성열은 어느새 지친 건지 조잘거리던 걸 멈추고 터덜터덜 걸었다. 그래도 오늘 아픈 게 거짓은 아닌 건지 기운도 없어보였다. 명수는 걱정되는 마음에 집을 오는 내내 성열을 살피다가 집에 거의 다 와가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빨리 집에 들어가서 성열이 약이라도 챙겨 먹었으면 해서였다.

 

“얼른 들어가.”

“으응. 너도 조심히 들어가.”

“어, 빨리 가.”

“응. 명수야 오늘도 좋아해.”

 

성열이 피곤한지 눈을 감는 속도가 느려졌다. 명수는 그런 성열을 가만 쳐다보다 조금 많이 용기를 내기로 했다.

 

“어, 나도.”

“응?”

“못 들었으면 말고.”

 

들어가서 약이나 먹어. 대체 이성열은 어떻게 이런 말을 매번 했던 건지, 명수는 민망함에 얼굴이 다 빨개지는 거 같았다. 들어가라며 성열을 집으로 밀어 넣었고 명수는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며 열이 나는 것만 같은 얼굴에 부채질을 하다 다시 나오는 성열에 깜짝 놀라 침을 꿀떡 넘겼다.

 

“명수야! 나도!”

“………”

“내가 더 좋아해!”

 

진짜 저 바보…. 명수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나와 명수의 손을 붙잡더니 명수야 우리 그럼 연애해? 응? 그거 해? 하며 말을 하는 데 그게 또 어찌나 귀여운 지.

 

“어, 그거 해.”

 

성열의 몇 번째 고백 끝에 결국 이루어졌다. 성열은 믿는 신은 없었지만 그날 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등등 많은 신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아, 감사합니다!

 

 

  성열의 알람은 두 개로 줄어들었다. 그건 명수가 성열을 맞춰 주기도 했고, 명수가 평소보다 늦게 나온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명수의 배려 덕에 아침을 조금 더 잔 성열이 평소보다 개운하게 학교를 왔다. 아침 햇살이 꼭 나를 반겨주는 거 같아.

 

“대호야,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아? 새들도 노래를 불러주는 거 같아. 내 행복을 위한 노래.”

 

대호는 드디어 성열이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행복한지 물어봐 주기로 했다. 이건 대호의 많은 배려였다.

 

“좋은 일 있냐?”

“역시 티가 나지?!”

 

나 어제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선물을 받았어. 모두들 나의 행복을 기원해주러 여기까지 오는 거야. 새들아, 개미들아. 그래, 바람도 내게 말을 해. 축하한다고. 대호는 정말 창피해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명수와의 연애는,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저렇게 잘생긴 명수가, 저렇게 인기 많은 명수가, 아니 그냥 명수가 내 애인이라니! 성열은 당장 어딘가로 올라가서 크게 외치고 싶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제가 명수랑 사귄 대요!

 

“열아.”

 

명수가 성열을 부르는 애칭도 생겼다. 사실 명수는 열이라고 부르는 게 입에 더 달라붙어서 하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성열이 기분 좋아보여서 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수업 시간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웅? 하고 명수를 바라본 성열이 명수의 입 모양을 보고 펑, 하고 얼굴이 터져버릴 거 같아 고개를 푹 숙였다.

 

‘뽀뽀하고 싶어.’

 

신님, 저는 어떻게 하죠? 행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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