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창작된 이야기입니다. 사실과 다른 얘기가 있으니 감안해주세요.


입김이 나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꽃들이 얼굴을 내밀 준비를 할 때, 평상시와 다름없는 저잣거리는 누가봐도 평범한, 그런 곳이었다.

빛바랜 하얀색과 초록색, 두 색의 옷들이 공존하는 공간에 검정색의 깔끔한 양복을 입은 한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조끼와 자켓, 광을 낸 구두를 신어 다른 사람들과 달라 눈에띄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티는 안냈지만, 공간과 이질적인 모습을 한 사내의 모습을 흘겨보고 있었다. 초록색의 사람들도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대며 서서히 몸에 긴장을 주었다.

사내는 그런 묘한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듯, 이런저런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보였는지,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흥정을 시도했다.

“이야, 이거 좋아 보이는걸!”

“그럼요. 날마다 들어오는 게 아닌걸요!”

“허 참, 이런 상술에 넘어가는 내가 아닌데, 오늘따라 왜이러는지.”

“아이고. 나으리, 변심을 하는 김에 이것도 보시죠.”

상인이 꺼낸 작은 상자엔 고이 접혀 있는 천이 있었다. 나무로 만든 투박한 상자였지만, 자주 관리하는 게 보이는 깔끔한 상태였다.

“호오, 이것도 참 좋아 보이는구려. 마치 잃어버린 나의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걸.”

“암요. 아주 귀한 겁니다. 제가 직접 매일 관리한답니다.”

“좋아. 둘 다 사겠네.”

“감사합니다!”

결국 사내는 구매를 결심했는지, 값을 지불하기 위해 자켓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듯했다. 상인은 사내가 고른 물건들을 포장하기 위해 등을 돌렸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상인의 눈빛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얘기를 전달했다.

사내가 자켓 안주머니에서 값을 꺼내는 순간…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사내가 안주머니에서 물건의 값을 꺼내들고 외쳤다. 상인도 상자에서 급하게 물건을 꺼내며 목청이 나가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사내의 선창으로 이어진 말은 물건의 값이 아니었다. 상인의 눈빛을 받은 또 다른 사람은 천을 나눠주며 자신도 같은 말을 외쳤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거리의 사람들은 저 멀리 앞에 보이는 높은 건물들을 향해 돌진하며 하나의 말을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사내가 들어온 순간부터 긴장감을 조성하던 초록색의 사람들, 우리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허리춤에서 꺼내든 무기를 들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쓰러지는 사람들, 돌진하는 사람들,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흙먼지가 날려 뿌옇게 변한 하늘이 울부짖었다. 쓰러진 이들이 마지막으로 보던 것은 붉고 하늘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장면이었다.

하나둘 쓰러져가는 사람들에 인파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났다. 저마다의 손에 같은 문양의 천을 쥐고 모두 하나의 염원을 가진 그들은 반복된 말을 외치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역행하는 사람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왜 하필 오늘이냐고.”

자신의 짐을 챙겨 급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녀는 자신이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판매가 부진해 오늘은 몇푼 쥐어보고자 아침 일찍부터 거리로 나온 참이었다.

그러나 판매는커녕 자신의 귀한 물건들을 지키기 바빴다. 밤새 고심해서 만들어온 물건들은 그녀의 노력이 묻어나와 소중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생계를 이어나가게 해줄 동아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독립이니 뭐니, 그녀는 상관이 없었다. 당장 오늘 끼니를 해결하기도 힘들고, 집에는 난방을 때우기도 힘들어 추위에 떨며 잠에 들어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는 평소보다 빨리 자신의 집 앞에 다다랐다. 그곳도 저잣거리와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흥분에 겨워 집밖으로 나왔으며 그녀가 듣기에는 시끄러운 소리를 발생시킬 뿐이었다.

“이해가 안되네.”

“뭐가?”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그녀의 혼잣말에 물음을 표한 것은 성별을 구분하기 힘든 외양의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일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머리색과 눈 색을 소유한 자였지만 그녀는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누, 누구셔요?”

“그건 됐고. 뭐가 이해가 안가는데?”

자신을 설명해주지 않고 자신의 궁금증만을 물어보는 자에게는 홀리는 듯한 재주가 있었다. 신경쓰이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녀는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난 독립보다는 오늘 저녁이 걱정되는 사람이라서……. 그런거 해봤자 끌려가서 죽기만 하지 우선 살아남는게 중한거 아니것어요?”

“흐음.”

“얘기 들어보니까 험한 꼴 많이 당하던데 그럴 바에야 적당히 하고 살아가믄, 언젠가는 나아지것죠.”

“그으래?”

“네?”

“넌 지금도 나쁘지 않다는 거야?”

“아니 그런게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다 보니까 결과가 뻔한 길보다야 조금 자존심 상하지만 우선 살고 보자는 거지요.”

“그렇구나.”

정체불명의 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했다.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가 싶더니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였다.

“어디보자…….”

그러면서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이며 눈을 굴렸다. 그 속도가 빨라서 그녀는 그가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넌 살아남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네?”

발바닥에서 느껴지던 감각이 없어지며 몸이 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전에 동생을 위해 약초를 구하려 절벽 중간에 있는 지점으로 떨어질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틀리지 않았던 것처럼,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처음 보는 곳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들리는지, 멀리서 외치는지 아까 그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꼭 살아남아야 해.’

“정신 차려, 그렌.”

1919년 3월 1일의 최수진은, 그렌이 되어있었다.

헨레 아니고 헨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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