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단+로우 논컾

*선원 A 3인칭 시점(=모브 시점)

*시간대는 펑크 해저드에 가기 전으로 설정

*후반부 '원피스 노벨 로' 약스포 존재.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를 지향



*** 

변화무쌍한 날씨, 사황의 치열한 영토 분쟁,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온갖 자연 현상이 도사리는 섬들이 난무하는 그랜드 라인 후반, 신세계.

매해 수십의 루키가 그 바다로 들어섰다가 또, 맥 없이 죽어버리는 곳.

2년 전, 세계 정부로부터 ‘초신성’이라고 불렸고, 현재는 새로운 사황인 ‘검은 수염’을 포함해 ‘최악의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

그중 하나이자 신세대 칠무해로써 악명을 날리는 죽음의 외과의, 트라팔가 로우는 바다의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잠수함을 모선으로 삼아 해저에서 드문 불출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특히 영토 분쟁이 심하고, 어떤 섬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신세계에서는 해면에 모습을 드러내길 꺼리기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쟘발 영입 직전에 입단한 선원 A가 이유를 묻자, 그는 유명세나 힘의 과시 같은 시시콜콜한 것보다 해적단의 안전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자신은 이유도 없이 불안정하고 위험하며 무모한 모험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신세계에서도 바꾸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이다.

역시나 선장. 이런 점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세간에서는 수술수술 열매 능력으로 사람을 댕강댕강 자른 사지를 남의 몸에 붙이거나, 심장을 뽑아내 수집하는 등의 기행으로 무시무시한 해적 취급을 당하지만, 선원 A를 포함한 하트 해적단 전원은 그들의 선장이 얼마나 멋지고 다정한지 알고 있었다.

선장을 욕하는 멍청한 사람들은 의사이기에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린 채로 몸을 조각내려는 선장의 노력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살아 있으면 남의 몸이라도 어떻게든 적응하기 마련이다. 팔이 있을 부분에 손이 있고 발이 있을 부분에 팔이 있어도 살아있는 이상, 언젠가 팔로 걷고 발로 밥을 먹는 일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선원 A는 선장이 자랑스럽고 멋진 이유와 그의 선원이어서 기쁘고 행복한 이유를 100가지 넘게 댈 수 있었으나, 선장은 은근히 칭찬에 면역이 없어서 금방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선원의 몸을 자르기 때문에 자제하기로 정했다.

그는 일단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선장을 향한 식지 않는 사랑과 함께 들이마신 숨을 크게 내뱉었다.

“후우―.”

“갑자기 웬 한숨?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

2인실을 사용하는 하트 해적단 특성상,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룸메이트 금발 머리 선원 B가 우스꽝스러운 빨간 피에로 코를 단 채 묻는다.

이번 파티의 컨셉이 아무리 ‘광대와 함께 춤을’이라지만, 참 심한 몰골이었다.

선원 A는 안구 건강을 망가뜨리는 끔찍한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반만 뜨며, 제게 달라붙은 선원 B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누르면 삑삑― 소리 나는 가짜 코를 하지 않는 대신, 하얀 분칠에 빨간색으로 피에로 화장을 한 자신의 몰골은 생각하지도 않는 기만적인 태도였다.

선원 A는 선원 B의 작업복에 잠깐이라도 닿은 손을 제 옷에 마구 비비며 말했다.

룸메이트는 배에 올랐을 적부터 주변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선장이 직접 사지를 절단하지 않는 이상, 빨래하지 않기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그러면서 목욕은 또 기회가 올 때마다 하니,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옷을 입는 괴상한 취향이 아닐 수 없었다.

“나 오늘은 제대로 새 옷 입었거든! 내가 설마 선장 탄생일에 더러운 옷을 입겠냐!”

평상시 자신이 더러운 꼴이었다는 거는 알았던 모양이다. 자각한 상태면서 취향을 바꾸지 않는 게 가장 나쁘다.

그보다 룸메이트 따위에게 신경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선원 A는 생각에 잠겨 아주 잠시나마 선장의 생일 파티 준비를 미루는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른 것에 분개했다.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넋을 놓고 있다니! 잠깐 머리가 어떻게 돌아버렸던 게 분명하다.

어제까지 일주일 내내 해저에 있던 피로가 풀리지 않았었나 보다.

선원 A는 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양 손바닥으로 뺨을 꾹꾹 눌렀다.

손바닥에는 많은 분이 묻어났고, 아직도 자리를 뜨지 않던 선원 B가 미친놈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지만, 선원 A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러다가 질리면 코드가 잘 맞는 우니나 샤치에게로 떠날 거다, 저 녀석은.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은 10월 6일로, 하트 해적단의 몇 가지 기념일 중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무려 두 달 전부터 식당 내 가장 큰 달력에 베포가 직접 빨간 크레파스로, 삐뚤어져서 더 귀여운 하트 모양을 그려 넣었으니 아둔하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까먹은 녀석들은 없을 것이다.

선원 A는 조금 전에 잠시 선장을 향한 사랑을 되새기느라 정신을 다른 데 팔았던 자신을 외면했다.

과거의 자신은 그가 아닌 다른 영혼이 샴블즈로 들어와 있던 거다. 예를 들어, 룸메이트이거나 룸메이트 녀석. 예를 들어, 룸메이트이거나 룸메이트 녀석.

그렇지 않으면 하트 해적단 고참 중 한 명으로, 노스 블루에서 창단 멤버 다음으로 입단하고, 선원들의 단체복 착용을 제의한 자신이 선장의 생일을 까먹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 숨기거나 미루어서 무엇하리.

10월 6일, 오늘은 존재만으로 고귀해서 가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사랑하는 선장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선원 A의 가슴은 오늘 선장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벅차올랐다.

이런, 다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침부터 준비한 얼굴의 분장이 멈출 만 하면 흐르는 눈물 탓에 계속 망가졌다.

선원 A는 긴 풍선으로 마지막 스물여섯 번째 곰돌이를 만드는 일을 잠시 멈추고, 작업복 주머니에서 묵직한 파우더를 꺼내어 거울도 보지 않고 눈가와 양 볼에 덧칠했다.

눈의 화장은 어차피 그 혼자 고치지 못하므로, 연회 직전에 잇카쿠에게 부탁할 일이었다. 정 안되면, 손재주 하나는 쓸만한 룸메이트에게 부탁하던가.

위험해…. 그 녀석한테 화장 받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구역질을 하고 싶어졌다.

급하게 파우더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손바닥으로 입을 막는 그를 다시 룸메이트가 바라보는 게 견문색에 잡혔지만, 선원 A는 시원하게 룸메이트에게서 등을 돌렸다.

다행히 선원 A의 더딘 일 처리를 감안하고도 파티 준비는 완만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선원 A는 약간 하얀 분이 묻었지만, 모양새는 완벽한 곰돌이 풍선 동물 26마리를 파티 기획의 총책임자, 펭귄에게 가져다주었다.

선장 다음의 실력자로 공인받은 펭귄의 눈초리는 풍선에 묻은 하얀 분을 놓치지 않았으나, 선원 A는 뻔뻔스러운 태도로 모르쇠로 일관했다.

파티 예정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시 만들 시간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손바닥 전체가 분으로 뒤덮여 있어서 깨끗하게 닦지도 못한다.

선원 A는 펭귄의 잘 보이지도 않는 눈초리에 입을 삐죽이며 자신의 허리춤을 내밀었다. 하얀 작업복이니까 티도 나지 않겠지.

펭귄은 사양하지 않고 선원 A의 옷에 분을 닦아냈다.

마지막으로 자신 말고도 다른 동료들의 화장을 고치느라 바쁜 잇카쿠 대신, 룸메이트에게 화장을 수정받은 선원 A는 울렁거리는 속을 참아내며, 자신에게 배당된 폭죽을 손에 쥐었다.

명명, ‘사랑하는 캡틴의 스물여섯 번째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깜짝 연회’는 샤치와 베포가 온종일 없는 머리에서 쥐어 짜낸 의학 관련 질문과 항해 질문으로 선장의 시선을 끄는 동안, 나머지 18명은 식당에서 팀을 나눠 밀가루 없는 식단으로 구성한 음식과 떡케이크, 선장 취향의 하트와 곰돌이로 가득한 장식, 없는 용돈 모아서 뉴스쿠를 통해서 배달받은 선물들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선원 A는 그중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풍선으로 장식을 만들고, 선장이 샤치와 베포에게 끌려와 식당 문을 여는 이상, 폭죽을 터트리는 역할을 맡았다.

즉, 선장을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것! 선원 A는 이 역할을 위해서 가장 탐나고 영광스러운 총책임자 자리도 마다했다. 그리고 펭귄과 피 터지는 사투를 벌인 끝에 쟁취했지.

선원 A는 자신의 열정을 향한 뿌듯함과 기대감으로 아주 강하게 콧김을 불었다.

견문색으로 살펴보니 샤치와 베포, 선장이 식당에 들어서기까지 고작 세 걸음이었다.

선원 A는 땀으로 흥건히 젖은 손바닥을 작업복에 문지르고, 긴장 탓에 너무 힘을 주어 살짝 떨리는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앞으로 두 발자국, 한 발자국….

―철컥. 문 손잡이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

선원 A는 열린 문으로 선장의 하얀 모자 끝단이 보이자마자 폭죽을 터트리며, 동료들과 다 함께 진심을 담아 외쳤다.

“선장! 생일 축하해요!!”

예상했다는 듯 놀란 기색도 없이 눈웃음과 함께 선장이 보여준 작은 미소에 선원 A는 지금 죽더라도 인생에 한 치 미련 없이 승천할 것을 확신했다.

역시 우리 선장은 최고였다.


***

저녁 식사 시간에 시작해 비장의 과실주를 더해 새벽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연회는 아침 해가 떠오를 즈음 마무리되었다.

신세계답게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안전을 위해 식당에서 이루어진 연회였으나, 그 열기는 잠수함 안팎을 따지지 않고 뜨거웠다.

로우는 분위기에 휩쓸려 주량보다 약간 더 마신 술기운을 날리기 위해서 간판으로 나왔다.

이렇게 웃고 떠든 게 얼마 만이던가.

베포의 고향으로 가는 영구 지침을 손에 넣고, 복수를 위한 모든 계획이 세워진 이후 처음이었다.

성공 여부도 확신하지 못하고, 생존은 더 불분명한 계획의 시작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복수를 위한 불안감과 기대감에 로우는 매일 어릴 적, 미니온 섬에서의 악몽을 꿨고, 자신의 생일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선원들이 아니었으면, 난생처음으로 조용한 생일을 맞이할 뻔했다.

고향이 망하기 전에는 가족이, 그 직후 2년간은 돈키호테 패밀리에서, 그리고 또 그 이후로는 코라 상과 하트 해적단 선원들이 축하해준 생일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생일을 축하받지 않는 아이들에 비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매년 생일을 축하받은 그는 확실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가능하다면, 끝까지 복수를 미루고 싶었다.

스왈로 섬에서 볼프 영감과 펭귄, 샤치와 베포까지 5명이서 함께 살 적에 그는 한 번, 복수를 잊은 적이 있었다.

코라 상의 유언대로 자유롭게만 살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

코라손이 무엇을 위해 돈키호테 패밀리에 잠입했는지 생각하지 못한 멍청하고 비겁한 시절이었다.

복수를 제쳐두고서도 로우는 도플라밍고의 악행을 코라 상 대신 막아야 하는 사명이 존재했다.

도플라밍고를 막지 않으면, 로우가 코라손에게 받은 사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동료들과 함께 바다로 나와 볼프가 내어준 폴라 탱으로 모험하는 종종 이대로 바다를 떠돌고 싶다며, 방심하고 마음이 흐물흐물해지려 할 때마다 로우는 코라손의 죽음을 떠올렸다.

은인의 죽음을 대가로 얻은 건강한 몸과 악마의 열매 능력 또한, 로우를 채찍질해주는 좋은 도구였다.

로우는 눈을 감고 바닷바람에 얼굴을 맡긴 채, 어쩌면 마지막이 될 생일 연회를 떠올렸다.

그를 제외한 총원 20명. 모든 선원이 빠짐없이 축하해주려던 마음을 어떻게 모를까.

로우는 평소에 그렇게 잔소리해도 응급처치 이상의 지식은 뇌에 집어넣으려 하지 않던 샤치가 베포와 함께 자신을 찾아왔을 때부터 그들의 연회 계획을 눈치챈 상태였다.

매년 같은 방식으로 축하받은 전적이 있으니, 추리는 어렵지 않았다.

작년에는 샤치가 아니라 펭귄이 베포와 함께 찾아왔으나, 어쨌든 로우는 동료들의 작당 모의에 적당히 어울려 주었고, 작년보다 하나 더 늘어난 곰 모양 풍선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마지막 풍선 한구석에 묻은 하얀 분 자국은 관대하게 모른 척해주었다.

선원 수에 더해 자신의 나이 수까지 합친 46개의 선물은 또 어땠는가.

반절은 새로운 의학서나 구하기 힘든 고서가 차지했으나, 나머지 반절은 선원의 개성에 따른 선물들이 차지했다.

스왈로 섬에서 미용사 일을 한 샤치가 주는 새로운 빗부터 식당 서빙 일을 해 그럭저럭 안목을 가진 펭귄의 손수건, 밍크족의 감으로 안 것인지 자신의 생사 여부는 둘째 쳐도 나중에 꼭 필요할 베포의 비브르 카드까지.

그 외에도 잇카쿠 같은 여성이 쓸 거 같은 하트 모양의 작은 비즈가 박힌 머리핀이나 수 놓는 솜씨가 좋은 쿠리오네의 주도로 쟘발을 포함한 서너 명이 공수해온 듯한 검은색 롱코트도 있었다.

올해는 아무래도 다음 행선지가 있어 코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지.

로우는 선물 증여식이 끝나자마자 술병을 꺼내 드는 분위기에 휩쓸려 아직 풀어보지 못한 선물 상자를 떠올리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자아냈다.

이제 곧 펑크해저드에 도착하니, 사나흘 뒤에는 이런 떠들썩한 풍경과도 작별일 것이다.

로우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버릴 각오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노란 잠수함과 지난 10년간 함께한 하트 해적단만이 주는 안정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몰라도 로우는 자신이 동료들을 예상보다 더 많이 그리워할 것을 직감했다.

 


느긋하게 쓰고 싶은 걸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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