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던 장마가 끝나고, 오늘부터는 다시 여름의 강한 햇살이 내리쬐겠습니다. 수도권과 강원 지방은 오늘 내내 맑지만, 전라도를 중심으로는 오후부터 잠시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꿈뻑꿈뻑. 둔한 눈꺼풀이 눈동자를 덮었다 올라간다. 이미 한참 전에 건전지가 방전돼 신호가 먹은 리모컨은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실행되지 않는다. 기상 캐스터의 말이 오른쪽 귀를 후비다가 이윽고 머릿속을 관통한다. 어지러울 새도 없이 뇌를 일자로 가로지른 낱말들은 이번엔 왼쪽 귓구멍에서 나란히 투신한다. 그런데 앞다투어 나간 단어들 중에 걸리는 게 있다. 장마. 여름. 

  장례가 끝난 것도, 삼일우가 자취를 감춘 것도 딱 엊그제다. 삼일우(三日雨). 삼 일 동안 억세게 오는 비. 네가 죽기 전부터 온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 것처럼 퍼붓던 비는 네가 죽던 날 유독 거셌다.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로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장댓비를 온몸으로 꺾고 인근의 강으로 갔다. 나는 그날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고 가면서 어딘가에 뚜껑이 쓸려내려간 맨홀을 재수없게 밟기를 기도했다. 수위가 범람한 강의 급류에 떠밀려 물살을 유영하다가 느긋하게 가라앉기를 기도했다. 그래야지 삼도천을 건너고 있을 네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지만 다시 네게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신은 언제나 내 기도를 묵살했고, 형광 조끼를 입은 신의 사제들이 휘슬을 불며 나를 제지했다. 나는 물에 코를 박고 죽었다던 너를 생각했다. 경찰의 구제로 살아난 나는 그 다음날 네 상주가 되어 조촐한 장례를 치루었다. 그날은 익사하는 꿈을 꿨다.

  조문객이 적어 장례는 이틀만에 끝났다. 볕 좋은 곳에 시신을 안치하라며 묏자리를 추천하는 장의사를 떼어내고 네 시신을 화장했다.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너를 보는데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꼭 자유로워질 거야.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너를 보며 그런 생각도 했다. 

  자유로워진 거야? 네가 바란 대로 됐어?

  눈물에 눈이 잠긴다. 내 눈물에 익사할 수 있다면 몇 번이나 죽었을지 셈했다. 나더러는 살라고 해놓고. 죽어가던 나를 살려놓고. 죽고 싶던 나에게 살고 싶단 욕망을 불어넣어놓고.

  한편, 이번 장마로 피해가 극심한 제주도는 정부에게 재난지원 상태를 요청했습니다. 제주도의 피해액은 사상초유의 기록을 갱신했으며...... 작위적인 미소를 걸고 날씨를 읊던 기상 캐스터는 사라지고 머리가 짧은 아나운서가 편평한 보도가 이어진다. 섬의 일부가 물에 잠길 뻔했다던 제주도의 자료 화면이 나온다. 섬의 재기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도민들과 그들을 달구는 해. 뒤이어 이번 사태를 위해 제작된 공익 광고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여름. 푸른 나뭇잎과 뜨거운 햇살과 매미떼가 나오는 광고. 하늘이 이렇게 푸르고 날이 이렇게 쨍하고 곤충들마저 입 모아 노래하는데, 사람들도 다같이 일어서자는 흔해빠진 광고. 나는 그저 웃었다. 웃는데 동시에 울었다. 내 눈꼬리에 맺힌 게 웃음인지 울음인지 몰랐다.

  페에 물이 차올랐다. 이 물은 너를 잠겨죽인 그 물일까. 너를 집어삼킨 물을 나는 잡아먹는다. 입과 목구멍과 폐부에 물이 밀려들고 눈과 코와 귀도 온통 물에 잠식된다. 어느새 창에 괴어 있던 물방울들은 뿌연 자국만 남긴 채 아래로 미끄러지고 샛노란 햇살만 그 자리를 차지한 채 남아 있다. 그 태양빛을 쬐며 나는 물을 삼켰다. 악몽도 청춘이라 불리우는 이 계절 속에서, 내 피부를 재로 만들고 내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이 뜨겁고 강렬한 태양 아래서, 매미가 징그럽게도 울부짖는 시끄러운 여름 안에서······ 나는 오늘도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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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계절

  그냥 머라도 올려야 할 것 같아서 냅다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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