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과 늦게 집에 돌아온 명은 별채로 들어와 방안에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별채 옆 따로 떨어져 있는 건물의 방에서는 아이들 우는 소리와 일월과 개순이 아이들 달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평소같으면 아이들 울음 소리에 한달음에 건너 갔을 명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저 방 안에서 얼굴을 굳힌 채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방 안의 호롱불로도 어둠을 쫓기 힘들 정도로 어둑시니가 내려앉을 시각이었다. 명은 몸을 일으켜 별채를 나섰다.

 

  이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 저녁을 한창 준비할 시각에 명은 원의의 집 앞 솟을대문에 서 있었다. 소리내어 사람을 부르려고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물었다. 초저녁에 사내가 홀로 있는 규수의 집에 찾아온 것으로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이 원의에게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대신 돌담을 둘러 돌아가 원의가 머물고 있는 별당쪽으로 갔다. 혹여나 원의가 자고 있으면 어쩌나 싶어 눈을 들어 보았다. 다행히 별당 방 창호 밖으로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렸다. 돌담 기와에 손을 짚어 가볍게 훌쩍 뛰어 넘은 명은 원의가 놀라지 않게 작은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아씨."

  호롱불에 잠시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이내 방문이 열렸다.

  "명이니?"

  놀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원의가 보였다. 원의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명에게 들어오라고 하였다. 방 안에 들어선 명은 그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방바닥에 놓여 있는 안료들과 붓, 그리고 하얀 종이에 그려진 그림... 명은 그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내 깨달았다.

  그림 속의 사내는 선화방(仙畵房)에서 아낙들과 규수들에게 잘 팔린다는 칼 찬 선비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누구를 보고 그린 것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잠시 머쓱해진 표정으로 그림을 바라보던 명은 원의가 내어준 방석에 천천히 앉았다.


  "무슨 일... 있니?"

  아까도 왔던 명이 초저녁에, 그것도 사람들 모르게 자신을 찾아온 것이 조금은 불안하였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명은 원의의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에 담담히 답하였다.

  "아닙니다. 그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밤중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결례를 하여 송구합니다."

  원의는 이젠 선비의 태(態)가 완연한 명을 보며 속으로 미소지었다. 이제 자신이 명에게 말을 놓는 것이 조금씩 불편하게 느껴진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싶었다. 예전의 막동이를 대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이제는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그것을 고치지 않는 것은 명과의 인연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은 자신의 욕심때문이 아닌지 싶었다. 

  "아니야. 괜찮아. 너랑 나 사이에 뭘..."

  말하면서도 속으로 불편하고 미안함이 있었지만, 원의는 막동이때처럼 대하는 것을 놓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근데, 무슨 일로?"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 궁금한 원의가 물었다.

  "아씨..."

  원의를 부른 명이 말을 잇지 않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감돌았다. 더 어색해지기 전 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왜 아까 아버님의 질문에 그리 답하셨습니까?"

  원의는 명이 말한 아까의 상황을 떠올렸다.



  "혹여, 왕실에서 그때의 혼담을 다시 진행시킨다하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적막만 흐르던 어색함 속에 원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오래 전 지나간 인연입니다."

  "그래도 세자저하 사건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어지지 못한 인연이 아니느냐? 이제 우보의 누명도 벗겨졌고 복권도 모두 이루어졌다. 모든 것이 그때처럼은 아니겠지만, 그때와 같이 복권된 이 시점에 그 혼담, 그 인연은 다시 이어져도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

  "모든 것이 그때와 같지 않잖습니까?"

  그녀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아버님도 계시지 않고, 저 또한 그때의 어리고 어린 소녀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분 또한 그러하시겠지요. 끊어져버린 끈을 긴 세월이 흐른 뒤에 풍화에 닳고 닳아 그 접점이 없어진 것을 어찌 잇겠습니까? 그저 놓아둔대로 놔두는 것도 그 또한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원의의 담백한 말에 성철은 더이상 그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왜?"

  아까 있었던 일을 상기하던 원의는 명이 왜 그리 묻는지 되물었다. 자신 앞에 앉아 무언가 불만인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명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그 혼담에 대해 거절하신 것입니까? 좋은 혼담자리 아닙니까?"

  좀더 불퉁한 목소리로 말하는 명이 귀엽게 느껴졌다. 원의는 가볍게 웃었다.

  "혼담이라니... 혼담이 들어온 것도 아니, 만약 그렇다면이라고 말씀하신거잖아. 왜 그런 것 가지고 그리 정색하고 그래. 게다가 이 저녁에 찾아와서."

  "웃지 마세요. 전 심각하게 말씀드리는건데."

  집에 돌아가 한참 고민하다가 온건데, 자신을 어린 동생 쳐다보듯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 미안미안. 그런데 맞는 말이잖아. 혼담이 들어온 건 아니니까."

  맞는 말이었다. 그저 혼담에 대한 이야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자신이 조금 앞서서 생각했던 것이었다. 조바심에 마음이 조급했었다.

  "그럼, 만약 자헌대군과의 혼담을 왕실에서 꺼내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은 명은 초조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슬며시 깨물었다.

  "어떻게 하긴, 아까 이야기했잖아. 그리고, 그럴 일이 없을거고."

  "아버님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신건... 무언가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럴 일이 있을 수도 있고요."

  이야기가 조금씩 무거워지자 원의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럴 일이 있더라도 나의 대답은 아까와 같아."

  "왜 그러십니까? 자헌대군과의 혼담이 들어오면 그 보다 더 좋은 혼처가 어디 있겠습니까? 스승님도 저 세상에서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원의가 묘한 눈빛으로 명을 바라보았다.

  "아버님께서? 과연 그러실까?"

  "아니, 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자헌대군이라면 이 나라의 적통 대군이시고, 또 그 만큼 지체 높은 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리고... 제가 본 현이 형님이시라면 충분히 아씨에게 좋은 낭군이 되어주실 것 같습니다."

  명의 마지막 말은 약간은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방 안을 울렸다.

  "좋은 낭군...이라... 그래, 네가 본 자헌대군이나, 내가 본 자헌대군이나 괜찮은 분이지."

  원의는 옆에 아무렇게나 놓인 붓을 한자루씩 집으며 무심히 말하였다.

  "그럼, 혼담이 들어오시면 받아들이시는겁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아씨 혼담에 대해서는 저희 아버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젠 아까보다도 더 바람빠진 듯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명이었다. 널브러진 붓들을 모두 집어든 원의는 붓통에 하나둘씩 담기 시작하며 말하였다.

  "아니, 그러지 않을 것이야."

  "네?"

  작게 줄어들었던 명의 목소리가 조용한 밤 중에 크게 울렸다.

  "뭘 그리 놀라."

  "아니, 아씨! 자헌대군... 괜찮은 분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그 좋은 혼처를 거절하시려는건가요? 그 정도면 좋은 집안, 좋은 사내아닙니까?"

  붓통에 붓들을 모두 담은 원의는 마지막으로 붓통 덮개를 덮으며 조용히 물었다.

  "명이 너는, 내가 자헌대군과 혼례를 올렸으면 좋겠니?"

  그녀의 목소리는 비단보에 감싼 듯이 부드럽게 명의 귀에 얽혀 들어왔다. 하마터면 '아니'라고 답할 뻔하였다. 간신히 참아낸 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씨. 전 아씨가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많이 고생하셨고, 이젠 좋은 사내와 혼인하시면 스승님이 돌아가신 슬픔도 천천히 가시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명은 자신을 부드럽게 바라보는 원의의 눈빛에 움찔하였다.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면서도 따뜻함이 뒤섞여 있었다.

  "자헌대군과 혼인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명은 원의의 되물음에 바로 답할 수 없었다.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던 명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맞아, 자헌대군은 좋은 사람이야. 괜찮은 분이지. 이 나라의 대군이시니 집안 재력도 풍족스러울 것이고, 자헌대군께서도 온유함을 갖고 계시니 여인에게 함부로 대할 분은 아니실 것이니 좋은 혼처이지. 좋은 낭군이 되실 분이지."

  잠시 말을 쉬었던 원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명의 눈을 다시금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의 낭군이 되실 분은 아니야. 그것만은 확실해."

  "아니, 왜 그러시는데요. 그분께 다른 여인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도성에 퍼져 있는 그 난봉꾼이라는 소문때문에 그러시는 것입니까?"

  명이 답답한 듯 말하였다.

  "아니, 그런 소문은 그저 소문에 불과할 수 있지. 만약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있어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야."

  "그럼 왜?"

  "만약 어렸을 때라면 아마 그와 혼인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을 때라면."

  여느 사대부 규수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바깥출입에 자유롭게 살던 자신이 왕실의 일원으로 살 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보통 사대부가 보다 더 엄격한 곳이 왕실이었으니. 게다가 가장 큰 것은... 자유롭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닫아놓고 마음에 없는 혼인을 할 자신이 없었다. 비록 그 마음이 가서 닿지 못한다 하더라도.

  "설마 고작 그것때문에 이 저녁에 온거야? 싱겁긴."

  "고작이라니요. 스승님께서 얼마나 아씨의 혼인을 바라셨는데요. 집에 돌아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씨가 그러시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생각에 저도 모르게 이리... 어찌되었든 늦은 시각에 찾아와 송구합니다."

  "괜찮아. 아버님 생각에 마음도 울적해서 잠도 안오고해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었는걸."

  무거운 이야기를 더이상 하고싶지 않다는 듯 가볍게 웃는 얼굴로 명을 바라 보았다.

  "그것때문에 온거야?"

  다시 묻는 원의의 말에 명은 볼멘 표정으로 답하였다.

  "네."

  "난 또... 약조 지키러 온 줄 알았지."

  원의의 말에 명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녀를 맹하니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장난기가 어려있었다.

  "무슨 약조... 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나싶어 의아했다가 이내 예전에 했던 약조를 떠올리고는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송구...합니다."

  "농이야. 그때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 나나 너나 다 정신이 없었고. 그래도 모든게 잘되었으니 괜찮아."

  여전히 웃으며 말하는 원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재희랑 연희는 어때? 잘 크고 있지? 아이들 떠난 첫날에 어찌나 적적하던지, 자다가 눈물 날 뻔 했지 뭐야. 아, 일월이도 건강하게 잘 있지? 일월이한테 잘 해줘. 선화방에 늘 오는 아낙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갓 아이 낳았을 때 속상하게 하면..."

  그녀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명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눈을 감은 명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자 원의의 동공이 커졌다. 자신의 입술을 부드럽게 감싸오는 느낌에 그녀도 슬며시 눈을 감았다. 

  바랬지만 차마 진심이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농이라 뱉었다. 이것이 마지막 접문(接吻)이라 해도 좋았다. 소과(小科)에 입격하면 접문해달라고 약조하길 잘한 것 같다. 이렇게라도 약조라는 빌미로 이리 숨결을 느낄 수 있으니까. 이젠 진짜 마지막이겠지.

  밀고 들어오는 말캉한 감각에 원의는 규칙적인 호흡을 안으로 삼켰다. 입안을 조심스레 탐색하는 따뜻함이 얽혀 두 사람의 입 안에어는 서로의 살을 촉촉하게 맞부딪혔다. 원의의 두 팔이 명을 감싸왔다. 팔이 감겨 몸이 맞닿는 만큼 둘의 입은 더욱 세차게 서로에게 맞닿았다. 이리저리 명의 안을 부드러운면서도 세차게 탐닉해가던 원의는 이젠 명의 윗입술을 물어 삼켰다. 얇고 보드라운 살결이 왠지 계속 빨아 당기고픈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부끄러움만 타던 원의는 어디갔는지 사라지고, 상당히 적극적인 그녀의 공세에 명의 정신줄이 간당간당하였다.

  겨우 버티던 그 즈음 명의 목덜미를 만져오는 손길이 느껴졌다. 가파르게 뛰는 심장 박동에 밭은 숨을 뱉어낸 명은 다시 숨을 참았다. 목 뒷덜미쪽 도포 깃 안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손바닥을 느꼈다. 깊은 쪽까지 들어오지는 못하고 뒷덜미 언저리에서만 맴돌던 손길은 연신 좌우로 피부의 매끄러움을 갈망하듯 달싹거렸다.

  차마 옷깃을 풀어헤치지 못하는 정갈한 손길은 이내 명의 목덜미만 매만지며 길고 긴 접문의 끝을 아쉬워하였다. 

  천천히 눈을 뜨던 명에게 원의의 눈망울이 시야에 들어왔다. 붉은 기가 맴도는 눈가에 촉촉해진 속눈썹 아래로 맑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제서야 명은 원의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자신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스승님의 49제때문인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욕심 낼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는 자신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하게 욱신거렸다. 자신마저 그럴 순 없었다. 그녀 앞에서 감정을 보일 순 없었다. 그녀에겐 그녀의 삶이, 자신에겐... 어긋났지만 무언가 어그러진 자신의 삶이 있었다. 그렇게 어그러진 자신의 삶에 그녀를 들일 순 없었을지니 그다지 이기적인 것은 아니리라.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둘 중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원의였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일월이에게 미안한 것도. 네게 이렇게..."

  원의는 말을 끝맺지 못하였다. 명이 다시 제 입술을 덮쳐왔다. 이미 명은 알았으리라. 제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허나, 그 마음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명의 마음 또한 자신은 알고 있었다. 제게 미안한 마음, 조심스런 마음... 그리고 자신은 모르지만 무언가 두려워하며 감정을 밀쳐내고 있는 명의 마음을. 

  그런 명이 참고 참은 마음이 새어나오도록 원의를 힘껏 안으며 입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명의 격렬한 입맞춤 속에는 무언가의 결기가 담겨있었다. 마치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듯이... 물론 자신도 그러한 마음에 먼저 접문(接吻)을 한 것이었건만, 막상 역(逆)으로 받아보니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었나보다. 입을 맞추는 내내 원의의 눈에선 쉴 새없이 촉촉한 물기가 흘러내렸다. 서로를 부드럽게 어루고 때론 강하게 밀어붙이며 마음을 나누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천천히 떨어졌다.

  한참 아무 말없이 있던 침묵을 깬 것은 원의였다.

  "고마워. 이젠 나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돼."

  원의의 말에 명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명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씨, 몸 건강하십시오."

  끝까지 비겁하게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얼른 그녀의 집을 황망히 나섰다.




  "손님들께서 집에 가실 시각에 이리 찾아오신 선비님께서 계시다길래 누구신가 했습니다."

  수향이 화려한 치장을 한 차림으로 제 방 안에 와 있는 한 선비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늦은 시각에 미안하오. 어디에 물어봐야 할 지 몰라 고민하다 오로지 떠오르는 것이 수향 밖에 없었소."

  "어머, 누가 들으면 이년을 연모해서 오신 것처럼 오해할까 저어됩니다. 호호호."

  한참 웃던 수향은 앞에 앉은 선비의 반응이 없자 멋적은지 이내 웃음기를 지우곤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명 도련님, 아니 선비님께서 아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이온지요?"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초보 작가입니다. 사극 동양풍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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