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토리 10장 이후~13장 이전 그 어드메

정말 완 전 히 날조밖에 없는 짝사랑 가스윌

윌 지분이 98%정도... 거의 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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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분을 좋아함이라고 정의하는 기준은 뭘까? 수많은 종류의 사랑 중에서 그것을 로맨스적 무언가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뭐냔 말이다.

패트롤 중에 무슨 생각이냐, 같은 태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벌써 열아홉의 가을이다, 그건 곧 윌도 어엿한 성인이 될 거란 소리다. 그런 나이의 남자가 이런 소녀틱한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는 건 역시 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지만 결국 윌은 이어지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의 정의 기준은 뭔데? 특별한 기준이 있다면 내가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을 거잖아. 기준에 부합하면 좋아하는 것, 부합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 것. 정확하게 구별해줄 방법은 없을까?


'역시 그건 무리겠지…….'


윌도 알고는 있다. 좋아한다는 건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도, 자기 마음에 대해 생각할 사람도, 결정할 사람도 본인밖에 없다는 것도. 그래서 자기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고집을 부렸던 거니까. 그럴 때 관철한 의지도 지금 헷갈린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랑도 결국은 본인의 마음이며 타인이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오로지 개인의 영역이었다.


"하아……."


좋아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상대라면 좋았을까? 아니, 적어도 좋아한다는 걸 쉽게 인정할 수만이라도 있는 상대였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지금 그가 홀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 다른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상대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으으……."

"윌, 아까부터 뭘 그렇게 낑낑대는 거야?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냐? 들어줄 순 있는데."

"으, …별로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 싱겁긴. 뭐 말하고 싶어지면 말하라고. 이 오오토리 아키라님이 해결 못한 사건은 없으니까~!"

"응, 걱정해준 건 고마워, 아키라. 고민이 생기면 그렇게 할게."

거칠지만 다정한 윌의 소꿉친구이자 동기 루키인 아키라는 날이 갈수록 타인을 배려하는 솜씨까지 더해져 좋은 어른이 되고 있었다. 윌 또한 그에게는 꾸밈없이 상냥한 말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래, 아키라 상대로는 이렇게 쉬운 일이 왜 그녀석 앞에선 어려운 걸까… 물론 지금은 그게 주된 문제가 아니긴 한데.

어쨌든 윌은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설마 자신이 그렇게나 싫어하던 상대를 좋아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그런 의미'로.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전한다면 아키라는 오히려 기뻐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기분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한 윌이 신경쓸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


생각이야 어찌됐던 윌은 평소처럼 패트롤을 마친 뒤, 옥상의 화단으로 향했다. 여전한 상념을 어떻게든 뒤로하고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물주기를 기계적으로 준비한 뒤 호스의 머리를 화단으로 돌렸다. 쏴아아- 시원한 소리가 윌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미뤄둔 것들을 다시 마주했다.


그러니까, 윌 스프라우트는 가스트 애들러를 좋아한다. …아마도.

뒤의 아마도는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의 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신 건강 유지 비법이다. 다른 말로는 방어기제? 아무래도 계속 그런… 누가 봐도 별로 좋지 못한 태도를 표방하고 대하던 상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가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기도 했기에.


"…도대체 이유가 뭐야."


그러니까 계속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자기 기분에 대해 물어봤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외면하게 해줄 '정답'이라는 게 필요해서.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차라리 누군가 너의 그 마음은 착각이고 사랑 같은 게 아니라고 소리라도 질러줬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고 만다. 그걸 들을 수 있다면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고 아 그건 착각이었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을 텐데. 물론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았지만.

결국 모든 게 모순이다. 그렇게나 싫어하던 상대를 좋아하게 된 것도, 상담도 하지 않은 주제에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주길 원하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몇번이고 되묻는 것까지 전부.

가스트 애들러는 좋은 사람이다. 그건 객관적인 평가로도 그랬고, 제멋대로의 이유로 심하게 굴던 윌 스프라우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몇번이나 밀어내도 몇번이나 다가오는 남자는 쉽게 솔직해질 수 없는 윌에게 몇번이나 손을 내밀었다. 아닌척 하고싶어도 그의 상냥함에 조금은 어리광을 부렸을 것이다. 아무리 심하게 대해도 금방 웃으며 다가오고, 중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고, 그걸로 생색을 내지도 않고, 고맙다는 이야길 들으면 생각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뜨다가 기쁘다는 듯 웃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신히 입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순환한다. 설상가상으로 쉽게 멈추지도 않는다. 큰일이야. 식물들에게 물을 줄 때 딴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말한 건 나인데, 내가 전력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어……. 자랑처럼 말하지 않지만, 윌도 나름 성실함이나 진지함이 자신의 특징이라는 자각은 있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더 모범생처럼 굴던 것도 있었다. 물론 본성에 가까웠기에 어렵진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어려웠다. 도저히 집중이 안 돼.


"어라, 윌? 오늘은 좀 빨랐네."

"……애들러."


맞아, 모든 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또 눈앞에 나타난 이 남자 때문이야. 언젠가부터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생긴 것처럼 굳이 윌이 화단에 물을 주는 시간에 맞춰서 옥상을 찾는, 바보같이 맹목적인 한살 연상의 동기 히어로 때문이다.


"패트롤, 일찍 끝났어?"


뭘 그렇게 자연스럽게 옆에 쪼그려앉는 거야. 덩치큰 남자 둘이서 가까이 붙어 앉아있으면 비좁기만 하다. 물론 이 남자는 그렇게 않는 것조차 그림이 되는 미남이었지만… 윌은 딴곳으로 새는 생각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무의식적으로 가스트를 향하고 있던 얼굴을 화단으로 돌렸다. 한쪽에 물을 너무 많이 주고 있었어. 조금 허둥지둥 호스의 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냥, 방에 들리지 않고 바로 온 것뿐이야."

"하핫, 그렇구나."

"……."

조금 퉁명스럽게도 들리는 어조지만 대답하는 것도 잊진 않았다. 가스트의 표정은 안보이지만 하는 대답을 들어보면 대충 또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겠지. 윌 앞에서 으레 보여주는, 눈썹을 살짝 내리고 눈을 가늘게 접고 입술 끝을 살짝 올려 만드는, 어딘가 묘하게 난처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좀 더 상냥하게 말한다면 다른 얼굴도 하게 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가스트는 윌의 이런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어서, 조금만 유하게 굴어도 크게 놀라며 기뻐한다. 지금의 윌은 그 반응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 또 가슴 어딘가가 간지럽게 되어버릴 거야. 싫어도 크게 뛰는 심장소리를 인식하게 되고, 피가 돌면서 얼굴엔 열이 오르고, 결국엔 싫어한다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상대를 좋아한다는 걸 들키고 말거야. 그럼 지금의 관계조차 안되고 말거야…

윌은 원래 네거티브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언제나 긍정적, 포지티브 포지티브~ 어떤 고글 쓴 소년의 말이 생각날 정도로 밝은 사람이었다. 가끔은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한다는 말을 듣기도 할 정도로. 그런데 지금은 그 긍정감이라는 게 고장이라도 나버린 것 같았다. 끝없이 부정적인 쪽으로만 생각이 흘러갔다. 가스트 애들러 상대로는 왜 이런 것들만 유일한 걸까? 그와 함께할수록 윌의 못난 부분이 자꾸만 부각되는 기분이다. 상냥할 수도, 긍정적일 수도 없는 윌 스프라우트가 자꾸만 생겨나. 나만 이러는 건 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데.


"윌? 저기요~ 윌씨?"

"…뭐야"

"그쪽은 물 그만 줘도 되지 않을까?"


무심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면 아까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축축해진 화단이 보였다. 황급히 호스를 잠궜다. 아, 또 실수를 했어… 그것도 눈앞에 있는 남자를 생각하면서. 여러모로 윌답지 않았다. 더군다나 윌의 입장에선 사랑을 깨달은지 얼마 안된 날이란 핑계라도 있지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이 보기엔 갑작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뭔가 아키라한테 들킨 이유도 이제야 이해가 가네……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한 윌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이란 건 여러모로 피곤한 감정이구나. …정말로 그런 사랑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별로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윌의 사랑에 있어 그가 가스트를 싫어했던 것 외로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아마 성별에 관한 것일 테다. 물론 그런 쪽의 사람들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가스트는 확실히 여자친구가 갖고 싶다고 말한 적 있으니까.


'저녀석 확실히 여자를 좋아하지… 뭐, 나도 딱히 남자가 좋은 건 아니지만.'

"윌, 듣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윌은 또 그의 말을 놓치고 말았다. 조금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고개를 젓자 가스트도 아까의 윌처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손을 뻗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행동이라 윌은 무언가 반응하지도 못했다. 이마에 큰 손바닥에 닿아 있었다.


"열이라도 나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컨디션이 별로야?"

"……."

"아니면, 또 말못할 비밀이라도 생겼어?"


농담처럼, 그러나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가스트의 이야기에 윌은 잠시 흠칫했다. 확실히 저건 그때의 샴스 이야기일 것이다. 놀랐던 마음이 가시고 반사적으로 인상을 찡그린 윌이 이내 입술도 쭉 내밀었다.


"…그런 거 아니야."

"에에- 혹시 화났어?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별로, 화나지도 않았어."


지금 윌이 느끼는 감정은 윌 자신조차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 이런저런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으니까. 화인 것 같기도, 삐진 것 같기도,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혹은 이상하게도 좀, 기쁜 것 같기도 했다. 함께 공유한 비밀이 있나는 게? 아니면 도대체 뭐가… 모르겠어. 그리고 역시 '화나지 않았다'는 거짓말일지도. 그래도 그게 주된 감정은 아니니까, 뭐. 대충 그렇게 생각하곤 다시 시선을 슬쩍 내린다. 애들러의 비취색 눈은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마주하고 있다 보면 어쩐지 숨기고 있는 걸 다 들킬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정작 본인은 자기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요리조리 잘 숨겨둔 주제에 말이다. 그런 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휘둘리는 것도, 마음을 들키는 것도 전부 윌만의 일이라니. 무자각하게 그것을 뒤흔들고 있는 가스트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그럼 다행이지만, 계속 옥상에 있을 거면 저기 벤치에라도 앉지 않을래?" 

"…뭐, 응."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간신히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거의 달라지지 않는 시야가 오늘따라 조금 야속했다. 윌이 여자였다면 뭐가 달랐을까? 아니 여자가 어려운 시점에서 더 접근이 어려워졌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본인이 먼저 여자친구가 갖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의식은 확실히 해줬을지도… 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윌 자신도 딱히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이성교제의 경험도 있고. 적어도 본인 입으로 단 한번도 여자와 교제한 적이 없다고 밝힌 어떤 남자보다는 많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갑자기 자기와 체격이 비슷한 남자를 좋아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면 당연히 머릿속이 단번에 제대로 굴러갈리가 없다. 이곳저곳이 고장나버렸지만 그냥 억지로 굴리는 거야. 응, 그러는 수밖에 없으니까.


"윌, 이쪽."

"아, 응."


가스트는 여전히 딴생각에 빠져있는 윌의 손을 슬그머니 붙잡았다. 뿌리쳐지지 않았다. 음, 그것만으로도 좋아. 부드럽게 당겨서 벤치 쪽으로 이끌어도 여전히 붙잡힌 채로 얌전히 따라온다. 응, 완전히 딴생각 모드네. 나랑 같이 있는데도… 원래 가스트랑 있을 때의 윌은 좋든 나쁘든 그에게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최근 좀 가까워진 뒤에도 신경쓰는 티가 잔뜩 나서 좋았는데. 

가스트는 자신만 잔뜩 휘둘리고 있다고 억울해하는 윌의 생각을 몰랐고, 윌은 자신을 두고 딴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는 가스트의 생각을 몰랐으니,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해 지는 건 앞으로 좀 더 먼 미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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