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안가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집을 내놓았다고 지민형에게  카톡을, 문자를 보내도 지민형은 답장이 없었고 1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헐 값에 집을 팔아버리고 나서야 소식을 듣게 됐다.


나는 한 일주일전 쯤 지민형에게 집을 팔았다고 문자를 했고, 이거 혼수로 쓰라며 돈까지 보냈었다.


[박지민 선물이다]


나는 지민형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나를 위해서인지 집이 팔리자마자 헬스장 앞으로 작은 빌라를 얻어 이사를 했고, 내가 몇억을 송금해도 연락 하나 없는 박지민은.


이사를 가고나서 일주일 뒤에 소식을 들었다.


[.............]

나는 그 날 윤기형과 통화를 했고, 전화가 끊긴지 한참 뒤에도 핸드폰을 귀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박지민과 김태형이 결혼을 한다고.

재혼이라 결혼식도 없이.

앞으로 두달뒤였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여행을 떠나게됐다.

모든것을 정리하고자 떠난 여행이었다.

이번엔 기필코.

정말 기필코, 모든것을 정리하려.


다시, 언젠가, 어디서 박지민을 본대도 .

이번엔 정말 행복만을 빌며, 멋지게 자리를 비켜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됐다.


그리고 나는 또 다짐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나는 의의로 낭만있는 스포츠맨이라 그런 사랑을 동경하기도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첫눈에 반하는 그런 사랑.


박지민에겐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됐나?


[.......]


우연인지, 운명인지 비행기에서부터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서비스를 하는 승무원을 사랑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난 혼자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호텔 객실에서 사랑에 빠질 사람을 물색하기도 했다.

등신.

가끔은 혼자만 들리게 욕을 했다.

박지민에게 집을 판 돈도 이미 줘버렸고, 한달 수익을 전부 털어서 여행을 왔고.

내가 묵는 호텔은 맨정신이면 오지 않을정도로 비싼 호텔이었다.

나는 호텔 객실에서 시차때문에 내리 자다가, 저녁이 되자 호텔 주변 바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연거푸 칵테일, 위스키를 몽땅 부어도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게 실패의 냄새가 나는게 틀림 없는지,

첫사랑 실패의 냄새라든지.

나는 끝내주는 바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혼자 술을 마셨고, 더이상 재미가 없어질때쯤 바를 나왔다.


혼자서.

젠장, 또 혼자라니.

윤기형과 약속했는데.

진짜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여자를 데리고 한국에 오기로 했는데.


바에서 근처 해변까지 걸어갔다.

편의점에서 샴페인 몇병을 비닐봉지에 싸들고.

나는 캘리포니아 해변가에서도 혼자였다.



"좆같네. 정말."


나는 해변가 모래사장에 혼자 주저앉았다.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부랑아처럼, 모래먼지가 잔뜩 묻은 청바지를 털며 샴페인 한병을 땄다.

젠장.

이대로라면 너무 초라한데.

내 연락을 죽을때까지 씹으려는 박지민처럼.

죽기살기로 행복해져야하는데.


밤하늘엔 별이 총총 떠있고, 파도는 시원하게 치고 있었다.

운치있는 밤바다를 걷는 커플들과,

난 그 속에서 혼자 검은 비닐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아까 불꽃놀이 할것도 사놨는데.


그 때 검은색 캡모자가 바람에 날려 내 앞에 툭 떨어졌다.











기억나는가, 난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난 모자의 진원지를 찾고자 고개를 들었다.

검은색 머리칼과, 잘빠진 검은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순식간에 나를 돌아봤다.


"............"


거기 모자 좀 주워주세요.

아, 맞다. 영어로 해야지!


남자는 내게 빠르게 달려왔다.

남자가 달려올땐 차가운 바다 냄새가 났다.

나는 술이 많이 취했는지 고개를 도리 도리 내저으며 머리칼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남자는 순식간에 날 내려다봤다.


"전정국?"


기억나는가. 

난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남자의 통통한 입술에서 내 이름을 부를때,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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