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그림 리퍼(Grim Reaper, 사신)예요?”

“뭐?”


눈앞에 있는 작은 인간의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에 토니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어디 비교할 게 없어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인 자신을 하급 공무원인 사신 따위에 비유하는 건지. 토니가 잔뜩 인상을 쓰고 바라보자 그 황당한 질문을 한 아이는 급하게 이불을 뒤집어쓰며 몸을 숨겼다. 


“꼬맹이. 네가 보는 그림책에는 스리피스 슈트 입은 사신이라도 나오나 봐?”

“네?”


이어지는 말에 아이가 용기를 낸 건지 이불 틈으로 얼굴을 꺼내 토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본 그림책에서 보았던 사신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보통 사신은 검은색 긴 망토를 두르고 얼굴은 해골인 데다 손에는 키만큼이나 커다란 낫을 들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뭐랄까. 검은색은 맞지만 세로줄 무늬가 있는 자켓에 와인빛이 도는 넥타이 어두운 컬러의 셔츠는 어디로 보나 사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아저씨는 뭐예요? 지금 저기서 나온 거 아니에요?”


아이의 손이 조금 전 토니가 나온 거울을 가리켰다. 그래 토니는 분명 거울을 통해 이 방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것은 토니가 의도 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지하세계와 인간세계가 연결되는 바로 그날. 할로윈이었다. 

지하세계가 존재하던 그 순간부터 존재해왔던 토니에게 그간의 할로윈은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던 날 중 하나였다. 태초부터 영혼 외엔 만나보지 못한 토니는 그저 그렇게 주어진 일만 하며 셀 수 없는 시간을 보내왔다.

그렇게 매일 똑같이 돌아가던 톱니바퀴에 어느 날 작은 돌멩이가 날아와 사이에 끼게 되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지하세계와 인간세계가 연결되었던 작년 할로윈. 그 둘을 연결했던 문이 닫힐 즈음 난생처음 보는 이가 토니의 세상에 나타났다. 그의 앞에 나타난 이는 영혼이 아니었다. 쉬지 않고 뛰는 심장을 가진 사람. 자신이 사랑했던 이가 먼저 떠난 것에 가슴이 아파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과감하게 지하세계까지 발을 들인 뜨거운 피가 온몸에 흐르는 사람. 

그렇게 살아있는 이의 생기를 느낀 토니에게 난생처음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생겨났다. 온통 죽음뿐인 어둡고 추운 지하세계에서 벗어나 생기가 있는 인간세계에 가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 그 호기심은 모두가 무서워하는 지하세계의 왕을 흔들었고, 그는 그렇게 충동적인 마음으로 다음 해 할로윈에 인간의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물론 자신이 이렇게 좁고 작은 방에 닿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

하필 연결이되어도 이런 곳으로 연결이 된 건지. 아마 이동량이 많은 할로윈이기에 시공간이 조금은 뒤틀린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지만. 날 사신 따위에 비교하는 건 무척 기분이 나쁘군. 나는 그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존재니까.”


토니의 말에 아이가 손에 꽉 쥐고 있던 이불을 조금 더 내리고 토니를 바라보았다. 토니도 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살아있는 것을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 아이에게 다가갔다.

죽음을 관장하는 지하세계의 왕의 눈에는 살아있는 자들의 머리 위로 흔히 말하는 생명의 불꽃이 보였다. 생명의 불꽃은 일종의 촛불과 같았다. 처음에는 약하게 불이 붙기 시작해 그 불은 점점 커지고 그러다 삶이 다 해가면 서서히 꺼져갔다. 아이의 머리 위에도 생명이 불꽃이 보였다. 하지만 그 불꽃은 아주 약했다. 작은 바람이라도 불면 곧 그 기운을 다하여 사라져 버릴 만큼. 토니는 단번에 그 아이의 수명이 아주 조금 남았다는 걸인지 할 수 있었다.


“아저씨가 사신보다 높은 존재라고요?”

“그래. 속고만 살았어? 왜 자꾸 물어?”


아이가 눈이 가늘게 뜨며 그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 애썼다. 그 모습을 보며 토니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있는 이의 생명의 불꽃은 그 사람의 감정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색이 변한다는 것을. 지금 그의 불꽃은 혼란스러움의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아저씨 그럼 우리 엄마 아빠 본 적 있어요?”

“누구?”

“우리 엄마 아빠랑 우리 삼촌이요. 리차드 파커, 메리 파커, 그리고 벤 파커. 이렇게 세 사람이요. 다들 예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아시지 않을까? 해서요.”


저 꼬맹이는 하루에 지하세계로 들어오는 영혼이 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토니가 그 모든 이들의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그리고 목소리가 너무나도 씁쓸하게 느껴져 토니는 왠지 안다고 말하고 싶어 졌다. 작게 한숨을 내쉰 토니가 손을 한번 튕기자 허공에 양피지 종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엔 잉크병과 깃펜도 함께 나타났다.


“다시 이름이 뭐라고? 한 명씩.”

“메리 파커.”


아이의 말에 토니가 턱짓을 하자 깃펜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잉크를 잔뜩 묻힌 펜이 양피지 위에 ‘메리 파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펜이 종이에서 떨어지자 글씨는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종이 위에 ‘heaven’이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천국이라는군.”

“정말요?”

“정말 속고만 살았어? 다음.”

“리차드 파커.”


펜은 다시 움직였고, 토니는 팔짱을 끼고 서서 움직이는 펜과 양피지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이름도 모두 'heaven'이라는 단어가 뜨자 아이의 얼굴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오냐.”


토니가 다시 손을 튕기자 양피지와 펜, 그리고 잉크 모두 사라졌다. 마법 같은 일들의 연속에 아이의 불꽃은 시시각각 다시 색을 바꿔가고 있었다. 토니가 시선을 돌려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그리고 옷장과 거울 하나 정도의 단조로운 방. 그리고 침대에 앉아있는 작은 아이까지. 토니는 자신 거대한 성 화장실 보다 작은 곳이 자신의 방보다 훨씬 따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온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토니의 얼굴이 조금 심각하게 변했다. 혹시 거의 꺼져가는 저 가녀린 생명의 불꽃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있는 저 아이에게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이 아이에게로 향하지 토니는 아이를 지금보다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이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서서히 다가갔다. 

밖은 밤이고, 방안은 작은 조명 때문에 어두웠지만 한 발 한 발 다가갈수록 아이의 얼굴이 조금은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고요한 공간을 작은 구두 소리가 채워나갔다. 어딘가 무게감이 느껴지는 묵직한 소리. 그 소리에 아이의 얼굴엔 긴장감이 서렸다. 그렇게 그의 구두가 침대 바로 앞에 닿았을 때. 아이는 무슨 생각인 건지 몸을 옮겨 좁은 침대의 한편을 내어주었다.


“고맙군.”


토니가 작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물론 진심 어린 감사는 아니었다. 아이를 마주 보고 침대에 걸터앉은 그가 이젠 손에 잡힐 정도에 위치한 말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아주 어린 아이는 아닌 듯했다. 다만 작고 마른 체구는 이 방안에 어둠에 묻혀 그를 더 아이처럼 보이게 했다.


“이름이 뭐지?”

“아, 저는 피터..”

“뭐?”


토니의 물음에 아이가 작게 웅얼거렸다. 잘 들리지 않는 음성에 토니가 낮게 되묻자 움찔 몸을 움츠린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피, 피터 파커...”

“그렇군. 나는 토니 스타크.”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토니는 피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한번 그리고 앞에 있는 토니를 한번 바라본 피터가 어색하게 그 손을 맞잡았다. 마디가 굵고 투박한 차가운 손과 가늘고 고운 온기를 머금은 손이 마주 잡혔다. 피터의 어깨가 한 번 더 움츠러들었다. 생각보다 많이 차가운 온도가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토니는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의 온기. 그것은 참 새로운 감각이었다. 


“나이는?”

“열일곱 살이요.”


피터의 대답에 토니는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보통 자신에게 오는 17세의 영혼들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과 체구를 가진 아이. 그것도 저 약한 불꽃 탓이려나? 다시 시선을 들어 아이의 머리 위에 있는 불꽃을 바라보던 토니가 잡고 있던 손을 아이의 머리 위 불꽃으로 뻗었다. 이제 파란색을 띠고 있는 불꽃이 토니의 손에 닿았다. 보드라운 짐승의 털 같은  촉감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거기에 지하에선 느낄 수 없던 온기까지.


“아저씨 뭐 하세요?”

“내가 좀 전에 이름도 알려 준 것 같은데.”

“음.. 스타크씨 라고 불러도 되나요?”

“아저씨보다는 나은 거 같군.”


토니의 말에 피터가 작게 웃어 보였다. 토니는 그 모습에 잠시 넋을 놓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살아있는 자는 웃음 또한 온기를 가지고 있구나. 정도의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스타크씨. 저 궁금한 게 있어요.”

“또 뭔데?”

“저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피터의 물음에 토니가 작게 인상을 썼다. 아이의 감정이 바뀌었는지 불꽃은 슬픈 노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차피 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건 저도 슬슬 눈치채고 있거든요.”

“죽음이 무서워?”


토니가 낮게 물었다. 대부분의 살아있는 것들은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다못해 죽어서 자신의 앞에 온 영혼들도 죽음은 두려워했다. 토니는 그런 것들이 우스웠다. 결국은 다 죽을 거면서. 하지만 이어진 아이의 대답은 조금 달랐다.


“음.. 아니요. 사실 죽음이란 걸 생각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서 그건 별로 안 무서워요.”

“그러면? 그건 왜 궁금한 거지?”


피터와 대화를 이어 갈수록 계속해 호기심이 일었다. 토니는 피터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메이에게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할 것 같아서요.”

“메이?”

“아 제 삼촌의 아내 메이 파커. 저와 함께해주시는 숙모님이세요.”


토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야기를해보라는 의미로 이해한 피터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말인데요. 스타크씨.”

“응.”

“스타크씨는 아주 높으신 존재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러면 저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소원?”


피터의 물음에 토니가 되물어 왔다.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다. 잠깐만 들어도 기구한 운명의 아이는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을까.


“제가 스무 살까지만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스무 살?”

“네, 딱 스무 살. 그러니까 3년만 더요. 그렇게 되면 저도 어른이 될 거고 메이도 덜 마음 아파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제가 너무 일찍 갈까 늘 걱정하시거든요.”


피터의 이야기에 토니가 팔짱을 끼고 아이의 눈을 진득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은 명부가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저 가녀린 불꽃을 볼 때 아이의 삶은 길어야 내년 정도였다. 지하의 모든 걸 관장하는 자신에게 아이의 죽음을 조금 미뤄 주는 건 사실 크게 어려운 일도 문제가 될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해 줄 일은 당연히 아니고. 

어쩌면 좋을까 생각하며 토니가 눈을 감자 얇은 눈커플 위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따듯하단 생각을 하던 토니의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따듯함을 손을 넣을 방법이. 토니가 눈을 떴고 피터는 어색하게 시선을 낮췄다. 작게 웃은 토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준다고 쳐. 그럼 넌 날 위해 뭘 해줄 거지? 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해. 대가 없이 무언가를 해주지도 않지만 대가 없이 빼앗지도 않지. 대신 필요한 게 있다면 그 값을 쳐주는 편이야. 만약 네가 내게 무언 갈 바란다면 너는 그에 합당한 거래를 시도해야 해.”


토니의 이야기에 피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언가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곧 무언가를 마음먹는 듯 표정을 굳혔다. 토니는 그 모든 걸 피터의 불꽃으로 보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불꽃. 이 어두운 방 안에서도 홀로 빛을 내고 있었다.


“답이 나왔나?”


먼저 입을 연 것은 토니였다. 어떤 답을 가지고 왔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절 스무 살까지 살게 해주신다면.”

“해준다면?”

“제 영혼을 드릴게요!”

“뭐?”


하, 토니의 입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가 나왔다. 풀고 있던 팔짱을 푼 토니가 이마를 짚었다. 괜히 머리가 아파 오는 기분이었다.


“꼬맹이.”

“네?”

“넌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영호온?”

“아... 하지만 책이나 영화 같은데 보면 보통 계약을 하려면 영혼을 달라고 하지 않아요?”

“아까는 사신이 아니냐 더니 이제는 악마 취급이야? 넌 내가 하루에 만나는 영혼이 얼만 줄 알고 그런 소릴 거야? 차라리 사탕을 주는 게 더 가치가 있겠다. 너희는 할로윈에 사탕 주고받는다며?”

“아! 그럼 사탕 드릴까요?

“그 말이 아니잖아!”


이마를 짚던 토니가 휙 고개를 들고 호통을 치자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아이가 작게 입술을 비죽거렸다. 아이의 불꽃도 불만이 가득한 색으로 변한 기분이었다.


“잘 들어.”

“네.”

“난 널 스무 살까지 살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신이야.”

“네에 알고 있어요.”

“그럼 넌 그 능력에 합당한 걸 주어야 거래가 성립하지.”

“하지만 전 가진 게 없는걸요.”

“그럼 조건은 내가 제시할 거야. 불만은?”

“없어요.”


애초에 피터가 어떠한 걸 꺼내와도 거절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었을 거면서 토니는 굳이 티를 내지 않았다. 괜히 세상과 함께 존재해온 신이 아니었다. 저런 아이 정도야 얼마든 쥐고 흔들 수 있었다.


“그럼 두 가지 조건을 들지. 첫째, 오늘을 포함하여 네가 스무 살이 되는 그 해까지. 총 세 번 할로윈에 내가 있는 지하세계를 방문할 것.”

“제가 지하세계를 함부로 갈 수 있어요?”

“할로윈은 지하세계와 인간세계가 연결되는 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듯 너도 올 수 있지.”

“아... 그럼 두 번째는요?”

“둘째. 스무 살 할로윈날 너는 지하세계로 올 거고, 그 뒤론 쭉 지하세계에서 살게 될 거야.”

“그럼 전 죽는 건가요?”

“아니, 넌 죽지 않아. 영원한 삶을 얻게 될 뿐이지.”


토니의 이야기에 피터의 눈이 조금 커졌다. 토니는 계속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오, 이야기하고 보니 이건 나보다 네게 더 좋은 조건이군. 너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테지.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어디에 있지?”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그곳에 오면 네가 하고 싶은 건 모두 할 수 있지. 나 토니 스타크가 하게 해줄 테니까.”


토니의 화려한 이야기에 피터는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 토니는 그 삶이 얼마나 무료하고, 지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겐 절대 티 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넘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자 이젠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 가지를 지켜준다면 난 네게 스무 살까지의 삶을 주지. 어떻게 계약할 건가?”

“음...”

“이 거래는 나보다 네가 얻는 게 많은 거래인데 이걸 고민하다니. 아직 어리군.”


토니는 괜히 손목에 있는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피터의 마음도 조금 조급해졌다. 혹시 이대로 그가 가버리면 어쩌지? 불안감에 피터가 손톱을 물려고 할 때 토니는 몸을 일으켰고 피터는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 토니가 시선을 내려 피터를 바라보았다.


“할게요!”

“그래?”

“네, 그렇게 할게요.”

“OK. Deal”


토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방안에 내려앉은 어스름한 어둠이 그의 미소를 반쯤은 숨겨주어 피터는 저승의 신이 짓고 있는 그 음흉한 미소를 다 볼 순 없었다. 자신이 검은 맹수에게 붙잡힌 토끼 정도의 위치란 것은 당연히 모르고, 말이다.



-



어떤 이에겐 천년보다 길게 느껴진, 하지만 다른 이에겐 30분같이 짧게 느껴진 3년이 결국 지나갔다. 그리고 또다시 돌아온 할로윈. 피터는 방의 가운데 서서 자신의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십 년 넘게 지내온 방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조금씩 밀려오는 슬픈 기운을 떨쳐내려고 피터는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맞은편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자신을 데리러 해피가 저 거울을 통해 올라올 터였다. 지하세계에 방문할 때마다 자신을 데리러 왔던 이. 지하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 같지만, 그는 나름 친절하게 피터를 데리고 다녀주었다. 


“이젠 매일 보겠네.”


툭 내뱉고 피터는 작게 웃었다. 전부터 죽음은 크게 두렵지 않았다. 아니 사실 죽는 것도 아니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주거지가 옮겨지는 정도? 일 년에 한 번 할로윈이 되면 외출도 시켜준다고 했으니 이것은 어쩌면 그저 독립인지도 몰랐다.

힐끗 피터가 시선을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해는 온전히 넘어갔고, 밖은 어두웠다. 슬슬 그가 올 시간이라 피터는 방을 벗어나 마지막으로 메이에게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내년 할로윈에 봐요. 메이.”

“잘 지내야 해. 피터.”


메이는 피터의 말을 모두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피터의 말을 존중해 주었다. 인사를 마친 피터가 다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문을 열자 그 틈으로 조금 전보다 어두워진 방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Hey, Kid.”

“세상에.”


반가운 목소리에 피터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그가 보였다.


“이번에도 해피가 오실 줄 알았는데.”

“오, 그럴 순 없지. 오늘은 역사 적인 날이잖아? 인사는 잘했나?”

“네! 잘하고 왔어요.”

“아! 가기 전에.”


토니가 뭔가 생각난 듯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피터에게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엔 작은 호박 모양 사탕이 두 알 올라가 있었다.


“자,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

“Trick or Treat!”


단번에 알아들은 표정의 피터가 두 손을 내밀며 그가 원하는 답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통해 피터의 손으로 옮겨진 사탕은 곧 피터의 입속으로 전달되었다. 달콤한 사탕 두 알이 입안에서 서로 맞부딪히며 작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피터의 웃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럼 갈까?”

“좋아요!”


토니가 손을 내밀고 피터는 그 손을 잡았다. 토니의 입에도 작은 미소가 걸렸다. 지하세계의 왕은 이제 춥지 않았다. 비록 활활 타오르진 않지만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줄 아이가 그의 곁에 있으니까. 붙잡은 손을 통해 나눠진 따스한 온기를 머금은 할로윈의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comment.

할로윈 기념 글을 들고왔습니다.

어쩌다보니 연재는 잠시 쉬면서 단편을 써가지고 오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한두편은 더 단편을 쓸 듯 합니다.

17도 늦지 않게 가져오도록 노력해 볼게요.

그리고 아무도 모르실까봐 제가 쓰고 제가 터는 이야기..

마지막 사탕은 지하세계의 음식입니다. 지하세계의 음식을 맛본 피터는 이제 할로윈이 아니면 정말 지상으로 올라올 수 없겠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스토리에 반해 진짜 쓰고싶었는데 너무 뿌듯해요.

그럼 다음 단편이나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reathe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