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차일이 밤하늘을 가로 지르고 마당을 감쌌다. 촛불이 켜진 초례청 앞에 선 새신랑의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희고 뽀얬다. 

크고 시원한 눈매는 인상을 서글서글하게 보이게 했으나, 그 위에 자리한 단정하고 짙은 눈썹꼬리는 장안에 눈썹꼬리 잘 휘기로 소문난 기생 매영 보다도 공을 들인 듯 단정했다. 

힘주어 꽉 다물린 도톰하고 붉은 입술에 구경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을 떼지 못했다. 새신랑은 그의 뒤에 쳐진 모란 병풍의 꽃보다 화려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내 신랑은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맘이 설레어 힘이 솟게 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앙다문 입술 하며, 솔개 날개처럼 솟아 올라간 신랑의 눈썹은 제 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듯했다. 


“신부출(新婦出).”


신부를 나오라고 이르는 집례자의 목소리가 초저녁 밤하늘을 뚫을 듯 낭랑하다. 


-저 벅 저 벅 저 벅


발소리가 너무 컸다. 천하절색 이시백 새신부 생김을 보려고 숨죽이던 사람들이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새신부의 키는 어림잡아 보아도 육 척이 넘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눈썹까지 팔을 들어 올렸음에도 양옆에 선 수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어깨는 전장에서 적장의 수급을 베고 귀환한 장수의 그것처럼 넓었다. 화사하고 고운 활옷이 갑주를 두른 것처럼 당당했다. 


“저기 위쪽에서 온 사람인가? 거기 여인들이 키가 크다면서요.”


“그래도 좀 너무 큰 것 아닌가? 어깨도 제법 넓어 보이는데.”


구경꾼들이 새신랑 눈치를 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 앞에 마주 선 신랑 이시백의 늘씬하고 시원하게 뻗은 어깨며 품이 작아 보일 지경이니 말 다 했다. 


“부인 기골이 저리 장대하니, 이거 어디 첫날밤이나 제대로 치르겠는가?”


“그러게, 덩치가 저러하니 신랑이 팔에 품을 수나 있으려나?”


‘품기는 뭘 품어.’


저들 딴엔 소리를 죽인다고 속삭였지만, 귀가 밝은 시백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아무리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화가 솟구쳐 올랐다. 품기는 고사하고 합방조차 없을 것이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니 다 쓸어버릴까......’


이마를 찌를 듯 솟구쳐 올라간 새신랑의 눈썹이 더 솟구쳐 올라갔다. 


어차피 부모님과 약속이 된 허울뿐인 혼례였다. 불같이 화를 내던 시백에게 그저 혼례를 올리기만 하면 그간 반대 해오던 월영과의 만남도 허락하겠노라 했다. 온갖 패악을 부리며 반항하던 시백은 그 말에 겨우 혼례를 수락했었다. 


본래 계산에 밝은 시백이었다. 저라고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당분간만 견디면 되었다. 


그래도 막상 거지 같은 혼례를 올리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근배례재행여지巹杯禮再行如之”


신랑 신부 술잔을 나누라는 말에 술잔은커녕 초례상을 발로 차 엎어버리고 싶은 시백이었다. 시늉만 하라고 입에 대는 술잔에 든 술을 모조리 마셔버리고 싶은 것을 참았다. 


“이제 세 번째 잔에서 신부 얼굴이나마 볼 수 있겠네. 그려.”


키가 커도 얼굴이 예쁘면 훤칠한 시백과 어울릴 것이었다. 구경꾼들은 다시 숨을 죽이고 표주박을 받아드는 신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


신부의 얼굴은 분명히 혼례 날이라고 분 바르고 단장을 했을 터인데 어찌 저리 건강한 얼굴색인지 알 길이 없다. 낯빛만 그러하면 다행이게. 


신부의 눈은 길 가던 불한당과 눈싸움을 해도 질 것처럼은 안 보였다. 그나마 크고 모양 좋은 눈 위에 자리 잡은 눈썹은 사내 대장부마냥 짙게 뻗어 있었다. 


코는 모난데 없이 솟았으나 날카로워 단아한 미녀의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술은 얇아 어디 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하게 얇은 꼴이요. 선이 또렷한 얼굴이 신부를 다부지고 훤칠하게 보이게 했다. 


한마디로. 새 신부 얼굴이 장군감이었다. 


“아이고, 신랑이 조선팔도 최고 미남이건만......”


“집도 절도 없다 들어 신랑 집에서 혼례를 치르는 것도 모자라, 덩치가 사내 못지 않으니 어찌하오? 가진 것이 없어도 너무 없어....”


“차라리 사내로 태어났으면 천하를 호령할 미남상이건만..... 쯔쯔”


“어디 부정 타게 초례청에서 혀를 차시오!”


“답답해서 그러지.....”


구경꾼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 탄식을 뚫고 묵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컥, 컥컥! 


대장군의 호령 같은 기침 소리에 구경꾼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표주박에 든 술을 신부가 호기롭게 들이키다 사례가 걸린 모양이었다. 


“환장하겠네.....”


입술을 깨물고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말에 새신랑 옆에 선 시자의 눈이 똥그래졌다. 


시자가 놀라거나 말거나 시백은 신부의 얼굴을 보니 절로 분이 일었다. 허울뿐인 계략혼이라지만 해도 너무했다. 


“대례필(大禮畢).”


끝났다. 다 끝났다. 시백은 성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들어가려 했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초례상을 발로 차 엎으려 했다.


-꼬꾜...


‘네가 무슨 죄냐.’


하지만 하필 모가지만 내놓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닭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겨우 울분을 삼켜냈다. 


*** 




신방에 우두커니 앉은 신부의 모습을 보니 시백의 심화가 들고 일어났다. 저 사람에게 화를 낼 이유는 없지만 보고 있자니 시백의 심미안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오늘 아침까지도 몇 번을 도망갈 생각을 했다. 어머니와 한 모종의 약조 때문에 참으려 애를 썼지만, 화가 많은 성격이 약조했다고 화가 안날리는 없었다.


이미 계산에 밝은 어머님과 저 신부인지 신발이 합의를 보았을 테니 시백이 나설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허나 해도 너무했다. 혼례를 지켜보던 사람들조차도 새신부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아름다운 미인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이시백이 왜 화가 나지 않을 텐가. 


‘이런 사람이 내..... 아니지, 세 번 째 잔도 내가 마시지 않았으니 이 자는 내..... 우리집 사람이 아니다!’


은은한 호롱불 아래에서 보면 사람이 좀 더 예쁘게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여인은 대낮에 혼례식에서 본 모습보다 더 크고 더 무서워 보였다. 


잠시간만 이렇게 앉아 있다가 곧 나갈 것이다. 반 시진 정도만 한 방에 있어도 완전히 달라진다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바깥에서 신방 구경에 안달이 난 하인들이며 사람들 때문에 잠시간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다. 


문밖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대놓고 들려왔다. 


“다들 물러가라!”


시백이 일갈하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꽤 오래 들리더니 한참 만에야 사라졌다. 


‘아이고 머리야....’


평소 습관처럼 오던 두통을 맞이하려 눈을 감던 시백이 멈칫하며 눈을 떴다.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대신 눈을 뜨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 안에 바위 같은 이가 괴괴하게 앉아 있으니 두려움이 가슴을 치는 것이다. 한밤중에 산길에서 혼자 호랑이를 만나는 기분이 이러할까. 시백은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혼례를 치르느라 피곤했을 터이니, 그만 주무시오. 나는 이만 가보겠소.”


고개를 돌린 시백이 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고 사내같은 여인이라 할지라도, 돈으로 합의된 혼인이어도, 소박을 맞히자니 아주 조금 마음이 쓰였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낸 시백은 문간으로 향했다.


문지방을 넘어서는데 몸이 휘청했다. 어어 하며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는데 시백의 머리를 받쳐오는 손이 있었다. 좋은 냄새가 훅 끼쳐왔다. 신부가 시백의 머리를 받치고 허리를 단단히 잡아 넘어가지 않도록 해준 것이다. 묘한 자세로 신부에게 안겨있는 모습이라 시백은 갑자기 성이 났다. 


“이 무슨! 아녀자가 어찌 감히 사내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단 말이오!”


시백이 나가려 하자 신부가 시백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이 사달을 낸 모양이다. 못생긴 주제에 음탕하기까지 하다니, 달리 얼굴값을 하는 모양이었다.


“......”


신부가 조용히 문을 가리켰다. 문틈에 시백의 옷자락이 끼어있었다.


“흠, 흠”


시백은 헛기침하며 신부의 손을 쳐내었다. 바로 서서 옷을 탁탁 털었다. 신부는 말없이 자리로 가 앉았다. 덩치에 맞지 않게 행동이 번개같이 빠른 사람이었다. 


신부는 시백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마주 보았다. 눈 속에는 부끄러움이라던가 하는 감정은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성급한 시백을 책망하는 눈빛도 아니었고 첫날 밤의 은근한 기대감이나 정욕 같은 건 하나도 없는 눈이었다. 


“그럼 정말로 나가보겠소.”


시백이 일어섰다. 


“잠깐만!”


다급하고도 걸걸한 신부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시백의 옷깃이 잡아채졌다. 


“어!” 


놀란 시백이 저도 모르게 발길질을 했다. 한밤중에 불한당을 만난 것처럼 목숨의 위협을 느껴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아녀자에게 이 무슨 행패인가 싶어 자괴감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몸은 반사적이었다.


시백은 얼른 그녀를 받치려 했지만 꼴사납게도 그녀의 너른 가슴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너른 가슴?’


신부의 판판한 가슴 덕에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팠다. 뒤통수부터 자빠진 신부도 신음을 냈다. 그 신음마저 낮고 어두워 시백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신부의 허리께를 받치다 깔린 손이 아팠다. 손을 꿈틀하자 신부가 얼른 허리를 들어 손을 빼게 해주었다. 


시백은 후다닥 일어나 의관을 정제했다. 방구석으로 데굴데굴 굴러간 사모를 바로 쓰려다 그냥 두었다. 


“괜찮으시오? 나도 모르게 놀라.... 아니, 말로 하면 될 것을 어찌하여 매가 쥐잡아 채듯 사람 옷깃을.... ”


“괜찮습니다. 저기, 서방.....”


“서방님이라니! 서방님이라니! 그리 부르지 마시오!”


시백이 기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 부모님과 이미 다 말을 나눈 거로 아는데? 단둘이 있을 때는 절대로 서방님이라 부르지 마시오!”


“네, 저 그럼 도령...... 저 한 번만 좀 빼 주시면.....”


“빼? 뭘 빼?”


시백의 얼굴이 홍옥보다도 붉어졌다. 


“용잠을..... 비녀를 빼려면 팔을 올려야 하는데 옷이 너무 끼어 팔이 올라가질 않습니다. ”


“하아.....”


시백은 신부의 뒤로 돌아가 조심스레 댕기를 걷어내고 비녀를 뽑았다. 시백의 그 행동을 쉬이하게 해주려고 신부가 목을 숙였다. 여인 치고 목이 길고 굵었다. 


‘떠돌이라더니 많이 그을렸군.’


신부 어깨가 넓어 기다란 용잠이 보통 비녀처럼 보였다. 손대기 싫었으나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에 단단히 조인 쪽머리를 꽉 잡고 그것을 빼어냈다. 비녀가 뽑혀져 나오자 머리칼에서 옅은 향기가 났다.


“되었소?”


신부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팔을 올리려 애썼다. 요즘 장안에 유행하는 식으로 만든 옷은 소매통이 좁아 벗기가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끙끙대며 옷을 벗으려 하자 보다못한 시백이 나섰다. 


“환장하겠네. 거기 가만히 있어 보시오.”


시백은 먼저 활옷의 고름부터 풀었다. 단단히 묶인 가슴의 매듭을 찾아서 당겼으나 도통 빠질 일이 없었다. 이로 물어뜯어서라도 빨리 벗겨주고 방을 뜨고 싶어 가슴께에 입을 대자 신부가 움칫 거렸다. 


'걱정도 팔자인 사람인가보군. 어디 저 같은 걸 덮친다고....'


목욕재개 한 새색시랍시고 향기는 좋으나 거기까지다. 신부의 단단한 가슴이 콧대에 닿았다. 이로 물어 뜯다시피 매듭을 풀고나자 신부는 소복 차림이 되었다. 


“이제 되었소?”


“네, 고맙습니.....”


“헉! 다 당신.....!


신부가 고개를 들고 인사를 하니 하얀 저고리 동정 아래 그을린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시백은 숨이 멎을 듯 놀라 신부의 목을 손가락으로 찌를 듯 가리켰다. 

신부의 목에 홍옥 한 조각이 그대로 걸린 듯 목젖이 튀어나와 있었다. 

퇴고가 없는 연습용 글이 올라오며 사전 공지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순서가 없고 수정과 재발행이 매우 잦아요:)

독덕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