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도 거의 다름없는 하루였다. 적당히 수업을 듣고 대충 시간을 때우다가 한낮이 조금 지날 때쯤 부활동도 하지 않고 동급생에게 성의 없는 하교 인사를 건네며 느긋이 집에 가는 평범한 일상. 입학생 수가 줄어들어 이제 남은 학급은 6개밖에 되지 않는 학교. 폐교에 대한 소문도 떠돌고 있지만 아야세 에리에게는 어찌 되도 좋을 이야기였다. 할머니부터 어머니를 거쳐 에리까지 3대가 다니는 학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반지. 그 외에는 딱히 유별날 것이 없는 학교였다. 어머니께 들었던 것보다 벚꽃이 더 예뻤다던가, 이제는 합창부도 인원수가 적어져 도쿄도 예선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던가, 이미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풍경과는 차이가 있었기에 애착이 덜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풍경을 이어 줄 사람이 더는 없기에 괜한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적당히 편안한 하루가 될 수 있었던 오늘을 완전히 뒤집은, 교무실에서 들은 내용을 다시 떠올려본다.

‘이제는 마땅한 사람이 더는 없단다.’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학생회장 입후보까지 브레이크 없이 달려 나갔다. 엄밀히 따지자면 브레이크가 있었는데도 굳이 밟지 않은 거지만.

입후보자가 없다고 시작한 이야기는 에리의 성적 이야기를 지나 에리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넘어 동네 토박이로 빠지더니 학생회장 공석을 인질로 잡아 결국 ‘맡겨주세요’라는 답으로 끝맺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흐름도 흐름이지만 인질범에게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바로 백기투항이라니, 언제나 이번만은! 이라 하면서도 결국 ‘너 밖에 없다’라는 말에는 넘어가고 마는, 그리고 떠안게 된 이상 결과를 내야 한다는 그 성격에 또다시 진절머리를 내던 참이다.

누구한테 하소연을 해 보려고 하더라도 대답이야 뻔했다. 잘됐네~ 라는 성의 없는 반응들. 그나마 귀담아 들어주는 친구도 그게 네 운명인갑다, 라고 답해버리는 것이었다.

신사에 가서 길흉이나 점쳐볼까, 하고 접어든 길. 하지만 눈 앞에 놓인 높은 계단보다도, 저 위에 있을 친구는, 아까처럼 해보자~ 라는 말을 할 것만 같아서, 첫 단에 발을 올릴까 하는 순간에 평소 가 보지 않은 길로 돌렸다.

번화가이지만 그렇게 인적은 없는 좁은 골목길. 낡은 전신주 밑에 카펫인지를 깔아두고, 귤상자일까 싶은 나무 상자에 수정 구슬을 올려놓고 그 앞에 앉아있는, 정말 소설이나 만화에서의 묘사 그대로의 점술사 차림을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다른 사람들은 배경 정도로 생각하는 걸까. 그들도, 여자도 서로 관심을 가지는 일은 없었다. 에리 역시, 그냥 그렇게 지나칠 생각이었다.

“학생, 점 보고 가지 않을래?”

“저요?”

실수로라도 눈길이 갈까 목에 잔뜩 힘을 주고 고개도 그 쪽을 피하는 방향으로 살짝 돌리는 노력은, 단지 에리를 부르는 한 마디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또? 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도 소용없었다. 오늘 하루는 또 그렇게 휩쓸려 다니는 그런 날인가보다, 하고 몇 번인지도 모를 한숨을 쉬었다.

“그래, 오토노키 학생. 뭔가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후드를 뒤집어 쓴 점술사와 눈이 마주친다. 살짝 녹색 기운이 도는 벽안, 붉은 색이 조금 섞인 금발. 후드에 머리 대부분이 가려지고 또 그늘져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굉장히 희다-라는 인상만이 또렷이, 그리고 왠지 익숙한 목소리 같다-라는 따스함만이 에리의 안에 남았다.

어차피 대충 어림잡고 하는 말일 것이라고는 알고 있다. 아마 굳어있는 내 얼굴을 보고는 고민이 있으려니 하고 짐작하고 말을 붙은 거겠지.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붙잡힌 것도 있고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기에, 복채 정도는 적선하는 셈 치기로 하고 점술사와 몇 마디를 나누어보기로 했다.

“제 표정에 그렇게 티가 나나요?”

“아니? 학생 표정은 괜찮은데.”

“그럼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건 영업비밀인 걸로 해 둘게.”

점을 치는 사람이라기에 으레 초로의 노인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가까이 해 보니 에리와 나이차이가 별로 없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깨끗한 손등, 맑은 목소리, 반짝이는 눈, 비록 코 아래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지만 그럼에도 어디에도 구김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말투 역시 또래 아니면 두어 살 정도 위 정도일까. 언니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 때부터 이미 에리의 경계심은 한참 누그러져 이렇게 장난스럽게도 말할 수 있었다.

“점을 보시는 분이라면 오히려 영력이나 신력으로 알았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나는 그런 거 없으니까.”

“네?”

의외의 답에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소리에 에리가 황급히 입을 막고는 가벼운 목례로 사과한다. 하지만 상대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가볍게 웃어왔다.

“하지만 사실인걸. 그런 신통한 능력이 있었다면 우선 나를 위해 쓰는 게 먼저겠지. 안 그래?”

후드 안에서부터 뻔뻔함에 가까운 당당함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아 에리는 말도 못 하고 곤란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무엇이 신났는지 계속 제멋대로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한다면 내 미래부터 미리 보는 거야. 복권의 번호라든가 운수가 안 좋은 날이라든가 나는 지금 짝사랑하는 그 사람과 사귀는 사이가 될까, 만약 헤어진다면 언제 무슨 이유로 헤어질까 이런 것들.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불안한 일도 없고, 큰 일이 닥치기 전에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닌데요.”

“그렇지? 네 생각은 어때?”

라고 갑자기 물어오는 바람에 적당히 맞장구나 치던 에리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대충 얼버무릴까 싶었지만 에리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에리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적당히 되는 대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네요.”

그치? 라는 추임새에 맞추어 어깨를 한 번 들썩인다.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만한 일이라면 방금 전에도 있었고, 2년 전에도 있었고, 아주 옛날부터 있었다. 방금 전의 일이라면 역시 순순히 호출에 응한 것, 2년 전의 일이라면 아무 생각도 없이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오토노키자카에 입학한 것. 적어도 이 두 가지만 아니었어도 막막한 기분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학생회장에 단독 입후보, 그것도 등에 떠밀려 조만간 폐교될 학교의 회장을 떠안을 일도. 이번에도 스스로 짐을 떠안은 자신에게 한숨을 쉬며 에리가 동의의 말을 꺼낸다.

“오늘 같은 일이 있을 거라고 알고 있었다면 진작부터 피할 수 있었겠죠.”

“고민 할 필요도 없고?”

“네.”

하고는 고개를 가볍게 흔든다.

“꽤나 적당주의를 지향하고 있구나.”

“정말로요.”

적당주의. 대충 만든 말 같지만 이것보다도 에리의 희망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는 없을 것이다.

뭐든지 적당히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적당히 흘려듣고 적당히 분위기 타고 적당히 할 것만 하고 적당히 설렁설렁 했었다면 이렇게 혼자 끙끙 앓는 일도 없었을 테다.

“하지만 운명이려니 해야지.”

“그런 운명이라면 사양하고 싶은데요.”

아까와도 같은 대답. 몇 시간 전에 친구와 했던 말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그리고 이렇게 남이 시키는 대로, 내가 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누가 짜 놓은 판에 밀쳐 올라가는 게 내 운명이라면, 이건 비극 속 등장인물보다도 더 슬픈 게 아니냐는 생각을 아까도 했었던 것 같다. 억지 기시감이다.

“역시 하기 싫은 일이라?”

“하기 싫은 일, 이라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네요, 생각해보면.”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더니, 점술사도 같이 입가에 호를 그려주었다. 그에 따르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마치 이것저것 캐물어 오는 친구들의 재촉 같아서 에리는 조금 더 털어놓았다.

“학생회장에 입후보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나온 참이거든요. 방금 교무실에서. 사실은 저 그렇게 공부 잘 하는 편도 아닌데 이상하잖아요, 저한테 학생회장 해보지 않겠냐고 하는 게. 근데 알고 보니까 토박이면서 3학년에 진급하는 사람 중에 떠오르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부탁하시는데 그 자리에서 안 하겠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만 하겠다고 해 버렸죠.”

“적당주의와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버렸네.”

점술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어버리니 에리도 따라서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앞으로는 그렇게 어영부영 떠안지 않기로 하고서도 마지막에 크게 터뜨려버렸으니 자기가 봐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래도 정말 하기 싫었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하고 싶어요.”

“어떤 점에서?”

“우리 학교, 폐교까지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여기서 제가 학생회장을 맡는다면 백년 가까이 이어 온 역사의 마무리를 짓기 시작하게 되는 거죠.”

“감투정신이네.”

“그렇죠.”

하고 에리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정말 말 그대로였다. 에리 하나가 희생하여 열과 성의를 다 한다면, 지난 날들에 부끄럽지 않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미 교무실을 나올 때부터 내심 그런 결심을 했다.

어차피 폐교될 학교, 학생들도 슬슬 늘어지고 있는데 그깟 학생회장이 뭐가 대수인가, 졸업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 시간만 때우고 있으면 알아서 흘러가지 않을까 하고 간단하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 에리에게 그런 건 어울리지 않았다. 내세울 역사도 없지만 역시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대개 오토노키자카를 다녔을 테니까.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다니고 있는 것처럼. 저마다의 추억이 쌓여있는 학교를 말 없이 가만히 앉아 보내는 건 역시 안 되지.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지금까지 쌓아온 추억과 인연들에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그런 마지막이 되도록 하자고, 다른 사람이 얼렁뚱땅 학생회장직을 수행할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식으로요?”

“그래. 네가 학생회장에 입후보 하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질문에 에리는 조금 생각해보았다. 왜 자기였어야만 할까. 아까도 생각했지만 3학년에 진급할 사람 중에 토박이, 그 중에 선생님이 떠오르는 건 에리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분명히 그건 핑계였을 것이다. 옛날부터 미는 데 약했던 에리였으니까, 이번에도 적당히 구실을 붙여주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들여 줄 거라고 일부러 그랬을 게 분명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시키면 할 거니까 시킨 게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건 에리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나한테 시키길래 했다-라는 건 나에게는 자유의사 같은 건 없습니다, 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았기에. 그래서 에리는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대답해두기로 했다.

“저를 믿어서가 아닐까요?”

“너를 믿고?”

“네. 조금 잘난 척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무언가 맡긴다는 건 제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맡기는 거겠죠. 마무리라던가.”

그것이 에리의 유일한 자랑이었다. 여태껏 억지로 맡은 것 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들을 내어 왔다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그렇기에 마무리를 짓는 일은 어떻게 보면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하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에리를 향해 다가오는, 반쯤 감긴 눈을 한 점술사의 얼굴에 에리는 놀라며 몸을 조금 뒤로 뺐다.

“정말 너를 마무리 투수로 생각하고 세운 걸까?”

그런 질문을 받아도 에리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선생님에게도 생각이 있었던 건지,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지, ‘에리라면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타인의 믿음인지 내 자존심인지.

“혹시 너라면 폐교를 막을 수 있는 비책이 있을 거라 생각하셨다던가?”

“차라리 운명이라고 하는 편이 설득력이 있네요.”

“지금 건 농담.”

살짝 어깨를 들썩이는 점술사와 한숨을 쉬는 에리. 그 안에 숨은 아쉬움을 눈치 챈 사람이 한 명.

“그러면 너는, 이대로 학교가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을 학생들이 폐교를 원치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무를 수는 없을 테니까요.”

누군가 에리에게 오토노키자카가 폐교된다는데 재학생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어제도 오늘도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고. 자기자랑을 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일개 학생으로서 문부성에 찾아가 폐교 결정을 철회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설령 에리가 오토노키자카가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학교가 없어지는 걸 원치 않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나요. 학생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설령 모든 학생들이 오토노키자카의 영속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당장 생각나는 수단이라고는 서명운동 정도. 하지만 그런 것들도 결국엔 무언가 시도를 해 보았다는 얇은 충족감으로, 폐교를 묵묵히 지켜보았다는 무력감을 희석하는 위선일 뿐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이조차도 최선의 결과일 테지만, 정말로 폐교를 막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는 커다란 패배감으로 남을 터였다. 그럴 바에는 그런 무력감과 패배감을, 우리가 이 멋진 학교에, 어울리는 마지막을 선사했다는 뿌듯함을 주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차라리 그럴 마음이 있는 자신이 총을 매는 것이 최선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아무래도 질문이 정확하지 않았나보네. 그럼 다시 질문할게.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학교가 없어진다는 전제는 하지 말고, 폐교를 논의하고 있는 지금, 너는 뭘 하고 싶어?”

범위를 좁혀주었어도 에리는 당장 대답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런 건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폐교 결정은 순 어른들이 결정할 뿐이고, 폐교까지의 정리는 차기 학생회장인 에리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학생회장도 에리 본인의 의사는 아니었고. 그렇기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에리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에리는 애매한 대답밖에는 할 수 없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 지금의 너로서는 아직 어렵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올리는 것도.”

뭐든지 다 아는 듯이, 에리를 빤히 쳐다보는 상대 때문에라도 에리는 쓴 웃음을 짓는다.

“저에 대해 뭐든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시네요.”

“이렇게 보여도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 그리고 어깨 너머 배운 점술도.”

“그렇다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미래도 알 수 있겠네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라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믿음이 쌓인다기보다는 오히려 의심이 쌓여가고 있기에 에리는 살짝 후드 안 사람을 흘겨보았다. 물론 그 시선을 받아내는 쪽은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되려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러면 알려주세요. 오토노키자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걸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지.”

조금의 틈도 없이 날아온 주제에 내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답에 에리는 기가 찼다. 그래서 이쪽도 사이 없이 질문을 이었다.

“그럼 제가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무언가를 남기나요?”

“남긴다고 할 수도 있고 남기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지.”

“순 엉터리 대답 아닌가요?”

오늘의 에리는 한숨지을 일이 참 많았다. 아까 교무실에서부터 지금의 대답까지. 그럼 그렇고 아니면 말고 식의 대답에 이제 지쳐갈 법도 했다.

“그러면 내가 예언을 하나 해 줄게. 지금 네 옆에 있는 친구와 너는 학생회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거야. 처음 며칠간은.”

“그것 참 감사한 말씀이네요.”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걸 맞춘 건 지금까지의 평가를 뒤집을 만한 놀라울만한 것이었지만, 뒤에 붙은 쓸데없는 말에는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어져서, 일부러 불편하다는 티를 내며 말을 끊듯이 마음에 없는 감사를 내뱉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너의 방침에 별다른 얘기를 안 할 거야. 이미 폐교는 확정이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없어질 학교에서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생길 리는 없겠지. 너는 그런 무기력함을 조금이나마 흐릿하게 만들 만한 수를 내기 위해서 고민할 테지. 옆에 있는 친구는 너에게 완전히 동의하지도,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고 묵묵히 네가 하려는 걸 거들어 줄 거야. 아마 입학식부터 다들 기운이 없어서 네 말은 건성으로 듣고 또 학생회에서 귀찮은 걸 하려나보다, 라고 생각할 테지만 말이야.”

“이건 예언이라기보다는 분석 아닌가요?”

얄미운 소리만 하는 점술사에게 에리는 조금 툴툴거렸다. 이 정도는 에리도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죽어가는 학교이기에 많은 예산을 들일 수는 없으니 저예산으로,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만한 행사를 만들까. 폐교 소문을 듣고 한껏 힘이 빠져 있을 학생들을 어떻게 다독여 참여하게 할까 등등을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는 중에, 남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소리를 예언이라는 이름으로 말하고 있으니, 에리도 좋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계속 들어봐. 너희들이 그렇게 몇날 며칠을 고민한 계획을 처음부터 뒤흔드는 후배가 나타날 거야.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폐교를 자기들이 막겠다고 말도 안 되는 활동을 허락해달라고 돌아가면서 떼를 쓰거나 하겠지. 그러면 너는 이제 폐교가 결정된 학교에서 일을 더 벌이고 싶지 않아서 거절을 하지만, 머지않아 그 아이들이 진지하다는 걸 깨닫는 날은 멀지 않아 찾아올 거야. 하지만 너는 이미 했던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어서 겉으로는 거절을 하지만 속으로는 응원을 하게 될 거야. 물론 네 친구는 그런 네 속도 모르고 물밑에서 이것저것 꾸밀 테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획을 흔든다? 후배가? 그리고 이 귀엽고 영리한 에리가,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도 거절한다? 단어들의 뜻은 알아도 그걸 이었을 때의 문맥을 도무지 읽어낼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지?”

“네. 하나도요.”

“세상은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그 학생회장이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춘다! 가을 문화제에서 연극을 상연하다가 사고친다! 그 모음에서 정상인 줄 알았던 학생회장이 제일 허당이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놀라겠지?”

“놀라는 걸 넘어 화가 날 정도네요.”

에리가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려버리자 점술사는 에리에게 들릴 정도로 키득대며 웃었다.

“언제까지나 가능성이야.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저런 미래가 오지 않을 수도 있지.”

“가능하다면 그런 평판을 얻고 싶지는 않네요.”

“나로서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데.”

인중과 함께 찌뿌려진 실눈으로 살피자, 상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게 어이가 없기도 해서 에리도 어깨에 힘이 빠졌다.

“힘들지 않아? 혼자서만 걱정하고 혼자서만 바쁘고 혼자서만 앓는 게.”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움직이느니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그 대답이 너무나 에리 같았는지, 점술사는 에리의 눈앞에서 검지 하나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 생각하면 안 돼. 안 좋은 버릇이야, 그거.”

“하지만 아까 그렇게 분석하지 않았나요? 결국엔 제 얘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도 없고, 친구마저도 완전히 같은 생각은 아니라고.”

“중간에 긴 얘기는 빼먹었구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듣지도 않았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한 방을 먹였다는 듯이 에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한 방 먹은 사람도 그에 걸맞게 볼을 이만큼 부풀리고 있었다. 비록 자신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상만으로도 볼 만한 광경이었기에 둘은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어쨌든, 그게 문제인거야. 뭐든 혼자 하려는 버릇. 하지만 너의 곁엔 친구들과, 후배들과, 또 너를 지켜봐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앞으로 만날 인연들과, 함께 보낼 시간들. 일 년도 채 안될 짧은 시간을, 정말 소중히 간직해줘.”

“겨우 일 년 인가요.”

에리가 졸업할 날을 이야기 하는 걸까. 정말 예언대로 에리와 일상을 함께 보낼 사람들이 생긴다고 해도 겨우 일 년. 그 아쉬움에 에리는 몰래 한숨을 쉰다.

“1년이지만 6년과도 같은 1년일 거야. 혼자만이 버둥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엔 옆에 누군가가 있고, 만날 일도 친해질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을 만나서, 시시하고도 평범한 날들을 함께 보내면서도 정말로 이런 일상에 의미가 있는 걸까 싶은 마음에, 즐겁다가도 고민되거나 하겠지. 하지만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하나로 이어져,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해 내는 그런 날이 분명히 올 거야.”

예언보다는 확신, 그보다도 진실과 같은 말에 에리는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혹시, 자신의 이야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다시 봐도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이라 에리는 다시 질문을 골랐고, 물으려 했다.

“자, 오늘의 영업은 이걸로 종료. 이제 너도 집에 가야지?”

“아? 아, 네.”

갑작스러운 선언에 에리는 얼빠진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딱 하나만 더 물어보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에리를 향해 흔드는 손짓에 묻고 싶었던 것도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주변을 반 발짝 안을 서성이다가 여전히 변함없는 작별 인사에 에리는 그렇게 등을 돌려 끌리지 않는 발걸음을 이었다.

“아, 중요한 걸 까먹었네.”

들리라는 듯 일부러 큰 소리를 내는 쪽을 향해 돌아선다. 그곳에는 에리를 향해 서서, 후드를 벗은 점술사가 서 있었다. 본 적은 없어도 왠지 그리움이 느껴질 만큼 익숙한 그 모습을 에리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생일 축하해! 아야세 에리!”

예상치도 못한 말에, 그리고 웃고 있지만 울 것만 같은 그 눈에 에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댓 걸음, 그렇게도 가까이 마주보고 섰지만 그 간격은 너무나 멀어, 몇 년이고 닿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간격을 메우는 건 가벼운 바람뿐. 그 바람에 목소리를 싣는다.

“고마워요. 여러 가지로.”

이것저것 할 말은 많았지만 간단히 줄인다. 아마 영리한 저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도 다 알아채겠지.

“나도 고마워! 지금까지의 너의 날들에, 그리고 앞으로의 너의 날들에!”

거 봐. 역시 알아들었잖아. 그래서 에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 수 있었다.

“다시 만나요, 언젠가 훗날에.”

“그래, 언젠가. 언젠가 꼭!”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되는 걸까. 꼴사납네, 그 나이에 우는 건. 그러니까 지금부터 연습을 해 두어야겠다. 오늘 같은 날이 다시 온다고 하면, 그리고 내가 저기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웃어 보이겠다고. 미래란 건 알 수 없지만, 어떠한 날이 되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그렇게 둘은 한쪽은 웃는 채, 다른 한 쪽은 우는 채, 그렇게 작별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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