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U:CA STUCKY 스팁버키 SF AU 앤솔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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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회 동네 히어로 온리전(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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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불가능의 애정
 



성욕은 어째서 그토록 강력한 것일까. 열여섯하고도 반을 지났을 때 스티브 로저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아직도 알파도, 오메가도 아닌 그저 보통의 베타였다. 남들이 겪는 미칠 듯한 히트 사이클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알파오메가 호르몬의 수치가 가파르게 치솟는, 요컨대 발정기. 남성은 또 여성보다도 호르몬의 부침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호르몬의 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이성을 앞서는 충동에 대해서도 대체로 참을 수 있다고 여겼다. 철이 들기도 전부터 병과 함께 살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 했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자신의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어쨌든 끌어안고 살아야만 하는 것. 그런 인내심 있는 소년에게 히트 사이클의 성욕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다양한 로맨스, 사랑의 표현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페로몬에 휩쓸려서 그래.” “발현하면 그렇지 뭐.” 그런 어중띤 관용은 납득하기 힘들고 그의 더듬거리는 상상력은 그렇게 뻗어나가지도 않았다.


2차 성장기가 지나고 스무 살이 가까워지며 주변에서는 하나둘씩 어린아이의 티를 벗고 첫 히트 사이클을 맞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스티브 로저스도 커졌다. 목젖은 조금 솟았고 더티 블론드의 머리카락보다 약간 더 진해 거의 브루넷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수염이 보송보송하던 턱에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현은 없었다. 스티브는 다른 사람에겐 여전히 미성숙한 베타로 보였다. 162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키와 43kg의 몸무게가 그를 더욱 베타로 보이게 했다. 우월한 유전자만을 엄선해 모여 살고 있는 돔 안의 도시, 센터에는 어울리지 않는 실패작처럼.


두서너 명 정도는 스티브 로저스처럼 발현이 되지 않은 채 베타인 채로 남아 있었지만 스무 살이 넘자 발현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지만 심장 검사를 위해 입원했을 때 우심실이 약해서 수술을 받아야한다는 결과와 함께 그 때문에 호르몬 발현이 늦춰지는 것 같다는 소견서를 받을 수 있었다. 설명해주는 의사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이런 말을 하게 되어서 안타깝습니다, 스티브 로저스 씨. 하지만 심장을 수술한다고 해서 발현이 될 거란 보장은 할 수 없어요. 몸이 호르몬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스물네 살이나 먹고도 여전히 베타인 데다가, 병약한 남자. 수군거림은 보이지 않는 꼬리처럼 스티브의 뒤에 늘 따라붙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 베타에 머무르고 있는 미성숙한 스티브는 오히려 호르몬에 그토록 격렬하게 휘둘리는 알파와 오메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알파오메가로 또 하나의 호르몬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가르치지만 어째서 진화한 인간이라고 하면서 성욕이 그토록 강력해서 휘둘리는지. ‘밖’에는 정말로 원숭이나 유인원처럼 베타밖에 없어서 발현되는 성은 없고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성만 있는지. 


“결국 본능에 따라 행동하게끔 움직이는 호르몬이 어째서 진화의 정점이라는 건지 모르겠어.”


또 하나의 자신을 찾았을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광고 문구를 보며 스티브가 중얼거렸다. 광고에는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자신만만한 포즈를 하고 있었다. 발현을 축하하는 장미꽃다발을 허벅지와 무릎에 얹은 채. 그녀는 알파일까, 오메가일까? 스티브는 그 디지털 광고판 안에 어떤 처리가 되어 있어 조합된 페로몬이 계속 풍길 것이며, 그러므로 자신의 옆에 있는 알파 남성인 제임스 뷰캐넌 반즈, 버키는 그 두 가지의 성을 모두 알아보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베타에게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희미하고 화학적인 꽃냄새인지 풀냄새인지 그런 것이 난다고 느낄 뿐이었다. 냄새에는 성별이 없었다.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로저스야. 진화에 올바른 방향이 있다고 생각하니? 진화는 그냥 환경에 적응한 결과에 불과해. 알파 오메가 호르몬을 굳이 진화의 정점이라고 생각하지 마. 거쳐 가는 길일 수도 있고 잘못 들어선 길일 수도 있다고.”


버키가 작은 목소리로 대꾸하며 헐렁하게 두르고만 있는 목도리 끝을 휙 어깨 너머로 넘겼다. 에스컬레이터로 지하로 내려갈수록 싸늘하던 공기는 차츰 따뜻하고 텁텁해졌다. 돔 안의 날씨는 늘 일정했고, 지구 북반구의 계절을 따라 온도를 조절했다. 지금은 12월이고 한창 겨울이었다. 센터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비를 내렸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엔 이틀 연속 눈이 예정되어 있었다. 일 년에 몇 되지 않는영하의 날씨.


스티브는 한 계단 아래에 있는 버키의 목도리 끝을 잡아당겨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버키가 한 계단 아래에 내려서 있는데도 둘의 키는 비슷했다. 


“하지만 센터에서 그렇게 가르치냐? 알게 모르게 진화는 옳은 길을 가고 있고 뒤쳐지는 자가 존재한다고 가르치잖아. 그러니 베타 인권 향상 클럽이 생겼고, 거기에서 날 초대했지. 내가 스물 네 살이나 먹도록 베타니까.”

“아냐, 솔직히 말해서 베타고 자시고 니가 초대받은 건 존나 쎈 키보드 워리어기 때문이지. 네가 베타라고 밝히기 전부터 와달라고 했잖아.” 


버키가 옷깃이 닿을 정도로 몸을 뒤로 기울여 가까이 붙어 속삭였다. 작은 키득거림이 두터운 코트를 들썩이고 스티브의 가슴팍에까지 전달되었다. 버키가 입은 두꺼운 코트 품에서는 스티브가 좋아하는 향수 냄새가 났다. 향수를 시향하러 돌아다니다 스티브가 마음에 들어하자 버키가 자신도 맡아보더니 좋아하면서 산 것이었다. 스티브는 가끔 그 향수와 진짜 버키 반즈의 페로몬이 정말 잘 어울릴지 생각했다. 그는 아직, 혹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세상의 향. 두 개의 호르몬이 존재하는 세계, 누구나 두 개의 세계를 알고 교차해 생각하는 사회에서 24살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하나의 호르몬밖에 알지 못한다는 건 두눈박이 세상의 외눈박이와 같은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잡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바로 눈앞에서 놓치고 있는 기분. 

지하철에 타자마자 버키는 스마트폰으로 내려야 할 역을 다시 한 번 검색했다. 도시를 반쯤 가로질러 가는 길은 멀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가며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갔지만 클럽 자체는 꽤 실망스러웠다. 클럽 멤버가 모두 베타는 아니었다. 그들은 일단 머릿수를 모으기로 한 탓에 스티브가 데려온 버키 반즈에게도 호의적이긴 했지만, 베타를 영원한 피터팬이라고 숭배하는 등신이나 ‘불행한’ 베타를 보며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려는 등신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신선했다. 베타를 향한 혐오감을 부추기는 센터의 정책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공간이 다른 곳에서는 없었다. 버키 반즈와 단 둘이 얘기했을 때도 시원함을 느꼈지만 버키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견해를 지닌 다른 사람들과 모여있다는 것은 신선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클럽 모임에 시간을 할애했다. 버키는 불규칙한 일정 때문에 항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두세 번 중에 한 번은 스티브를 따라 갔다. 


어설프게 모여있던 클럽의 성격이 좀 더 확실하게 바뀐 것은 나타샤 로마노프라고 자신을 소개한 베타가 들어온 이후였다. 단지 차별 대우에 대한 토로뿐만 아니라 클럽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고 센터를 향해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클럽의 성격이 확실해지자 그 때까지 어떻게 베타를 해볼까 하려던 등신들은 체에 거르듯이 걸러져 나갔다. 주요 멤버는 버키 반즈와 스티브 로저스를 포함해, 나타샤 로마노프, 샘 윌슨, 완다 막시모프, 클린트 바튼이었다. 가끔 샘이 아는 해커가 참여하기도 했다. 클럽 멤버가 늘어나며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고 자주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스티브가 가장 친한 것은 여전히 나타샤였다. 믿을 만하다고 표현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타샤와 스티브는 방법론이 겹치지 않아 꽤 부딪혔지만 그렇게 부딪히면서 때로 동지임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버키와 둘이서 식사하러 나왔을 때, 나타샤의 문자가 왔다. 처음은 ‘용건’을 메일로 보냈다는 문자였는데,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좀 길어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횡설수설 자신이 어디서 뭘하고 있었는지 고스란히 나타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자 버키가 몸을 기울여 화면을 들여다 보며 “뭐해?”하고 물었다. 


“별 거 아냐.”


스티브는 「나중에 메일 확인할게」라고 보낸 다음에 화면을 꺼버렸다. 그러나 버키는 이미 나타샤의 이름을 확인한 모양이었고, 그가 음흉하게 웃으며 스티브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나타샤하고 어때?”

“어떻긴 뭐가 어때.”

“그냥 친구우?”


스티브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냥 친구.”

“넌 남자고 나타샤는 여자잖아! 게다가 나타샤는 엄청 매력적이고. 둘이 그렇게 붙어다니고, 얘기도 많이 하고, 휴일에 이렇게 문자도 왔다갔다 하고, 이제 쫌 있으면 데이트도 하는 거 아냐?”

“아니거든. 난 취향 까다로워.” 스티브가 버키에게 감자튀김을 던졌다. “고작 그걸로 연애니 어쩌니 말이 나와? 알파오메가들은 너무 연애에 집착해.”


버키가 콧방귀를 뀌었다. 


“넌 곧잘 그렇게 알오와 베타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발현 안 됐을 땐 누구나 베타여서 그 기분 알거든.”

“올챙이 개구리 적 생각 못한다지.”

“아냐! 그런 걸 떠나서 네가 너무 연애에 관심이 없다곤 생각 안 해? 스물 네 살 먹고도 연애 안 한 기간이 아니라 연애를 한 게 손에 꼽히잖아.”

“연애하면 뭐하는데?”

“뭐하긴, 데이트 하지. 같이 영화도 보고, 좋은 데 있으면 같이 가고, 식사도 같이 하고.”

“그건 너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버키가 긴 빨대로 바나나 쉐이크를 휘저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는 크게 윙크하는 펠리컨이 그려져 있었다. 바나나 쉐이크가 거칠게 플라스틱 컵 안에서 소용돌이 파도가 되고, 투명했던 펠리컨의 눈동자 위로 끈적한 바나나 쉐이크가 덮었다. 


“우린, 글쎄, 연애할 사이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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