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개는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곧 이 세상에 온전히 홀로 남게 된 자식을 위해 아버지가 건넨 낯선 선물은 따뜻했다. 품에서 바르작 거리는 그 작은 생명을 안아 들고 집에 오던 날에 길에서 조금 울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던 부분이라. 이 기억에 대해서 나 말고 떠들 사람이 있다면, 그 날 이름 붙여준 스쿠비 뿐이었다. 녀석은 훌륭한 가족이었다. 파멜라도 녀석을 퍽 좋아했고, 녀석도 그랬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스쿠비를 오빠로 알고 자랄지도 모르겠다고 농담을 했었는데, 작은 아이가 스쿠비와 함께 노는 모습을 볼 기회는 없었다. 사고가 있었지만,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죄다 잘못 얽혀 있었다. 나는 그날 일 때문에 약속에 늦었고, 그녀는 그저 발을 헛디뎠을 뿐이었다. 의사는 운이 나빴다고 했다. 나도 의사라서 아주 잘 아는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위안을 얻을 수는 없었다. 파멜라와 헤어진 후에 내게 남은 건 스쿠비와 세 사람을 위한 집뿐이었다. 혼자 살기에는 턱없이 넓은 집에서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던 아이의 이름을 소리 내서 부르면 녀석이 쳐다보곤 했다. 조안나, 우리는 그렇게 허공에 이름을 붙였다. 때때로 부를지언정, 울지는 않았다, 파멜라와 둘이서 눈물을 다 뽑아낸 탓이다. 서로를 탓하지 말자고 약속은 했지만, 같이 있는 게 고통이었고. 파멜라는 그걸 못 견뎌 냈다. 결국은 그녀가 먼저, 나를 원망한다고 털어놓았을 때. 그녀나 나나 아주 후련했고, 당연하게도 이혼을 전제로 모든 것이 돌아가기 시작했었다. 이혼의 시작은 준비했던 물건들을 치우는 일에 있었다. 포장을 뜯지도 않은 젖병은 환불했다. 점원은 아무 말도 묻지 않았고, 나와 파멜라도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 이혼 직후까지 우리는 대화가 없었다. 그냥 서류를 내밀었고, 서명했고. 정해진 날짜를 가리켰고. 고개를 끄덕였고. 마지막엔 잠깐, 악수를 했다. 그렇게 끝이었다. 파멜라가 집을 떠난 이후로 3년을 스쿠비와 둘이서 살았다. 아기방은 깨끗이 비워두었다. 파멜라와 둘이서 골랐던 요람은 싼값에 팔아버렸는데, 어설프게나마 직접 만들었던 모빌은 텅 빈 방에 홀로 남아 있었다. 스쿠비도 그 방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나도 그랬다. 

 그렇게 영원을 살 줄 알았다, 우습고 유치하게도. 착각이 깨지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 녀석은 내가 한참이나 소리를 내서 크게 불러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녀석을 찾아서 평소에는 찾지 않았던 아기방의 문까지 열었을 때, 나는 모빌 밑에서 평온하게 잠이 든 듯한 스쿠비를 찾을 수 있었다. 녀석의 머리맡에 섰는데, 모빌이 방해됐다. 거추장스러운 모빌을 피해 자리에 주저앉았더니 바지에 먼지가 묻어났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부유하는 먼지가 꼭 스쿠비 자체인 것만 같아서, 숨을 깊이 들이쉬었더랬다. 그렇게 한참을 숨만 고르다가, 차갑게 식은 녀석을 안은 채로 병원에 전화를 냈다. 병가라고, 감기에 걸린 목소리를 흉내 냈는데 잘 먹혀들었는지 푹 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로는 더 쉬웠다. 출근준비를 마친 몸으로 스쿠비의 장례를 치렀다. 동물병원에서는 스쿠비의 나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위로했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로는 말없이 가만히 견디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정말 아무것도 남질 않아서, 모빌도 뜯어 버렸다. 그리곤 이사를 준비하려다가 소파에 주저앉아서 얼굴을 문질렀다. 아무 소음도 없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제는 TV라도 틀어놓지 않으면 잠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태어난 이후로, 온전히 처음 혼자인 생활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이별은 언제나 성급하고 슬픈 구석이 있지만, 흘리는 말이라도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벌써, 개를 키우는 즐거움을 알아버렸으니. 혼자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다음 개에게는 제임스라고 이름 붙여야지, 라고 벌써 생각마저 마쳤던 것이었다. 

 


James

 


 

 스코티는 ‘미쳤다’고 일갈했다. 영 틀린 말은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옆에 있던 술루도 퍽 걱정스러운 표정을 더 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거기까지만 해, 거기까지만. 그 말에 스코티는 지랄한다고 욕을 했고, 술루는 난처하게 웃었다. 인정한다니까. 나도 알아. 미친 짓인 거. 술루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잘 아시면서 왜 그러시는 건데요? 물음이 가볍게 뺨을 때리고, 스코티도 거들었다. 그래, 대답이나 해 보지그래. 뺨을 두 대 맞은 셈 치고, 입을 열었다.

 “외로워서.”

 둘 다 금방 입을 다물어 버린다. 거 봐라. 결국, 그럴 거면서. 잠깐 눈을 내리깔았더니, 빈 잔에 물이 차올랐다. 나는 이럴 때는 술을 좀 나눠 줘도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스코티는 코웃음을 쳤다. 재활 중인 놈한테 술이라니, 나는 미치지 않았거든. 의사양반. 술루가 옆에서 금방 거들었다. 이제 1년째인 거 맞죠? 나는 주머니를 뒤져서 코인을 찾아 내밀었다. 커다랗게 ‘1’이 찍혀 있는 동전을 들여다보던 스코티가 물었다. 그래서 정말로 그 인간이랑 같이 살겠다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뭘 믿고? 아니, 말마따나. 자는 사이에 귀중품이나 가구, TV를 들고 튀어버리면 어쩌느냐고.”

 “걔 별로 힘 안 세.”

 몸뚱이만 멀쩡하더라고. 술루는 그 말에도 여전히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스코티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길에서 사람을 주워 온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그럴 수도 있지. 게다가.

 “이름이 제임스더라.” 

 “…운명론까지 들이밀 생각은 마, 의사양반.”

 “아니 그냥 그렇다고.” 

 술루가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서 스코티가 간단하게 덧붙였다. 스쿠비 보내고, 다음에 개를 키우면 제임스라고 부를 거라고 그랬거든. 술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단한 우연이긴 하네요. 역시 이공계 인간은 못 쓰겠다고 한마디를 했더니, 둘 다 눈을 흘겼다.

 “같이 이공계 나와 놓고서 무슨 헛소리야.”

 “그러게요, 누가 들으면 레너드 선배만 인문계 나온 줄 알겠어요.” 

 문학도 그다지 못하셨으면서. 술루의 찌르는 말에 스코티는 크게 웃었고. 나는 입을 비죽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못 마시니까 재미가 없네. 걔가 집에 혼자 있어서, 이제 가봐야겠어. 스코티는 마음대로 하라고 손을 흔들었다. 더는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지난번에 집에 걸었던 전화를 제임스가 받았을 때 펄펄 뛰었던 걸 생각하면 대단한 발전이었으나, 결국 끝에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만다. 그래도 나는 그 인간 못 믿으니까, 종종 확인은 해야겠어.

 “친구가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거나, 세간을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뉴스로 접하는 건 사양하고 싶으니까.” 

 술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같이 뵙든가 하죠. 나중에. 어쩐지 힘이 실린 그 단어에 스코티가 주석을 달았다. 뭐, 그렇게 오래 데리고 있을 거라면 말이지.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고, 그대로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사야 할 물건들이 있었던가를 떠올리는데 그닥, 생각나는 게 없어서 결국 전화를 걸었다. 집이라고 표시된 번호를 누르면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다. 꼬박 3년 만의 일이었다.

  [레너드 맥코이씨 집입니다. …혹시 본즈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른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런데 도대체 매번 어떻게 아는 거야? 수화기 너머의 제임스가 웃었다. 숨소리가 들리잖아. 그걸 들으면 알 수 있더라. 나는 잠깐 멈춰 섰고, 제임스는 여전히 귓가에서 키득거렸다. 아니 그냥 느낌인가? 그냥 본즈일 것 같더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보지 못할 제임스가 물었다. 오는 중이야? 그러면 피자 좀 사오면 안 돼?

 “피자?” 

 [영화 보면서 먹자. 콜라 마시면서.]

 제임스가 들뜬 어조로 주절거렸다. 영화는 뭐가 좋을까. 나는 액션이 좋아. 아니면 로맨스도 괜찮아. 아니 사실은 그냥 아무거나 다 좋아. 본즈가 좋아하는 걸 봤으면 좋겠어. 뭉글뭉글. 말소리가 속을 채우는 느낌에 깊게 숨을 들이쉬었더니, 제임스가 말을 멈췄다.

 [본즈. 빨리 와.] 

 그렇게 배가 고프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제임스가 수화기 너머에서 나를 불렀다.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본즈. 본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응. 대답했더니, 전화가 망가진 것 같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제임스에게 말했다. 

 “피자랑 콜라, 큰 거 살 거야.”

 [응?]

 “20분쯤 걸릴 것 같으니까. 내가 도착한 것 같으면, …문 좀 열어줘.”

 [그래.] 

 기다릴게.

 그 한 마디에, 제임스라는 개가 아니라. 그냥 제임스가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벌써 한 달 전이었다. 여전히 그 생각은 유효했다. 제임스가 먼저 떠나지 않는 이상, 나는 내 집에 제임스라는 개를 들일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오랜만에 해보는 말을 뱉었다.

 

 “집에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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