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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마음대로 되지 않은 세상은 꽤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모두가 웃고 있는 모습에 마찬가지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웃음을 위해 싸우고, 시작과 같이 누군가를 잃었다. 그러나 잃었기에 우리는 나아갈 수 있었고 지금과 같은 결말을 얻었다. 그 누구도 게임병에 절망하지 않는다. 싸움이 끝났다, 라는 말로 우리는 더이상 게임병과의 사투를 이어가지 않아도 됐다. 게이머 드라이버를 내려놓는 순간이 정말로 마지막이다. 나의 안도감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푹 한숨을 내쉬고 짐을 싸는 니코에게 손을 흔들었다. 평화로워진 이상 니코가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니코는 결국 하나야의 병동을 나가기로 했다. 가끔 찾아와도 돼?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을 이유가 없다. 대답하지 않은 채로 시선을 컴퓨터에 꽂았다. 흔들리던 주식들이 안정되고 있다. 게임병의 위협이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은 다시 돈놀음에 취하기 시작한다. 나의 시선이 완전히 고정되자 니코는 작별인사를 건네고 방에서 나갔다. 이렇게 혼자가 된 시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조용한 방이 사뭇 어색하기도 하다. 멍하니 주식 창을 바라보다 무심코 핸드폰을 확인해본다. 온 연락은 존재하지 않아, 그저 다시 원래 놓여있던 자리에 돌려놓을 뿐이었다. 위기감을 가질 것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도 없어진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나야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할 것 없이 나른한 몸은 잠에 들라 말하고 있다. 머리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할 게 없을 때 하기 가장 좋은 건 잠을 자는 것이란 걸.

불편한 자세로 얕은 잠에 빠졌나? 싶을 때쯤, 꿈인지 모를 세계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소리인데 실제로 울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조금만 더 잠을 청할까 몸을 움직이다 퍼뜩 잠이 깨버리고 말았다. 책상위에 잘 놓여져 있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발신자는 위생성. ……위생성? 의아함에 여러 가지 상황을 예상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이제 받았나, 하나야 타이가군.]

 “무슨 일이지?”

 [할 얘기가 있다네. CR의 모두를 불러두었으니 하나야군도 CR로 와주게.]


 목소리의 주인은 히나타 쿄타로였다. 목소리에서 어째서인지 단호함이 느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호출에 내키지는 않아도 빠르게 병원으로 향했다.

 CR에 도착하자 이미 모여있던 카가미 히이로와 호죠 에무가 나를 반겼다. 아니, 반겼다기보단 짧은 시선을 건넸다고 하는 게 옳다. 그들의 표정은 사뭇 심각하게 구겨져 있었다. 자동문의 소리가 퍽 요란하게 왔다 갔다 하자 티비에 떠 있던 히나타 쿄타로의 목소리가 자신을 향해 꽂혔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극비사항이니 절대 외부에 유출해서는 안 되네.]

 “그런 얘길 나한테 하겠다는 건가? 웃기는군.”

 “타이가씨는 믿을 수 있으니까 부탁드렸어요.”

 “……그래서? 뭐지?”


 화면 속의 남자는 한참 뜸을 들였다. 어지간히도 심각한 일인가 보다 싶어 에무 옆의 의자를 빼고 편히 자세를 잡았다. 들을 준비가 끝났으니 어서 말하라는 표시기도 했다.


 [단 쿠로토는 살아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하고 예상하고 싶지도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또박또박 들려온 이름은 잘라내진 기억의 남자. 끝이 나면서 증오와 복수심을 우선하기보다 이제는 보내주었다 생각하기 시작한 남자의 이름이 어째서? 그만큼 마음의 공허함을 정리해왔다. 계속해서 느꼈던 배신감을 이제는 덤덤하게 묻을 수 있을 정도가 됐었는데.


 [어째서 살아있는가는 긴 이야기가 될 것이지만, 그것보다 급한 일은 바로 자네들을 이곳에 모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유라는 건?”

 [단 쿠로토의 감시역을 뽑아야 한다. 일반 관계자를 그의 방에 출입시키기엔 현혹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고 다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한편으로는 지식이 있는 자들을 선별했다.]

 “그게 우리라는 건가.”

 [그렇다. 단 쿠로토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강한 마음을 가진 자네들 중 한 명이 이 일을 맡아줬으면 하네.]

 “설명은 똑바로 해야 하지 않나? 지식이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그 자격에 부합한다면 어떤 지식이지? 뭐, 단 쿠로토는 지금 죽어가는 상태라도 되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절로 가시가 돋친 말이 질문을 위장해 튀어나갔다. 빈정거림을 알아듣지 못할 위인은 아니다. 화면상의 히나타는 급히 헛기침을 했다. 아무리 들어도 수상할 뿐이다. 당연히 죽은 그가 게임병이 없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난단 말인가. 또 다른 버그스타의 탄생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흑막이 존재해 일을 벌인지 그 답을 알고 있는 건 눈앞의 고위 간부뿐인 듯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인 카가미 히이로와 호죠 에무는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게임 지식을 가진 자네들이 필요하네.]

 “그렇다면 호죠 에무를 쓰면 될 텐데, 굳이 우리까지 부른 이유는 뭐야.”

 [보통 게임이 아닌, 가샤트 게임이지.]

 “하아?”


 가샤트 게임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 쿠로토는 살아있다. 이것을 알려주는 곳은 바로 국가의 권력기관인 위생성이다. 어째서 단이 살아있냐는 물음의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예상되는 답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절로 열이 머리로 쏠렸다.


 “고작 게임 때문에 단 쿠로토를 살렸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거라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고작 게임이 아니네! 치료용 게임 가샤트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히나타의 말에 절로 격양된 답이 튀어나왔다. 무슨 말을 해도 지금 당장 이해하기엔 어려웠다. 버그스타, 게임병의 근원인 놈이 무슨 치료용 게임 가샤트인지 알 수 없다. 정확히는 이해를 하고 싶지 않아 똑바로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게 아닐까, 자신의 약함이 주목받고 있다. 너무 크게 부각되어 한참을 돌아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 말해야 하는 건 따발총 같은 말대답이 아닌 이해할 수 있는 이유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관한 것이었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해본다. 치료용 가샤트는 무언가를 치료하기 위함에 존재할 텐데 어째서 그게 단이 살아 있어야 할 이유인지. 문득 눈을 찌르게 길어진 앞머리를 짜증 나게 넘기며 입을 열었다.


 “가샤트의 개발이라면 코보시 츠쿠루도 있을 거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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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맨이 너무 예상외로 부활하시는 바람에 다 뒤엎었습니다 안녕 내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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